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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양명(1472~1528)의 고향 저장성 여요에 있는 왕양명의 흉상. 그는 형식화된 주자학을 비판하고 새로이 양명학을 창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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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록〉은 ‘양명학’의 교전(敎典)이다. 양명학은 “우주가 바로 내 마음, 내 마음이 곧 우주”라고 하여 유가에서 유심론을 제창한 송대(宋代)의 상산학(陸象山의 학, 象山은 호. 이름은 陸九淵 1139-1192)을 이어서, 명대(明代)에 유가 심학(心學)을 완성시킨 왕양명(王陽明, 陽明은 호. ‘양명학’은 그의 호를 따서 붙여진 학명. 이름은 守仁 1472-1528)의 철학사상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넓은 의미로는 양명 후학들의 사상까지를 포괄하지만, ‘양명학’ 하면 대체로 왕양명 자신의 철학사상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왕양명의 철학사상을 오롯이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전습록인 것이다.
전습록과 양명학
송명(宋明) 유학은 정주(程朱)의 성리학과 육왕(陸王)의 심학(心學)으로 대별되는데 오늘 날 학계에서는 정주학과 육왕학을 합쳐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전습록(傳習錄)〉은 주자학의〈근사록(近思錄)〉과 함께 신유학의 빼놓을 수 없는 고전(古典)이다.
〈전습록〉은 왕양명의 어록, 제자 및 당대의 학자들과 학문을 논한 편지글 들을 모아 집대성한 책이다. 모두 상 중 하 3권으로 상권은 1518년(양명 47세)에 문인 설간(薛侃)이 서애(徐愛) 육징(陸澄)과 설간 자신이 기록한 선생(왕양명)의 어록을 모아 판각한 것이고, 중권은 역시 문인 남대길(南大吉)이 1524(양명 53세)년에 초간 전습록을 상책으로 하고, 왕양명이 학문을 논한 편지 글 8편을 모아 하책으로 하여 절강 소흥(紹興)에서 각간한 것이다.
그리고 1556년 문인 전덕홍(錢德洪)이 하권을 포함 상 중 하 3편을 한데 묶어 펴내니, 이것은 왕양명 사후 26년의 일로서 〈전습록〉의 총 완성본이 된다.
상권(132조)은 왕양명 40세 전후의 어록이 많고, 중권의 학문을 논한 편지 글들(8편)과 하권의 어록(142조)은 50세 이후 만년에 설한 내용들이 중심이다. 왕양명은 57세에 객향(客鄕)에서 공무수행중 병으로 사망하니 50세 이후는 그에게 있어 만년에 해당 한다. 전습록은 왕양명이 평생토록 설한 철학사상을 빠짐없이 담고 있으며, 그 후학들 사상 형성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양명학 연구의 기본서 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왕양명의 사상이 불교의 선학(禪學)과 같다하여 조선시대에 크게 배척을 당했다. 그 결과 이 책은 활발한 유통이 불가 했으며 언해 또한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조선 시대 양명학 연구자는 하곡 정제두 등 몇 사람에 불과 하다. 따라서 전습록이 한글로 번역되어 간행된 것도 아주 최근의 일이다. 주자학의 융성과는 달리 양명학은 불모지에 있었다. 〈전습록〉이란 책이름 자체가 아직도 우리들에게 낯 설은 것은 모두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 〈전습록(傳習錄)〉은 논어 학이(學而)편 증자(曾子)의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증자는 말하길 하루에 세 가지를 살피는 데 그 중 한 가지가 “전해 받은 것을 충분히 익히지 않았는지(傳不習乎)?” 하는 것이다. 이 전불습(傳不習)에서 ‘불(不)자’를 빼고 “전하고 익힌다”는 전습(傳習)을 따 거기다 ‘錄(기록)’을 붙여 책 제목으로 만든 것이다. 제목에 ‘학문 연구’의 의미가 깊다.
