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피간( James Fegan)과 챨스 다윈( Charles Darwin)
지난 한 두달 동안 “주요 100명의 형제들”( 100 Chief men among Brethren) 이라는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1859-1862년간의 아일랜드-영국의 대부흥 기간이었습니다. 지금부터 150년 전인 그 시점에 전도집회가 열리면 1만명 이상이 참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거듭나는 역사가 수두룩했습니다.
영국 성공회와 카톨릭이 떨던 시절이요, 많은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침례교인들이 크게 전도의 열정을 불태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챨스 스펄젼이 명성을 날리던 때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그가 전도하던 집회에는 만명이상 모이던 때도 많았고, 서레이 가든 음악당 ( 만명 이상 들어가는 초대형 음악당)에서 누군가가 불이야 하는 바람에 여러명이 압사당하는 사고가 나던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스코틀랜드의 막강했던 장로교가 이때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장로교가 무수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정통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진정한 교회들로 변화되든지 참 교회들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한국의 현실에 좋은 경험사례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책에 나오는 형제들 중에는 많이 알려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에 매우 흥미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흔히 자비의 사역으로는 고아들의 아버지요, 응답받는 기도로 유명한 죠지 뮐러를 많이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알려지지 않았어도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제임스 피간이었는데 그는 1852년에 태어나 1925년까지 살았습니다. 그의 부모는 존 넬슨 다비 형제가 전도여행으로 사우스탬프튼을 방문할 때는 그들의 집에 머물도록 하며 그와 교제하였습니다.
제임스 피간은 런던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17세에 상업 브로커 회사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상업 무역회사에서 일하면서 얼마 안되어 자신의 영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로마서 3장 21-13절을 읽던 중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라는 말에서 모든에 자기가 포함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거듭나자 마자 3일만에 자기 개인의 전도지를 구입했습니다. 아마 전도지 묶음을 산다음 거기에 자기 연락처를 적어두는 것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전도의 사역을 했는데 그는 장소가 없었으므로 주로 공원이나 야외 들판 어디든지 전도하는 Open-Air Ministry (옥외, 야외 선교)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앞에 수많은 그리스도인 복음 사역자들이 취했던 방식입니다. 좋은 건물들은 카톨릭과 성공회 장로교 등이 장악하고 있었고, 복음 전도자들은 극장을 빌려서나, 공회당, 식당들을 빌려서 전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피간은 전도하던중 젊은 청소년들이 방황하는 것을 목격하고 한명의 불우소년을 돌보는 소년의 집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나이 20세이던 1872년이었습니다. 그는 철도역에 수많은 소년들이 철도차량에 들어가 잠을 자는 것을 알고 그곳에 찾아가 그들을 데려다가 재워주고 보호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소년들은 낮에는 술먹고 논다음 철도차량에 들어가 천막천으로 덮은 다음 떨며 잠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소년들을 데려다가 보호해주며 전도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그 부근 지역의 불량 소년들을 데려다가 선도하는 일이 그이 일이었습니다. 그는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 청소년들을 돌보았으며 다음날은 설교를 위해 준비해야 했습니다.
2년후 그 사업은 급격히 성장하여 그는 그 일에 전념해야 할 필요를 깨닫고 회사를 그만두고 소년의 집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소년들을 캐나다로 보내어 토론토 부근의 농장들에 보내어 그곳에서 취업하여 농사짓고 살게하기도 하였으며 많은 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그의 자비사역은 날마다 신장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일화가 있으나 그 중의 하나는 런던 서북쪽의 스토니 스트라트포드 ( Stony Stratford) 라는 곳에 세워진 귀족학교를 매입한 사건이었습니다. 어느 단체가 귀족들과 부유층을 상대로 학교를 4만 파운드( 현재가치로 약 400억원으로 추산)을 들여 지었는데 들어올 학생들이 충분치 않아 결국 포기하고 그것을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피간은 그 학교를 매입하는데 4500파운드를 써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하여 그 학교를 사들인다음 고아원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그가 28세이던 1880년 여름 그는 그의 소년들을 데리고 휴가 캠핑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런던 동남쪽의 다운이라는 곳에 살며 부근에 캠핑을 하고 오는 길에 그 옆에 가까이 있는 챨스 다윈의 집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집앞에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다윈이 나와서 친절하게 맞으며 동정심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소년들에게 각각 6펜스씩 주었습니다. 그 돈은 아마 오늘날의 가치로는 3만원쯤 되어 보입니다.
