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리스 자르 작곡, 영화 <다터 지바고>의 메인 테마 <라라의 테마>에 가사를 붙인 <Somewhere My Love>
맨밑에는 영화의 중요장면 동영상 2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탄생지를 찾아 ]
* 영화의 한장면
파스테르나크는 1890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생가는 마야코프스키 광장 부근, 제2트베르스카야 가(街)와 오루제이느니 골목이 마주치는 모퉁이의 집입니다. 지금은 아무 기념관도 없이 아래층이 우산, 타이어 등을 수리하는 가게로 쓰이고 있습니다.
파스테르나크는 모스크바 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이듬해(1914년) 처녀시집(구름 속의 쌍둥이)를 내면서 시인으로 출발했습니다.
그의 고고하고 난해한 시 세계는 당시의 소련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1934년 소비에트 작가동맹이 결성되자 이 때부터 모스크바 근교의 페레델키노 마을에 칩거했고, 여기서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 페레델키노의 파스테르가 살던 집(현재는 기념관), 이 집 2층에서 <닥터 지바고>를 썼습니다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45년이었고, 1956년에야 완성되었습니다. 국내 출판이 여의치 않아 다음해 밀라노에서 처음 출판된 후 1958년 노벨상이 주어지자 소련 정부는 그를 '인민의 적'으로 매도하여 작가동맹에서 축출했습니다.
그는 결국 수상을 사절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69년 파스테르나크는 침묵과 고독과 실의 속에서 죽었습니다.
고르바초프 정권이 들어서자 1986년의 제8차 소련 작가대회 직후 시인 예프투센코 등이 서명운동을 벌여 파스테르나크의 복권을 요구했고 이듬해 2월 작가동맹 서기국이 파스테르나크의 제명을 정식 취소함으로써 30년 만에 복권되었습니다.
1990년은 파스테르나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해를 '파스테르나크의 해'로 선포했고, 그의 생일인 2월 10일을 전후하여 성대한 기념제가 열렸습니다. 페레델키노의 그가 살다 죽은 집은 기념관으로 개관되었습니다.
* 영화의 한 장면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지명들은 실재와 가공의 혼합입니다. 라라 일가가 한때 여관에 묵는 모스크바의 오르제이느니 골목은 작가의 생가가 있는 거리요, 지바고가 마리나와 같이 사는 스피리도니예프스키 로, 지바고가 혁명 발발의 호외를 읽는 아르바트 가 등도 모두 모스크바에 지금도 있는 거리들입니다.
지바고가 혁명이 일어나자 머물게 되는 아내 토냐의 영지 바르키노는 실재의 지명이 아닙니다. 우랄의 도시 페르미 부근이 바르키노로 묘사된 것이라고 합니다.
<닥터 지바고>의 여주인공인 라라는 파스테르나크의 애인이던 올가 이빈스카야가 주모델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46년, 올가는 두 아이를 가진 34세의 과부였고, 파스테르나크는 56세의 유명한 시인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파스테르나크는 절명할 때까지 14년 동안 재혼한 아내와 올가 사이에서 이중 생활을 하게 됩니다.
* 파스테르나크의 애인이었던 올가 이반스카야
1948년 올가는 파스테르나크와의 관계 때문에 스파이 혐의를 쓰고 4년 간 감옥살이를 했고 임신 중의 아기를 유산까지 했습니다. 스탈린의 죽음으로 석방되자 두 사람은 재회했으며 올가는 두 번째 유산을 했습니다.
노벨상 소동 때는 파스테르나크가 동반자살을 권유했으나 올가는 거절했습니다. 시인이 죽은 후 올가는 다시 체포되어 4년 간 시베리아에서 수용소 살이를 했습니다. 1978년 올가의 회상록 <시간의 포로-파스테르나크와의 나날들>이 미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1912년생인 올가는 1995년 82세의 나이로 모스크바에서 죽었습니다.
* 영화의 한장면
파스테르나크가 고뇌 속의 20여 년간을 살다 묻힌 페레델키노 마을을 찾아갑니다.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빠지자 얼마 안 가 페레델키노를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이 나옵니다. 접어든 길은 금방 시골길이 됩니다. 침침한 수풀 사잇길입니다. 마을까지는 모스크바에서 17km.마을이라야 숲만 있을 뿐 인가는 숨어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 기념관 가는 길
페레델키노는 작가촌으로 널리 알려진 동네입니다. 페델리코에서 파스테르나크의 집을 찾아 파블렌코프 로(路)라는 숲길로 들어섭니다. 작가들의 집이 띄엄띄엄 나무에 가려져 있습니다. 울타리 출입문에 '3'이라고 번지수가 붙은 것이 파스테르나크가 살던 곳입니다.