心卽理-마음이 곧 天理다
〈전습록〉에 담긴 왕양명 철학사상의 골간은 심즉리(心卽理), 지행합일(知行合一), 치양지(致良知) 그리고 만물일체관(萬物一體觀) 이다. 이 4가지 관점과 이론 들은 종래의 주자학(朱子學)과는 상반되는 개념들이다. 심즉리설은 주자학의 성즉리(性卽理)설을, 지행합일은 주자학의 선지후행(先知後行)론을, 그리고 치양지는 주자학(朱子, 朱熹의 존칭. 1130-1200)의 치지(致知)설을 철저하게 비판 하는 가운데서 세워지는 이론들로, 주자학에서의 중심인 이(理-太極)는 마음(心)으로 그 자리가 대치된다.
만물일체관 역시 불교처럼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일심(一心)의 소현(所現)이라고 하는데서 얻어지는 결론이다. 그러므로 ‘심즉리’는 양명학의 핵심이다. ‘심즉리’란 용어를 유가에서 먼저 쓴 학자는 전술한 육상산이다.
상산은 “사(四)단은 곧 마음 이고, 천지가 나에게 준 바도 곧 마음 이다. 사람은 모두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理) 역시 갖추고 있으니 ‘마음이 곧 이(心卽理)’ 이다”라고 하였다(상산전집 與李宰二書).
그러나 왕양명의 ‘심즉리’는 용어와 내용은 상산과 다르지 않더라도, 상산학을 연구하여 이어서 그것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일찍부터 주자의 격물치지(格物致知-大學)를 화두로 삼고 있다가 귀양살이 간 귀주 용장(龍場)에서 어느 봄 날밤 명상 끝에 홀연히 “일체 성인의 도가 나의 성(吾性)가운데 자족하니 사물에서 이를 구함은 잘못이다”라고 깨우친데서 비롯 된다. 주자에서 격물은 나 밖의 사물에서 이를 찾는 것이다.
주자의 ‘성즉리(性卽理)’는 사사물물에 각각의 이가 내재 한다는 이론인데, 격물은 바로 그 사물의 이를 찾는 궁리(窮理)다. 왕양명이 ‘일체 성인의 도가 내 마음에 자족한다’고 깨우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의 마음이 이(心卽理)’라는 뜻이다. 이가 내 마음인데 이를 내안에서 찾아야지 왜 밖의 사물에서 찾는다는 말인가. 그래서 뒷날 왕양명은 제자인 서애에게 “마음이 곧 이다(心卽理也). 사욕의 가림 없는 이 마음이 곧 천리(天理)다”라고 가르친다. 이래서 왕양명에 있어 격물(格物)은 궁리가 아니라, 인욕의 제거(去人欲)로 해석 된다.
주자학과 양명학의 분기점은 바로 이 격물설의 다름에 있고, 양명학이 선학과 같다(似禪)는 평을 듣는 것도 우선은 ‘심즉리’설에 기인한다. 그리고 주자학에서의 ‘성즉리’는 성리학, 왕양명에서의 ‘심즉리’는 심학이라는 각각의 명칭을 갖는 소이연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주자학이나 양명학에서 다 같이 핵심개념을 이루고 있는 이(理)는 어디서부터 유래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를 천착할 필요가 있다. 그 까닭은 정주, 육왕으로 대표되는 신유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화엄학과 신유학
당대에 성립된 화엄학(화엄종 철학)은 일심(一心)을 주제로 하여 이사법계관(理事法界觀)을 세우고, 송대의 성리학은 태극(성)을 중심으로 하여 이기론을 확립하며, 명대의 양명학은 역시 마음(心)을 주체로 양지학(良知學)을 완성한다. 화엄, 성리, 양지학이 이처럼 각각 명칭이 다르고 종지가 판이 하지만, 이 세 학(學) 가운데 공통적으로 흐르는 맥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이(理)의 사상’이다.
