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70년, 우리 제법 멋지게 살았잖소
#1. 파란만장 70년, 우리 제법 멋지게 살았잖소
#2. 대한민국 광복 70년, 역사박물관
-------------------------------------
#1. 파란만장 70년, 우리 제법 멋지게 살았잖소
광복 70년 해방둥이 어제, 오늘, 내일
풍족함이라고는 없던 시절,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
“우리 세대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했습니다. 맨주먹으로 일어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나는 자랑스럽습니다. 역경을 헤쳐 온 역사가 나의 인생이고 대한민국의 저력(底力)입니다.”
이 전 이사처럼 광복을 맞은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는 현재 34만358명(2015년 추계인구 기준).
전체 인구의 0.7%에 해당한다.
그들이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 70년 역사와 일치한다. 그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신생 독립국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키워냈고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등 민주화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올해로 일흔 살. 1945년 을유(乙酉)년생들의 삶은 고스란히 대한민국의 현대사다. 그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모여 한국의 희로애락이 됐다.
겨우 다섯 살, 코흘리개 시절에 이들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북한군이 큰아버지를 총살한 뒤 물구덩이에 집어넣었다”는 한봉우 목욕협회 사무국장의 기억은 어제인 듯했다. 이승 전 한국무역협회 상무는 “따발총과 죽창, 선혈 등 전쟁의 기운이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 있다”고 했다. 아픈 상처는 60년이 넘게 흘러도 아물지 않고 있다.
거의 모두가 1960, 7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감격스럽게 떠올렸다. 주부인 김순금 씨(여)는 “초등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할 때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다. 너무 감격해 칠판에 ‘고속도로 개통’이라고 쓰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경준 서울대 산림자원학부 명예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 가난한 약소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수출한 자동차를 봤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때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은 6·25전쟁에 맞먹는 치욕이자 슬픔, 좌절, 분노로 남아 있다.
이제 여유를 맛볼까 하는 시점에 많은 이들이 정직원에서 용역직원으로 떨어졌고 보수도 줄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렇지만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서는 걸 보면서 대한민국의 저력을 봤다”고 말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참사 등은 급속한 경제성장의 그늘로 이들의 가슴을 짓눌렀다.
구자흥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이사는 “경제성장만 추구하다 기본을 소홀히 해 일어난 인재라 안타까웠다”고 평가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난 희생을 떠올릴 때는 숙연해졌다. 그래도 민주주의란 열매를 쟁취했기에 값진 희생이었다. 이용성 씨(전 기업인)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다. 6·29선언을 듣고 동료들과 부둥켜안고 기뻐했다”고 회상했다. 뿌리 깊은 갈등과 분열은 이들을 한숨짓게 한다. 재미 사업가 김경아 씨(여)는 “좁은 땅덩어리의 한국이 정치적으로, 지역적으로 갈라지고 얼룩진 모습을 보면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 자극제였다.
탤런트 임현식 씨는 “월드컵 때처럼 우리 국민이 하나로 뭉쳐 에너지를 뿜어본 순간을 본 적이 없다. 당시에는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며 미소 지었다.
2015, 08, 15 동아일보에서 발췌
-------------------------------------
#2. 대한민국 광복 70년, 역사박물관
한반도의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아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고 해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한국전쟁 전후의 현대사를 한번 자세히 살펴볼까요?
광화문 광장 우측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출처 : 기자 본인)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아 기획된 특별전은 바로 '70년의 세월, 70가지 이야기' 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어느 때보다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광복과 분단을 사건 중심으로 다룬 기존의 기획전들과는 달리 평범한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심으로 다룬 기획전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시회의 제목도 70개의 목소리라고 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1945년, 분단 직후 세워진 38선 팻말을 그대로 전시해놓고 있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찾아온 한반도의 분단, 38선 남북으로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게 되면서 서로 철책선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 당시 사용되었던 철책선을 그대로 보존해놓고 있었습니다. 이 팻말이야말로 분단역사의 첫 장면을 목격했던 증인인 셈이지요.
6.25 전쟁 당시 사용된 포탄의 탄피들을 쌓아 전쟁의 참혹함을 말해주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한국전쟁실에는 생생한 전쟁의 현장과 시대의 아픔이 녹아내려 있었습니다. '분단의 비극은 결국 전쟁으로 나타났다'라는 문구와 함께 처참한 분단 과거의 현장이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소련군 지휘부의 개입 하 이뤄진 북한의 남침 계획서. 이처럼 한국전쟁은 철저한 남침이었다.
