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신비적인 교회
구속이 적용되는 주체는 교회다. 엡5:25-27,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따라서 선택, 구속, 부르심, 칭의, 양자 됨, 성화, 영화는 동일한 주체 즉 교회를 구성하는 개인들과 관련된다.
요17:9-19,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롬8:29,30,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미리 정하셨다.
교회는 주체이며 구속의 결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선택된 자는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기 전에는 그들 자체로는 교회에 속하지 않는다. 정통주의자들이 교회를 선택된 자들의 무리라고 정의할 때, 이는 선택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혹은 현재 존재하는 교회뿐만 아니라 앞으로 존재할 교회를 지칭힌다. 교회는 그 명칭과 정의에서 나타나듯 우선 부르심에 의해 구성된다. 참으로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무리이다. 고전1:24,10:32,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부르심의 목적이 신앙이요 신앙의 사역이 그리스도에게로 접붙이는 것이며 이러한 연합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동반하므로, 교회는 신자들의 무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무리,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무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앙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신앙에 의해 존재하는 교회는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본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골1:24; 하나님의 교회,고전10:32; 그리스도의 나라,골1:13; 하나님의 나라,롬14:17로 불린다. 교회가 무리라고 불리는 것은 교회가 친교로 결합된 다수 혹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엡4:16에서는 교회는 서로 결합되고 다양한 지체들로 구성된 몸으로 불린다. 또 성경에서 교회가 종종 집, 가정, 도시, 나라, 무리로 불린다.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너무도 밀접하여 그리스도가 교회의 것이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것일 뿐만 아니라,아2:16,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있고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요15:4,요일3:24. 따라서 교회는 신비적으로 그리스도,고후12:12, 그리스도의 충만,엡1:23이라고 불린다. 비유적으로 교회는 신부요 그리스도는 신랑이라고 불린다. 교회는 도시요 그리스도는 왕이며; 교회는 집이요, 그리스도는 주인이며; 교회는 가지들이요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마지막으로 교회는 몸이요, 그리스도는 머리라고 불린다.
교회는 모든 민족, 장소, 시간의 신자들을 포괄하기 때문에 보편적이라고 불린다. 교회는 그리스도와의 교제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 이런 의미에서는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든지 승리의 교회로 불린다. 전투하는 교회란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시작되었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으며 이 세상의 전장에서 적들과 교전하고 있는 교회이다. 승리의 교회는 이미 완성된 교회이다. 엡4:13,우리가 ---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고전15:46,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교회는 결코 그 모임으로 인해 완전히 좌절하지 않았으며 세상 끝날까지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그가 그의 적들을 발등상 아래 둘 때까지 그의 적들 한 복판에서 자신의 나라를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결코 유형적이 되는 것을 결코 완전히 중지하지는 않는다. 때때로 모든 점에서 순수한 예배를 드리기에 충분할 만큼 순수한 교회가 적다 할지라도, 교회는 순수하지 못한 예배와 고백의 한복판에서도 어떤 식으로든지 여전히 유형적이다.
32 제도로서의 교회
지상에서 살아가는 교회는 개인적으로는 그 구성원들 안에서 그리고 집합적으로는 그 집단 혹은 회중에 있어서 유형적이다. 또한 외적인 형상이 관련되는 한, 회중들이 존재하는 수만큼의 유형 교회가 존재하게 한다. 그러한 회중 혹은 개 교회는 상호 성도의 교제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특별한 유대로 결합되어 있는 신자들의 모임이다.
진정한 신앙은 교회가 지속적으로 효과적이 되도록 교회에 거룩성이 결합되게 하고, 진정한 신앙에 대한 고백은 거룩함에 대한 고백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교회는 서로 구분되긴 하지만 동일한 의미로써 신자들의 몽미과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불린다. 엡1:1,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 따라서 유형적인 개 교회들은 그들이 고백하는 신앙으로 인해 성부 하나님 안에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살전1:1,살후1:1. 진정한 고백이 행해지는 이러한 종류의 개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 교회 안에서는 소수의 진정한 신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신앙고백과 순종에의 약속 이외에는 교회에 입교할 수 없다. 이러한 언약에 의한 결합은 성도의 교제를 지향할 때에만 교회를 건설할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된다. 교회는 인간들이 그리스도를 위한 교회를 제정하거나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설립된다. 인간의 최고의 영예란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이 되는 것이다,히3:5.
그리스도는 교회가 항상 머리인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설립했다. 머리가 없다면 교회는 완전한 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교회는 새로운 것들을 제정하기 위해 새로운 법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의지를 명백히 발견하고 성실하고, 질서있고, 최대의 교훈을 산출하도록 그리스도의 율례들을 준수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율례들은 항상 하나님의 축복들과 결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다양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교회에게 주어진다,마18:20,고전5:4. 따라서 그리스도는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 안에서 살아있고 활동한다고 말할 수 있다,계2:1,사31:9. 또 성령의 현존에 대한 약속들도 주어진다,사59:21. 따라서 하나님의 부요하고 확고한 축복은 고독한 생활보다는 하나님에 의해 설립된 교회에서 기대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에 참여할 수 있지만 이를 소홀히 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율례와 관련되어서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요, 이와 연관된 축복과 관련되어서는 자신의 영혼들을 거스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그들이 무엇이라고 공언하든, 자신의 부주의를 완고하게 고집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진정으로 추구하는 신자들이라고 볼 수 없다. 진정한 고백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표지이다.