화엄에서는 이가 마음(心)과 동일하여 사(事)를 이루는(衣理成事-淸凉澄觀) 형이상의 존재로서 사(現象世界)의 체(體)가 되고, 성리학에서는 이가 곧 태극으로 역시 형이상의 도로서 기(氣) 속에 내재해, 만물의 본성이 된다. 그리고 양명학에서 이는 화엄과 마찬가지로 마음과 동일하여 만물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를 마음 안의 존재로 규정한다.
화엄에서 이는 마음이고 사의 체다. 성리에서 이는 태극으로서 성이며, 양명에서 이는 마음이고 역시 만사를 이루는 근본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는 심(心) 또는 성(性)으로서 이 세 학문에서 공통적으로 형이상의 존재가 된다. 존재론적으로 본다면 ‘이와 심’은 화엄과 양명에서 존재 그 자체 즉 실재(reality)로서 ‘심즉리’이다. 성리에서는 ‘이와 성’이 실재로서 ‘바로 ’성즉리’다.
이상 불학(佛學)과 신유학에서의 이의 성격과 그 의(義)를 살펴보았다. 세 가지 학문이 모두 이를 빼놓고는 성립이 불가능 할 만큼 이는 중요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중국사상사에서 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철학의 중심이 되었는가? 불학에서 인가, 유학에서 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불교 화엄학의 성립부터라 할 수 있다.
유교 대표 학설 양명학의 교전 불교 禪과 비슷해 조선 배척 화엄·성리·양명학, ‘理 사상’ 다뤄 ‘心卽理’, 화엄 이사법계관에 뿌리
원래 이(理)자는 옥(玉)자와 리(里)자로 결합된 형성자(形聲字)이다. 玉은 글자의 형방으로 뜻을 표하고 里는 성방으로 음을 나타낸다. 이의 주요 의미는 옥을 기초로하여 형성되고 있다. 옥으로 다듬어지기 전의 옥석은 자연적인 문리(紋理)를 가지고 있다. 紋은 무늬이고, 理는 결을 뜻한다. 공장(工匠)이 옥을 만들려면, 그는 무늬와 결을 따라서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와 같이 理는 중국 고대에서 옥석의 紋理를 지칭함과 동시에 또 문리에 순응하여 옥을 다스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紋理 와 治玉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리는 물리(物理), 치옥은 사리(事理)라는 의미로 발전하며, 사회 문화적 확대에 따라 점차 다의적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역전(易傳)에서는 천하지리, 성명지리(性命之理), 의리, 물지리(物之理)로, 도가에서는 물리(物理), 생리(生理), 인리(人理)로, 맹자에서는 의리(義理), 순자에서는 예리(禮理) 등으로 그 의미가 고양되고 있다. 애초 옥의 무늬를 뜻했던 이가 역사가 흐르면서 매우 추상성을 함의한 어휘로 발전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유가나 도가 쪽 어디에서도 이가 마음이나 성과 결합하여 ‘존재의 이’로 전화하지는 못했다. 이가 ‘철학적 실재’의 개념으로 되기까지는 당(唐)대의 화엄학을 기다려야 했다.
두순ㆍ지엄ㆍ법장ㆍ징관ㆍ종밀 등 당대 화엄종사들은 화엄경을 탐구, 그것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관점은 같지 않았지만 불교라는 종교이면의 비밀 경험들을 체득하고, 그런 연후에 그것들을 철학지혜, 즉 이성의 문자(rationnal language)로서 경속에 담긴 불교 진리들을 철리(哲理)로 다시 정립하는데 성공하였다. 우리가 화엄학을 ‘화엄철학’이라고 부르는 소이도 이런데 있다. 그리고 그것을 대표하는 이론들이 이사법계(理事法界)론 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법계론 이전에 먼저 화엄경문에서 심이 갖는 의(義)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사법계는 오직 일심(一心)의 연변(演變)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그림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 마음으로 말미암아 그림을 그린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心如工畵師) 모든 세간을 그려내는데, 오온이 다 마음 따라 생기어 법을 만들지 않음이 없다. 심과 불이 이와 같고, 불과 중생이 또한 그러하다. 마땅히 심과 불이 이러한 줄 알면 체와 성이 모두 무진함을 알 수 있다. 심행(心行)이 세간(世間)을 두루 짓는 줄 아는 이 있다면, 이 사람 佛을 보아 참다운 성을 알게 된다. 만일 누가 삼세(三世)의 일체불(一切佛)을 요지(了知)코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임을 보아야 할 것이다”(80화엄 야마천궁품).
