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 왼쪽으로 마차산과 감악산이 보인다
삶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
무대 위에서 주어진 시간동안 뽐내고 애태우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존재
그것은 소리와 분노로 가득한
바보의 무의미한 얘기인 것을
--- 셰익스피어, 『맥베스』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12월 30일(일), 맑음
▶ 산행인원 : 4명(영희언니, 스틸영, 드류, 제임스)
▶ 산행시간 : 10시간 5분
▶ 산행거리 : 도상 19.4㎞
▶ 갈 때 : 동서울에서 시외버스 타고 포천 송우리로 가서(요금 4,500원), 송우리에서
시내버스 타고 포천시청 앞으로 감
▶ 올 때 : 소요산역에서 전철 탐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를 따랐음)
06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포천 송우리 가는 시외버스 출발
08 : 15 - 포천시청 앞, 산행시작
09 : 05 - 왕산사(王山寺)
10 : 26 - 왕방산(王方山, △736.3m)
11 : 15 - ┼자 갈림길 안부, 이정표(국사봉 1.2㎞)
12 : 00 - 국사봉(國師峰, 755m)
12 : 38 ~ 13 : 05 - 새목고개(수위봉고개, 점심)
13 : 32 - 수위봉(648.7m)
14 : 00 - 임도
15 : 05 - 임도, 이정표(소요산 칼바위 1.8㎞)
15 : 32 - 슬랩
16 : 14 - 소요산(逍遙山) 칼바위
16 : 25 - 소요산 상백운대(559m)
16 : 44 - 덕일봉(감투봉, △535.6m) 정상 100m 전
17 : 16 - 소요산 중백운대(510m)
17 : 40 - 자재암(自在庵)
18 : 20 - 소요산역 앞 소요동 먹자동네, 산행종료
1. 소요산을 향하여
▶ 왕방산(王方山, △736.3m)
어둠 속 동서울을 빠져나가면서 차창으로 바라보는 서편의 달이 만월(滿月)이다. 꼽아보니 동
짓달 열이레 달이다. 세밑의 감상(感傷)이려니. 김초혜 시인의 ‘만월(滿月)’이 또 한 해를 더하
는 만년(晩年)의 가슴에 절절하게 다가온다.
달밤이면 살아온 날들이 다 그립다.
만 리가 그대와 나 사이에 있어도
한 마음으로 달은 뜬다
오늘밤은 잊으며 잊혀지며
사는 일이 달빛에 한 생각으로 섞인다.
동서울에서 시외버스 타면 포천 송우리까지 평소에는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어제 내린
눈으로 노면상태가 여간 좋지 않아 내내 거북이 운행하더니 30분이나 더 걸린다. 이런데 택
시가 왕방산의 들머리인 오지재고개를 오를 수 있을까? 그래도 택시 찾느라 서성이던 중 명
성지맥을 혼자서 종주 중이라는 등산객을 만나 수인사 나누고 왕방산의 또 다른 들머리를 물
었더니 포천시청 앞으로 가란다.
포천시청 앞 주변의 도로는 눈을 치우지 않아 택시를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걷는 편이 낫
겠다. 북진이다. 신읍천 따라가다 호병골로 들어가지 않고 왕방산 새해맞이 일출행사를 알리
는 플래카드를 보고 그 방향으로 간다. 산기슭이 가까워지자 불현듯 오지본능이 꿈틀하여 농
가 지나 아무 능선이나 붙들 요량으로 스틱 치켜들고 다가가자 우리를 본 주민이 이쪽으로는
길이 없어 애 먹을 수도 있으니 계속 큰길로 왕산사로 가서 왕방산을 오르는 편이 훨씬 수월
할 것이라 일러준다.
왕산사 방향표시대로 왕방교를 건너고 눈 속 휴업 중인 먹자동네를 지난다. 왕산사까지 꽤 멀
다. 산 굽이굽이 포장도로로 돌아 오른다. 왕산사(王山寺). 일주문이 없는 아담한 절이다. 천
년고찰이라고 한다. 한때 보덕사(普德寺)라고 한 왕산사는 877년 신라 헌강왕 3년에 도선국
사가 절을 창건하자 왕이 친히 방문하여 격려해 주었으므로 절 이름을 왕산사라 부르고 산 이
름은 왕방산이라 하였다. 다른 일설에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함
흥에서 살다가 한양으로 오던 중 왕자의 난 소식을 듣고 비통한 마음을 달래고자 이 절을 찾
았다고 한다.
