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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삼국지
최용현(수필가)
* 삼국지를 아직 한 번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또 이미 읽으신 분들의 기억을 되살려 드리기 위해 소설 삼국지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간추려 본다.
도원결의, 그리고 동탁의 폭정
항우를 물리치고 유방이 세운 한(漢)은 200여 년간 이어져오다가 마침내 외척 왕망에게 제위를 찬탈당하고 말았다. 한 황실의 후예인 유수가 잃었던 제위를 15년 만에 되찾아 다시 후한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후한도 12대인 영제 때에 이르자 외척과 환관의 발호로 국정이 극도로 문란해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드디어 태평도의 교주 장각이 이끄는 대규모의 민중봉기인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183년). 이에 조정에서는 관군을 편성하여 황건적 토벌에 나섰다.
이때 한 황실의 후손으로 탁군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던 청년 유비는 호걸 관우와 장비를 만나 복숭아꽃 만발한 화원에서 형제의 의를 맺고, 앞으로 생사를 같이함은 물론 함께 뜻을 모아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의병을 모집하여 황건적 토벌에 뛰어들었다. 관군과 의용군의 분전으로 황건적은 대부분 토벌되었고, 황건적 토벌에 공을 세운 군웅(群雄)들은 각자 근거지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후한은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영제가 죽자 조정의 실권을 잡은 대장군 하진은 환관들의 반대를 억누르고 자신의 누이인 하 황후가 낳은 아들을 새 황제(少帝)로 세웠다. 하진은 환관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각지의 군웅들을 도성으로 불러들이는 격문을 보냈다.
그러나 환관들의 반격으로 하진은 참살되고 말았다. 이때 하진의 격문을 받은 서량의 군벌 동탁이 대군을 이끌고 입성하여 조정의 대권을 차지했다. 동탁은 무예가 뛰어난 여포를 부하로 맞으면서 더욱 기세등등하여 포악한 공포정치를 일삼았다.
동탁은 하 태후를 무참하게 죽이고 소제를 폐위하는 한편, 소제의 이복동생인 아홉 살 진류왕을 새 황제로 세웠다. 이가 바로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이다.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여 쫓기는 신세가 된 조조는 불심검문에서 잡히고 말았으나 진궁의 도움으로 다시 풀려났다.
조조는 곧 동탁토벌의 격문을 각지에 보냈다. 이에 북평태수 공손찬, 발해태수 원소, 남양태수 원술, 장사태수 손견 등 각지의 제후들이 군사를 이끌고 모여들었다. 이들은 곧 연합군을 구성하여 동탁 토벌에 나섰다.
연합군과 맞선 동탁은 선봉장 화웅의 눈부신 분전으로 기세를 올렸으나 공손찬의 막하에 있던 관우가 화웅의 목을 벰으로써 다시 전세는 역전되었다. 동탁은 다시 맹장 여포를 내보냈으나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분전으로 다시 패퇴했다. 이에 동탁은 도성 낙양을 불태우고 황제와 수십만의 주민들을 강제로 이끌고 장안으로 천도했다.
장안에 도착한 동탁은 그곳 주민들의 재물을 닥치는 대로 노략질했다. 그리고 장안 교외에다 거대한 미오성을 짓고 그곳에 엄청난 식량과 금은보화를 비축해놓고 마냥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
난세에 일어선 군웅들
연합군의 맹주로 추대된 원소가 무능하여 제후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한 데다 제후들끼리도 서로 시샘하고 싸우는 바람에 연합군은 결속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이때 동탁이 불태우고 떠난 낙양에 입성한 연합군의 선봉장 손견은 궁궐의 우물에서 전국(傳國)의 옥새를 얻게 되었다. 이에 웅지를 품은 손견이 근거지인 강동으로 향하는 것을 필두로 연합군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근거지로 돌아갔다.
이때 연합군의 맹주 원소는 ‘손견을 저지하여 옥새를 뺏어라’는 밀서를 형주자사 유표에게 보냈다. 한실의 종친인 유표는 부장 황조를 보내 남하하는 손견을 저지했다. 두 진영의 군사끼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결국 황조의 매복계에 걸린 강동의 호랑이 손견이 무참히 전사하고 말았다.
이 무렵 북방에서는 공손찬이 맨 먼저 기업(基業)을 이룩했고, 하북에서는 사세오공의 명문출신 원소가 널리 인재를 모으며 호시탐탐 천하를 넘보고 있었다. 또 남양에서는 원소의 사촌동생인 원술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고, 산동에는 조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때 공손찬의 막하에 있던 유비도 두 의제(義弟)와 함께 도겸이 물려준 서주의 소패성에서 힘을 기르고 있었다. 바야흐로 군웅할거 시대가 온 것이다.
