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카페 게시글
고대 한민족 역사(조선시대 및 그 이전) 고구려가 나중의 몽골이 되었다 - 즉, 고구려와 몽골은 원래 같은 민족 - 김정민 박사
정론직필 추천 17 조회 6,693 14.11.28 07:21 댓글 32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4.11.28 14:24

    고려>겨레>케레이>까레이스키 (스키는 복수라고 합니다. 케레이 사람들) 다 같은 말이라고 합니다..

  • 14.11.28 08:15

    고대사 문제의 한 매듭을 푼 느낌입니다.

  • 14.11.28 08:18

    현재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동북공정도 이유가 있네요.
    지도를 보자니 충분히 중국의 역사이기도 하겠어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4.11.28 08:50

    제가 아래 러시아포커스에서 가져온 <카렐족>의 원류가 까레이=겨레족이었을 가능성이 있네요.
    (실은 짚이는데가 있어서 가져온 자료^^)

  • 14.11.28 09:03

    배달겨레 글이 정론직필 카페에 이렇게 많이 올라오니 눈물이 글썽(감동)....합니다....

  • 14.11.28 09:14

    한국말 잘하는 왜놈들 거시기 하겠네요

  • 14.11.28 09:26

    @버스노동자 카페 [고대한민족역사방]에 더 많은 글들이 올라오길 기대합니다. ㅋ

  • 14.11.28 09:27

    요수님이 고지도를 근거로 아메리카조선선을 주장한 것이나...
    역사책(우리 기록)에 엄연히 나와있는 몽골을 고구려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머가 다르죠?

    몽골은 머가 아쉬워 드 넓은 땅을 놓아두고 변방의 조그만 한반도를 침탈했죠?

  • 14.11.28 09:49

    몽골이 고구려면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를 왜 침탈합니까? 에구 역사의 주지표인 기록을 연구하지 않으니 보조지표인 언어를 가지고 얼기설기 끼워넣으니 가설이라고 긍정적으로 얘기야 할수있지만 소설도 되고 거기에 더 나아가 저 사람이 주장하는게 언어적으로 무조건 이거다 하나도 증명할수 있는게 없습니다 그냥 이거다 주장하는것이죠. 그리고 좋게 말해 사관이지 어떤 견해나 의도를 가지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가 될수있기에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죠.
    고구려 자체게 5부족연합체 였는데 고대왕국으로 성장하고 멸망한 후에 발해도 있었고 한참 몇백년이 지난 다음에야 13세기나 되어서야 몽골이라는게 나타나는데 고구려?

  • 14.11.28 10:14

    @天上天下 님 저건 시기와 연대도 중구난방입니다. 언어로 무조건 이거다 밖에 없어요. 당장 케레이만 봐도 13세기까지도 초원부족의 명칭을 가지고 겨레라는 우리 민족의 개념에 그냥 단순치환해서 대입한다는게 어처구니가 없고요. 케레이 = 겨레 증명이 안됩니다. 고조선 > 고구려> 발해,신라 > 고려까지 이미 내려가는 상황에서도 일개 초원부족의 이름을 가지고 족보 운운하면서 우리의 겨레에 같은 이름이라고 대입하다니요. 아무것도 없어요. 언어껴맞추기죠.

  • 14.11.28 09:53

    고대사...

    관심엄따....^^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4.11.28 10:03

    빙~~~~고 !!!

  • 14.11.28 10:11

    @天上天下 이분 지능에 좀 문제있네..
    논리가 똑같은게 아니라
    바로 그말을 한거요.!.
    댁이야 진담으로 들었겠지만..

  • 14.11.28 10:12

    @天上天下 언어로 밥먹고 사신다는 분이 한글도 못읽수??

  • 14.11.28 11:26

    @아침햇살 과연 일본이 우리나라 침공 할때 형제라는 인식이 있을리가 없지요 임진전쟁 부터 시작 해서 그이전에 서해와남해안 노략질 할때 그들은 과연 형제라는 인식이 있을까요

  • 14.11.28 11:31

    @빨간불 딴지하나만 걸자면 임진왜란이라 하셔야합니다. 뉴라이트 개좆 식민사학자처럼 조상님이 공식적으로 붙인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바꾸시면 안됩니다. 거대한 물타기지요. 설사 일본이나 다른나라가 임진전쟁이라 해도 우리는 임진왜란이라고 하는게 맞습니다.

