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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지성적 피조물에 대한 특별한 통치
특별한 통치는 하나님이 이성적 피조물을 도덕적 방식으로 통치한다는 것이다. 이성적인 피조물들의 고유한 특성이 통치방식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성적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고, 불멸하며, 자신의 지혜에 일치되도록 행동들을 결단하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지혜와 자유에 일치되어 행복과 불행의 영원한 상태를 지향하도록 명령되었다.
도덕적 통치는 가르침과 이미 전에 가르친 것의 실행에 달려있다. 미6:8,사람이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으니; 신30:15,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 계시된 하나님의 의지는 도덕적 삶을 위한 규범으로서 이성적 피조물에게 적용된다. 하나님은 부분적으로는 법을 제정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이를 확증함에 있어서 가르침에 의해 통치하신다.
법은 명령하고 금지함으로써 제정된다. 법은 약속하고 위협을 줌으로써 확증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가르쳤던 것을 수행할 때, 이를 성취함으로써 통치하신다. 렘32:19,인류의 모든 길에 주목하시며 그 길과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이성적 피조물에 대한 특별한 통치방식으로부터 하나님과 피조물간의 언약이 발생한다. 언약은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일종의 협약으로 여기서 하나님은 명령하고 약속하고 위협하시며 성취하시고 피조물은 그렇게 요구하는 하나님에게 순종한다. 신26:16-19,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시나니— 네가 오늘날— 그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여호와께서도 —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였은즉— 여호와께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하나님과 인간이 언약을 맺는 방식은 법 앞에서 평등한 자들 간의 언약이 아니라 주인과 종 사이의 언약이다. 따라서 통치와 관련된다. 이는 인간의 언약이 아니라 창시자요 주요한 행위자이신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타당하다. 본 언약에서는 지성적인 피조물의 도덕적 행위들은 보답으로써 행복 혹은 형벌로써 불행으로 인도한다. 양심은 하나님의 판단에 복속하는 지성적 피조물의 자기 판단이다.
이성적 피조물들에 대한 특별한 통치는 천사들과 인간들에게 적용된다. 천사들에 대한 특별한 통치는 특별한 금지명령이든지 추후의 사건의 제정이다. 본질적으로는 이는 십계명의 도덕법과 동일한 법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의 본성이나 유한한 인생의 상황과 관련된 명령들은 예외이다.
많은 천사들이 자유를 남용하여 배교했다. 이들은 그때부터 악에 완고해졌고 최대의 불행을 선고받았다. 유6,벧후2:4, 따라서 악한 천사들은 더러운 영들이요 어둠의 영들이다. 눅8:2,9:42. 천사들의 타락의 시기에 대해서는 오직 아담의 타락 이전에 발생했다고만 말할 수 있다. 지은 죄의 종류에 대해서는, 이들의 최초의 동기가 교만이었다고 매우 개연적으로 말할 수 있다. 성경은 타락한 천사들에게 최종적인 형태의 형벌이 부과되지 않았으며 이들에 대한 최후의 형벌은 세계 종말시에 주어질 것이라고 언명한다. 마25:41,고전6:3.
인간의 통치에 있어서도 천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것- 법의 규정과 추후의 사건의 결정-이 준수되어야 했다. 십계명으로 요약되는 동일한 도덕적 본질이 있다. 인간은 천사들보다 불완전하고 보다 많은 교육과 실천이 필요하므로 적극적인 어떤 것이 자연법에 추가되었다.
아담이 첫 번째이고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간이 연원하기 때문에 법은 천사들에서와 같이 개인으로서의 아담에게 주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공인으로서 혹은 인류가족의 수장으로서 아담에게 주어졌다. 아담의 후손들은 모든 선과 악을 아담으로부터 획득해야 했다. 행17:26, 롬5:18,19, 고전15:21,22.
