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를 잡을수 없으니 저렇게 만들어 손바닥에 끼우고 식사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옷을 멋지게 입고 출근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땀이 범벅된 상태로 더러워진 옷을 입고 봉사를 끝마치고 나오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출근하는 사람은 희망을 간직한 채로 집을 나설 것이고, 땀이 범벅된 채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보람을 가득안고 가겠지요. 둘 다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나눔의 사역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면 보람이 있는 쪽을 택하고 싶습니다. 보람이라는 열매를 거둔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수고의 결실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남을 위해 희생을 했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19일에 소록도에 계시는 한센병(문둥병)자 몇 분을 찾아뵙고 왔습니다. 소록도 봉사를 13년째 다니고 있지만 갈 때마다 감동을 먹고 옵니다. 저 혼자만 감동을 먹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석한 일행 모두가 그 감동을 먹습니다. 무언가 도움을 준다고 가지만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가슴 가득 뜨거운 사랑을 선물로 안고 왔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나 봅니다. 제가 주장하는 ‘봉사는 중독되고 행복은 전염되는 세상’이 날마다 지속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새벽잠을 깨우는 부지런한 새소리는 희망의 소리입니다. 희망의 소리를 들으며 부지런히 소록도 봉사 갈 준비를 합니다. 단잠을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웁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아빠가 소록도 봉사를 간다는 말을 듣고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 를 제출했나 봅니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준열이가 진짜로 소록도 봉사를 가느냐고 묻습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당황은 했지만, 제 속으로는 무척 기뻤습니다. 다섯 살 때부터 소록도 봉사에 따라다녔던 녀석이 중학교 3학년이 되니 안 따라 다니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봉사확인서도 써 주질 않았었지요. 아빠가 장애인시설을 운영하니 함께 사는 녀석은 날마다 봉사를 하고 있는데, 진정으로 하는 봉사가 아니라면 확인서 받아가지 말라고 했더니 진짜로 받아 가지 않았지요. 덕분에 봉사 점수는 꼴찌. 그런데 고등학교 들어가니 녀석이 스스로 하겠다니 얼마나 대견하겠어요. 자는 녀석 깨우니 다음 주에 가면 안 되냐고 합니다. 뚱딴지같은 소리. ^_^*
아내는 운전석에 나는 조수석에 아들은 뒷좌석에 타고, 짐칸에는 대전에서 소록도 가져다 드리라는 홍삼캔디 한 박스가 실려 있습니다. 이번에는 여름에 봉사할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것들을 파악하기 위하여 방문을 합니다. 예배당에 새시로 창틀과 창문을 모두 교체해 드려야하는데 크기와 상태를 점검해야 했습니다. 너무나 어렵게 사신다는 한센 병자 집도 심방하여 함께 예배도 드리고, 마련해간 구제금도 전해드리고, 한센인들과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오려고 출발을 합니다. 왕복 880km의 먼 길이라 일정이 벅차겠지만 이웃집 마실가는 것처럼 편하게 다녀오는 우리 자오나눔선교회 일행들입니다. 그렇게 이른 아침에 출발을 합니다. 전주 IC에서 전주에 있는 회원들을 차에 태웁니다. 배, 장 전도사님과 강집사님이 합류를 합니다. 부지런히 차를 달려 소록도가 보이는 녹동항에 도착합니다. 소록도에서 마중을 나와 주신 이 집사님과 반가운 해후가 이뤄집니다. 점심때가 되어 식사를 하고 가기로 하고 13년 단골집에 식사를 주문합니다. 베트남에서 소록도 한센인에게 시집을 온 소망씨도 오시라고 하여 함께 식사를 합니다.