제2차 연평해전 전사자 조천형 중사의 유품. 전시물들 중에서 가장 작고 초라했지만 분단 현실에서 가장 복잡한 마음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북한의 도발로 인한 다양한 사건과 분쟁을 보여주는 전시물 중, 저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 전시물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전시물들처럼 크고 화려하지 않았고, 겨우 하나밖에 없는 초라한 전시물이었지만 분단의 아픔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연평해전의 모티브가 되었던 제2차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조천형 중사의 유품이었는데요.
제1차 남북정상회담(2000)의 남북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2002년 연평해전이 다시 한번 일어났다.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이전에 이미 1999년 제1차 연평해전이 있었습니다. 1991년, 이미 남북기본합의서로 '더 이상의 무력도발 및 전시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라고 언급하였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그 맥락을 잇는 정신으로 합의가 되었으나, 2002년 제2차 연평해전이 벌어지면서 북한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가까운 역사의 현장에도 참혹한 분단 비극이 서려 있습니다.
남북한은 분단을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반공교육과 간첩잡기의 역사, 지금 필요한 것은 반공교육이 아닌 통일교육이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분단의 암울함이 극에 달했을 때입니다. 저는 그 증거들 중 하나로 반공교육을 언급하고 싶은데요, 그 이유는 반공교육은 통일 파트너인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과 적대감만 증폭시키고, 그들에 대한 환상적인 두려움만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실행되고 있는 통일교육이 더욱 광범위해지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평화통일이 가져올 미래를 가르쳐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분단 이후 다시 힘을 내고 일어난 사람들, 통일 직후 미래에도 우리는 해낼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제가 찾아간 곳은 특별기획실이었습니다. 분단이 불러온 한국전쟁, 그 이후 각자의 영역에서 재건에 힘써 다시 일어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맞을 통일한국에서도 통일비용과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 각자의 영역에서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과거를 보고 미래를 대비하자는 마음으로 특별기획실을 둘러보았습니다.
전쟁 통에 구두닦이, 신문팔이, 좌판 행상 등 산전수전 다 겪은 황인덕 선생님. 결국 3급 공무원으로 퇴직했다.
어린 나이에도 전쟁과 가난 속에서 집안을 지키기 위해 구두통을 들고 나선 사람부터
전쟁을 극복해 일어선 사람들, 통일된 한반도 현실에 귀감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아닐까?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살아남고, 우연히 낡은 일본 지하철 관련 서적을 입수하여 지금의 지하철을 만들어낸 김명년 선생님
학도병으로 나가 싸우다 돌아와 국내 지하철을 건설할 꿈을 품은 사람도 있었으며
황해도에서 태어나 교사로 근무, 전쟁에 참전한 후 사업가로 활동하여 과거 강남 개발붐을 일으켰다.
한국전쟁에서 최전방에 서고, 이후 사업을 시작하여 강남 개발의 최전방에 섰던 사업가도 있었으며
이제는 밥을 챙겨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조봉례 선생님. 전쟁 이후 고된 현실에도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가정을 지켜낸 영웅이다.
전쟁 속에서 집안을 지키기 위해 발품팔이로 일어난 어머니까지. 많은 사람들의 극복 사례와 사연들을 전시해놓고 있었습니다.
한 평생을 표구에 바친 이상렬 선생님. 일제도, 한국전쟁도, 가난하고 힘든 현실도 그의 꿈을 꺾지는 못하였다.
이렇게 일제시대부터 태어나 요동치는 한반도의 20세기를 목격한 분도 계십니다. 지금의 2015년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 대해 모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까요?
70년의 세월, 70가지 이야기. 통일 후에는 내가 이야기를 마저 채운다는 마음을 가졌다.
해방 70년, 분단 70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전시회는 70년 동안 분단된 역사를 조망하고, 한반도가 대륙국가였을 때의 기억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통일 70년 이후에는 어떤 이야기가 쓰여질까요? 어떤 사람들이 등장할까요?
통일 미래의 역사박물관에는 저를 비롯한 통일세대들이 통일 이후 미래를 극복하고 밝은 한반도를 만드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쓰여질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분단 70년을 극복한 사람들이 있듯, 통일 이후를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