한편, 장안에서 폭정을 일삼고 있던 동탁은 조정의 중신 왕윤과 그의 수양딸 초선이 주도면밀하게 구사한 미인계와 연환계(連環計)에 걸려들어 대권을 잡은 지 3년 만에 부하인 여포의 손에 무참히 참살당했다. 동탁이 죽자 그의 부하장수인 이각과 곽사가 장안을 기습하여 다시 조정의 실권을 잡았다.
이들은 황제를 협박하여 왕윤을 목 베는 한편, 제멋대로 자신의 벼슬을 정하는 등 국정을 전단(專斷)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자기들끼리 서로 싸움이 붙어 도성 장안은 이들의 전쟁터로 변했다. 황제는 가까스로 장안을 탈출하여 들판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이때 산동에서 힘을 기르고 있던 조조는 재빨리 군사를 이끌고 와서 이각과 곽사의 무리를 패퇴시키고 황제를 낙양으로 맞아들였다.
새로운 실력자 조조가 조정의 실권을 잡았다. 이제 황제의 명으로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게 된 조조는 우선 도성을 허도로 옮겨 자신의 기반을 튼튼히 했다. 천하제패의 야심을 불태우고 있던 조조는 이때 이미 순욱 순유 정욱 곽가 등 뛰어난 모사와 하후돈 하후연 조홍 조인 서황 전위 등 기라성 같은 무장들을 갖추고 있었다.
조조는 먼저 서주에 있는 유비와 여포를 서로 갈라놓기 위해 황제의 이름으로 조서를 보내 남양의 원술과 서주의 유비를 싸우게 했다. 유비가 원술을 치는 사이, 엉큼한 여포는 서주성을 차지해버렸다. 유비는 서주의 소패성으로 물러나 울적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이때 원술의 휘하에 있던 손책은 나이가 들자 다시 선부(先父) 손견의 큰 뜻을 계승하려는 의욕이 생겼다. 그는 손견에게서 물려받은 옥새를 담보로 맡기고 원술에게서 군마를 빌렸다. 그리고는 선부를 도운 장수들인 정보 황개 한당과, 그의 절친한 친구인 주유 등과 함께 빌린 군사를 이끌고 강동으로 향했다.
아비를 닮아 영웅의 기상을 타고난 손책은 명성을 떨치며 강동을 차례차례 평정했다. 창업의 기반을 굳힌 손책은 다시 그곳의 명현(名賢) 장소와 장굉을 비롯하여 태사자 주태 등 뛰어난 무장들을 새로 얻어 탄탄한 진용을 갖추었다. 이제 그는 강동을 발판으로 천하제패를 꿈꾸는 막강한 신흥군벌로 등장했다.
군웅들의 쟁패전
조조는 옛 동탁의 부하 장제의 조카 장수의 침입을 받았으나 곧 항복을 받았다. 영웅은 호색이라던가, 조조는 장제의 처 추 씨의 미모에 혹하여 연일 진중에서 추 씨와 음락을 즐겼다. 조조가 자신의 숙모를 농락하는 데 분개한 장수는 다시 마음을 바꾸고 조조의 막사를 기습했다.
이때 조조의 막사를 지키고 있던 맹장 전위가 전사하고 조조의 아들 조앙, 조카 조안민까지 목숨을 잃었다. 여색을 밝히다가 무참하게 당한 조조는 크게 뉘우치고 다시 천하제패의 각오를 새롭게 가다듬었다.
한편, 그간에 이룬 성공에 만족한 남양의 원술은 손책에게서 얻은 옥새를 기화로 수춘성에서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비록 허수아비지만 조정에 엄연히 황제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원술이 황제를 참칭한 것이었다. 이에 조조는 손책 여포 유비 등에게 군사를 이끌고 합류토록 요청하는 한편, 친히 원술 토벌의 대군을 일으켰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장기전으로 인해 조조군은 군량이 모자라 군사들의 불평이 늘어났다. 이때 조조는 죄 없는 왕후를 군량착복자로 뒤집어씌우고 그의 목을 베어 성난 군사들을 무마한 다음, 맹공을 퍼부어 마침내 수춘성을 함락시켰다. 이미 성을 빠져나간 원술은 회수를 건너 도망쳤다.
원술을 패퇴시킨 조조는 다시 예주에서 힘을 기르고 있던 유비에게 서주의 여포를 치자고 했다. 후일 원소와의 결전에 대비하여 미리 화근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여포는 모사 진궁, 맹장 장료 장패 등과 함께 결전을 준비했다. 여포는 적토마를 타고 용감하게 싸웠으나 결국 서주성을 뺏기고 말았다.
하비성으로 쫓겨 간 여포는 모사 진궁이 조조를 깨뜨릴 비책을 마련해 주었으나, 처첩의 모함에 빠져 진궁을 의심하는 등 변덕을 부렸다. 결국 여포는 잠든 사이에 부하장수들에게 묶인 채 끌려와 조조 앞에 무릎을 꿇리는 신세가 되었다.
