陀羅尼品(다라니품) 第二十六
지난 시간까지 관음신앙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부터 제 26 다라니 품을 공부하게 되겠습니다.
이 다라니 품은 진언이니 주문이니 하는 그런 말과 아울러서
다라니란 말이 같은 뜻으로 쓰여 지는데,
후기 대승불교에 와서 밀교가 발달하게 됩니다.
불교 역사를 따로 이야기를 못했습니다마는,
불교 발달사적인 관점에서 이 밀교를 가만히 살펴보면,
후기에 와서 밀교가 발달하게 되지요.
밀교의 반대적인 말은 현교라고 말합니다.
현교는 예를 들어서 반야심경에서
‘주 즉설 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 아제 모지 사바하!’ 라고 되어 있는데,
‘아제아제’ 이전까지를 현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뜻을 설명할 수 있는데 까지 드러내놓고 가르치고,
이해시키려고 하는 내용을 顯敎(현교)라고 말하고,
비밀스러운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간단하고 짧게 많은 뜻을 함축해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표현하는 부분들이 경전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密敎(밀교)라고 합니다.
반야심경에서 현교와 밀교를 찾아보면,
앞에서 쭉 설명한 것은 전부 현교에 해당되고,
뒤에 ‘아제아제 바라 아제 바라 승 아제 모지 사바하’ 는 밀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밀교, 현교 말하지 않고, 密說(밀설) 顯說(현설) 이렇게 말해요.
說(설)이나 敎(교)나 크게 다른 뜻은 아닌데,
그래도 敎(교)하면 좀 크게 표현이 되고,
說(설)하면 그 부분에만 해당되는 표현이 반야심경에서는
顯說! 密說!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불교를 전반적으로 볼 때 여러 가지 상당히 많은데,
그것을 이 시간에 장황하게 설명드릴 수는 없고,
우리나라 불교의 특성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화엄경을 펴기 전까지는 좀 정리되지 아니한 불교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상스님께서 중국 가서 華嚴學(화엄학)을 공부해 오셔서,
전국에 華嚴十刹(화엄십찰)을 짓고,
제자들을 보내서 화엄경을 전파하는 포교 활동을 열심히 하시고,
또 원효스님께서 화엄경을 널리 펴시고,
이렇게 함으로 해서 우리나라 불교가 화엄경을 토대로 해서
형성되어 졌다고 볼 수가 있어요.
그러면서 밀교적인 요소도 대승불교와 함께 조금 따라오긴 했습니다.
대승불교 안에는 어떤 경전이든지 밀교적인 요소가 다 있으니까요.
반야심경이 짧은 경전이만 그 속에도 밀교적인 요소가 들어있고,
화엄경이 대승불교 경전으로서는 대표라고 하지만,
그 안에도 밀교적인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법화경도 대승불교 경전으로써
수준이 아주 상당히 높은, 경중의 왕 이라고 칭하는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라니 품이 있어요.
이것이 밀교적인 요소입니다.
대승불교 안에 살펴보면 밀교적인 요소가 고려 때 와서 더욱 더 많이 있어요.
특히 화엄불교가 토대를 잡은 이후 밀교적인 요소가 대승불교와 함께 섞여 들어오면서
한국에 상당히 많이 전파 되기 시작합니다.
禪佛敎(선불교)도 상당히 영향을 끼치지만, 밀교도 상당히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모든 불교의식을 행할 때,
처음에 읽는 천수경도 관세음보살을 중심으로 한 경전이지만 사실은 밀교경전이고,
또 講院(강원)에서 공부하는 교과서중의 하나인 능엄경도 밀교경전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나라에 밀교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지요.
큰 행사를 할 때 꼭 梵書(범서)로 써진 다라니를 찍어서
만국기처럼 줄에 매달아서 온 도량에다 걸지요.
이런 것도 전부 밀교적인 요소입니다.
그렇게 살펴보면 한국불교의 20% 정도는 밀교가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녜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불교의 특색이 선불교를 꼽을 수 있는데,
지금은 선불교가 가장 크게 일반화 되어 있다고 볼 수가 있지요.
