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나무 심은 뜻은? 창세기21:22~34
아브라함이 늘그막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이삭이다. 이삭에겐 이스마엘 이라는 배다른 형이 있었다. 젖 뗄 무렵 잔치를 했는데 잔치자리에서 분란이 일어나고 결국 이스마엘과 하갈은 가정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목축에 소중한 샘물을 빼앗겨 생업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그런데 우물을 빼앗은 왕과 장관이 와서 항복하고 자기의 후손을 선대해 달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우물을 돌려받고 피차 앞으로는 평화롭게 지내기로 합의하여 언약을 맺었다. 이일이 지난 후에 아브라함은 에셀나무 한 그루를 우물 옆에 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한 것이 오늘의 성경 말씀이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고 더 깊은 신앙을 가지시기 바란다.
아브라함이 드린 예배는 에셀나무를 심고 드린 예배이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기념으로 나무를 심은 것은 이곳 밖에 없다. 나무 심은 것이 중요하니까 성경에 기록했다. 나무를 심으면 심은 뜻이 있다. 송강 정철의 한시에 ‘벽오동 심은 뜻은?’ 이 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자더니/ 내가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만 한줄기 밝은 달이 빈 가지에 걸려 있네.’ 남성 듀엣이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벽오동을 심은 이유는 봉황을 보기 위한 것이다. 벽오동은 봉황이 깃드는 나무이다. 봉황은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는 전설속의 새이다. 봉황은 왕을 상징하고 선비들이 벽오동을 심는 것은 임금이 자신을 불러 주기를 기다리면서 서원 뜰에 심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왜 에셀나무를 심었을까?
첫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기념식수인 셈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기념식수를 했다. 두고두고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함께 해 주시고 원수 까지도 굴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에셀나무를 심었다. 잃어버린 우물, 빼앗긴 우물을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나무를 심었다.
에셀나무는 위성류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기 어렵다. 이 나무가 가나안과 사막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시골로 가면 흔히 몇백년 된 느티나무를 볼 수 있는데 느티나무의 한자어가 괴목이고 보통 신목이라 한다. 아브라함 때에는 에셀나무가 신목이었다. 거대하게 자라고 사막에서도 죽지 않는 나무다. 뿌리가 땅속 30m나 내려간다. 그래서 땅 밑의 물로 살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나무라 생각했다.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영원히 기리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 가정이 어렵고 힘들 때는 울고불고 하나님께 매달리지만 응답받고 며칠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시골 살던 사람이 서울 와서 잘 살게 되었다. 시골스런 것을 너무 좋아하여 새벽마다 닭 우는 소리 들으려고 장닭 한 마리를 사서 베란다에 두었다. 먹이통, 물통은 자동에다가 최고급 침실도 만들었다. 새벽이 되자 구슬픈 소리로 꼬끼요 하고 목청을 뽑아댔다. 이틀 울고 나더니 닭이 울지를 않아서 원래 주인에게 가져갔다. 닭 주인이 모이, 물, 잠자리를 물어 보더니, “그렇게 잘해 주는데 뭐가 아쉬워 울겠습니까?” 했다. 사람이 아쉬워야 하나님께 매달리고 울고불고 기도하고 응답도 받고 간증거리도 생긴다. 모든 것이 유족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충만할 때이니 더 감사해야 한다.
둘째, 아브라함은 에셀나무를 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했다, 감사했다, 기도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곳은 가나안의 최남단으로 시나이 반도이다. 남으로 가면 시나이 광야이고 동으로 가면 아라비아 반도이다. 브엘세바는 사막지역이다. 산에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자라지 않고 광야에서는 농사가 되지 않는다. 오직 브엘세바 샘물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 샘물이 없으면 생존 할 수 없다. 그 샘물을 빼앗겼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예배는 삭막한 광야, 척박한 땅에서 드린 예배이다. 환경을 보거나 조건을 본 예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 예배이다. ‘제2차세게대전’을 집필한 코넬리어스 라이언은 5년간 치명적인 질병, 죽을 병마와 싸웠다. 그 투병 중에도 매일 평화로운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로 하나님을 불렀다.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한결같은 목소리로 기도했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날 한날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루는 아내가 무엇이 그리 감사하냐고 물어 보았다. ‘새날을 맞는 기쁨이 5가지 있어요. 1, 사랑하는 당신을 볼 수 있으니 기쁘고 2, 가족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니 감사하고 3, 병들어 눕기 전에 원고 다 쓴 것 감사하고 4. 병마와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5,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주님이 지금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신다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 광야에서 하나님을 불렀던 것처럼, 초기 미국의 감사예배도 눈물어린 감사예배였다. 사랑하는 남편 아내 자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흉년이 들어 너무 고통스러울 때, 누가 “우리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립시다.” 해서 눈물로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그 후에 하나님이 풍성한 복을 주셨다.
셋째, 아브라함은 에셀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고 하나님은 영원하신 존재이다.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었을 때, 그 나이 적어도 117세 쯤 되었을 것이다.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가기 직전이니까. 여하튼 아브라함이 생각하기에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 것인가? 내일 죽어도 여한은 없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시한부 인생이 되는 것 아닌가?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 스피노자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은 것은, 자신은 죽더라도 그 아들과 손자가, 대대손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려는 간절한 소망의 표현이다. 에셀나무를 심은 것은 후손들이 믿음의 길을 따르라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외에는 축복의 길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어느 박수무당이 굿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전도사님이 “자식 망할 짓 그만하고 예수 믿으시오.” 했다. 화가 난 박수무당이 “너나 천당인가 만당인지 가라.” 분이 나서 굿판을 걷어 치웠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고 “자식 망할 짓 그만하고 예수 믿으시오.” 하는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다음날부터 밥이 맛이 없고 잠도 잘 수 없었다. 밤새 뒤척이는데 멀리서 교회 새벽종 소리기 들려왔다. 땡, 땡, 땡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교회로 갔고 이렇게 예수 믿고 온 가족이 구원을 얻었으나 집안은 여전히 가난하여 아들은 머슴살이를 했다.
그 머슴살이 하던 아이가 선교사 눈에 띄어 공부를 하고 선교사 도움으로 미국 유학가고 박사 되어 돌아왔다. 연세대학교 교수가 되고 나중에 총장이 되었다 그 머슴이 백낙준 박사이다. 문교부 장관, 국회의장도 지냈다. 예수 바로 믿는 것이 자식이 살길이다. 우리는 모두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눈물 뿌려 기도했다. 링컨의 어머니는 어린 링컨에게 성경을 읽어줬다. 백낙준의 아버지는 무당 때려 치고 예수 제대로 믿었다. 아브라함은 에셀나무를 심고 그 아들에게 신앙을 물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