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현, 풍기의 통합은 행정절차만
남았다
영주시문화원이사 풍기읍발전협의회장 김 인 순
지난 2000년 8월 본지를 통하여
“봉현과 풍기는 하나의 풍기를 원하고 있다”라는 제명으로 글을
올렸었습니다.
당시 많은 분들이 공감하였고
당위성에 대하여 이의가 없었으니 그 후 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필연성이 더 강조되고 있는 시점입니다.
그동안도 직접 간접으로
논의가 되기도 했지만 역사적인 정통성(正統性)과 실용적 측면에서 행정의 효율성도 극대화 될 수 있는 사안에 극히 미흡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는지 아쉬움을 금치 못할 뿐입니다.
말미(末尾)에 요약해서
봉현과 풍기의 행정구역(行政區域) 통합(統合)의 필연성을 기술해 두었습니다만 정말 우시게 소리로 자다가 생각해도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알기로 1950년도 중반에 당시 내무부에서 출장 온 고위공무원이 봉현과 풍기의 현황을 살펴보고 통합의견을 내었지만
민선체제(體制)의 면의회에서 건성으로 거론만하다가 말았다고 들었습니다. 기득권자의 자리? 때문이었다고 짐작해 봅니다.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대명천지(大明天地)에 눈을 비비지 않고 보아도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인데 봉현과 풍기의 행정구역을 아직도 이대로 유지해야 됩니까? 봉현지역 내에 풍기의 대표적 산업이 즐비하고 교통의
거점 중앙고속도로 풍기인터체인지로 1일 약 6천대의 차량이 통과하고 있습니다.
영주의 대표적인 축제인
풍기인삼축제가 남원천 안에서 이루어지는 데 풍기와 봉현의 책임자가 둘이서 왔다 갔다 하며 주변환경을 정비하는 광경도 바라봅니다. 안정의
남원천, 순흥의 죽계천, 단산의 사천, 부석의 소천, 그 어디도 하천을 중심으로 지역공동체가 형성되어있는데 왜 봉현과 풍기는 잠을 깨지 못한 채
발전의 방향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어야 합니까?
소백산아래서 같은 정서를
가지고 수 천 년 살았던 봉현과 풍기였으며 저 고리목(骨里峴)재 넘어 예천군 상?하리 일부 마을에 가면 안태(安胎) 고향(故鄕)이 그 곳이면서도
풍기 땅이었던 1백 년 전을 생각하며 향수(鄕愁)에 젖어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 정말 지연(地緣)의 관계가 이렇게 가깝고 인위적(人爲的)으로
나누어도 갈라지지 않는 끈끈한 맥(脈)이 있음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옛 풍기 땅을
복원시키자는 의미가 아니고 또 그럴 필요성도 전혀 없으며 현실적으로 매우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조정하자는 것뿐입니다. 봉현면에 소재한
인삼가공공장 주소가 풍기가 아니라고 소비자의 낮은 인지도 때문에 땅 값 비싼 풍기로 공장을 이전 증축하면서 푸념하는 모습도 가볍게 생각할 부분이
아닙니다.
봉현과 풍기의 면적을 합치면
부석면보다 조금 크며 인구는 3천명 정도 늘어나지만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동양대학교기숙사학생을 합치면 2만 명이 넘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통합을 전망할 때 시너지 효과(1+1=1+α)로 인구의 증가는 물론 지역산업도 비약적으로 발전될 것입니다. 소백산이
바라보는 영주시의 북부거점(北部據點)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영주의 자랑! 웰빙의 최고도시(最高都市)로서 명성이 커질
것입니다.
짧은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봉현과 풍기의 기득권층에서 통합에 대하여 반대의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 밀려오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기회를 일실(逸失)해서는 않되겠습니다. 1년이 늦으면 10년이
침체(沈滯)될 수 있습니다. 가장 뼈아픈 소리, 일제 강점기! 빼앗겼던 나라!! 우리 봉현과 풍기 작은 지역에서도 정서(情緖)의 분열(分裂)을
가져 온 1백년 세월이 있었음을 상기합시다. 1914년 4월 1일 강압적으로 조선총독부훈령 111호에 의해 남원천(南院川)을 경계로 분리된
봉현과 풍기를 하루 빨리 복원되도록 간절(懇切)히 기원(祈願)해 봅니다. 봉현과 풍기의 통합은 행정절차만 남았습니다.