그러나 면면히 살펴보면,
선불교에서도 신중단에 예배를 한다던지 하는 것은 화엄사상이고,
조사스님들이 돌아가시면 시식을 할 때 관음시식을 하지 않고 화엄시식을 하는 것도
그 역시 화엄사상에서 기인된 것이고,
여러 가지 화엄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한국불교를 通佛敎(통불교)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그런데 있는 것입니다.
화엄의 요소, 밀교적 요소, 선불교의 요소 이런 것들이,
또 거기다가 기복 불교니, 뭐 호국 불교니 등등,
우리나라만이 있는 특별한 불교들이 또 한 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를 공부하는 데는 밀교적인 그런 것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법화경이 좋아서 공부 하더라도,
다라니 품을 공부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지요.
이 다라니품이라고 하는 것은 법화경 안에 묻어 들어온 소위 밀교사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뒤에 보현보살권발품에도 보면, 보현보살이 다라니를 외우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그 顯敎(현교)! 대승경전 중에서도 왕이라고 하는 법화경에서도
이만치 한 품을 차지할 정도로 밀교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들도
공부하면서 살펴볼 문제가 되겠지요.
陀羅尼(다라니), 眞言(진언), 呪文(주문), 같은 뜻인데,
굳이 해석하려고 들면 해석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천수경 강의라는 책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도 전부 해석을 하고,
‘정 구업 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도
범어를 찾아가면서 일일이 해석을 했습니다마는,
굳이 그런 것들을 해석하려면 해석이 되어요.
법화경 다라니 품에서도 해석이 되어 있는 책들이 꽤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다라니가 해석된 책들을 참고해 보시고,
여기서는 해석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다라니품, 법화경을 독송한 공덕! 공덕부터 이야기를 하고,
약왕보살부터 몇 분이 나와서 다라니를 외웁니다.
그래서 그 다라니 내지 주문으로서 법화경을 보호하고,
또 법화행자, 법화경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원력을 세우는
그런 내용으로 이 다라니 품은 짜여 져 있습니다.
1. 법화경을 독송(讀誦)한 공덕
그 때에 약왕(藥王)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어 진실을 보이고
부처님을 향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선여인으로서 법화경을 받아 지니어 읽고 외워 통달하거나
경전(經典)을 쓴다면 얼마나 많은 복을 받겠습니까?"
경전을 신봉하고,
그 신봉한다고 하는 것이 경전을 통한 수행인데,→수지. 독송. 서사. 해설!
가지고 다니고, 읽고, 외우고, 사경하고, 그리고 남을 위해서 설명해주는
이런 것 자체가 그대로 법화행자의 할 일이고,
경전을 통한 수행이라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특별히 다른 수행을 주장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이치를 설명하는데 설명을 통해서 이치를 깨닫도록 하는 것!
이치를 깨달으면 그것으로 끝이니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대개 그랬습니다.
특별히 무슨 기도를 열심히 하거나, 좌선을 열심히 하거나
그런 것을 집중적으로 권했다고 하기 보다는,
어쨌든 당신이 깨달으신 이치를 열심히 가르치고
제자들이 설명을 듣고 깨달으면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그리고는 또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도록 하는 것!
'그런 일을 한다면 얼마나 많은 복을 받겠습니까?'
그런 것을 약왕보살이 부처님께 질문했지요.
부처님께서 약왕보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팔백만억 나유타 항하사의 부처님들에게 공양하였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의 얻은 복덕이 얼마나 많다 하겠는가?"
'팔백만억 나유타 항하사의 부처님' 그랬습니다.
한 항하강의 모래 수만 한 부처님만 공양 했다하더라도,
아니, 한 부처님께만 공양 하였다하더라도 그 공덕이 대단할 텐데,
'팔백만억 나유타 항하사의 부처님들에게 공양하였다.' 이랬어요.
두말할 것 없이 그랬습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에서 네 구절로 된 한 게송[一四句偈]만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뜻을 해설하며 설한 내용과 같이 수행(修行)하면
그 공덕이 더 많으리라."
법화경 사구 게 만 가지고
'읽고 외우고 뜻을 해설하며 설한 내용과 같이 수행하면
그 공덕이 팔백만억 나유타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부처님에게 공양한 것 보다 더 많다.' 그랬습니다.