소년들이 떠나면서 기분 좋게 야호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피간은 그 부근에서 텐트를 치고 텐트에서 예배와 설교를 가졌습니다. 그는 다윈에게 다시 그의 독서실을 빌려줄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독서실은 마을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별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원래는 옛 학교 건물로서 다윈은 그 건물을 에이버리 경으로부터 1년에 10파운드 씩 주고 세내고 있었습니다. 다윈은 기꺼이 그의 청을 들어 주며 사용하도록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피간은 다시 다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건물을 예배에 사용해도 되는지와, 주중에도 좀 사용할 수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다윈은 다음과 같이 서면으로 대답해주었습니다.
“피간씨
당신은 그 독서실을 사용하기 위하여 그 허락을 받기 위해 저에게 편지를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정당한 사용권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수년동안 시도했던 모든 노력으로서 보다 훨씬 많은 수확을 불과 몇 개월만에 거두셨습니다. 우리는 술주정뱅이들을 회복시킬 수 없어왔는데, 당신의 노력으로 이제는 우리 마을에 술주정뱅이가 하나라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 독서실을 당신에게 완전히 넘겨드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아마 우리가 몇 밤 정도는 특별한 행사를 위해서 그 독서실을 좀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는 당신께서 저희로 하여금 잠시 사용하도록 허락하시기에 충분히 친절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신실한, 챨스 다윈.”
그 독서실은 복음의 집으로 불리우게 되었으며 50년이 지난 1930년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피간은 나중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나와 함께 열렸던 예배에는 다윈의 가족들이 수시로 참석하였고 그 집의 구성원들이 정규적으로 참석하였습니다. 제가 다운 마을에 들렀을 때에는 다윈의 가족들이 집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다윈씨 가족들의 식사시각을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그 집에서 섬기는 사람들(주택 관리인 포함)의 특징이었습니다. 예배에서 다윈씨 가족들의 술관리인 파슬로씨와 가정관리인 세일즈 씨, 그외 다른 여러 사람들이 거듭났고 하나님을 향해 회심하였으며, 교회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엠마 다윈이 쓴 가족 편지들의 1세기에는 “ 피간씨 만세! 늙은 엠씨는 악명높은 술주정뱅이 였는데 피간씨로 말미암아 1881년 회심하였다!”
이글을 읽을 때 잠언 말씀이 생각나시겠습니까? “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의("그분의" 번역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잠언 16:7절
지면과 시간으로 말미암아 피간의 수많은 사역의 일들은 더 이상 언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캠핑가기, 토론토 보급 주택 ( 아마 소년 노동자들이 영국에서 와서 취업하기까지 머물며 준비할 수 있던 곳), 피간 과수원, 캐나다 가정 농장라인 등인데 그 모든 기관들은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피간은 불굴의 일꾼이요, 단호한 의지의 사람이었으나 한편으로그는 동정심과 사랑에 찬 친절로 가득찬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수천 수만의 청소년들을 선도하였으며 그들에게 상담자가 되고 전도사역자가 되었으며 취업 알선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전기를 읽다가 느낀 것은 피간도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다윈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반기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가 내세운 진화론은 수많은 영혼들을 그릇 인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인품은 우리가 단정하는 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쓴 종의 기원이 어떤 의도였는지는 더 정확히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그의 친절함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피간의 사역에서 느끼는 것은 그가 겨우 17세부터 전도의 사역을 시작했다는 것이며 그것도 거듭난지 3일만에 자신의 전도지를 만들어서 전도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교를 가야 하고 거듭난지 3년은 지나야 전도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들을 무색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그는 겨우 신입사원 정도의 수입으로 소년의 집을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취한 야외 설교, 야외집회 방식도 참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일을 시작하는 방법으로 흥미있는 방식이었습니다.