하나님의 법 혹은 창조시 인간과의 언약은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 것이라. 만약 이를 행하지 아니하면, 죽을 것이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말들에서 최초에는 명령이 있고 그리고 약속-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과 마지막으로 위협-이를 행하지 아니하면 죽으리라-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언약에서는 두 가지 상징과 성례가 있었다. 순종에 대한 보답은 생명나무로 표시되었고 불순종에 대한 형벌은 선악과의 나무로 표시되었다. 전자는 생명의 성례이며 후자는 사망의 성례이다.
11 인간의 배교 혹은 타락
지금까지 인간에 대한 특별한 통치의 첫 번째 부분인 법을 규정한 것에 대해 다루었다. 다른 부분은 추후 사건들의 제정이다. 인간에게는 사건들을 제정할 때 두 가지 것이 고려되었다. 아포스타시스와 아나스타시스, 즉 인간의 타락과 인간의 회복이다. 롬5:19,고전15:21.
천사들에 있어서는 일부는 보존되고 일부는 타락했지만, 배교한 천사들의 아나스타시스, 즉 회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에 있어서는 모든 인간이 태초에 한 아담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보존과 배교가 함께 병존할 수는 없었다. 즉 인간들 일부가 타락으로부터 보존될 수 없었고 다른 인간들도 동일한 한 아담 안에서 타락한다. 최초의 인간의 죄에 있어서는 모든 인류의 본성이 소멸했다. 인간의 배교는 하나님에게 돌려야 할 순종으로부터의 타락 혹은 하나님에 의해 명령된 법에 대한 위반이다.
타락은 범죄함과 죄의 전파가 고려되어야 한다. 범죄함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명명된 나무로부터 금지된 열매를 따먹은 데서 발생했다. 불순종의 첫 번째 운동 혹은 단계는 필연적으로 따먹는 행위보다 선행되었고 인간은 금지된 열매를 따먹기 이전에 이미 죄인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하와의 금지된 열매에게 접근하려는 욕망이 죄의 한 단계를 나타낸다. 창3:6,여자가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이 불순종의 첫 번째 운동과 단계는 마음의 교만으로 인한 일종의 우월감에 대한 전도(顚倒)된 욕망이었다. 하와는 이러한 우월감을 획득하기 위해- 하나님의 금령은 하와의 불충성 안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그리고 그 열매가 그러한 우월감을 부여해줄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금지된 열매를 시험해보려고 했다. 따라서 교만, 배은망덕, 불충성뿐만 아니라 가장 신성한 맹세의 위반을 포함한 하와의 죄의 심각성은 불순종에 대한 일반적 선언 및 언약 전체에 대한 경멸을 보여준다. 이는 죄인의 상황이 완전성에 가까웠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보다 흉악한 것이다.
범죄함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해야 한다. 주요한 원인은 하나이며 다른 이차적인 원인들이 존재한다. 주요한 원인은 인간 자신의 자유의지의 남용에 있다. 그는 자신이 순종하기를 선택한다면 계속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의와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담에게 주어진 의와 은혜는 아담의 범죄 전에는 아담으로부터 박탈되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확실하고 지혜롭고 공의로운 경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도 인간의 타락의 원인이 아니다. 또 하나님은 범죄할 필연성을 부과하지 않았다. 인간은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하나님으로부터 타락했다.
부수적인 원인들은 사탄과 여자였다. 사탄의 첫 번째 죄는 교만이다. 사탄은 전도(顚倒)된 우월감을 취함으로써 정해진 우월감을 상실했다. 그리고 다른 자들의 우월감은 사탄을 괴롭게 했고 사탄은 이를 대적하는 데 전념했다. 하지만 사탄은 강제적인 원인은 아니며 그러한 죄를 야기시키는 충족하고 직접적, 필연적이고 확고한 힘의 원인은 되지 못한다. 사탄은 유혹을 통해 의논하고 설득하는 원인일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탄은 유혹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4:3. 사탄의 유혹은 허위적 혹은 왜곡된 논증이며 이로써 사탄은 진리이며 선한 것을 가장하여 허위로 미혹시키고 악으로 인도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유혹에서 사탄이 언명하고 약속하던 선은 마치 최대의 선인 것처럼 제시되었다. 그것을 성취하는 방식은 단순하고 용이한 듯 가장되었다. 인간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최대의 악이 인간에게는 숨겨져 있었다.
