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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위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공산품은 소비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 진다. 시장 원리에 충실한 자본주의 체제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같은 계획 경제하에서도 이런 법칙은 예외가 없다. 사용하지 않는다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고, 반대로 많이 사용된다면 당연히 많이 만든다. 특히 제작자의 경제적 이해타산이 걸려있는 경우라면 이런 반응은 신속히 이루어진다.
그런데 많이 만들고 사용된다고 반드시 품질이 최고라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고 탐낼 만큼 품질이 매우 뛰어나거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극히 적다면 가격이 비싼데, 이런 경우는 누구나 쉽게 소비하기는 어렵다. 비싼 고급차가 가장 많이 팔리는 승용차가 아닌 것처럼, 많이 만들고 사용되는 재화라면 많은 이들이 품질과 가격에 대체로 만족한다는 의미다.
공산품이지만 생산자와 소비자가 극히 제한된 무기도 마찬가지다. 무기는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명제가 우선시 되므로 신기술이 접목된 최신예 무기일수록 가격이 비싸다. 어느 나라 어느 군대든 값비싼 이런 무기를 원하지만 전부를 그렇게 무장할 수 없다. 따라서 고가의 최신 무기와 더불어 별도로 적당한 가격에 품질도 무난한 무기를 합리적으로 혼합하여 전력을 구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후자의 관점에서 볼 때 MiG-21 피쉬베드(Fishbed)는 가히 발군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생산된 초음속 제트전투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일단 주목을 받을 만하다. 지금은 구닥다리 취급을 받지만 사실 MiG-21은 탄생 당시에도 경쟁 기종에 비해 그리 앞선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랫동안 양산되었고 현재도 현역에서 일부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한마디로 가격 대 성능비가 좋다고 하겠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전투기
1950년 11월 8일, 소련이 한반도 상공에 전격 데뷔시킨 MiG-15는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유유자적 하늘을 날아다니며 작전을 펼치던 미군기들은 이들이 언제 어디서 비호같이 뛰어 올라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게 되었고, 아직 전진배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던 F-86의 조기 등판을 촉진시켰다. 이 사건은 그 동안 한 수 아래로 내려 보던 소련의 전투기 제작 능력을 재평가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소련도 MiG-15를 실전에 투입하면서 많은 고민을 얻었다. 미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1:10의 교전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과가 불리하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결과가 기계적 성능 때문이 아니라 조종사의 능력과 수세적인 교전 태세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어쨌든 결과가 그렇다는 것은 보다 뛰어난 새로운 전투기에 대한 소요를 제기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핵심은 속도였다. 제2차 대전 후, 제트기는 프로펠러 전투기로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속도를 자랑하며 하늘의 주역이 되었다. 아직까지 눈으로 상대를 보며 싸우는 독파이팅(Dog Fighting)이 대세였던 시절이라 빠른 속도는 승리의 해법이었다. 남보다 빠르기 위해 세계 각국은 경쟁에 돌입하였고 그 결과 1954년 F-100이 실전 배치되면서 초음속 시대로 진입하였다. 제2세대 전투기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소련도 이런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았다. 곧바로 MiG-19로 대응시킴과 동시에 이미 1950년대 초부터 마하 2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최신예 전투기 개발에도 나서던 중이었다. 소련은 실전 결과를 토대로 신예기는 속도, 상승력, 기동력이 좋고 야전에서 정비가 용이하여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체는 최대한 작게 만들어야 하되 엔진은 강력해야 했다.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개발
그런데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대신 희생하여야 할 부분도 많았다. 무장, 연료, 항전 장비를 충분히 탑재할 공간 확보가 어려웠고 항속거리나 작전반경도 작아졌다. 하지만 적기를 요격하는 것이 최우선 임무였던 소련 공군에게 이런 제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흔히 많이 간과하는 사실인데, Su-27 등장 이전까지 전통적으로 소련 전투기의 주 임무는 공격이나 공대공 전투보다 주로 방어 임무인 요격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목표는 소련 본토를 위협하는 미국의 엄청난 폭격기 전력이었다. 특히 제트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B-47, B-52, B-58 같은 미국의 고속 폭격기는 커다란 고민거리였다. 따라서 이들보다 빠르면서 고속으로 빨리 치고 올라가 신속히 요격할 수 있는 요격기가 필요하였던 것이었고, 그러한 목적으로 새로운 전투기의 요건이 결정된 것이었다. 그렇게 개발된 실험기인 Ye-2가 1955년 2월 시험 비행에 성공하였다.