33 교회의 비상 직원들
구속의 적용의 방식은 성령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모든 그의 유익들을 수여하는 방편들로 구성된다. 성령은 우리에게 내적으로, 가장 친밀하게 그리고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모든 구원적인 것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외적인 방편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외적인 방편이 본래적으로 함께 동반되며 작용하지만 그 자체로는 은혜를 수여할 수 없다. 성령이 외적 방편과 함께 일하신다. 고전3:7,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두 가지 주요한 방편은 교회의 직분과 거룩한 표징들(혹은 상징들)이며 여기에는 교회의 권징도 첨가되어야 한다. 교회의 직분은 구별된 자로 하여금 특별한 권한에 의해 거룩한 일들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교회의 한 기능이다. 고후4:1,우리가 이 직분을 맡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고전4:1,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이것이 직분이라 불리는 것은 교회의 사람들에게 위임된 권세가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해서,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에서만 행사되는 권세이기 때문이다,고전4:1,2.
영적이며 법적인 자율의 권능, 즉 자유롭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사역하는 권세란 인간에게 속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한다. 교회의 직원은 자기 대신 다른 사람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지 못한 자로서 자신의 직분을 행사해야 한다. 대리자들이 섬겨야 하는 많은 교회들의 항존직원은 하나님의 명령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야망과 오만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역적 권세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어떤 사람이 이전에는 행할 수 없었던 것을 적법하게 수행하는 합당한 권세를 가지게 하는 권리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는 정당한 권세라 불린다.
사역의 권한은 소명에 의존한다. 히5:4,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소명은 어떤 사람에게 사역하는 권위와 함께 어떤 직분을 위임하는 행위이다. 소명의 필수적인 요소는 직분에 적합하냐는 것이다. 부적합한 자들은 그들이 인간들에 의해 소명을 받았다 하더라도 인간의 직원이지 하나님의 직원은 아니다. 호4:6,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적합성은 은사들의 적합한 분량과 직분을 수행하고 행사하겠다는 자원적 의지로부터 유래한다. 교회의 직분에 의해 교회의 세 번째 지위를 가진다. 교회가 신앙에 의해 본질적인 지위를 가지고, 집회에 의해 통합적 지위를 가진다면, 사역에 의해서는 일정한 유기적 지위를 가진다. 이로써 교회는 전체의 선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수행하기에 적합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들의 과정과 방향은 교회정치이다.
교회정치의 형태는 왕이며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관련해서는 단일군주제적이다. 하지만 가시적 체계와 관련해서는 이는 혼합적 성격 즉, 부분적으로는 귀족적이며 부분적으로는 민주적이다. 따라서 교회의 적법한 사역에 있어서는 위계질서나 신성한 지배란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종의 서열 혹은 신성한 봉사만 존재한다. 교회의 직원은 자신의 책임에 있어서 다른 직원의 권세에 종속되지 않고 각자는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의존한다. 이러한 직분은 비상직과 통상직분으로 구분된다.
비상직은 일반적인 수단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것보다 고도의 혹은 보다 완전한 지도를 받는 직분이다. 비상 직원들은 항상 특별한 은사들과 보조를 받아 오류없이 사역할 수 있다. 비상 직원의 권위는 실제로는 인간에 의해 주어지거나 인간을 통해 주어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서만 주어진다,갈1:1. 따라서 비상직으로의 소명은 직접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소명은 엘리사나 맛디아의 소명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적인 사역을 배제할 정도로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한 비상직이 교회를 위해 필수적이다. 하나님에 의해 고무되고 파송받고 하나님이 자신의 의지를 현현시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자들을 필요로 한다. 출4:15,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이러한 비상직은 교회를 처음으로 설립하기 위해서 혹은 교회를 특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혹은 붕괴된 교회를 특별하게 회복시키기 위해 행사된다. 교회를 보존하고 회복하는 사역은 비록 특별하고 통상적으로 기적들에 의해 확증되지만, 항상 혹은 필연적으로 기적들의 증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구약성경의 많은 구절들과 세례 요한에게서 나타난다.
선지자들, 사도들, 전도자들은 비상 직원들이다. 위클리프, 루터, 쯔빙글리, 그리고 복음의 첫 번째 회복자였던 다른 자들은 엄격히 말해, 비상 직원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비상 직원이라고 불려도 부당한 것은 아니다. 이는 첫째, 이들이 이전의 비상 직원들이 수행했던 것과 유사한 일을 수행했기 때문이요, 둘째, 시대가 요구하듯이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많은 은사들을 받았기 때문이요-이는 보다 유명한 다수의 순교자들에게서도 확인된다- 셋째, 당시 질서가 모두 손상되고 부패해 있었으므로 그들의 평범한 과정을 넘어선 무엇인가를 필연적으로 시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제시한 교리들을 확증하기 위해 기적들을 요구한다는 것은 조소거리이다. 비상 직원들에게 있어서도 그러한 증거는 필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