조조는 목숨을 구걸하는 여포를 죽였다. 또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었던 진궁의 목을 베고, 맹장 장료는 살려주어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여포 평정의 마무리를 지은 조조는 허도로 개선했다.
유비도 조조를 따라 허도로 들어갔다. 조조는 사냥터에서 황제를 업신여기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조조에게 심하게 욕을 당한 황제는 국구(國舅) 동승에게 조조를 제거하라는 밀조를 내렸다. 이에 동승은 비밀리에 길평 마등 유비 등의 동조자를 규합하고 조조를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때, 전에 유비를 보살펴주었던 북방의 효웅 공손찬이 원소와 결전을 벌이다 패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유비는 원술을 친다는 핑계로 조조에게서 군사를 빌어 조조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왔다.
이 무렵 세력이 급격히 쇠락해진 원술은 갖고 있던 옥새를 사촌형 원소에게 바치러가다가 유비에게 참패하여 목숨을 잃었다. 손견 손책을 거쳐 원술이 갖고 있던 옥새는 마침내 조조의 손에 들어가 원래의 자리인 한의 황제에게로 되돌아갔다.
조조와 원소의 결전, 관우의 오관돌파
공손찬을 패망시키고 하북 4개주를 다스리고 있던 원소는 드디어 숙명의 라이벌인 조조와의 일전을 준비했다. 심배 전풍 저수 봉기 허유 등 기라성 같은 모사와 안량 문추 등 발군의 무장들을 보유하고 있던 원소는 30만 대군을 일으켜 허도를 향해 출진했다. 이에 조조도 20만 대군으로 맞서니 바야흐로 두 영웅의 결전이 시작되었다.
두 진영의 군사들은 서로 대치하며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이때 소강상태를 틈타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사신을 보내 장수에게서 항복을 받아내고, 장수의 모사 가후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조조는 다시 재사(才士) 예형을 유표에게 보내 형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예형의 심한 독설을 견디지 못한 유표의 부장 황조가 예형을 죽이는 바람에 조조와 유표도 원수가 되고 말았다.
그 무렵, 국구 동승은 태의(太醫) 길평과 함께 조조를 독살할 계책을 세웠다. 그러나 그 계책이 사전에 누설되는 바람에 가담자 중에서 서주의 유비와 서량의 마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잡혀 죽임을 당했다.
유비의 가담사실을 알고 격노한 조조는 20만 대군을 일으켜 유비가 있는 서주로 향했다. 유비는 관우 장비와 병력을 나누어서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모두 패퇴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장비는 망탕산으로 향했고 유비는 하북의 원소에게로 의지해 갔다.
이때 유비의 가족들과 함께 서주의 하비성을 지키고 있던 관우도 패퇴하여 조그만 토산에서 조조의 대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관우의 충의와 무용을 흠모해온 조조는 장료를 관우에게 보내 항복을 권했다. 관우는 옥쇄하려고 생각했으나 함께 죽기로 맹세한 도원결의와 유비의 가족을 생각하여 ‘유비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즉시 떠난다’는 조건으로 항복했다.
조조는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벼슬을 내리고 자주 잔치를 베푸는 등 정성을 다해 극진히 후대했고, 나중에는 여포가 타던 희대의 명마(名馬) 적토마까지 주었지만 끝내 관우의 마음을 돌려놓지는 못했다.
원소는 다시 대군을 이끌고 조조와의 결전에 나섰다. 원소군은 연전연승했다. 원소의 맹장 안량과 문추에게 계속 참패를 당한 조조는 마침내 관우를 불러냈다. 관우는 출전하여 안량과 문추를 차례로 목 베어 조조의 은혜에 보답했다.
이때 유비가 원소진영에 있음을 알게 된 관우는 조조의 진중을 떠났다. 보장된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한 뼘 땅도 없는 유비를 찾아 나선 것이다. 저 유명한 오관돌파(五關突破)의 신화를 남기면서….
이 소식을 들은 유비도 원소에게서 몸을 빼왔다. 기약 없이 흩어졌던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마침내 다시 만나 도원의 의를 잇게 되었다. 이때 유비는 공손찬의 패망으로 떠돌이 신세가 된 조운을 새로 얻었다.
일어선 손권, 원소를 무찌르고 강북을 제패한 조조
소패왕으로 불리며 강동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던 손책은 조정에 표문을 보내 대사마 벼슬을 달라고 했으나 조조에 의해 좌절되었다. 직정적(直情的)인 성격의 손책은 단숨에 허도로 쳐들어가 조조와의 일전을 겨루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계획을 미처 실현하기도 전에 자객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말았다. 병상에서도 조조토벌에 골몰하던 손책은 때마침 원소의 사자가 와서 함께 조조를 치자고 제의하자 흔쾌히 수락하면서 원소의 사자를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 당세의 신선(神仙)으로 알려진 우길이 나타났다. 중신들과 강동의 백성들이 모두 우르르 달려가 그에게 경배했다. 이를 본 손책은 강동에 자신보다 더 우러름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시샘을 느끼고 우길을 잡아 죽여 버렸다. 그 후 우길의 귀신이 씐 듯 발광하던 손책은 마침내 중태에 빠졌다.