풍기.
봉현의 행정구역 통합, 필연성
- 역사적으로 봉현 ? 풍기가 행정구역상
분리된 시기는 1914년 4월 1일 일제 강점시 조선 총독부에서 대대적 인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단행한 일제의 잔재임. - 일반 행정을
제외한 치안 ? 농협 등은 효율적인 운영 측면에서 오래 전에 구조조정이 되었으며 지금의 행정체제(體制)는 저해 요건임. - 봉현면 소재
농공단지, 지방산업단지조성과 중앙고속도로 개통으로 산업중심권내에서 행정구역상 명칭의 혼돈을 가져 옴. - 풍기 도시 계획권 안에서
이루어지는 농민회관 건립, 풍기특산물시장, 풍기인삼유통업(상품주소지에 풍기기재불가), 남원천개발 확대 등은 행정집행의 효율성과 배치됨.
- 1972년 8월 23일(건설부고시 제 379호) 풍기도시계획확정은 풍기 ?봉현 통합을 전제로 작성된 것으로 사료됨.
통합절차(필자개인의 임의적인 판단) - 봉현면
발전협의회 및 각 단체장과의 간담회 (주관 : 영주시) - 영주시에 건의문 제출 - 여론조사(지방자치단체장의 통합의지
요망) - 행정자치부의견제출 -
주민투표 기대효과 - 숙원사업조기해결 : 남원천
대교가설(역전 통 도시 계획도로마무리), 풍기읍 사무소 이전, 옛 풍기군 상징터 복원(제운루 및 기주절제 아문), 주요소방도로 개설 등
☆인센티브 기대 : 특별교부세 - 일제 강점기 단기간 단절되었던 봉현 ? 풍기주민의 정서 통일 - 지방화시대에 주민 스스로 통합을
이룬 전국 최초의 사례 기록. - 지역 정체성 업그레이드 : 소백문화, 관광, 산업 - 인구증가
제안자
의견
- 일제 강점시기 강압적인 행정구역통합으로 갈라졌던 봉현 ? 풍기주민의 분열된 사고가 역사적인 필연성으로 생활 정서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시대적인 소명임. - 풍기읍사무소와 봉현면사무소가 불과 1km이내에 소재한 지역여건은 풍기지역에서는 동서남북중 남쪽이,
봉현 지역에서는 북쪽이 없는 기형적이고 불합리한 행정구조로 약 1백년의 세월이 지나왔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제 행정구역조정은 필연적인
당면과제로 사료됨.
중앙고속도로 풍기 I.C
1일 6,000여대가 통과하는 풍기 I.C,
풍기읍소재지에서 2km이내이지만 행정구역은 봉현면이다. 4천 여 명의 동양대학교 외지학생과 소백산, 부석사, 소수서원을 찾는 방문객이 이용하고
있다.
풍기 전경
봉현면에서 바라본 풍기도시구역내의 직물공업단지와
풍기읍소재지 전경, 중앙고속도로 풍기 IC에서 부석사로 가는 4차선 우회도로가 풍기읍을 감싸고 있으며 가운데 남원천이 흐른다. 2006년도
불티나게 팔려나간 웰빙인견 풍기직물공장이 직물산업의 재도약을 기대한다.(사진제공 : 루디아 대표이사 송세영)
풍기직물조합
봉현면에 소재한 풍기직물의 산실 풍기직물조합건물 전경
사설 풍기 특산물 휴게소
중앙고속도로 풍기 IC로 진입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풍기특산물 휴게소 전경
풍기인삼축제장의 찬란한 전경
남원천을 중심으로 봉현?풍기를 왜 이렇게 갈라놓았을까,
어제도 오늘도 봉현과 풍기는 하나다. 보라! 인삼축제장의 모습 얼마나 보기 좋은가!!(사진제공 : 영주영광고등학교 서상호선생님 봉현과 풍기의
통합은 행정절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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