속도가 우선시 되었던 당시에 유행하던 흐름 중 하나가 델타윙(Delta Wing)이었다. 안정성이 떨어지지만 마하 2이상의 고속비행에 적합하다 보니 이 시기에 제작된 미국의 F-102, F-106, 프랑스의 미라지(Mirage), 스웨덴의 드라켄(Draken)이 델타윙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소련의 연구진은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수평 미익이 부착된 테일드 델타(Tailed Delta) 방식을 선택하였고 1959년 MiG-21이라는 이름으로 실전 배치하였다.
소련의 신예기 개발사를 보면 TsAGi(중앙 유체 역학 연구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의 연구를 토대로 각 설계국이 실제 제작에 나서는데, 그렇다 보니 MiG-29와 Su-27처럼 설계국이 상이해도 비슷한 모양의 전투기들이 나타난다. MiG-21도 그러하였는데 같은 시기에 비슷한 목적을 위해 제작된 대형기인 Su-9와 외형이 비슷하다. 하지만 MiG-21의 슈퍼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Su-9는 소련만 사용하였다.
생각보다 훌륭했던 결과
이렇게 탄생한 MiG-21은 소련은 물론 동구권과 친소 국가에 대량 공급되기 시작하였다. 덕분에 실전에도 곧바로 투입되었는데, 이후 MiG-21은 소련이 제작한 제트전투기로 가장 많이 실전에 활약한 기록도 남겼다. 인도-파키스탄 전쟁, 중동전쟁, 이란-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에 약방의 감초처럼 반드시 등장하였다. 그 중에서도 MiG-21의 명성을 가장 많이 날린 전역은 베트남전이었다.
도입 당시 기준으로 MiG-21이 소련 최고의 전투기였지만 미국이 동 시대에 등장시킨 여러 전투기에 비해 열세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베트남의 하늘에서 당대 최강의 F-4를 상대로 MiG-21이 보여준 전과는 경이로웠다. 우세는 아니었지만 1:3 내외의 교전비는 자부심이 강한 미군에게 망신스러운 수준이었다. 물론 이런 결과가 기체 성능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전투 외적 요소에 기인한 바 크지만 어쨌든 미국에게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처럼 MiG-21은 근접전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고 최초 개발 목적대로 미국의 전략 폭격기인 B-52를 격추시키기도 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미국이 다목적 만능 전투기로 자부하던 F-4의 한계를 깨닫고 차세대기로 순수 제공목적기인 F-14와 F-15의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동 시대에 활약한 미라지 III와 더불어 MiG-21은 경량 전투기의 효용성을 확실히 입증하였고 이런 결과는 이후 F-16 개발에도 영향을 끼쳤다.
베스트셀러 초음속 제트전투기
이처럼 MiG-21이 상대를 압도하는 뛰어난 전과를 남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효과면에서 볼 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전쟁을 경제적인 성과를 측정하며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군비를 거시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당국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저렴한 가격 그리고 정비의 용이성에 더해서 생각보다 좋은 실전 결과로 말미암아 MiG-21은 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많이 생산되었다.
소련에서는 1985년까지 총 10,645대가 생산되었고 851기가 인도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라이센스 생산되었다. 여기에 더해 처음에는 면허 생산을 하려다 중소분쟁으로 인하여 일종의 데드카피가 되어 버린 중국의 J-7(수출명 F-7)도 약 2,400여기가 제작되었다. 그래서 정확히 몇 대가 생산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MiG-21은 역사상 최대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초음속 제트기가 되었다.
이처럼 생산량이 많고 파생형도 다양하다 보니 자체적으로 세대가 별도 구분될 정도인데, 최신 기술이 접목된 MiG-21bis 같은 후기형은 상당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현재도 주력기로 운용 중인 MiG-21은 탄생 당시에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전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 언급한 것처럼 어느 한 기종이 가장 많이 생산되어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적당히 좋았던 전투기였다.
제원(MiG-21bis 기준)
전장 15m / 전폭 7.154m / 전고 4.125m / 최대이륙중량 8,725kg / 최대속도 마하2.05 / 항속거리 1,210km / 작전고도 17,800m / 무장 23mm GSh-23 기관포 1문, K-13A AAM 2발 또는 R-60 AAM 2발 또는 500kg 폭탄 2발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