등로는 절집 입구에서 오른쪽 임도로 산굽이 돌아간다. 우리 앞서 두 사람이 갔다. 우리는 ┻
자 갈림길에서 그들과 달리 직진하여 무지개다리 건너고 산자락 눈길에 첫발자국 낸다. 어제
내린 눈이라서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눈이다. 흠집 내기 아깝다. 산자락 돌다 실한 지능선 골
라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인 504m봉을 아등바등 오르고나자 완만하다.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첫눈에 추사의 세한도(歲寒圖)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소나무다. 뒤
돌아보는 설경이 더욱 가경이라 자연 발걸음이 더디다. 주능선 ┬자 갈림길. 오른쪽은 무럭고
개(물어고개, 問禮峴)로 내린다. 왕방산 정상 0.4㎞. 호젓한 눈길이다. 왕방정 옆 헬기장이 운
동장 크기만 하다. 내일 새벽 일출 보려는 사람들로 엄청 붐비리라.
왕방산 정상. 소요산에 이르는 능선이 아스라하다. 저기를 간다니 맘이 뿌듯하다. 백설이 만
건곤한 오늘 송년산행이니 정상주가 없을 수 없다. 정상 눈밭이 워낙 눈부시어 소나무 그늘로
가서 분음한다. 안주가 걸다. 제임스 님이 홍어 삼합을 준비했다. 칠레산이 아니라 흑산도 홍
어라고 한다. 홍탁이 아주 제격이다.
2. 왕방산 가는 길
3. 왕방산 가는 길
4. 왕방산 가는 길
5. 왕방산 가는 길
6. 왕방산 바로 밑의 왕방정(王方亭)
7. 왕방산 정상
8. 해룡산, 왕방산 정상에서
▶ 국사봉(國師峰, 755m)
이제 눈길 새길은 오롯이 우리의 것이다. 어제 눈 온 후로 아무도 가지 않았다. 왕방산에서 소
요산까지 도상 9㎞. 5시간이 넘는 거리다. 러셀 겸해 첫발자국 내는 즐거움은 제임스 님이 독
식하였다. 한 발자국도 어지럽히지 않고 알맞은 보폭과 일정하고 꾸준한 속도로 일행을 견인
하는 그의 걸음에는 맨 후배로서의 당당한 자부심이 배어있었다.
국사봉 가는 길. 옅은 능선의 펑퍼짐한 설사면으로 남서진 한다. 1급 슬로프다. 쭉쭉 지쳐 내
리다 보니 발바닥에서부터 스릴을 느낀다. 순식간에 ┣자 갈림길 안부에서 바닥치고 625m봉
넘어 북진한다. 북사면은 상고대 눈꽃이 피기 시작한다. 가다말고 뒤돌아보는 역광의 철쭉나
무가지 상고대가 빙화로 빛난다.
다시 ┼자 갈림길 안부. 국사봉까지 1.2㎞. 설벽 버금갈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서보면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 있는 상고대 눈꽃의 신기루를 쫓느라 휘휘한 줄 모르겠다. 국사봉 정상
은 군부대가 자리 잡아 그 아래 너른 헬기장이 등산객들에게 정상 노릇한다. 오를 때 헥헥대
다가 내릴 때 숨 돌리는 것이 바람직한 보행법이다. 바로 서진한다.
국사봉에서 내리는 새목고개는 군사도로를 따라가는 편이 나았다. 서진하는 마루금 능선은
잡목이 울창하고 가파른 설원에다 등로가 분명하지 않다. 더욱 고약한 것은 새목고개 직전 안
부에서 교통호 넘어 531m봉을 올랐다가 절개지 절벽에 막힌다. 방금 지난 안부께에서 그나
마 왼쪽이나 오른쪽의 얕은 골로 내려야 했다. 어설프게 531m봉 사면을 돌다보니 오도 가도
못할 지경이다. 두 차례 슬링 걸어 설벽을 내린다.
새목고개. 임도가 지난다. 이정표와 동두천 6산 종주 안내판에는 ‘수위봉고개’라고 한다. 동두
천 6산이란 칠봉산,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 소요산, 마차산을 말하는데 그 종주거리는 약
50km에 달한다. 한 가지 흠은 마차산을 가려면 동막교로 신천을 건너야 하는 것이니 완전한
능선 잇기는 아니다. 수위봉은 새목고개에서 곧장 오르면 군 시설물이 나오는 656m봉을 넘
어 약간 더 간 △648.7m봉을 말한다.
새목고개 마루에서 남쪽으로 약간 비켜 양지쪽에 초소가 있다. 넷이 들어앉기 적당하다. 그
안에 들어 점심밥 먹는다. 안온하다. 나는 행동식으로 달랑 김밥 한 줄 사왔는데 비상식으로
아끼기로 하고 스틸영 님의 곤드레나물밥을 양념간장 쳐가며 달게 먹었다.
