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무엇이 문제인가?
초등교과서한자병기반대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이대로
교육부는 지난해 9월 24일 ‘2015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을 발표하면서, “한자 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중·고 학교 급별로 적정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 확대를 검토한다.”라고 밝혔다. 오늘날은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때처럼 한자를 많이 쓰거나 안 쓰면 안 되는 시대가 아니고 모든 출판물이 한글로 나오고 대학 논문도 한글로 쓰는 한글시대인데 이런 엉뚱한 발표를 해서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어 정부가 제 정신인가 의심하기도 한다.
그것도 교육부가 이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찬반 의견 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고, 일본식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일부 단체의 말만 듣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위탁해 한자 병기를 전제로 연구를 수행하도록 했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한글과 교육단체, 전국 교육감들과 교사들이 반대 뜻을 밝히고 항의하니 그때서야 한자병기 찬성자와 반대자 몇 사람을 모아놓고 전문가회의를 한다며 적정 한자 수를 몇 자로 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까?
사실 한자혼용이나 한자병기 말썽은 갑자기, 또 우연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한자혼용이나 병기는 일본 말글살이 방식인데 1945년 광복 뒤 미국 군정 때에 민족 자주세력이 교과서와 공문서를 한글로 쓴다고 할 때부터 일본 식민지 교육을 착실하게 받아 한자혼용 일본식 말글살이에 길든 이들이 지금까지 끈질기게 반대한 말썽이다. 광복 직후 이들은 지식인이라고 하지만 우리말과 한글보다 일본 말글을 더 잘 알고 그 말글살이가 쉽고 편리하니 한글전용을 하게 되면 학자나 정치인, 지식인으로 행세하기가 불편했다.
이들은 배우고 안 것이 한자혼용 일본 말글이니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로 생각하는 일본 국민과 다름없는 사람들이었다. 일본 식민지 통치자 양성소인 경성제국대학 출신인 서울대 국문과 조윤제, 이숭녕 교수와 일본 와세다대 출신인 고려대 현상윤 총장들이 앞장서서 반대했다. 이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 제자와 후손들이 대를 이어서 지난 70년 동안 얼마나 끈질기게 한글을 괴롭혔는지 살펴보자.
이들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하고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는 한글전용법(법률 제6호)을 제정하고 교과서를 한글로 만들 때에도 반대했다. 그리고 1963년 이 일본식 한자혼용 주장자들은 박정희, 김종필 군사혁명 정권이 한일회담을 강행하는 틈을 타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서 만들게 만든다. 그러나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쓴 책으로 교육을 하니 한자 공부도 제대로 안 되고 교과 과목 교육도 잘 안 되니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에 교과서뿐만 아니라 신문과 모든 출판물까지도 한글전용을 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한자는 중, 고등학교에서 따로 한문과목을 만들어 제대로 가르치기로 한다. 그렇게 1970년부터 한글로 된 교과서를 가지고 교육을 하니 광복 직후엔 문맹률이 80%였으나 온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어 문맹률이 없어지고 국민 수준이 높아졌다. 그 바탕에서 경제와 민주주의가 빨리 발전해서 세계인들이 한강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칭찬했다. 모두 훌륭한 한글 덕분이다.
그런데도 이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은 정치인 김종필을 등에 업고 김영삼 정부 때엔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란 소송을 내고 한자조기교육을 추진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니 김대중 정권 때 국무총리가 된 김종필은 일본인들이 한국에 오면 불편해 한다면서 도로표지판은 한자혼용, 공문서는 한자병기 정책 추진을 발표하고 강행하려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친일 정치인들은 일본으로 가라고 외치며 반대하니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매우 끈질기고 치밀했다. 광복 뒤에 일본 학술용어와 전문용어를 버리고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자는 “우리말 도로 찾아 쓰기 운동”을 방해하더니 어렵게 교과서에 조금 들어가 있는 토박이말을 일본 한자말로 바꾼다. 1963년에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쓰이던 “이름씨, 그림씨”같은 토박이말을 “명사, 형용사”로 “흰핏돌, 붉은핏돌, 쑥돌”같은 토박이말을 “백혈구, 적혈구, 화강암”같은 일본 한자말로 바꾸면서 계속 일본 한자말을 교과서에서 늘렸다.
그리고 요즘엔 고등학교 책에나 나오던 어려운 일본 수학용어까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넣고 초등학생들이 한자를 몰라서 교육하기 힘들다고 한자병기로 교과서를 만들고 한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아도 수학은 배우고 가르치기 힘들다고 하는데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같은 토박이말은 수학 책에서 사라지고 “가감승제, 함수, 분수”같은 한자말이 나오니 공부하기가 더 힘들게 된다.
한자혼용 주장자들은 우리말에 한자말이 70%나 되니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교육을 강화하면 공부에 도움이 되고 대학입시에도 유리하다고 선전하니 학부형들은 그 말이 옳은 줄 알고 저들이 시행하는 한자능력검정시험을 열심히 보고, 초등교과서 한자병기를 찬성한다는 서명을 한다. 그리고 저들은 그 서명 자료를 가지고 박근혜 정권 인수위에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을 추진하라.”고 압력을 넣어 1963년 박정희 정권이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어처구니없는 정책을 내놓게 한 것이다.