화엄경문의 그 유명한 ‘일체유심조’ 법문이다. 그림 그리는 화가가 그 그림이 자기 마음의 소산인 줄을 모르고 있듯이, 우리 중생들도 나의 일체 심행이 세간을 두루 짓고 있는데 그것이 마음인 줄을 모른다. 일체가 ‘유심조’임을 아직 깨우치지 못해서다.
이와 같은 일체유심조의 일심(一心)은 화엄종사 들에 의해 사법계로 설해진다. 즉 심은 만유를 융통하여 사종법계를 이룬다. 청량징관은 “법계의 상(相)은 요약하면 오직 셋이나, 그러나 모두 사종을 갖추고 있음으로 1은 사법계(事法界)요, 2는 이법계(理法界)요, 3은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요, 4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다”라고 한다(화엄법계현경). 그리고 이와 같은 징관의 사법계(四法界)를 규봉종밀은 더욱 상세 하면서도 간요하게 해석을 내리고 있다.
1. 사법계니 界는 分의 義인 바, 일일차별의 分齊가 있기 때문이다. 2. 이법계니 여기서 界는 性의 義인 바, 事法이 무진하나 同一性인 까닭이다. 3. 이사무애법계니 性과 分의 義인 바, 성분은 무애한 까닭이다. 4. 사사무애법계니 일체 分齊의 事法이 一一如性으로 융통하여 중중으로 끝이 없는 까닭이다(주 화엄법계관문).
일반인이 평소에 화엄 사(四)법계관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위 종밀선사의 주석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가 있다. 같은 계(界)자라도 사와 이에서 뜻이 정반대다. 사법계에서는 나뉨(分)인 바. 이것은 사법계가 우리들 안전에 현전(現前)하는 사사물물로 각기 차별상을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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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운 동국대 명예 교수 | 다음 이법계에서 계(界)는 성(性)인바, 일일차별의 사사물물이 중중무진이라도 그 안의 성(性)은 동일하다는 뜻이다. 주자학의 ‘성즉리’는 바로 이 이법계(理法界)의 ‘이성(理性)’과 같다. 주자에서 ‘태극은 이’이고, 만물은 각기 태극을 그 안에 가지고 있으니(萬物各具一太極) 곧 사사물물에 동일성의 理(태극)가 똑 같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태극인 이 이를 사람에 있어서는 성(性)이라 하고 사물에 있어서는 이(理)라고 부르는 차이 뿐이다.
왕양명에 있어서도 화엄의 4종법계 모두가 일심의 소현이고 특히 만물에서 체성(體性)을 갖는 이법계가 바로 심인 바, ‘마음이 이(心卽理)’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게 도출되는 이론이다. 이렇게 보면 주자학의 ‘성즉리(性卽理)’나 양명학의 ‘심즉리(心卽理)’는 모두 화엄의 이사법계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할 것이다.
옥의 무늬(紋理)로 시작한 ‘리(理)’가 드디어 당대의 화엄학에 이르러 마음과 결합, 철학적인 형이상의 ‘실재’ 로 개념이 크게 승화되고 있다. 불학이 유학보다 마음(心)의 형이상적 바탕이 그 만큼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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