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갈 수 없는데….
신종플루가 사람들의 활동을 주춤하게 만들고 있다. 수능을 보는 학생들도 신종플루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1년에 네 번씩 소록도를 방문하여 섬긴지 15년이다. 그런데 올해는 신종플루 덕분에 3번밖에 방문을 못했다. 그것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길이 열렸기에 갈 수 있었다. 평균 연령이 73세 정도 되는 어르신들은 구부러진 손가락이 펴지지 않기에 무엇 하나 제대로 잡고 어떤 일을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때로는 포기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설프게 일을 해 놓고 사용하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외부에서 누군가 찾아와 도움을 주면 정말 감사해 하고 기뻐하신다. 그런데 신종플루가 외부 봉사자까지 막아버리니 답답할 수밖에…….
어르신들 개인적으로는 외부 봉사자가 들어와 도움을 주기를 바라지만, 병원과 교회, 성당에서 신종플루 예방 차원에서 외부 봉사자를 받지 말라고 하니 순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부 어르신들은 걱정을 많이 하신다. 가뜩이나 외로운 사람들인데 신종플루 때문에 외부 봉사자 발길이 끊겨서 지금까지 이어오던 인연들이 멀어지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한다.
우리 자오 나눔이 섬기고 있는 소록도 구북리에서 이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구북리에 있는 북성교회에 성탄트리를 설치해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신종플루 때문에 교회를 통한 방문은 어렵단다. 그래서 개인적인 방문으로 일정을 잡아 놓고 교회에 성탄 트리를 해 드리기로 했다. 더불어 마을에 설치해 드린 냉온정수기 13대에 필터도 교환해 드리길 했다. 방문할 수 있는 인원은 5명으로 정해 놨다. 공지를 올리고 소록도 방문자를 모집했지만 여러 가지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지 마감 날짜는 다 되어 가는데 신청자가 없다.
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는데 봉사할 사람을 보내 주지 않겠느냐는 믿음으로 준비를 했다. 우선 나눔 사역이라면 언제나 함께 하실 수 있는 맥집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교회 종탑에서 진입로까지 성탄전등을 설치하려면 예산이 얼마나 들것인가를 상의했다. 기존에 있는 것을 사용하더라도 전선과 줄과 전등 등을 추가해야 하는데 필요한 견적이 나왔다. 예배당 안에 트리 2개와 교육관에 트리 1개를 추기로 설치해 드리기로 했다. 급한 재료비만 해도 50여만 원의 견적이 나왔다. 그런데 준비된 예산은 없다. 기도만 드린다. 출발하기 하루 전날 집사님께서 문자를 보내셨다. 필요한 금액을 입금시키셨단다. 이럴 때 여호와이레를 체험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와 맥집사님, 정수기 필터를 교환하기 위해선 낮음으로님이 동참을 하기로 했고, 소록도 사랑이 날로 커져가는 민들레님이 동참하기로 했다.
2.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소록도를 향해 출발은 밤에 하기로 했다. 그러나 4명의 용사는 자오 쉼터로 아침부터 모였다. 소록도에 다녀오면 맥집사님이 다른 일을 가야하기에 장애인들이 살아갈 방에 난방 공사를 하기 위해서다. 소록도 출발하기 전까지 공사를 마무리해야 하기에 분주하다. 단단한 스치로폼을 깔고 그 위에 전기 필름을 깔고, 다시 그 위에 얇은 베니어판을 깔고, 그 위에 장판을 깔아야 한다. 그것도 부족해 방 한 개에는 도배까지 해야 한다. 방에 있는 짐을 밖으로 꺼내고 일을 해야 하니 장난이 아니다. 내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맥집사님을 도와 드리면 훨씬 일이 쉬울 텐데 도움이 되지 못하니 마음이 아프다. 운전을 할 수 있느니 겨우 필요한 자재들을 사러 다니는 역할만 감당한다. 민들레님과 낮음으로님은 주방에 딸린 방에 난방 공사를 할 수 있도록 부엌살림을 밖으로 꺼내고 정리하고 있다. 장난이 아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일이 저녁 늦게야 어느 정도 끝난 듯하다. 어느 장애인이 들어와 살게 되지는 모르겠지만 신혼 방처럼 새로 단장해 놓은 방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저녁을 먹고 나서 차에 짐을 싣는다. 소록도에 가져갈 짐들이다. 새벽에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소록대교가 놓인 덕분에 한밤중에도 들어 갈 수 있으니 11시쯤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자정이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3. 소록도 사슴들이….
