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지만 남은 사랑 / 박형서
가을이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던 날
흐린 하늘은 아주 낮게 가라앉고
스산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왔다
이미 돌아선 그 사랑이지만
그 사랑이 끝났을 때
다시 깊은 사랑이 시작된다는
가을 닮은 시인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사랑을 잃었을 때 사랑을 볼 수 있는
시인의 심미안 그 깊은 곳에
상처받은 내 아픔을 내려놓는다.
한사람은 떠났지만 그 사람은 남아있다
따사로운 체온의 한 사람은 없으련만
눈감으면 떠오르는 그 사람이 남아있다
상처가 깊은 만큼 사랑도 깊은 걸까
너를 위한 그 몸짓 그 눈물이
형벌로 남아야 할 사랑 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작은 가슴으로 깨닫는다.
떠나간 사랑 속에 사랑이 있기에
나는 오랜 세월 가을만을 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