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사
백제 때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탑재와 일부 초석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후 조선 초기 세조 때인 1458년(세조4)에 나라에서 시주하여 지은 사액 사찰이라 하지만, 보다 확실한 기록으로는 1616년(광해군 8) 이 곳에 승장(僧長)을 두어 전국 8도의 사찰을 관장케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러한 영은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한다. 우선 백제 때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는데, 그에 관한 정확한 문헌적 근거는 없다. 탑재와 초석의 일부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만약 백제 때부터 있었다면 왕궁의 내불당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문헌을 보면, 19세기에 편찬된『공산지』에 조선시대 초인 1458년(세조 4)나라에서 영은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616년(광해군 8) 이 곳에 승장(僧長)을 두어 전국 8도의 사찰을 관장케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좀더 정확한 문헌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아무튼 조선시대 동안 영은사가 나름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짐작해 볼 만하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합숙 및 훈련소로서, 이곳에서 조련된 승병들이 영규(靈奎) 대사의 인솔하에 충청남도 금산(錦山) 전투에 참여했었다.
한편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켜 한양을 침공했을 때 인조는 이 절로 피난와서 안전하게 피신한 뒤 은적라라고 하였다. 인조는 이 절이 설험수호(設險守護)의 요지임을 깨닫고 이 절에 승병을 주둔하게 하여 호서지방의 방비의 일익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의 승병활동과 함께 호국사찰로서의 역사적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현재 절에 전하는 탑의 옥개석 1매와 초석 등의 여러 부재 등의 양식을 고려하면 그것들이 고려시대의 것임을 볼 때 영은사는 고려시대 초기에 창건되었을 가능성도 많다.
이 절은 사적기가 없어 개창과 중창관계가 불확실하지만, 조선 전기 이전에 지어진 사찰인 것만은 알 수 있고, 원통전안의 20여외 중수 또는 시주질 등 현판들은 이 사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이 절 가까이에 있는 대통사지는 529년에 창건된 백제의 사찰로서 현재 보물149호와 제150호로 지정된 석조 높이 3.5m의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공산성
사적 제12호. 둘레 2,200m. 웅진성(熊津城)·쌍수산성(雙樹山城)으로 불리기도 했다. 금강에 접한 표고 110m의 구릉 위에 석축과 토축으로 계곡을 둘러 쌓은 포곡형(包谷型) 산성이다. 475년 백제 문주왕이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천도하여 538년(성왕 16) 사비(泗沘:지금의 부여)로 옮길 때까지 64년 동안 백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축성시기는 국력이 안정된 동성왕 때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시대에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의 개축을 거쳐서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성의 구조는 석축 약 1,810m, 토축 약 390m이다. 석축산성은 안팎으로 돌을 쌓는 협축방식(夾築方式)을 이용했으며, 내탁외축(內托外築)을 한 부분도 있다. 상단의 너비는 약 70cm 정도이고, 안쪽에는 백회를 발라서 성벽의 석재가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 토축산성은 돌을 혼합하여 쌓았는데 대개 높이 1m, 바닥너비 8.5m, 윗면너비 3m 정도이다. 성내에는 깊이 2m 정도의 호(壕)가 형성되어 있다. 서쪽 성벽은 토축된 위에 돌을 쌓아 축조했다. 성에는 진남루(鎭南樓:南門)·공북루(拱北樓:北門)와 암문(暗門)·치성(雉城)·고대(高臺)·장대(將臺)·수구문(水口門) 등의 방어시설이 있으며, 동문과 서문의 터가 남아 있다. 성내에는 영은사(靈隱寺)·광복루(光復樓)·쌍수정(雙樹亭)·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쌍수산정주필사적비(雙樹山亭駐驆事蹟碑)와 주초석·창고터·연못터 등이 남아 있고, 만하루지(挽河樓址)·임류각지(臨流閣址)·장대지 등이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동쪽과 서쪽에는 보조산성이 있어 공산성을 보호하고 있다. 공산성은 백제멸망 뒤 백제부흥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던 곳이며, 1623년 이괄의 난 때 인조가 이곳으로 피난했던 일화도 있다.
공산성내 영은사 담장
영은사 요사채
영은사 원통전
원통전내 관음보살상
원통전 신중탱화
원통전내 산신탱과 독성탱
영은사 동종
영은사 관일루
영은사 벽화
영은사 벽화
영은사 요사채
영은사 관일루
영은사 원통전
영은사에서 바라다본 공주시
영은사 찾아가는 길
영은사는 공주의 공산성 내에 있다. 공산성은 무령왕릉에서 왕릉교를 건너 큰 거리로 나오면 바로 길건너 야산에 웅진성이라 불리는 곳이다. 공주는 4개의 국도가 교차하는 곳으로 교통이 편리하다. 조치원과 청양을 잇는 36번 국도, 천안과 논산을 잇는 고속도로, 대전과 예산을 잇는 32번 국도와 시내를 관통해 부여로 이어지는 40번 국도 등이 그것이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천안 인터체인지를 지나 천안시내에서 천안삼거리를 거쳐 행정리를 통해 국도로 공주에 가는 것이 가장 오래된 고전적인 방식으로 공주를 찾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