최후가 왔음을 느낀 손책은 아우 손권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죽었다. 이때 형을 이어 열아홉 살에 강동의 주인이 된 손권은 장소 주유 등을 사부의 예로 극진히 후대했고, 새로이 준재(俊才) 노숙과 제갈근을 얻어 물려받은 강동을 충실히 지켰다. 바야흐로 손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편, 하북의 원소는 70만 대군을 일으켜 조조와의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 이때 전풍과 저수 등 원소진영의 모사들은 시기가 좋지 않다며 출진을 말렸으나, 원소는 듣지 않고 대군을 이끌고 관도를 향해 나아갔다. 조조는 정병 7만으로 원소와 맞붙었다. 원소군은 서전에서 크게 이겼다.
참패한 조조는 마침내 물러설 생각을 하고 허도에 있는 모사 순욱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에 순욱은 후퇴하면 끝장이라며, 요충지를 굳게 지키면서 빈틈을 노리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단숨에 무찔러야 한다고 회신을 보내왔다. 다시 힘을 얻은 조조는 원소군의 군량창고 경비가 허술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전격적인 기습작전을 감행했다.
마침내 70만 원소군의 군량을 모두 불태운 조조는 다시 맹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군량이 모두 타버린 원소군은 월등한 군세에도 불구하고 사기가 꺾여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다. 원소는 다시 군사를 모아 반격해보았으나 참패를 거듭, 결국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다.
마침내 조조는 필생의 라이벌 원소를 관도에서 격파하고 강북을 평정했다. 조조는 원소를 무찌른 전승기념으로 장하 언덕에다 동작대를 짓고 한껏 기상을 뽐낸 다음, 다시 형주로 칼끝을 돌렸다. 이제 남은 세력은 형주의 유표와 떠돌이 유비, 그리고 강동의 손권뿐이었다.
제갈량을 얻은 유비, 당양벌의 영웅 조자룡과 장비
유비는 조조가 원소와 싸우고 있는 동안 비어 있는 허도를 공략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형주의 유표에게로 의지해갔다.
유표는 조조의 침입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종친인 유비를 맞아들였다. 이때 유비가 형주에 온 것을 고깝게 생각한 유표의 후처 채부인 일당은 유비를 해치려고 했으나, 유비는 새로 얻은 명마(名馬) 적로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형주의 신야에서 준재 서서를 얻은 유비는 그를 군사(軍師)에 임명하여 군사를 조련케 했다. 그러나, 뜻밖에 서서의 노모가 조조에게 잡혀 있는 것을 알고는 그를 조조진영으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서서는 떠나기에 앞서 유비에게 제갈량을 천거해주었다. 유비는 저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정성 끝에 드디어 천하의 기재인 제갈량을 얻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서촉을 평정하여 근거지로 삼고, 강북의 조조와 강남의 손권과 함께 천하를 삼분하는 원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조조는 강북을 제패한 여세를 몰아 형주 평정의 기치를 들었다. 이때 조조진영에 있던 명사(名士) 공융은 ‘유비와 유표는 둘 다 한실의 종친이므로 그들을 치는 것은 부당하다’며 형주침공을 말리다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드디어 조조의 대군은 형주로 향했다.
이때 병상에 누워있던 형주자사 유표는 유비에게 맏아들 유기를 부탁하고 죽었다. 그러나 유표의 후처인 채부인은 자기가 낳은 아들 유종을 형주의 새 주인으로 세웠다. 이때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유종은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조조에게 항복했다.
유비는 자신을 따르는 수십만 형주 피난민들을 이끌고 조조군을 피해 강릉성으로 향했다. 피난민들 때문에 느리게 행군하던 유비 일행은 드디어 당양벌에서 뒤쫓아오던 조조군에게 추월을 당했다. 피난민들은 조조군의 말발굽에 무참히 짓밟혔다.
조자룡은 유비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단기(單騎)로 조조의 대군 속으로 뛰어 들었다. 무수히 적병들을 찌르고 베면서 마침내 미부인과 어린 아들 아두를 찾았으나, 미부인은 아두를 부탁하며 옆 우물 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조자룡은 아두를 품에 안고 다시 창과 칼날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적병을 베어 넘기며 조조의 대군 사이를 뚫고 나왔다.
이때 장비는 장판교의 다리 위에서 혼자 말 위에 앉아 조조의 대군을 막아서고 있었다. 곧 조조의 대군이 몰려왔으나 장비는 끄떡도 하지 않고 ‘누구든지 나와서 덤벼라!’고 고함을 질렀다.