  • 14.11.28 14:50

    @아침햇살 귀하의 역사 인식과 합리적인 인식 다시 한번 고찰 하세요

  • 14.11.28 09:56

    케레이트 자체도 한참후에야 칭기스칸 사위로 받아들이면서 얘기되는건데 11-13세기에나 조명받는 케레이트 부족을(그때도 부족임 도대체 우리 민족은 뭐하고 있었는데?) 가지고 겨레라고 = 대입을 그냥 해버리는 어처구니 하며 저 족보라는게 뭔지 언제 쓰여졌는지 확실한지 아무것도 없고 일본서기와 같은지 어쩐지도 모르고 그냥 그렇다 정말 환상적이죠? 그죠? 상징이나 시기 연대 조금 아는 사람들이 보면 아주 중구난방이지요. 바이킹이나 켈트족도 그렇고 ^^ 뭐 더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임...

  • 14.11.28 09:58

    강단사학도 문제가 많고 비판을 많이 해야지만 저런 황당한 환단사학보다도 더한 부수적 언어끼워맞추기 사관은 정말 답이 없네요. 암튼 잘 봤습니다.

  • 14.11.28 10:16

    고대에는 한민족이 세계를 호령했다는 얘긴가요?
    대단히 호전적인 족속이었는가 봅니다.
    아니면 농삿일도 때려치고 제국주의 이론무장으로
    백성들을 끓어모아 세계단일국가를 만들어서,
    한민족의 통치아래놓이면 천국이라도 간다고,
    정복과 복음을 하러 전세계를 누볐든가.
    말타고 몇명이 가서 깃발꽂으면 지배영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당시 변변한 도로도 없었을 것이어서
    장구한 세월이 소요될텐데,,
    그당시 상당한 고난의 행군 시절이 있었군요..

  • 14.11.28 14:55

    세계 호령 한 적은 맞지만 호전적은 아닙니다 마치 오늘날의 미국과같은 호령 정도는 했지만 그것이 강압적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식인 문화가 있었는데 고조선에는 식인 문화가 없기에 밤에도 대문 단속 하지 않았다 된다 했고요 오죽 하면 공자가 동이의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 할까요 당시에 문단속 안하면 군인들이 집에 가서 잠자는 사람 끌고 나와서 식인 하는 시절

  • 14.11.28 10:23

    일본도 우리와 유전자가 가장 근접합니다. 몽골리안이고요. 그럼 언어유사성을 들어서 뭐가 맞으면 일본도 저렇게 얘기하면 되겠군요. 참 좋습니다. 고대사쪽으로 보면 고조선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다 넘어가서 도래했으니까요. 대륙을 호령하던 대륙민족의 정통자손이라고 주장하면 잘 받아주면 되겠군요. 정립을 하려거든 거꾸로 친일매국의 식민사관부터 청산을 해야지 저런 언어조합사관에 매몰되면 엉뚱하게 민족사학 근간마저 부정하고 반통일 논리로 갈수 있습니다.

  • 14.11.28 11:41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저울질 하는 오류.
    이건 오류가 이니고 보통 많이들 '이용'을 하죠.
    앞선 김대중전대통령의 탄원서도 그렇고, KBS의 친일노인네의 주장도 그렇고..
    김정민이란 사람의 논리 역시.하나의 단편적인 사료적 가치는 인정할만 하지만,
    밀도를 높이는 사료 발굴을 넘어, 그 결론이라는 것 자체가 자기 중심적으로 보지 않고,
    다분이 해체주의적이고 사대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기 충분하다는 얘기입니다.
    줄거리를 인식하는 시각을 무력화하는 시도쯤..으로 읽어야하는 거죠.
    그렇게 일부를 들어내 다수의 역사이고,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각개격파하려는 시도를 충분히 의심할 여지가

  • 14.11.28 11:51

    중요 요소요소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땅이 아니고, 그 문화의 변천. 도태나 정체가 아닌 선진화하는 노력의 줄거리로써의
    역사적 일관성과 그 일관성을 현재까지 주도적, 독창적으로 명맥을 이어오는 민족과 나라가 어디이냐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역사를 읽어야하고 현재 우리민족이 종주를 주장하기에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 사료적 근거들이
    많은데, 반도사관, 또다른 형태의 불순사관인 시원사관? 의 화려함에 현혹되 좋은 해석과 관점의 사관이 고사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1차 사료로써의 가치만 인정해서 선별해서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봅니다.
    뭐 조리있게 얘기하기 바빠서 걍 이정도로 갈음하죠..