길에서는 안쪽의 건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백화나무가 양쪽으로 도열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2층 건물이 나타납니다. 양철지붕에 갈색의 목조 2층 집입니다. <닥터 지바고>의 산실이 여기입니다. 이 집 앞의 정원에는 단풍나무, 소나무 등이 우거져 있습니다.
* 기념관 내부
모스크바에 사는 아들 예프게니에 의하면 파스테르나크의 사후 이 집은 예프게니 자신이 지키고 살았다고 합니다. 본시 구 소련 작가동맹 소유의 건물이어서 1981년 집을 비우라고 작가동맹이 명도소송을 걸어 왔고, 1984년에는 경찰을 동원하여 가구들을 모조리 끄집어 내던졌다고 합니다.
그 때까지는 이 집이 파스테르나크의 비공식 기념관이나 다름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1987년에 가족들의 축출이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왔으나 가재들을 다 실어내온 뒤라 집은 빈 채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5월 작가동맹이 이 집을 파스테르나크의 기념관으로 만들기로 결정했고 건물을 수리하고 내부를 복원하여 1990년 2월 개관을 한 것입니다. 거실, 식당, 서재 등이 파스테르나크의 생전 때 그대로 재생되었습니다.
* 파스테르나크가 임종한 침대
아래층의 둥근 테이블은,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담소하던 곳입니다. 2층의 서재 입구에는 파스테르나크가 마지막 벗어 놓았던 모자가 아직도 걸려 있습니다. 임종한 침대도 옛 자리에 놓였습니다. 서재에는 전등 스탠드만 놓인 단촐한 책상이 하나, <닥터 지바고>를 쓴 자리입니다. 뒤쪽에 입식 책상이 따로 있습니다. 파스테르나크는 양쪽 책상을 번갈아 이용하며 작품을 썼습니다.
파스테르나크는 이 마을의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제법 널따란 묘역입니다. 입석(立石)에 새겨진 시인의 조상이 그의 일생처럼 풍상에 닳아 희미합니다. 이 묘소에는 파스테르나크가 해금되기 전부터 많은 참배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 파스테르나크의 묘지
레이건 미국 대통령 부인 낸시도 왔고, 사할린에서 노동자도 왔습니다. 그리고 이따끔 시낭송회가 낮은 목소리로 열렸습니다. 이제 그의 시는 낭랑히 고창되고 있습니다. 생전에 그를 알던 한 지인은 "파스테르나크는 천재적이고 심플하고 델리킷하고 자부심이 강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 영화의 한 장면
* 영화의 한 장면
* 영화의 한 장면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닥터 지바고>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는 1958년 <닥터 지바고>의 노벨상 수상 파동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구 소련 시대의 시인이자 작가입니다.
시집 <나의 누이 나의 삶>은 독자적인 시풍을 확립해 세계 현대시의 새로운 언어로 평가되었습니다. 소설 <닥터 지바고>는 혁명의 와중에서 러시아 인텔리겐자가 겪는 고뇌와 갈등, 정신적 방황과 비극을 그린 작품으로 20세기 세계문학의 고전의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 지바고와 라라가 바리키노에서 해후하는 장면 동영상
* 지바고와 라라가 헤어지는 장면 동영상
첫댓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천지, 자작나무가 즐비한 숲, 전쟁과 말없는 사랑의 목소리가 메아리 치는 영화를 본 후, '라라의
테마'만 나오면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마지막 지바고가 심장마비로 죽을 때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을 어떻게 표현하여야 할지? 작가가 노벨상의 수상을 거절한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쓸쓸히 유명을 달리 했고, 애인인 올가도 파란만장한 핢을 살았다 하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좋은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영국편을 올리려 했는데...때가 때이니 만큼 설경이
보고싶어 <닥터 지바고>를 올렸습니다. 이제 이 시리즈도 위의 시베리아
열차처럼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러시아 마지막 편,영국 몇편,미국 몇편 그리고 프랑스 여러편으로 약 50편
가량으로 마감할 예정입니다. 이후에는 예고한대로 <신장개업, 대음악가
의 고향>,<고전음악을 들으며 떠나는 미술기행>,<불멸의 목소리> 등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여기에 올리는 시리즈물들이 우리 인생의 후반기를 정신적으로 보다 풍성하게
보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해요.
지난 한해 열독해 주신 여러분들 모두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