운전석에 앉아서 찬양 시디를 켠다. 찬양을 부르며 소록도를 향하여 고고~~ 도로 사정이 참으로 많이 좋아졌다. 찬양을 들으며 담소를 나누고 가던 일행들이 조용해진다. 피로와 졸음이 엄습해 왔기 때문이리라. 조수석에 앉은 맥집사님이 졸면서도 가끔씩 말을 건넨다. 소록도까지 거리를 내비게이션은 440km라고 표시를 하고 있다. 1100리 길이다. 왕복 2200리 길을 다녀와야 하는 우리들은 분명 뭔가 다른 사람들이다. 왜냐면 그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녀와야 하는 길임에도 오히려 설레는 마음으로 가고 있으니 말이다. 휴게소 두 곳을 들리고 바로 소록도로 달려간다. 소록도 구북리 이장이신 이 집사님이 마중을 나오기로 되어 있는데 약속시간까지 충분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고흥반도로 들어섰다. 누렇게 익어 있을 유자를 구경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녹동항을 저만치 앞에 두고 우회전으로 들어간다. 소록대교를 통과해야만 소록도에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캄캄한 밤길을 달리는데 저만치 길에 커다란 뭔가가 있다. 사슴이 누워 있다. 아니 죽어 있다. 소록도 사슴이 소록대교가 생기면서 육지로 나왔고, 길을 건너다 지나는 차에 치여서 죽어있는 것 같다. 마음이 짠해진다. 계속 달리는데 도로 한가운데 커다란 짐승이 서 있다. 소록도 사슴이다. 불빛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천천히 도로를 건넌다. 저렇게 하다가 아까 그 녀석은 세상을 달리했는가 보다.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소록도의 출입이 훨씬 편해졌다고는 하나 소록도만이 간작해야할 소중한 것들이 훼손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객으로 들어오다 보니 환경오염이 심해졌고, 소록도의 상징인 흰 사슴과 꽃사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소록도에 도착하여 이 집사님과 조우를 했다. 천주교인들이 만들어 놓은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했다. 차를 돌려 녹동항으로 이동을 한다. 아침을 먹기 위해서다. 김밥천국에 들려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한다. 이제 구북리로 이동을 한다.
4. 비는 내리는데….
차에 싣고 내려간 짐을 내려놓고 예배당에서 잠시 기도를 한다. 힘들고 어렵게 왔지만 기쁘게 섬기고 보람을 가득안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시고,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소록도에 오게 한 하나님의 뜻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 가을빈지 겨울빈지 구분이 안 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오후에는 그칠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는데 아무래도 하루 종일 내릴 것 같다. 피곤하고 졸립다. 두 시간만 자고 일을 하기로 했다. 교육관에 보일러를 켜고 잠시 눈을 붙인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1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잠이 없는 민들레님이 트리 만들 자재들을 정리하고 있다. 곁에서 자고 있던 맥집사님도 눈을 뜨고 낮음으로님도 눈을 뜬다. 교육관부터 트리를 만든다. 미리 준비해간 플라스틱 나무와 여러 가지 액세서리를 펼쳐 놓는다. 맥집사님은 종탑과 나무에 설치할 전구들을 단단한 줄에 전선과 함께 묶어 가며 세트를 만들고 있다. 민들레님과 낮음으로님은 열심히 트리를 만들고 단장을 한다. 요즘 소록도에는 갑오징어와 문어가 잘 잡힌다고 한다. 낚시에 푹 빠져 있는 이장님 잠시 다녀오겠다더니 2시간 만에 갑오징어를 낚아 와서 건네주신다. 나와 이장님은 녹동으로 나가서 필요한 물건을 산다. 성탄 트리를 만드는데 필요한 자재들이다. 국거리용으로 돼지고기도 산다. 김치찌개를 해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서 마른 김 한 봉지도 샀다. 금방 한 따끈한 밥에 김치찌개 한 냄비, 마른 김 한 봉지, 이게 점심 메뉴다. 양념들이 없어서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싱겁다. 소금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선반 한쪽에 병이 보였다. 학인해 보니 소금이다. 소금을 넣고 나니 그나마 김치찌개가 먹을 만하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길가에 버리운다는 성경 말씀이 떠오르면서, 이 세상에서 소금 역할을 감당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깨닫게 된다.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