소록대교는 웅장하게 서 있지만 아직 개통을 하지 않은 관계로 여전히 바지선을 타고 소록도로 들어갑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록도에 다리가 놓이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소록도가 외부에 전면 개방됨으로 금방 오염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마침 소록도에는 상수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소록도의 지하수가 오염되어 음용수로는 마땅치 않아 상수도가 들어와야 한다고 합니다. 여전히 소록도는 말없이 저희를 맞아주고 있었습니다. 그 많던 사람들은 하늘나라로 가시고 자연만 그대로 남아 있네요. 야은 길재가 지었다는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도라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듸 업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오백년 도읍지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소록도에 관광을 오신 분들은 수탄장 앞에서 차를 세우고 걸어서 중앙공원까지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봉사를 가는 분들이나 연고가 있는 분들은 허락을 받고 한센인들이 살고 있는 소록도 2번지까지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소록도 병원을 기점으로 선착장 쪽으로는 비한센인들이 사는 1번지입니다. 주로 관공서 직원이나 병원 관계자들이 삽니다. 2번지는 한센인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하얀집님을 만났지만 급한 일정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며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구북리에 있는 북성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이름 모를 새소리들과 울창한 향나무, 붉디붉은 동백꽃들만 우리를 맞이해 주고 있었습니다. 예배당에 들어가 간단하게 기도를 하고 있는데 남장로님이 들어오십니다. 반가운 해후가 이뤄집니다. 모두 밖으로 나가 여름에 봉사할 부분들을 점검하고 치수도 재고 한참을 활기차게 보냅니다. 일행들이 고생을 많이 합니다. 저야 목발을 짚은 상태로 지시만 하는 상태니 입만 살았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_^* 교회 부엌살림을 모두 교체를 해 드려야 하는데 여건이 맞지 않아 잠시 보류를 합니다. 쉽게 갈 길도 어렵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교회에서 할 일은 어느 정도 끝났습니다.
이제 마을에 심방을 갑니다. 어렵게 사시는 분들부터 찾아가기로 합니다. 그거 아세요? 도저히 감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감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 상태서도 감사를 한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사람들 말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감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낡은 세간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지만 그분들이 사용하기 가장 좋은 장소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고 판단하여 잘 정리 정돈을 해 놓으면 그분들에겐 낭패가 됩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이라 손발이 닿는 곳에 정리를 해 놓거든요. 그래서 청소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곳에서 상주하며 봉사를 해 주는 장기봉사자들에게 청소를 맡깁니다. 외부 봉사자가 가서 정리를 해 주려면 사전에 교육을 철저히 받고 나서 해야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겨우 토방이나 마당 정도만 정리를 해 주는 선에서 끝냅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아내는 할머님 댁의 토방을 빗자루로 쓸고 있네요. 치워야 할 곳이 눈에 보였나 봅니다. 극구 만류하시는 할머님의 의견대로 청소는 장기 봉사자들에게 맡기기로 합니다. 두 손도 몽당손이고 두 발도 무릎 아래로는 없고, 아랫입술도 녹아 버렸고, 눈도 감기지 않는 상태고, 이빨도 거의 빠져 버리고 남은 몇 개도 덜렁거리는데……. 그런 상태서도 저희들을 위로해 주시고, 예수 잘 믿으라고 당부를 하십니다. 말씀마다 감사가 나오는데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뜨거웠습니다. 설교를 하면서도 목이 메고, 가슴이 진탕되는데……. 무슨 사랑이 이렇게 가슴 시리게 할까…….라는 생각도 했더랍니다. 예배를 마치고 마련해간 구제금도 전해 드리고, 아픈 할머님을 위해 기도도 해 드리고, 소록도 남장로님의 가슴 뜨거운 기도로 감사를 받습니다. 얼마나 귀한 사랑이든지요.
마을에서의 일정도 끝나갑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하루 일정으로 갔기 때문에 서둘러야 합니다. 그래도 소록도 견학은 하기로 합니다. 13년 다닌 경험은 어지간한 가이드 역할은 충분하게 할 수 있도록 공부가 되었나 봅니다. 납골당, 화장터, 교도소, 자혜의원, 숨바구길, 경천애인 비, 중앙공원, 한하운 시비 등, 아쉬운 대로 간단한 견학을 합니다. 돌아와야 할 시간이 아늑합니다. 서둘러 선착장에 나왔더니 바로 앞 차까지 배에 싣고 바지선이 떠납니다. 덕분에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실 여유가 생겼네요. 여유 있는 시간이 아니라 아쉽기만 하지만 다음엔 더 여유 있게 보낼 수 있겠지요. 끝없이 관심을 갖고 사랑을 주어야 할 소록도이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더 해야겠습니다. 배에서 멀어지는 소록도를 바라보며 지난날을 생각합니다. 가슴이 진탕되는 감동들이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다시 그런 감동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함께 해주신 배화명, 장호진 전도사님, 강계선 집사님, 사랑하는 아내 오세연, 사랑하는 아들 양준열.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또 와야지요? ^_^*
2008. 4. 21.
-양미동(나눔)―
첫댓글 글로만 읽어도 이렇게 감동이 되서 가슴이 뭉클한데 직접 가서 뵈면 그 감동은 몇배나 더 하겠지요?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이런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이들이 계신데 작은 어려움에 감사를 잃었던 마음을 회개합니다.
감사가 감사를 낳는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