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석이 모든 행동에 위엄을 내며 양반의 기습을 본뜨거늘, 가라사대 "대인의 공부를 닦는 자는 항상 공근(恭謹)하고 온화(溫和)한 기운을 기를 지니, 이 뒤로는 그런 기습을 빼어버리라. 망하는 기운이 따라 드느니라." (대순전경 p319)
@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참는 덕이 크고, 용서하는 덕이 큰 것이니라." 하루는 훼도자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제자가 분노해 마지 않거늘, 증산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너는 그 사람에게 분노할 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불쌍히 여기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134)
@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먼저 알고 먼저 깨친 사람이 훼방을 많이 받나니, 천하사를 하는 과정에서 비방과 조소를 많이 받는 사람이 천지공정에 있어서 상등의 공을 세울 것이니라." 제자가 여쭙기를 "사람이 죄를 범하는데 있어서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이어지면 어떻게 하오리까."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용서하는 데 힘쓰거라. 과실은 그 사람에게 있을 지라도, 용서하는 덕은 너에게 있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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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활에서의 진리의 모습은 깨침에 걸맞는 예의와 범절로 나타납니다. 진리를 깨쳐 믿음이 깊어 진리적 인간이 될수록, 진리적 인간은 도덕적 인간이 되어, 언행이 한없이 겸손하고 공근하고 온화한 것입니다. 말을 보면 그 사람이 깨쳐 행하는 진리와 도덕의 됨됨이를 알 수 있고,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따르는 진리와 도덕의 진면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진리와 도덕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진리를 증명하는 도덕이요 도덕을 뒷받침하는 진리이기에, 진리적 인간은 도덕적 인간일 수 밖에 없고 도덕적 인간은 진리적 인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일상생활 속의 언행은 진리와 도덕의 나타냄이자 발자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