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神癒)와 의술(醫術)사이에서의 방황
1. 신유의 일반적 이해
(1) 신유의 의미
신유(神癒, divine healing)란,
하나님께서 병든 사람(영․혼․몸, 환경, 관계등)을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능력으로 고치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으로 말미암는 역사이다.
(2) 건강의 개념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육체적(Physical), 정신적(Mental) 및 사회적(Social) 온전(wholeness)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WHO).
한편 1982년 인도의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기독의사회(World Christian Medical Society)에서는 영적(Spiritual)인 분야를 더 추가하여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며 불구가 아닌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즉 건강이란 전인성(全人性)을 표현하는 것으로 조화를 이룬 상태를 의미한다. 지(知), 정(情), 의(意)가 조화를 이루고, 몸과 마음과 영이 조화를 이루고, 인간과 환경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상태가 각각 건강한 마음,
건강한 인간,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3) 질병의 개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질병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복합적 현상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질병의 원인은 하나님의 법과 자연의 법의 불순종으로부터 오는 죄에 기인한다(신 28:20-22; 대하 26:19; 막 2:5).
그리고 이 자연의 법은 하나님의 법의 범주에 속한다.
질병은 파괴적 요인들이 인간을 침범할 때, 예를 들면 마음에 탐욕․분노․질투 등이, 몸에 감염․중독․빈곤 등이, 사회에 무지․부도덕․부정 등이 침입하면 인간과 사회는 항상성(homeostasis)․통합(integration)․질서(order) 등이 붕괴되고 각양의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
로마서 8:22, 23절을 찾아보라. 이 말은 인간과 사회가 다 병들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도 바울의 탄식이다. 그러므로 포괄적인 의미에서 질병이란 신체적, 정신적, 영적 및 사회적 질서가 정상(조화)상태로부터의 이탈된 상태를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질병이란 자아와 인간(관계)와 환경과 하나님과 부조화(disharmony)를 이룬 상태이다.
2. 신유의 성경적 이해
(1) 구약에서의 신유
구약에서의 하나님은 치유하시고 그의 백성을 고쳐주시는 ‘야웨 라파’(출 15:26)이시다.
하나님과의 단절로 말미암아 영적인 죽음과 질병에서 인간을 치유해내시는 최초의 치유자는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의 형벌, 저주, 혹은 은총을 위한 시련으로써 나타난 구약의 질병은 반드시 속죄와 하나님의 은총으로서의 구원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치유는 사실상 구원과 그 의미에서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치료하신 예는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여자들이 태문이 열리지 않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치료하셔서 생산케 하였다(창 20:17).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려서 고생을 할 때 모세가 그를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역시 치료해주셨다(민 12:9-16).
히스기야의
병을 치료하시어 십오년의 생명을 더 연장시켰으며(사 38:1-6),
나아만의
문둥병을 엘리사를 통해 고치셨다(왕하 5:8-14).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원망하여 염병에 걸렸을 때 아론이 기도함으로 치료되었고(민 16:41-50),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엘리야를 통해 치료하심으로 다시 살리기도 하셨다(왕상 17:17-24).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진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고(왕하 13:20, 21),
욥의
악창이 치유되었다(욥 42:10).
이와 같은 구약의 치유 사건들을 볼 때 구약의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하나님이며
치유의 능력은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에서의 치유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용서하심이 나타나 있는 뚜렷한 구원의 징표였다.
(2) 예수님의 신유
예수님의 사역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만이 아닌 영혼과 몸을 포함하는 전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9장35절에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지상에서 세가지 주요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일을 하셨다.
즉 가르치셨고(taught),
설교를 하셨고(preached),
병자를 고치셨다(healed).
그러므로 가르치심과 설교와 치유(teaching, preaching, healing)를 예수 그리스도의 3대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행하신 치유사역은 바로 예수께서 메시야임을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치신 것은 바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거늘”(사 53:4)이라는 메시야적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다(마 8:16, 17).
또한 마태복음 9장6절에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실 때는 그의 죄사함의 권세를 증거하시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함이었다(요 11:4).
