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건 폭증으로 격무에 시달리는 판사들이 늘면서 판사도 의무적으로 심리상담 등 정신과 진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법원 안팎에서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아직까지 판사의 정신질환증세로 판결이 문제가 된 사례가 수면위로 떠오른 적은 없다. 하지만 전국 법관수가 2,300명에 이르고, 법관의 평균 사건부담 건수가 한해 1,000건에 육박하면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 안팎에서는 장기적으로 법원이 예방차원에서 법관들이 정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도록 하는 등 체계적·조직적으로 이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판결이 국민들의 재산권과 생명권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원은 이런 증세를 보이는 판사들을 무조건 끌어안아 보호하기보다는 과감하게 재판업무에서 배제시켜 국민들을 오판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재정비돼야=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인류의 일정비율은 필연적으로 다 우울증·조울증 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며 “그렇다면 그런 아픔을 함께 공유하고 치유할 수 있게 해야지 그런 질환을 앓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관이 2,300여명에 육박한 만큼 앞으로 이 문제는 점차 증가할 것”이라며 “정신질환에 대해 사회가 좀더 개방적이 돼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예방차원에서 법원이 아프다고 하는 판사의 경우, 업무에서 잠시 빼 치료받을 수 있는 기관·시설을 법원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사법연수원의 법관연수에 정신질환에 대한 연수도 필요하다”며 “이런 연수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과 치료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확산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신부·정신과 의사도 심리상담=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매일 신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답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신부님은 수시로 스스로 심리상담을 받고, 또 정신질환자들과 매일 상담을 하는 정신과 의사들도 정기적으로 정신감정을 받는다고 들었다”며 “판사의 경우도 매일 사람들이 다투는 모습을 지켜보고 양당사자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혼란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에 신부님이나 정신과 의사와 유사한 업무를 한다고 볼 수 있는 만큼 판사도 정기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거나 정신상담을 받아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판사가 정신장해 있는 경우 조치는?= 현재 판사가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의 정신장해를 앓고 있다면 법원은 어떤 조치를 내릴 수 있을까? 현행 헌법 제106조는 탄핵·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없이 법관을 파면할 수 없도록 하고, 징계처분 없이 정직·감봉 또는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관은 강력한 신분을 보장받고 있다. 그렇다면 정신장해를 앓는 법관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법원조직법 제45조의2는 법관이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해로 인해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법원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임기가 만료된 판사의 연임발령을 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47조는 법관이 ‘중대한 심신상의 장해’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 대법원장이 퇴직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지껏 이런 이유로 법원이 퇴직명령을 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결국 판사가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있더라도 한번 임용되면 10년 동안 강력한 신분상의 보장을 받게 되는 셈이다. 정신질환이 있는 재판장의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의 경우 법원의 조치가 없는 한 계속 그 재판장의 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제는 법원조직법 제47조의 ‘중대한 심신상의 장해’에 대해 명확한 해석지침이 필요한 때”라며 “법원조직이 급격히 커짐에 따라 앞으로 정신장해를 앓는 법관들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퇴직명령제도의 구체적인 절차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판사의 경우도 정기적인 정신감정을 통해 이 같은 문제를 미리미리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정비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법관 신분보장은 국민을 위한 것=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관이 헌법상 엄격한 신분보장을 받는 것은 권위주의시대에 외압으로부터,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대해 독립을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러나 인사고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정신감정을 주저한다는 것은 판사 개인의 안위를 위한 것이지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는 헌법상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관의 신분보장은 재판받는 당사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 판사가 어떤 상황에서도 신분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법률신문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