말이 이렇게 나온 김에 저 앞에서 우리가 공부를 했습니다마는,
법화경의 사구 게를 한 번 더 살펴보겠습니다.
공덕이 이만치 많다니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요.
諸法從本來(제법종본래) 常自寂滅相(상자적멸상)
佛子行道已(불자행도이) 來世得作佛(내세득작불)!
이제 법화경이 끝날 무렵입니다.
이 정도 사구 게는 다 익히 아시리라고 생각을 하고
또 이 사구 게는 부처님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 정말 요긴한 것이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의 천도하는 천도재 의식문에도 이것이 반드시 들어있습니다.
이것 참 그 다이아몬드와 같은 이런 빛나는 말씀을 영가가 듣고
이 한마디에 말하자면 생사를 해탈하라 하는 그런 뜻이지요.
諸法從本來(제법종본래)
'본래부터 모든 법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는 가르침이나 교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모든 존재와 존재의 원리 그리고 존재의 실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질과 그 물질의 움직임과 그래서 사물과 사건! 이렇게 요약하는 이들도 있지요.
常自寂滅相(상자적멸상)이라!
'본래 스스로 텅 비어서 고요한 모습이다.'
우리 눈에는 반대지요.
울긋불긋하고 높고 낮고 가고 오고, 소리가 시끄럽고
전부가 차별상인 그런 모습이고 또 그런 모습 따라서 우리도 거기에 휘말려서
우리들 마음도 역시 천차만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본래부터 그 내면을 살펴보면,
보다 더 전문적인 안목을 가지고 그 어지러운 차별상을 살펴보면
적멸한 모습이라고 그랬습니다.
적멸하다, 고요하다 이거에요.
시끄러운 것이 없고 차별이 없고 모두가 평등하고 평등하다, 空하다는 것이지요.
공하지 않고는 평등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차별된 그 모습 그대로 공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분석해서 설명하는 분석 공을 간혹 어떤 분들은 설명을 많이 하는데
분석해서 공 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모습 그대로 공 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좀 더 뛰어난 안목을 가져야 되겠지요.
그야말로 현상을 보는 안목 보다 더 다른 차원의 안목!
그것을 저는 늘 전문적인 안목! 이렇게 이제 말하는데,
전문가로서의 그런 안목을 가지고 볼 때
이 현실은 그렇게 시끄럽거나 차별 하거나
천차만별로 그렇게 벌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텅 비고 고요하고 평등한 것이다!
佛子行道已(불자행도이)
‘불자가 이 이치를 안다면’
來世得作佛(내세득작불)이라!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될 것이다.’
오는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다음 세상은 아니지요.
바로 죽어서 태어나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바로 다음 순간을 내세(來世)라고 합니다.
내생(來生)이 아니기 때문에요.
내세라고 하는 것은 바로 초 단위로 우리가 나누면 다음 초가 바로 내세이고,
시간 단위로 나누면 다음 시간이 바로 내세고 그렇지요.
시간 단위로는 나눌 수가 없습니다.
초 단위로 나눈다면 몰라도 시간 단위로는 나눌 수가 없지요.
금방 우리 마음의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내세라고 하는 것은 ‘곧바로 성불이다’ 이런 뜻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이것이 법화경의 사구 게인데
이러한 이치가 마음에 녹아들도록 일단은 쓰고, 읽고, 외우고, 음미하고, 사유하고,
어디 차타고 가더라도 무심히 그냥 가지 말고,
이런 것 읽고 또 한 번씩 손가락으로라도 써보기도 하고,
음미해보고 깊이사유하고,
세상을 보는 전문가의 안목에는 모든 것이 적멸 하다는데,
내 눈에는 왜 이렇게 차별되게 보이고 서로가 다르게 보이는가?
차별되게 보임으로 해서 거기에 온갖 시시비비가 일어나고,
시시비비가 일어나면 고통이 따르게 마련인 것이고, 그렇지요.
세상의 문제가 차별로 보이는 데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소중한 말씀을 사구게라고 합니다.
'이 사구게 만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뜻을 해설하고,
설하는 내용과 같이 수행한다면 그 공덕이 더 많다!' 이런 내용입니다.
사구게라는 말이 있어서 이렇게 조금 부연설명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