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토박이말을 살리고 빛내야 한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이대로
박근혜 정부 들어서 지난 45년 동안 한글로만 만들던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고 나서서 세상이 시끄럽다. 처음 교과서를 한글로 만든 것은 1886년에 조선 고종 때 우리나라 최초 신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교사로 온 미국인 헐버트 선생이 1889년에 만든 ‘사민필지’란 세계사회지리 교과서다. 그 뒤 주시경 선생이 말본이나 한글 배움책을 한글로 만든 일이 있으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일본에 강제로 나라를 빼앗겼다. 그리고 광복 뒤 미국 군정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글로 배움책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광복 뒤엔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나 이제 온 나라임자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글을 모르는 국민이 적는 나라가 되었고, 그 바탕에서 국민 지식수준이 높아져서 민주주의와 나라경제가 빨리 발전해서 외국인들이 한강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놀라고 있다. 그러나 기적이 아니다. 한글이라 배우고 쓰기 쉬운 과학글자, 민주글자, 경제글자 덕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은 쉽게 된 것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깨어있는 분들이 땀 흘려 우리 말글을 다듬고 가르치고 쓰게 했기 때문에 된 일이다. 일제 강점기 때엔 한글을 갈고 닦다가 일제 감옥에 끌려가서 목숨을 잃은 분도 있다.
그런데 이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깨어있는 분들이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우리말로 이름도 짓고 일본 학술용어를 토박이말로 바꾸거나 새로 만들어 쓰자는 “토박이말 도로 찾기 운동”을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은 드세게 반대해서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은 광복 뒤 힘들게 되찾아 교과서에 썼던 토박이말을 빼버리고 일본 한자말을 자꾸 늘렸다. 그리고 박정희 김종필 군사정권을 꾀어 한 때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게 했다. 그러나 그게 잘못된 것이어서 1970년부터 지금까지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고 아무 탈 없이 교육을 잘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한자병기를 주장하고 교과서에 일본 한자말을 자꾸 늘렸다. ‘말본’은 ‘문법’으로 그 말본에 ‘이름씨’란 말은 ‘명사’로 바꾸고, 자연 책에 나오는 ‘쑥돌’이란 말은 ‘화강암’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야금야금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고등학교 책에나 나오는 일본 한자말을 늘리고 이제 박근혜 정부를 꼬드겨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니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지금까지 일본 식민지 때 길든 일본 한자말을 계속 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이제 그 일본 한자말을 빼버리고 토박이말로 바꾸고 토박이말을 살리고 빛내야 한다.
우리 토박이말은 우리말 어머니요, 우리 겨레 얼이다.
광복 뒤에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하고 그런 배움책을 만들려 할 때부터 끈질기게 안 된다고 한 자들이 있다. 가장 모질게 가로막은 이는 서울대 국문과 이숭녕 교수와 고려대 총장 현승종과 일본 식민지 국민으로 태어나 식민지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일본 학술용어와 전문용어를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거나 만들어 쓰자고 하니 입에 거품을 물고 가로막았다. 현승종은 한글은 아녀자나 쓰는 천한 글자라면서 반대했다. 이들의 제자와 후손들은 계속 일본처럼 한자혼용, 한자병기 말글살이를 주장하고 있다.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우리 토박이말은 우리말 어머니요 우리 겨레 얼이다. 우리 토박이말이 살고 빛나야 우리 겨레도 살고 빛난다.
우리 배달겨레는 5000 해가 넘게 이 땅에 살아온 겨레하고 한다. 그러니 적어도 5000 해 앞에서부터 우리 겨레말을 가지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 배달겨레말 속에는 지난 5000해 동안 우리 한아비들의 삶과 얼과 앎과 발자취까지 들어있다. 우리 한아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았으며, 튼튼하게 살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풀벌레와도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 할지도 다 담겨있다. 그래서 우리 겨레말을 지키고 빛내는 일은 우리 겨레 얼과 삶을 지키고 빛내는 일이고 우리 한아비들의 뜻을 빛내는 일이며 우리가 우리답게 잘 사는 일이다.
우리 겨레말이 살고 빛날 때 우리 겨레가 살고 빛난다. 우리말이 시들고 죽게 되면 우리 겨레도 시들고 죽는다. 우리말이 아프면 우리 겨레도 아프고 죽게 된다. 우리 겨레말을 우습게 여기고 남의 말을 더 섬기면 얼빠진 겨레가 되고 그 겨레는 남에게 짓밟히고 종살이를 하게 된다. 그리고 겨레말이 사라지면 그 겨레도 사라진다. 우리 이웃 만주벌판에 살던 만주겨레가 그 꼴이다. 그러나 멀리 아라비아에 살던 유대겨레는 2000 해가 넘게 나라를 잃고 떠돌아 흩어져 살면서도 제 겨레말을 지켜서 다시 제 나라를 세웠다. 그 겨레말이 그 겨레에게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 겨레는 아주 옛날에도 우리말을 우습게 여기고 남의 말을 섬겼고 오늘날도 그렇다. 옛날에는 중국말, 오늘날엔 미국말을 더 떠받들고 있다. 우리가 만든 옷이나 집도 그 이름을 우리 말글로 지어 달면 헐값에 팔리고, 남의 말글로 그 이름을 지어 팔면 더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 그래서 제 나라말로 된 회사 이름이 멀쩡하게 있는 데도 영어로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짓고 있다. 그것도 돈이 많고 많이 배웠다는 이들과 나라를 이끄는 이들이 그 짓을 앞장서서 하고 있으니 나라꼴이 좋지 않다. 참으로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
이런 못된 버릇은 1500여 년 전 중국 글자가 이 땅에 들어와 판치고, 신라가 “거서간, 차차웅”이란 우리말로 된 임금이름을 ‘왕’이란 중국식 이름으로 바꾸고 중국의 말글을 섬긴 통일 신라 때부터 1000년이 넘게 이어온 못된 버릇이다. 왜놈들에게 이 나라를 빼앗겼을 때에 왜놈 말글을 배워서 왜놈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저만 잘 살던 무리들이 오늘날엔 미국 말글을 잘해서 저만 떵떵거리고 잘 살겠다고 설치고 있다. 모두 제 등만 따뜻하고 제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못된 마음보다. 그래서 우리 말글이 더 시들고 있으니 안타깝다.
나라임자들이 (민주)떳떳하게 살고 나라살림(경제)이 좋아 지려면 제 겨레 말글을 지키고 빛내는 일을 그 어떤 일보다 먼저 할 일이다. 그런데 제 겨레 말글은 헌신짝 보듯이 하고 남의 말글만 우리러 받드니 얼빠진 나라가 되고 나라가 흔들리고 겨레 앞날이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