장비의 험악한 인상과 벼락같은 고함소리에 놀란 조조군은 모두 겁에 질려 아무도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조조는 얼른 군사들을 후퇴시켰다. 당양벌에서의 조자룡과 장비의 눈부신 분전으로 유비는 조조의 추격에서 벗어나 다시 군마를 정돈할 수 있었다.
불타는 적벽, 형주를 차지한 유비
형주를 차지한 조조는 내친 김에 강동까지 정벌하여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룩하려고 양자강의 적벽에 진을 치고 손권에게 ‘결전이냐 항복이냐’를 결정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유비는 제갈량을 손권에게 파견하여 함께 조조를 치자고 했다. 손권은 제갈량과 주유, 노숙의 진언을 받아들여 유비와 힘을 합쳐 조조를 물리치기로 결전의지를 굳혔다. 드디어 삼국지 최고의 결전장인 적벽대전의 막이 오른 것이다.
손권으로부터 대도독에 임명된 주유는 조조군이 수전(水戰)에 약한 것을 살피고 화공(火攻)으로 적을 무찌르기로 전략을 세웠다. 주유는 제갈량에 버금가는 기재인 봉추(鳳雛) 방통을 조조에게 잠입시켜 조조군의 선단을 모두 쇠사슬로 묶게 하는 데 성공했다.
주유는 다시 노장 황개를 조조에게 거짓 항복토록 한 다음, 동남풍이 부는 때를 틈타 황개의 투항선 20척에다 불을 붙여 조조의 선단을 향해 돌진케 했다. 쇠사슬로 묶여진 조조의 선단은 모두 삽시간에 불덩어리가 되었고, 이때 손권과 유비의 5만 연합군이 조조의 진채를 습격하니 조조의 백만 대군은 여지없이 참패하여 시체가 온 강을 뒤덮었다.
명장 주유가 이끄는 연합군의 완벽한 승리였다. 이때 제갈량은 조조가 패주하는 길목마다 복병을 배치했다. 이윽고 조조가 패잔병과 함께 화용도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곳을 지키고 있던 관우는 전에 조조에게 입었던 은혜를 생각하여 조조를 그냥 보내주고 만다.
유비는 재빨리 군사를 움직여 형주를 탈환했고, 이어 인근의 여러 군(郡)까지 평정하게 되었다. 유비는 마량과 마속 형제를 비롯하여 노장 황충, 맹장 위연까지 새로 얻어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적벽대전의 전리품이라고 할 수 있는 형주를 유비가 먼저 차지해버리자 조조군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오주 손권과 주유는 심기가 불편했다. 결국 형주문제는 이후 유비와 손권 사이의 골칫거리 외교문제가 되고 말았다.
주유는 형주를 되찾기 위해 손권의 누이동생을 유비와 결혼시킨다고 속여 유비를 강동으로 유인해서 죽이려는 계략을 꾸몄다. 그러나 이를 간파한 제갈량 때문에 주유의 계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손권은 누이만 유비에게 바치는 꼴이 되었다. 지모싸움에서 여러 번 제갈량에게 당한 주유는 마침내 울화통이 터진 데다, 전에 화살을 맞았던 상처까지 도져서 죽고 말았다.
주유가 죽자 강동의 군권은 온건파 인물 노숙이 이어받았다. 노숙은 적벽대전 때 조조의 선단을 쇠사슬로 묶게 한 봉추 방통을 손권에게 천거했으나 방통의 볼품없는 용모에 실망한 손권은 그를 기용하지 않았다.
방통은 유비를 찾아갔다. 유비도 처음엔 그의 용모에 실망하여 중용하지 않았으나 곧 뉘우치고 부군사로 임명, 제갈량과 함께 전략을 수립케 했다. 드디어 유비는 천하의 두 기재(奇才) 복룡과 봉추를 모두 얻었다.
한편, 조조는 서량의 군벌 마등을 도성으로 불러들였다. 전에 국구 동승과 함께 조조제거음모에 가담했던 마등은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조조가 천자의 조서로 부르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마등은 무용이 뛰어난 아들 마초에게 서량을 지키게 하고 5천 군사를 이끌고 도성으로 향했다. 조조가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등은 거꾸로 조조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꾸몄다.
그러나 그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결국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 마초는 서량태수 한수와 맹장 방덕, 종제(從弟) 마대와 함께 서량군 20만을 이끌고 아비의 원수를 갚으러 허도를 향해 쳐들어갔다. 조조도 군사를 이끌고 맞섰으나 마초의 눈부신 무용에 밀려 참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조조는 마초와 한수 사이를 이간시키는 데 성공하여 마침내 마초를 한중으로 쫓아냈다.