사탄은 인류를 미혹시키는 모든 유혹에 있어서 동일한 일을 행한다. 본 유혹에서는 매우 교활하고 간악한 특별한 궤계가 발견된다. 첫째, 사탄은 뱀을 활용했다. 뱀의 본래적인 성향을 악용했다. 둘째, 사탄은 여자에게 접근했다, 딤전2:14. 남편의 부재 여부는 성경에 언급이 없다. 셋째, 사탄은 첫 번째 대화에서는 아무 것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가 그 문제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여자에게 질문만 던졌을 뿐이다. '하나님이 참으로--(말씀)하시더냐?'
넷째, 사탄의 질문은 모호했다. 다섯째, 사탄의 질문에 의해 하나님을 의심하게 했을 때, 사탄은 동요하는 여자의 심중에 너무나도 간교하게 이에 대한 제재 혹은 위협을 제거시켜서, 하와는 진리 자체 혹은 최소한 진리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 있었다. 여섯째, 사탄은 하나님의 명령과 제재를 약화시킨 후에 정반대의 예언을 한다. 일곱째, 사탄은 자신의 예언을 확증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이 그 나무에게 주신 이름을 도용하였다. 창3: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따라서 사탄은 뱀, 거짓말장이, 유혹자, 살인자라고 불리어진다, 계12;9,요8:44,계20:10.
사탄의 유혹에는 하나님의 시험도 결합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로써 인간 내면에 있는 것을 보여주도록 그 사건을 정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에 의한 시험은 악도 아니요 악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여기에는 세 번째 시험 즉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수반되었다. 여기서 인간은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를 시험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줄런지(비록 그가 하나님을 붙들지 않았으면서도), 그리고 그가 실제로 위협한 대로 행하실 것인지를 보려고 했다.
네 번째 시험은 이와 연관해서 하와 안에 일어났다. 하와는 사탄의 유혹 혹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를 자신에게 적용시켜 파멸에 이르렀다. 이로부터 다섯 번째 시험이 발생했다. 즉, 여자는 사탄의 도구가 되어 남자를 시험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여섯 번째 시험이 일어나는데, 아담이 여자와 사탄에게 의도적으로 동의하여 시험에 빠지게 된다.
모든 혹은 대부분의 시험은 개개인의 죄들로부터 발견된다. 그리고 인류의 타락을 야기시킨 죄는 아담에게서 완성되었다. 하와가 아니라 아담이 인류의 시조이다. 성경에서 두 번째 아담에 대한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두 번째 하와에 대한 구절들은 발견할 수 없다.
12 죄의 결과들
죄의 결과는 첫째 죄책과 부패, 둘째 형벌이다. 죄책이란 자신의 죄에 대해 정당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죄인의 의무이다. 레5:2-5,(그에게) 허물이 있다; 롬3:9,19,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정죄)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고전15:17,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죄책은 죄의 형태가 아니라 상태 혹은 결과요, 부분적으로는 분리가 가능하며 부분적으로는 분리할 수 없다. 죄책은 죄를 따른다. 죄책은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법 때문이며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이다. 그럼에도 죄책은 죄로부터 유래하며 형벌은 정당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다. 죄책은 죄의 본성에 참여하며 악한 것이다. 죄책은 죄와 분리될 수 없다. 죄책의 이러한 이중적 측면은 롬1:32에서 예시된다.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죄책 다음에는 고소하고 정죄하는 양심의 고통이 뒤따른다. 그 후에는 두려움이 엄습하고 하나님의 현존에서 도피하게 된다. 창3:8,히2:15,롬8:15.
부패란 죄인이 모든 위엄과 영예를 상실하고 악하게 되는 영적 오염이다. 마15:11,계22:11.
