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나(본명 鄭福順) 시인
1939년 대구 출생.
2005년《생각과느낌》등단
시집 : 『기도이게 하소서』,『숲속은 한 음절씩 눈을 뜬다』
앉은뱅이꽃
- 정세나
철마다 찾아오는
봄이련만
그때 그 바람은 아니었어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나를
바람인 당신이
입맞춤 하였지요
그대 옆에서
불꽃처럼 확 피고 싶은 나는
노을빛에 그리움으로 지고 있어요
기약도 없는 바람을 기다리며
날마다 펑펑 쌓이는 이 적막을 쌓아
홀로 파르르 떨며 피고 지는
이 마음 아무도 모를테지요

애호박
- 정세나
버스 정류장이 있는 길섶에서
풋고추랑, 애호박, 오이 무더기 놓고
고운 새댁이 딸아이를 끼고
살아보려는 희망 부풀리고 있다.
한 무더기 천 원에 가져올 행복은
무심한 사람들을 따라 사라지고
뙤약볕에 시든 천 원, 절반 뚝 잘라 주는
애간장 타는 환한 웃음 붙들고
배고픈 어린 것이 칭얼거린다.
내 처녀 적 남을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 어디 가고
간장종지에 빠진 짠순이 장바구니가
오늘따라 왜 이리 무거울까.
어둠이 밀려오는 길바닥에 나와 앉아 있는
모녀의 애호박 같은 삶,
에누리하여 남은 동전들이 연신
딸아이 울음소리를 낸다
점새
- 정세나
집 밖으로 나아가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날은
네모난 방에서 꿈을 그린다
창밖의 푸른 풍경 끌어들이고
밝고 투명한 햇살도 가져와방안의 캔버스에 풀어놓고
점 하나 찍으면,
점은 곧 새가 되어 날아오른다.
자유를 열망하는 새의 날개 위에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덧칠한다.
새는 허공에서 퍼덕이다가
주저앉는다.
끝없는 작업의 외로운 몸짓으로
창밖을 그리워하는 꿈을 접고
나는 점 하나에 내 일생을 바쳐
내 사랑을 생생하게 불어넣기에
하루는 너무도 짧다.
캄캄한 메모난 방안에서 점 하나가
그리움이 일렁일 때마다
눈을 뜨고 날아오르는
나의 점새.

꽃처럼 피는 내 사랑
- 정세나
꽃은 피어서 지고
져서 다시 피는가
안타까운 사랑도 꽃처럼
한 순간에 피어나 떨어지는 것인가
아니, 활짝 피어나기 위해
고통도 이겨내는 개화開花의 사랑 눈
순간의 절정을 확 피워 올리면서
소리치는 사랑의 기쁨을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을지라도
내 사랑하였으므로
나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대 침묵 속에
내 사랑을 밀어 넣고
꽃처럼 절정의 순간을 확 피우는
아름다운 나의 개안開眼이여
아름다운 나의 개화開花여
구절초
- 정세나
호젓한 못 둑에 앉아
산 그림자 품은 연둣빛 물속 바라보면
그대 얼굴이 구절초로
가만 가만 피어나네
늘 오고 싶은 만큼
내 마음을 비집던 그 시절
잊혀 지지 않는 모습이
잔잔하게 맴도는
옛 사랑의 그림자여
스산한 못 둑의 흰 꽃잎 속에
타는 노을빛
그대 모습도 보랏빛으로 물드네
모정
- 정세나
소중한 시절을 다 바쳐
보석보다 아름다운 넷 아아를 양육했었지
아이들이 달려오는 뜀박질 소리가
지금도 문밖에서 들려온다
이 풍진 세상에 시달려도
네 아이의 뜀박질 소리는 지금도 들려오고
가진 것 모두 주어도
오히려 부족했던 나는
오늘, 빈 쭉정이로 남았는가
해와 달이 무수히 다녀가고
바람이 문을 여닫고 할 때마다
“엄마”하며 달려오는
지금도 멀고 가까운
내 아이들의 정겨운 발자국소리
구상(構想)
- 정세나
봄은
비어있는 캔버스 위에서
아른아른 발자국 찍으며
두 팔을 펴고,
눈녹색(嫩綠色) 향기를 품으면
애순이 예쁘게 움트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언뜻 언뜻 연분홍꽃물 적실 적에
내 눈은 수정처럼 맑아지고
내 가슴은 갓 열아홉처럼 설레이더니
한 뼘 정원 같은 캔버스에
화사한 벚꽃을 피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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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시인 | 앉은뱅이꽃 / 정세나
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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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0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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