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노래를 불렀다
봄꽃이 한꺼번에 피어 꽃 몸살을 앓게 하더니 어느새 연두빛 이파리가 세상을 아련하게 만든다. 새벽 안개에 묻힌 나무들이 비린내가 날듯한 연두빛 이파리로 몽환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 물상들과 추억이 하나인듯 어우러져 어느새 그리움으로 바뀐다.
직장마다 단체마다 야유회며 봄행사를 운운하며 사람들은 나무의 부름에 응하고 만다. 미세먼지 나쁨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집을 나선다. 들로 산으로 다가간다.
91세 내 어머니는 나들이 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이 술렁거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여행를 다녀와서 "저 사람들은 이제사 가는가보다"고 장치를 했기에 천만 다행이다.
요새는 나날이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바람에 우리 4자매의 목적은 '어머니를 웃겨라'가 만남의 과제가 되었다. 이번 주에는 어머니가 더 시무룩하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성당 교우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성지순례를 가자고 하는데 따라나서야 할 지 거절해야 할 지 갈피를 못잡고 갈등을 한다. 당연히 따라 나서지 말아야 한다. 속으로는 같이 가고싶어서 운동을 더 열심히 한다. 자그마치 3시간을 걷고 힘들어 한다. 말도 안 되는 자학이다. 기운 없는 것이 운동 부족으로 이해되어 운동만이 살 길이라고 알고 있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말에 노예가 되어 기운을 탕진하면 누울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뭐든 많이 하면 좋은 것으로 착각하는 병을 치료할 길이 없다.
우리는 어머니를 웃게 하기 위해 쇼파에 앉히고 내가 가져간 옷가지를 입어보이며 온갖 지나간 이야기를 곁들인다. 어느 누구도 준비 없이 남을 웃게 할 수는 없으므로 언제나 이벤트가 끼어든다.
동생들은 어머니 앞에서 슬쩍슬쩍 쇼를 한다. 그러면서 웃고 지나간 이야기를 꺼내서 버리도록 도도울 심산이다. 어머니는 마음에 씹던 껌이 붙어서 안떨어지는 듯 같은 불편한 마음자리를 반복 뜯으며 울쌍이다. 부럽거나 안타까운 느낌이 조금 강렬하게 다가들면 그 날부터 그 이야기로 도배를 한다. 똑같은 이야기에 질리지도 않고 상처받는 우리는 귀를 막고 싶지만 엄마니까 듣는다. 수세미질 하는 손길처럼 같은 자리를 반복 닦아 마음의 검뎅이를 벗겨낸다. 서운한 감정을 털어내도록 돕고 미운 감정을 지우도록 안내해도 소용이 없는 것 같더니만 반드시 안되는 것은 아닌 것같다.지난 주부터 나는 질문을 던지고 답은 다음 주에 듣겠다고 하였다. 결코 생각을 멈추지는 않는 어머니였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지난 주부터 맨트를 시작하였다.
"엄마, 아무리 아버지가 야속하고 서운하다고 하여도 엄마에게 아무 것도 고맙게 한 것이 없고 준 것도 없을까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주었는데 엄마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거지요. 다음 주에 올 때까지 한번 찾아보고 말해 주세요."
이 말을 마음에 담아 두었는지 내가 간 사이에 곱씹었던 모양이다.
"느그 아배가 한 가지는 확실히 해주었다. 나는 느그 아버지가 직장에 다니는 동안 세상 어느 누구도 무서운 사람이 없었다."
"보세요.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만족시켜 줄 수는 없어요. 다 가져도 그러한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남편도 흔하지 않아요. 역으로 아버지는 엄마가 다 좋았을까요? 그래도 대놓고 한번도 우리에게 투정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머리가 좋다고 직장에서 소문 난 것도 있지요. 그 덕에 자식들이 공부하고 살아가는데 엄마를 고달프게 하지 않았쟎아요. 어른이 되어 부모를 고생시키지 않고 이 날까지 살았던 것이 어머니가 고생한 덕도 있지만 아버지 덕도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면 모르는 사람이 실수하는 것이니 감사하고 나머지 인생을 살아갑시다. 엄마. 엄마는 역시 생각했다 하면 확실하게 답을 찾네요. 엄마 멋있어요. "
이로서 마지막 길에서의 인생 통합에 도움을 드리고 못마땅한 사람들을 싸잡아 엄마편이 되어 마구 험담에 동참했다. 그것까지 막으면 더 힘들어서 안된다고 했다. 부분 치매란 병은 참 고약하다.
밥 솥에 버튼을 누르고 밥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동생과 나는 그냥 자고 아침에 가자고 약속을 하고 집에서 입을 옷을 찾아 입고 나섰다.
"안되겠어. 엄마. 이 옷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벗어놓고 집에 갈 수가 없어. 오래 입고 있어야겠어. 이 옷 입고 자고 갈거야."
"오냐, 그래라."
어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 옷입고 외출도 해라."
"엄마 집이 좋아서 여기서만 입을래."
이리하여 마음을 결정하고 나니 어머니가 콧노래를 부른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없는 이 발 길......노래 가사가 조금 서글프다."
오란 데는 없는데, 봄날 길을 나서서 마냥 걷다가 보니 이 노래가 나왔을 터, 나는 어머니가 이 노래를 안다고도 믿지 않았다. 평소에 어머니가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았다.
이때다 싶어서 "엄마가 노래를 불렀다" 동영상을 찍기로 했다. 양팔에 딸들을 끼고 앉아서 음정박자 다 틀려도 노래를 부른다. 일부러 코를 막고 쇼를 하고 다시 하기로 했다. 한번 더 부르도록 하기 위한 수작이다. 머리가 엉망이라 두건으로 묶고 엄마는 공주님 옷 같은 원피스로 앞을 가리고 쵤영에 돌입했다.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이래 가지고 맨날 걷기만 하면 쓰겄냐."
말을 마치기도 전에 깔깔 까르르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허리가 아프게 셋이서 웃는다. 내 어머니가 웃으니까 좋아서 웃고, 어머니에게 아직 상상이 남아있는게 고마워서 웃고,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서 웃는다.
자다가 부름을 받을 지 겁나 하는 내 어머니가 '함께' 잔다는 말에 행복이 찾아드는데 일상을 한 공간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언제나 숙제로 남는다. 엄마와 함께 자는 것을 값진 선물보다 더 값지게 빋으니 미안하기가 이를 데 없다. (2018.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