그럼 일본식 한자말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한글세상이 다 되었는데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고 한자교육을 강화해야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정책이 나온 것은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이 이 나라 지배세력인 정치인, 학자, 언론인으로서 일본 식민지 때부터 쓰던 교육, 행정용어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본 한자말을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거나 쉬운 말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어렵게 살려 쓰던 토박이말을 일본 한자말로 바꾸고 늘린 것이다. 그리고 한자말은 한자로 써야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언 듯 보기에 그럴 듯하다. 그럼 한자말 몇 가지만 살펴보자
수학 용어 “기하(幾何)”란 말에서 ‘幾’는 옥편에 “기미 기, 몇 기”자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何’는 “어찌 하, 멜 하”자다. 이 두 한자를 안다고 ‘기하“란 말뜻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經濟)“란 말도 그렇다. 옥편에 ’經‘은 ”지날 경, 날 경“이라고 풀이하고, ’濟‘는 ”건널 제, 많고 성할 제“라고 알려준다. ”경제(經濟)“란 한자말도 한자를 배웠다고 그 말뜻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이 그 깊은 학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가르쳐야 알 수 있다. 그 말이 우리말이 아니고 일본 한자말이라 더 공부하기 어렵다.
한자말이라도 한자로 쓰면 전혀 다른 말이 되는 말도 많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주시는 분이다. 그런데 한자로 ‘先生님’이라고 쓰면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엉뚱한 뜻이 된다. 또 선생님이 가르친 학생을 ‘제자’라고 한다. 그런데 한자로 ‘弟子’라고 쓰면 “아우의 아들”이 된다. 전혀 딴 뜻을 가진 말이 된다. 한자말은 한자로 쓰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또 우리말에 한자말이 70%나 되고 동음이의어가 많아서 한자를 혼용하거나 병기하고 한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서울대 이희승 교수가 감수한 국어대사전이나 그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한자말이 많지만 우리가 안 쓰는 일본 한자말이나 한자 이름까지 넣고 하는 소리다. 한글학회 우리말사전에는 한자말이 50%이고, 토박이말을 사랑하는 이들이 쓰는 글은 한자말이 30%도 안 된다. 또 동음이의어란 것이 모두 한자말이다.
한자말로 된 일본 학술용어를 그대로 쓸 것이 아니라 빨리 토박이말로 바꾸거나 쉬운 우리말로 만들어서 교육해야 이 문제가 풀리지 교과서 한자병기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한자말이나 외국말이라도 온 국민이 귀로 들어서 알 수 있는 말은 우리말이고 그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가 가장 좋다. 저들 주장대로라면 “버스, 라디오”같은 서양말에서 온 우리말도 영문을 병기해야 한다는 것인데 오히려 더 혼란스럽고 우리말만 지저분해진다.
우리 말글 독립을 방해하지 말라.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말글살이는 우리 겨레가 삼국시대부터 바라고 애쓴 1000년이 넘는 꿈이고, 우리 말글 독립이다. 1300여 년 신라 때 설총이 ‘이두’란 우리식 글쓰기를 만들어 쓰고,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 한글을 만든 것도 주시경 선생이 우리 말글을 살려 쓰자고 한 것도, 모두 우리 말글 독립을 이루려는 노력이었다. 이제 그 꿈이 이루어지려고 하는데 일본식 한자혼용과 병기로 되돌려서 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려고 하니 슬프고 가슴아프다.
1995년 대 미국의 이름난 과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두 가지 글자를 섞어서 쓰는 일본 말글살이가 가장 미개하고 불편한 말글살이이며 세계 으뜸 과학글자인 한글만 쓰는 북한이 가장 좋은 말글살이를 하는 나라라고 말한 일이 있다. 그리고 입말을 한글로 적는 언문일치 말글살이는 세계 흐름이고 우리 한글전용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지금은 대학논문도 한글로 쓰고, 모든 신문이 한글로 만든다.
그렇게 한글 교과서로 교육을 하면서 반세기만에 문맹자가 없는 나라가 되었고 국민수준이 높아져서 그 바탕에서 우리 자주문화가 꽃펴서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과학글자 한글 덕으로 우리가 한자를 쓰는 일본과 중국보다 빨리 정보통신이 발전해서 선진국 문턱까지 왔는데 한글보다 한자,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섬기는 이들이 국력을 한자와 영어 배우기에 써버리게 하는 바람에 더 앞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글자 ‘가나’는 한글처럼 훌륭한 글자가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불편하고 미개한 한자혼용 말글살이를 하는데 그게 좋은 줄 알고 따라서 하자는 것은 복 떠는 짓이다. 광복 70년이 지났는데도 일본 식민지 때 길든 일본 학술용어를 버리지 못하고 그 한자말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길들이려는 것은 어리석고 못난 짓이다. 초등 교과서에 한자병기하고 초등 한자교육 적정수를 정하면 한자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애들이 영어 조기교육과 시험 점수 따기에 뛰놀 시간이 없다.
한자공부는 초등 교과서에 병기해서 할 것이 아니라 중, 고교에서 한자 과목으로 따로 공부하고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언문일치 말글살이로 교육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오늘날은 쉬운 말, 제 겨레말을 그대로 제 글자로 적는 말글살이를 하는 언문일치 시대다. 영국도 쉬운 말하기 운동을 하고,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쉬운 영어 쓰기를 강조했다.
한글은 온 백성을 위한 민주글자요, 배우고 쓰기 쉬운 경제 글자요, 과학에 바탕을 두고 태어난 과학글자로서 민주, 과학, 경제 전쟁시대에 딱 좋은 글자다. 한글을 잘 이용하면 민주, 경제, 과학 강국이 바로 된다. 한글이 빛나면 우리 겨레와 나라가 빛난다.
[ 이 글은 우리교육 가을호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