제임스 피간, 그는 소년들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많은 연민과 동정을 느꼈던 사랑에 찬 친절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윈이 임종시에 회심하였다는 주장은 호프 부인에 의해 제기 되엇습니다. 그러나 다윈의 부인과 딸, 등 가족들은 그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윈이 죽기 전해인 1881년 8월경 호프부인은 여러 차례 방문한 것으로 보이며, 그때 다윈은 그녀의 방문을 반대하지도 않았고 복음을 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는지 여부는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다윈의 친 기독교적 행동을 증언하는 사람이 호프 부인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첫댓글 다윈의 아내나 딸이나 가족들 중에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증언을 다르게 하였을 것입니다.
피간이 거듭난 지 3일만에 개인 전도지로 전도를 시작한 것은 대단한 일로 보입니다..아마도 그 시절에는 성령의 바람이 아주 세차게 불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이런 글을 읽으면 제 자신이 요즘 전도에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됩니다..세상 사람들 속에 살면서 그들과 동화되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기회를 얻어 전도를 할 때도 듣는 사람의 마음이 굳게 닫혀 있음을 봅니다..전반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음을 느낍니다..차라리 성당 나가겠다는 사람도 더러 보았습니다.
고헌님 말씀에 많은 공감을 합니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복음을 증거 하면 되려 시끄럽다고 심지어 경찰에 신고 하는 사례까지 있습니다. 특히 지하철에서는 장사하는것은 사람들이 조용한데 복음 전하면 욕합니다. 그렇게 해서 주 하나님께 영광이 될지 모르지만 차라리 개인전도(구령)하는것이 더 나을것 같습니다. 공원이나 전철역 시장등등 일대일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피간의 복음사역 시대와 환경의 차이는 엄청난속도로 변화 됬다고 봅니다.
한 혼을 구원하기가 이렇게 힘든데 주 하나님 보시기엔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습니다. 때론 조롱도 당하고 야유도 당하지만 그런것은 괴념치 않은데 그들이 귀를 막고 있다는게 가슴아픔
현실이니까요. 그래도 복음을 전하는 일은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일이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거리 전도나 지하철 전도나 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저는 1:1 전도 방법을 좋아합니다..저는 친구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질문을 마음껏 하게 합니다..그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해 주는 방법입니다..고등학교를 미션 스쿨 나온 친구들도 예수님에 대해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죄와 회개를 이야기해 줍니다..좀 어중간한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에 대해 이야기 해 줍니다..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많은 이들에게는 그 지식이 마음으로 내려오게 도와 줍니다..좀 피곤한 일은 저에게 전도하려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입니다..일종의 아이러니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전도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이들은 파수대를 가지고 다니며 대인접촉을 많이 합니다..이단 치고는 양호한 이단으로 생각합니다..이들의 특징은 대화를 하다가 감정이 잘 틀어진다는 것입니다..일말의 피해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여증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그들과 이야기해 보면 자기지식보다는 회관에서 배운 대로 적용하는 경향이 많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그들만의 공통된 견해가 있다는 것이지요..저는 저의 전도 결과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일단은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예수님과 성경말씀을 소개합니다..결국 그들의 신앙과 삶은 그들 스스로 책임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도를 많이 해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글들은 힘이 있어 다른 사람들과 구분됩니다. 전도과정에서 나오는 수많은 반박들에 대하여 싸우고 답변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말이나 글에 힘이 들어 있고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는 설교자들이 어떤 구절들을 갖고 설교할 때 그 구절로 카톨릭과 다투어 본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 설교중에 카톨릭이 흔히 반론하는 것과 그에 대한 반박설명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와 그렇지않은 경우를 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에게도 유익하지만 전도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축복이 됩니다.
지하철 전도같은 경우는 마태 12장 19절에서 그가 다투지도, 외치지도, 거리들에서 그의 음성을 누가 듣지도 못하였다는 말씀과 반대된다고 믿어집니다. 이것은 놀라운 전도방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반대로, 병든자를 치유하며, 문둥병을 깨끗하게 하며, 죽은 자를 일으키고, 귀신을 쫓아내며 천국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0:8) 이것은 오늘날 신학교 세우고, 다니고, 안수받아 교회세우고 전도하라는 방법과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