9. 국사봉 가는 길
10. 국사봉 가는 길의 상고대
11. 국사봉 가는 길
12. 국사봉 가는 길의 상고대
13. 국사봉 주변
14. 국사봉 헬기장
15. 국사봉
▶ 소요산(逍遙山)
수위봉 오르는 길은 고갯마루 오른쪽 잣나무 숲 사이로 나 있다. 교통호 건너고 통나무계단으
로 올라 능선 잡는다. 길 좋다. 이따금 뒤돌아서서 지나온 능선을 장히 감상한다. 국사봉이 그
에 오르내린 품과 대조하니 과연 첨봉이다. 용도가 궁금한 철제 군 시설물을 돌아간다. 환상
의 눈길이 이어진다. 당분간은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그다지 심하지 않다.
수위봉을 미끄럼 타며 주르륵 내려 안부. 임도가 지난다. 주변 설경 구경하며 완만한 사면을
느긋이 오른다. 어느 해 오케이사다리 시절 여름날이었다. 오지재고개에서 초성리역까지 혼
자 이 길로 갔다. 그때는 인적 드문 오지였던 이 길이 이제는 동네 산책길로 변했다. 숱한 악
우들 생각을 폈다 접는 환상의 눈길이 어느덧 끝난다.
414.4m봉 내려 절개지 절벽 오른쪽 사면으로 비켜 떨어지면 임도다. 소요산 칼바위까지 1.8
㎞. 제법 난이도가 있는 구간이다. 사면 질러 올랐다가 밧줄 잡고 내리면 암벽 옆 슬랩 2곳이
나온다. 설벽이다. 굵은 밧줄이 달렸다. 등로 오른쪽은 철조망을 길게 둘렀다. 자칫 눈길에 엎
어지기라도 하면 얼굴이 다칠 것만 같아 조심조심 재며 걷는다.
드디어 소요산 품에 든다. 긴 오르막이다. 시원한 탁주로 목 추기고 그 기운으로 박차 오른다.
소요산 칼바위. 이미 여러 사람이 오갔다. 바위 비집어가며 오르내린다. 상백운대 너른 공터.
조용하다. 시간이 촉박하여 서둔다. ┣자 능선 분기봉인 530m봉. 오른쪽 덕일봉으로는 아무
도 가지 않았다. 지체 없이 그리로 간다.
산그늘 드리운 북사면을 우르르 내리는데 무언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한다.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가는 건 관성. 걸으면서 시계와 지도를 본다. 16시 40분을 지난다. 덕일봉 정상은 100m
정도 남았다. 초성리역까지는 도상 4.8㎞! 아득하다. 불안감이 그 정체를 드러낸다. 갈 수 있
을까? 일몰시각은 17시 20분 언저리일 것. 가망 없는 일이다. 그냥 돌아가자. 감연히 발길 되
돌린다. 내 불민하여 일행들에게 더없이 미안하다.
530m봉을 다시 오르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겁다. 530m봉. 17시 5분. 해는 막 지려는 참이
다. 아이젠 찬다. 속도전을 벌인다. 줄달음 한다. 중백운대 노송 일별하고 뚝 떨어졌다가 주춤
하여 하백운대. 남진한다. 계단길이다. 낯설다. 예전에는 가파른 슬랩을 밧줄잡고 오르내렸었
지. 불 켠 자재암 가로등이 우에무라 나오미의 코츠뷰의 불빛으로 보인다.
16. 가야할 능선, 멀리 왼쪽이 소요산 의상봉
17. 종현산(種縣山, △588.4m)
18. 종현산
19. 지나온 능선
20. 소요산 가는 길
21. 멀리는 국사봉, 소요산 칼바위에서
22. 소요산 중백운대
23. 소요산 사면
첫댓글 2012년 한 해를 마감하는 환상적인 송년산행 이끌어주신 드류형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기분 만끽해보라고 온종일 설국의 전인미답 순백의 눈길에 원없이 발자국 남기며 걷도록 배려해주신 큰 마음에 더욱 감사 드리고요. 해 넘기기전에 덕을 제대로 지으려 계획하신게지요. 비축해놓으신 귀한 사삼에 거나한 뒷풀이까지 풀 패키지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성은이 제대로 망극하였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삼은 비축해 놓은 것이 아니라 꼬불친 것인가 보네0~ㅎ
설경이 아주 멋집니다. 형님!!!
멋진 송년산행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코스와 설경에 새삼 감탄중입니다
드류님 답지 않은 마지막에 중대한 결단에 감사드립니다
새해도 더욱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랜턴키고 초성리역까지 갔어야 하는데0 ^^
30분 차량 바퀴 채우고 전무님 기다렸어요~~ ㅠ.ㅠ
조망이 좋아 송년산행 재미 톡톡히 보셨습니다.
설경이 가관이네요^^ 송년산행 제대로 하셨네요,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