예수님께서는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치유하셨다.
만지심으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치료하셨고(마 8:14),
말씀으로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병자를 낫게 하셨으며(요 5:3-9),
안수와 말씀으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고(눅 7:11-17),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을 만짐으로 치유되었고(막 9:20-22),
벳세다에서 소경을 고치실 때는 침과 진흙을 사용하기도 하였다(막 8:22-26).
이러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예수님은 병자들의 다양한 질병을 고치셨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인간의 몸과 영을 깊은 교제를 맺게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메시야이심과 선지자이심을 알 수 있다. 말씀을 선포하심과 치유하심은 바로 구약의 선지자적 전통과 일치한다. 또한 예수님의 치유에 대한 동기는 인간에 대한 순전한 사랑으로서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그의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서의 신적인 증거의 일부로서 나타난다.
병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가장 호소력 있는 이유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셨다는 사실 때문이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셨기 때문에 우리도 병자를 위해서 치료의 사역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믿음과 행실의 모델이라면 예수님의 치료사역을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병자를 치료해주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이다(막 16:15-20).
(3) 초대교회의 신유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사도들도 치유의 이적을 일으켰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요 14:12).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어서 세상에 보내심으로(마 10:1; 눅 10:1, 9) 사도행전에는 초대 교회 사도들이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행 2:43). 특히 베드로와 바울이 중심이 되어 치유사역을 행하였다.
미문의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한 베드로의 치유사역은 주님의 능력을 나타낸 대표적인 증거이다(행 3:6, 7). 또한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들을 치유함으로써 주께로 남녀의 큰 무리가 나아오게 한 것은 성령의 치유능력에 의해 나타나는 교회성장의 전형적인 형태이다(행 5:14-16). 사도 바울은 그 자신이 아나니아의 기도에 의해 병 낫는 체험을 하였던 사람이다(행 9:15-19). 이런 체험을 가진 바울도 베드로처럼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 된 자를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행 14:10)하여 고쳐주었다.
초대교회의 치유사역은 예수의 치유사역을 이어받은 것이며, 그분의 대전도 명령-가서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치유하라는-을 실천에 옮기는 일이었다. 또한 초대교회는 치유의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증언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극적으로 증거하기도 했다.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서 능력으로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살아계심과 지금 그 자리에 임재하심을 증거하고 나타내신 것이다.
(4) 현대교회에서의 신유
교회사를 통해 면면히 지속되어온 신유의 역사는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주후 3세기경에 터툴리안(Tertullian), 오리겐(Origen), 클레멘트(Clement)등이 남긴 기록에서 신유에 관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영국을 크게 부흥시킨 요한 웨슬레의 사역에서도 신유가 나타났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세계 도처에서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심지어 죽은 사람들을 살리셨다는 많은 내용들이 책이나 간증문을 통해 세상에 소개되고 있다. 이처럼 병든 사람들을 기적적으로 치료해 주셨던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병고침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이다(히 13:8).
3. 치유에 대한 견해
(1) 모든 질병은 과학적인 치료 방법을 통해서만 치료되어야 한다는 견해.
(2) 모든 질병의 원인을 귀신들림에 두고 축사(귀신을 쫓아내는)의 방법을 통해서만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주장.
(3) 기도와 의학적인 치료방법은 서로 상치된다는 생각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치유(신유)는 기도를 통해서만 오는 것이고, 의학적인 치료는 세상적인 치료의 수단이므로 진실된 신앙을 가진 신자라면 환자를 의사에게 데려가거나 세상적인 약을 쓰지 말고 기도를 통해서만 병을 치료해야 된다는 입장.
4. 균형잡힌 치유관
우리는 먼저 모든 질병의 근본적 원인은 죄의 결과라는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질병의 원인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치유에 있어서 양극단을 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고치실 때에 기도하는 한 가지의 통로만을 통해서 고치시지 않고 그 외에도 그 발병의 원인에 따라서 약물치료, 의학적 수단, 축사, 상담, 목회등의 통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환자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기도(신앙)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