  • 14.11.28 16:04

    저는 나쁘지 않은 글이라 생각되는데요.
    잘봤읍니다.

  • 작성자 14.11.28 16:39

    저 위 지도들 중에서 박창범 교수의 천문학적 연구 결과는
    예컨데, 자료수 부족 등 무엇인가의 편차 요소로
    약간의 편차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즉, 박창범 교수의 연구 결과는 아마도 원래
    그 밑에 있는 지명들의 위치로 표기된 지도가
    가장 정확한 값에 가깝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그 지도에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백제와 신라의 지명들의 영역들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그 의미는....특히, 백제와 신라는 영토 문제로
    엄청나게 빈번하게 전쟁을 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추측됩니다.

    그래서 서로 밀고 밀리는 전쟁을 수도 없이 치루다보니
    그와같은 지명 중복현상이 발생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 14.11.28 21:46

    박창범 교수의 것을 원용하는건 나름 좋습니다만 이거저거 짜집기해서 그럴듯하게 사기를 치니 문제죠. 몽골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동원한 고려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상태를 고려인 원감국사(圓監國師)가 표현한 작품이란 주장이다. 특히 후렴구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를 몽골어로 해석해 보여줬다. 그 뜻은 ‘이기자 이기자 이긴다 이기리라 이겨’다 아니 청산별곡 읽어봤으면 이게 말이 됩니까 1231년부터 1259년까지 대몽항쟁을 벌이고 강화한후 15년뒤에 여몽연합군 일본원정을 가는데 도탄에 빠진 고려유민 상태를 보고 간접지배국 언어를 섞어서 노래를 불렀다고요?

  • 14.11.28 22:15

    강화조건도 고려왕국 존속보장, 몽골군의 즉각적인 철수 등 6개조항 모두 수락후 이뤄진거고 당시 고려는 어찌되었든 무신 정권도 강화에 대한 불만도 많았고 30년간 똘똘뭉쳐서 항쟁한 역사입니다. 강화이후도 간접지배 방식이었고 일제와 전혀 다르죠. 이런 역사를 좀 알고본다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그냥 언어로야 몽골어로 보니 이런 뜻이다 정도지요. 이기자를 외치면서 8번이나 후렴으로 나오는 청산별곡의 내용을 한번 보면 이건 황당할 정도죠. 설사 지배국언어로 썻다 해도 이 뜻을 알면서 썻을건데 청산별곡의 시어 내용에 8번 삽입 후렴구로 쓸려면 문맥에 맞지도 않고요. 시라고 볼수도 없습니다.

  • 14.11.28 22:53

    제가 좀 지적하고 싶은것은 일제식민사관과 유사한 몽제식민사관으로 쓸 개연성이 너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순진하게 같은 민족이니 착한병걸려서 정체성과 주체성이 없이 노예의식을 가지고 사대주의의 저변을 깔면서 무턱대고 외부언어지표를 가지고 외부사관을 가지고 무조건적으로 대입하고 보는 저열한 자세에 혀를 찬 것이고요. 지하에서 조상님들이 통곡하시겠습니다.

  • 14.12.17 09:04

    잘 읽었읍니다ㅡ♥♥♥♥ ♥♥♥

  • 17.12.13 12:49

    고구려가 5개부족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팔요가 있습니다. 중요엘리트부족중에는 일본으로이동 철기가 풍부하므로 ....남은 엘리트부족은 발해건국으로부흥 ....발해이후에는 몽구려,즉 몽골이 부족을 통일하고 북만주,내몽고주에서 세계로 진출하였다고 사려됩니다... 한민족은 ? 신라의 후예가 많으므로 절대다수가 고구려,몽골의 후손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혈통은 아주 가깝지만 ~~^^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