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 황학지맥의 줄기 遊鶴山(839m)과 天生山(408m)
(2010년 5월 11일, 맥사랑)
79번 도로 장현 삼거리에서의 칠곡군 안내.
거산 아스콘 아래 산줄기를찾아 나서는 대원들의 모습,
작은 유학산을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는 길에서 진짜 유학산을 바라보고.....,
유학산은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에
문화답사와 반공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수있는 교육산행지 중의 한곳이다.
산불감시 자동시스템
왼쪽 아래엔 도봉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 있음,
일반에 잘 알려지지않은 다부동 전투의 중심지이며 왜관과 다부동을 잇는 방어선은
6,25당시 낙동강의 교두보였다, 유학산은
인민군 제 3사단의 9월 공세로 10여일간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가기도 했던 곳이며
왜관읍 뒤편의 303고지(자고산),358고지, 수암산, 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있다.
학이 논다는 유학산 정상의 정자.
남쪽 지붕이 날아갔다. 아래엔 기왓장이 떨어져 미관상 않좋다.
837고지 탈환전.
1950년 8, 13 ~ 9, 24일까지 국군 제 1사단과 미군 제1 기병사단이 합동으로
다부동쪽은 국군이 낙동강쪽은 미군이 맡아 경찰과 주민의 총력전으로
인민군 3개 사단을 격멸했던 곳이다,
이곳 전투는 우리가 밀리면 끝나는것이라 우리는 사력을 다해 싸웠고
격전기간동안은 하루에 수백명의 사상자가 생기기도한 격전지였으며
이곳에서 이김으로 반격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던 아주 중요한 전적지이다.
가산 CC골프장의 모습,
아카시아가 이제 피기 시작한다.
인간이란 자연앞에서 겸허하게 순종해야 하는데도 이를 거부 이기려 한다는것은
화약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것과같은 이치일 것이다.
숲과의 만남이란 숲속의 모든 생물을 접하고 삼림의 좋은기운에 몸과 마음을 맏기는 행위를 말 하는것이다,
저런 지나친 절개지가 언제인가 또 우리에게 위험을 안겨줄 것이다.
사진으로 보는 우측 절개지 옆으로 내려온다.
여기서는 도로를 따라도 되겠지만 우측 농로를 따르게 되면 저수지
(유료낚시터)뚝으로 진행하며 길을 건너 찻집 옆으로 희미한 길을 따른다,
골프장 입구의 절개지.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329봉이고 그 뒤쪽으로 보이는것이
진짜 천생산이다.
뒤돌아본 신동지(유료 낚시터)
천생산 산성의 북문격인 산성터,
멀리 보이는것은 금오산(975m)이다,
암반에 새겨진 글.
1949년 10월 6일 敬天愛人이란 글이 새겨있다,
하늘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한다라는 뜻일것 같다,
천생산성 유래비.
이땅엔 아직도 분단의 아픔이 남아있다.
유학산의 역사도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지만
이곳 천생산의 지리적 여건은 감히 신의 경지였음이 인정되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지방 기념물 제 12호 천생산,
금오산성, 가산산성과 함께 인동현의 읍민을 전란으로부터 보호받던 성이다,
미국의 그랜드케년과도 같아 보이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성
자연성벽의 천생산,
하늘이 낳았다는 천생산은 그 허리를 두른 성벽부터 예사롭지 않다,
일찌기 박 혁거세가 축조하고 홍의 장군이 수축하였다고 전해지는
천생산은 과연 전설속의 현실같은 느낌이다.
중간 제일 높은곳이 유학산이고 우측 앞에 보이는산도 천생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지도의 잘못된 부분은 되도록 빨리 고쳐야 할 것이다.
하늘이 낳았다는 천생산과 그 아래 천룡사.
천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며 마애불은 1989년 조성되었으며
미륵대불은 한 반도의 통일을 기원하는 종교적 의미를 갖고있다 하겠다.