서촉을 평정한 유비, 위왕이 된 조조
계속된 전란에도 불구하고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서촉은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드디어 이곳에도 서서히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인근 한중에서 장로가 서촉 국경을 어지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세를 헤쳐 나가기에는 부족한 인물인 유장은 형주의 유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호시탐탐 서촉을 노리고 있던 유비는 때가 왔다고 판단, 서촉의 일부 관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방통 황충 위연 등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서촉으로 향했다. 유비는 처음에는 유장의 환영을 받았으나 차차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유비가 촉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유비의 군사(軍師) 방통이 낙봉파에서 촉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하고 말았다.
유비는 형주의 수비를 관우에게 맡기는 한편, 제갈량 장비 조자룡 등에게도 서촉 정벌에 합류토록 했다. 이때 제갈량은 새로 장로진영에 가담한 맹장 마초를 지모로써 사로잡아 유비진영으로 끌어들였다.
파죽지세로 촉군을 격파해가던 유비는 드디어 도성 성도를 점령하고 서촉 평정을 마무리 지었다. 이때 강동의 손권은 유비에게 사신을 보내 ‘서촉을 얻었으니 이제 형주를 반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비는 형주의 일부를 떼어서 손권에게 주려고 했으나 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노숙은 계책을 마련, 관우를 진중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칼 한 자루만 갖고 찾아온 관우의 당당하고 빈틈없는 처신에 노숙은 그를 죽일 기회를 잡지 못하고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 조조는 허수아비 황제로부터 위공에다 구석(九錫)의 특전까지 받았다. 이때 조조의 명참모 순욱과 그의 조카 순유는 한실에의 충성을 내세워 조조의 부당함을 간하다가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조조는 다시 서쪽으로 눈을 돌려 서촉에 인접한 한중을 평정했다.
이때 합비를 지키고 있던 장료로부터 손권의 대군이 쳐들어왔다는 전갈을 받은 조조는 급히 군사를 이끌고 합비를 구원하러 갔다. 이 전투에서 조조군의 맹장 장료와 오의 맹장 감녕이 눈부신 활약을 했고 손권의 경호를 맡은 무장 주태는 조조군의 포위를 뚫고 손권을 여러 번 구해냈다.
다시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위왕으로 즉위했다. 위 왕궁이 건립되자 조조는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 환술사인 좌자가 나타나 조조를 놀렸다. 조조는 좌자를 잡아 목을 베었으나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이에 조조는 점복의 명인 관로를 불러 점을 쳤는 바, 관로는 정월 대보름날 허도에 큰 불이 나며, 곧 유비가 한중으로 쳐들어온다고 예언했다.
대보름날이 되자 관로의 예언대로 한실을 섬기는 조조의 반대세력들이 도성에 불을 지르고 모반을 일으켰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조조는 신속하게 불을 끄는 한편,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을 모조리 일망타진했다.
삼국정립, 관우와 조조의 죽음
서촉 평정의 뒷마무리를 끝낸 유비는 서촉과 인접한 한중을 뺏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조조도 대군을 이끌고 한중을 구원하러 왔다. 이때 촉군의 노장 황충은 조조의 한 팔이라 할 수 있는 하후연을 목 베었다. 사기가 오른 촉군은 계속 맹공을 퍼부어 조조군을 무찔렀다. 연패(連敗)한 조조는 이제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날 밤 조조가 ‘계륵(鷄肋)’이라는 군령을 내리자 조조의 심중을 간파한 재사 양수는 전군에게 철수준비를 시켰다. 그러나 불같이 노한 조조는 군령을 어지럽힌 죄로 양수를 목 베었다.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맹공을 해보았으나 조조 자신이 촉장 위연에게 화살을 맞아 낙마하는 등 또다시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마침내 조조는 한중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이제 형주, 서촉에다 한중까지 차지한 유비는 스스로 한중왕에 올랐다. 그리고 제갈량을 군사(軍師)로, 관우 장비 조자룡 마초 황충을 오호대장군으로, 위연을 한중태수로 임명하는 등 비로소 한 국가의 체제를 갖추었다. 이제 천하는 조조 손권 유비에 의해 완전히 삼분(三分)되었다.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조조는 우금과 방덕을 보내 형주의 관우를 공략케 했다. 관우는 양강 상류의 물로써 위군을 공략하여 적장 우금의 항복을 받고 방덕의 목을 베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때 독화살을 맞은 관우는 신의 화타의 집도(執刀)로 상처를 치료했다.
관우는 오나라 쪽 방어에도 충실을 기하는 한편, 다시 위의 후방을 공략하여 눈부신 전공을 쌓았다. 이때 노숙의 뒤를 이어 오의 대도독이 된 여몽은 관우를 쳐서 형주를 뺏으려는 원대한 전략을 세웠다.