부패는 범죄 이후 즉시 수반되었으며, 죄의 행동이 지나가버린 이후에도 죄인 안에 남는다. 이는 죄의 오점, 후패함, 더럽혀짐, 비천, 부정직, 벌거벗음, 불결, 흠, 때로는 죄과라 불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유래한다. 첫째,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요, 사1:15-이는 더 큰 죄악들과 관련해서 패역, 가증한 것이라고도 불린다. 둘째, 인간이 당황할 정도로 수치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감은 부패에 대한 인식에서 발생하는 두려움이다.
형벌은 죄에 대해 죄인에게 가해진 악이다. 형벌은 선의 결여라는 의미에서 악이라고 불린다.
형벌은 형벌받는 죄인 안에서 행복이라는 선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형벌은 단순히 계약된 악이 아니라 부과된 악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형벌은 보상적이며 보복적 정의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형벌은 범죄를 뒤따른다. 이는 범죄가 금지 되었다는 것에 기인한다. 형벌은 죄책에 따른다.
이는 형벌의 위협이 그러한 내용이었다는 데 기인한다. 형벌을 제정함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다양한 속성들 특히 거룩함, 의, 긍휼이 현현된다. 형벌에 있어서는 특별히 죄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일점의 죄도 없이 순결한 하나님의 거룩함이 현현된다. 시5:4,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합1:13,주께서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형벌에서 특별히 현현되는 하나님의 보복적 공의는 악을 행하는 자에게 악을 부과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살후1:6,7,너희로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죄에 대해서만 불타오르는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는 진노라고 불린다, 롬1:18,엡5:6. 진노가 보다 강해지면 분노라고 불린다,신29;20. 이는 죄인에 대해 내려지는 선고를 의미할 때는 판단이라고 불린다,롬2;5, 그리고 내려진 선고를 집행할 때는 원수갚는 것이라고 불린다,히10:30.
죄에 대해 인간에게 부과된 형벌은 죽음이다, 창2:17,롬5:12. 죽음은 생명의 비참한 박탈이다.
인간은 생명에 의해 영혼과 몸의 결합과 그 상태에서의 인간에게 속한 모든 종류의 완전성이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죽음은 자연에 대해 제정될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즉 죄에 대한 응징으로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다. 따라서 죽음은 죄로부터 유래한다. 죄는 죽음을 삯으로 받고 죽음을 획득한다. 하지만 죽음은 단순한 생명의 박탈만이 아니다. 이는 비참함으로의 예속과 연관된다. 이는 죄인을 제거하는 것 이상이다. 왜냐하면 비참의 주체 이외에도 비참 자체도 수행되기 때문이다. 생명의 상징을 보유한 낙원에서의 축출은 이러한 죽음에 대한 유비요 진술로 볼 수 있다,창3:22-24.
죽음-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에는 두 단계, 즉 발단과 완성이 있다. 또 죽음에는 두 가지 부분, 즉 상실의 형벌, 즉 박탈의 부분과 양심의 형벌 즉 적극적 부분이 있다. 그리고 두 종류의 죽음, 즉 영적인 죽음과 육체적인 죽음이 있다.
상실의 형태에서의 영적인 죽음의 발단은 하나님의 형상의 소멸 즉 은혜와 원의(原義)의 상실이다. 롬3:23,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엡4:18,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도다. 은혜의 상실로 인해 인간은 모든 구원적 은사들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그의 본성은 약화되었고 전도되었으며 손상되었다.
영적인 죽음의 발단은 영적인 예속이다. 영적인 예속은 어둠의 권세 혹은 영적으로 사망한 적대자들에게 예속되는 것이다. 골1:13,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벧후2:19,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이는 사탄과 사탄을 섬기는 자들에 대한 예속이다. 사탄에의 예속은 사탄이 인간들 안에서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사탄의 권세로의 예속이다. 사탄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 사탄의 종들에 대한 예속은 세상과 죄로의 예속이다. 세상으로의 예속이란 세상에서 발견되는 사악한 동기들로의 예속이다. 죄로의 예속은 인간이 죄에 사로잡혀 여기서 탈출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