천룡사 마애불 아래 음각된 龍
바위속에 들어있는 입체적인 석조물이다.
(山行後記)
호남지방 지맥종주를 부분적으로 마친 후 이제는 영남 쪽 지맥을 찾기로 기획하며 여러 가지 운영방법도 토론할 겸 오늘은 시험운행으로 황학지맥에서 분기하는 작은 산줄기 하나를 선택 신고식 종주를 하게 되는 셈이다.
경북 칠곡군 석전면 923도로 버등재에서 11시경 산행을 시작한다.
황학지맥을 조금 운행 영진채석장위에서 북쪽 79번 도로를 향해 내려오면 학산리에 닿게 된다.
도로를 건너 간벌지역의 어지러운 나무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간다고는 하지만 방해가 너무 심하다.
이에 뒤질세라 송화 가루와 황사까지 가세 우리를 괴롭히는 데 상당히 고통스러운 건 사실이다.
건너 석산에서의 소음 또한 보통이 아니며 유학산을 향해 오르는 길 또한 아주심한 가풀막이라 코로만은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 입으로도 호흡을 하지만 불편하다는 표현은 여기서 거론할 단계가 아닌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오늘 우리가 종주해야할 산에는 이상 하게도 유학산도 2개요 천생산 또한 2개이며 이는 지도 제작과정에서 잘못된 것이라 판단 지리원에서는 이런 점 하루빨리 해결해야할 문제라 보아진다.
12시 15분, 작은 유학산에 도착했다,
도중 유해발굴단의 땅 흠집은 정말 보기가 흉했다,
작업이 끝났으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야 하는데 파 헤쳐진채로 있다는 것은 그날 함께한 통제관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도봉사 가는 길로 오르면 길이 좋아 편리 하겠지만 맥을 찾는 사람이 맥을 비껴 어떻게 일반 등산로를 찾겠냐 하며 고집스럽게 길도 없는 능선길을 고집 한다,
편의상 792,9봉을 우리는 작은 유학산으로 불렀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지만은 근처에 있는 다부동 전적지와 6,25 한국전쟁시 이곳이 최후의 교두보임과 동시 격전지였음을 알았을 땐 정말 마음이 착잡해지며 이곳에서 산화한 수십만의 희생자를 생각해 보는 역사의 현장에서 하루에도 수백명씩 희생되었다는 안내문은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게도 하였다,
다시 빽 하여 오늘의 최고봉인 유학산을 가는데 산불감시 자동 시스템을 지나자 팔각정자가 있는 정상에 도착했다,
정자는 덩실하게 크게 지어 근사했으나 관리 소흘로 기와가 날아가 한쪽 지붕은 곧 사라질 위기이기도 했다.
나무의자에서 점심을 먹는데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애 걱정이 되었으나 곧 맑아져 다행으로 생각했다,
서울에는 제법 비가 온다고 하며 아이들의 걱정 이었으나 이내 좋아졌지만 황사와 꽃가루가 가득해 불편한 점 일일이 말 할 수는 업었지만 906번 국도를 향해 바쁜 걸음으로 내려간다,
우측의 (가산CC) 골프장도 바라보며 진짜 천생산을 향해 찾아 가기로 한다,
지맥은 중간 저수지를 가로질러야 할것 같다.신동지는 유로 낚시터였다.
저수지 뚝 길을 걷다가 내려서니 79번 국도이다,
천생산에 도착하자 많은 우리 일행이 도착한다, 사진 몇장씩 찍고는 아래 천룡사를 향해 하산을 서둔다.
급경사인 스텐계단을 내려서니 절이다,
절을 둘러보고는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우리가 타고 가야 할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돗물에서 대충 씻고는 준비된 장어탕으로 저녁을 먹고는 귀경길에 올랐다.
학이 논다는 유학산과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목숨걸고 지킨 전투현장에서의 산길 뜻있는 종주였었고 하늘에서 생겼다는 천생산을 다시 찾았다는 점이 나를 더욱 흐뭇하게 했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