여몽은 일부러 병을 핑계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육손을 배치했다. 육손을 애송이로 본 관우는 주력부대를 모두 위나라 쪽으로 옮겼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여몽은 재빨리 군사를 이끌고 형주에 상륙, 순식간에 형주성을 점령했다. 맥성으로 쫓겨 간 관우는 결국 오군에게 사로잡혀 참수되고 만다.
오에서는 촉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관우의 수급(首級)을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는 관우에게 형왕(荊王)의 시호를 내리고 후히 장사지내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조조도 죽었다.
조조가 죽자 맏아들 조비가 위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조비는 아우 조창과 조식을 핍박하여 멀리 변방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이름뿐이던 후한 마지막 황제로부터 선양(禪讓)의 형식으로 제위를 찬탈하여 위 황제에 올랐다(220년).
전한 이백년, 후한 이백년 동안 이어져오던 한 왕조는 마침내 조조의 아들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그 이듬해, 한중왕 유비도 한의 부흥을 내세우며 촉 황제에 올랐다(221년). 손권도 곧 오왕이라 칭하고 다시 오 황제에 오르니(229년) 천하에 한 사람만 있어야할 황제가 세 사람이나 되었다.
이릉전투, 제갈량의 북벌
촉제 유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거국적으로 군사를 동원, 오 정벌을 준비했다. 그러나 출진에 앞서 장비가 부하에게 암살당하여 그 수급이 오에 보내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함께 죽기로 맹세했던 아우들이 모두 죽자 이성을 잃은 유비는 제갈량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군을 이끌고 오로 쳐들어갔다.
이때 오에서는 제갈량의 친형 제갈근을 보내 ‘형주를 도로 촉에게 돌려주겠다’며 화친을 제의했으나 유비는 듣지 않았다. 서전을 화려한 승리로 장식한 촉군은 승승장구, 강을 따라 오 국경 깊숙이 들어갔다. 다급해진 오주 손권은 지략이 뛰어난 명장 육손을 대도독으로 임명하여 유비의 촉군을 막게 했다.
육손은 서두르지 않고 계속 시일을 끌며 촉군을 지치게 했다. 어느덧 여름이 되었다. 한여름 뙤약볕을 견디지 못한 촉군이 계곡가의 숲에 장사진(長蛇陳)을 치자, 육손은 드디어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오군은 촉의 대군이 진을 치고 있는 숲에다 불을 지르며 맹공을 가했다. 촉군의 시체가 온 숲과 계곡을 뒤덮었다. 참패한 유비는 백제성으로 패주했고, 유비의 거국적인 대군을 무찌른 육손은 일약 이릉전투의 영웅이 되었다.
백제성에서 병이 든 유비는 제갈량을 불러 후사를 부탁하고 죽었다. 유비의 아들 유선이 촉의 새 황제가 되었다. 그는 범용(凡庸)한 군주의 표본 같은 인물이었다. 이제 촉의 운명은 제갈량의 한 몸에 달려 있었다.
제갈량은 오와 다시 화해하는 한편, 남쪽 국경을 어지럽히던 남만정벌을 단행했다. 남만왕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고 일곱 번 도로 놓아주면서 결국 마음으로 따르게 한 제갈량은 저 유명한 출사표를 바치고 북벌에 나섰다.
이때 위에서는 조비가 죽고 아들 조예가 위 황제로 즉위했다. 제갈량이 이끄는 촉군은 노장 조자룡의 눈부신 활약으로 연승을 거두었고 지용(智勇)을 갖춘 준재 강유를 새로 얻었다. 그러나 촉군은 가정의 싸움에서 마속이 명령을 어기고 위의 명장 사마의에게 참패함으로써 다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군을 철수한 제갈량은 울며 마속을 목 베었다. 그 후 제갈량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위 정벌에 나섰으나 촉 조정의 비협조와 명장 사마의에게 막혀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장원 진중에서 병을 얻은 제갈량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232). 그때 나의 54세였다. 촉군은 제갈량이 미리 일러준 계책대로 사마의의 공격을 잘 막아내었으나, 군권이 양의에게로 돌아간 데 대해 불만을 품은 위연이 곧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다시 위연을 목 베고 반군을 진압한 촉군은 제갈량의 영구(靈柩)를 앞세우고 성도로 철수했다.
사마씨의 혁명극과 진의 삼국통일
제갈량이 죽자 삼국은 한동안 싸움을 그쳤다. 명장 사마의는 제갈량의 공격을 잘 막아낸 공로로 일약 위의 원훈(元勳)이 되었다. 이때 위 황제 조예가 방탕한 생활로 서른여섯 나이로 요절하자, 그의 여덟 살 난 태자 조방이 위 황제로 즉위했다. 이때 위의 실권자는 조상이었으나 사마의는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자 조상을 처단하고 위의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가 죽자 맏아들 사마사가 대장군이 되어 실권자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오의 손권도 일흔한 살의 나이로 죽었다. 어린 아들 손량이 대통을 이었다. 이때 위군이 오로 쳐들어오자 실권자인 제갈각이 나서서 위군을 물리쳤다. 기세가 오른 제갈각은 촉장 강유와 연합하여 위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사마사 형제의 분전으로 오와 촉의 군사들은 모두 패퇴하고 말았다. 이때 참패한 제갈각은 반대파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한편, 성년이 된 위 황제 조방이 실권자 사마사를 제거하려 하자, 사마사는 오히려 조방을 내쫓고 새로 조모를 위 황제로 세웠다. 신하에 의해 황제가 폐위되고 옹립되는 형편이니 이때 사실상 위는 망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 사마사가 눈병으로 죽자 그의 아우 사마소가 실권자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이때 위 황제 조모가 또 사마소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살해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실권자 사마소는 다시 조환을 위 황제로 세웠다. 사마소는 드디어 촉을 멸하기로 결심하고 명장 등애와 종회를 시켜 두 갈래로 쳐들어가게 했다.
촉장 강유가 종회의 대군을 막고 있는 사이 등애가 성도를 포위, 촉주 유선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263년). 제갈량이 죽은 지 31년 만에 유비가 세운 촉은 멸망하고 말았다. 촉을 멸망시킨 사마소는 진왕이 되었다.
그 후 사마소가 풍병으로 죽자, 새로 진왕이 된 아들 사마염은 허수아비 위 황제 조환으로부터 제위를 찬탈하여 진황제로 즉위했다. 45년 전에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 마지막 황제로부터 제위를 찬탈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이번에는 조비의 손자가 신하에게 제위를 찬탈 당했다(265년).
오에서는 손량, 손휴에 이어 손호가 황제로 즉위했다. 손호가 연일 사치와 향락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는 사이 오의 국력은 극도로 피폐해져 갔다. 드디어 진 황제 사마염은 왕준과 두예를 육로와 수로로 보내 오를 공략케 하니, 오주 손호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건업의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손견과 손책이 갖은 고난을 무릅쓰고 창업하고 수성의 명군 손권이 오랫동안 지켜오던 오도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280년). 황건적의 난 이래 100년 동안 중원을 휩쓸었던 난세의 폭풍도 마침내 잠잠해졌다. 진(晋)의 사마염에 의해 천하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삼국지 인물 108인전/참고자료에 수록>
첫댓글 탈고한 인물론에 있는 글 입니꺼 ???
겨울 내내 수고 하셨습니다.
출판은 언제쯤인지 기대 됩니다.^^^^
인물론 끝에 참고자료로 넣을 생각인데, 페이지가 너무 많으면 뺄 수도... 출판은 지금 출판사 몇군데와 협의 중인데, 빠르면 가을, 늦으면 내년 봄... 몇 꼭지 더 써서 넣으려고 해. 아무래도 너무 아쉬워서...
호오....시간이 나면 다시 읽고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중간중간에 따오기님의 글로 인하여 아는 이야기들을 만나니, 너무 좋습니다...
좋은 출판이 되리라 믿습니다....
삼국지는 대하처럼 길고 이야기가 복잡다기해서 뒷부분을 읽을 땐 앞부분을 잊어버리게 되고, 다시 앞부분을 읽으면 뒷부분을 잊어버리게 되어서... 처음 읽는 분들, 혹은 이미 읽은 분들의 기억을 되살려 드리기 위해 이렇게 스토리를 요약해본 것입니다. 이 요약본이 전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많은 도움이 됩니다...점심 먹고 한번 더 읽어 볼 참입니다...
정말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녁 먹고 한번 더 읽어 볼 참입니다. 고마우신 따오기님
아이고, 목사님, 지기 선배님... 도움이 된다니 쓴 보람이 있네요. 저도 전체 그림이 떠오르지 않을 때 한번씩 찾아서 읽어본답니다.
정말...성경 말씀과 비숫하네요...
나무도 봐야 하지만 숲을 봐야 한다....
아, 나무보다는 숲을 봐야한다는... 그렇지요...ㅎㅎㅎ
소중한 자료를 ,,스크랩 허용하신따오기님의 나눔에 먼저 감격
뭐 설마... 스크랩 해가서 자기가 썼다고 우기는 사람은 없겠죠? (다시 보니 제 이름도 안 넣었길래 새로 제 이름을 넣었습니다.)
스크랩이야 본문 수정이 안돼니 자기 글이라 우길일 없을 테지만 ... 복사까지 허용 하셨드이다 ... 수필가 최용현님
하이고, 호수님 이제 컴퓨터 박사가 다 되셨네요. 저는 그렇게 꼼꼼하게 체크를 몬(?)하는데...ㅎㅎㅎ
서당견년에 ... 멍 멍
식당견 삼년에 라면 끓이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