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란 무슨 책인가? / 오강남
불트만의 ‘탈신화화’ 이론
이처럼 성경을 역사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 신학자의 이론 하나를 예로 들어 본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을 수 없다고 주장한 많은 신학자들 중에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신학자를 꼽으라면
20세기 최대 신학자 중 하나인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을 들 수 있다.
그는 『신약 성서와 신화』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등의 저작을 통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탈신화화’
혹은 ‘비신화화(demythologizing)’ 이론을 제창한 신약 성서 신학자였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성경, 특히 신약 성경은 ‘신화적’이라는 것이다.
우주를 ‘하늘과 땅과 지하’라는 3층 구조로 이루어진 구조물로 보고
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가 올라갔다고 이해했다든가,
병이 나면 그것이 악귀가 들었기 때문이라 믿었다는 등
신약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세계관은 전근대적, 과학 이전의 사고방식에 불과하고,
이런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기초로 하여 기록된 성경은
어쩔 수 없이 신화적 성격을 띠울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다.
이런 전근대적 세계관에 입각한 신화적 이야기들 문자 그대로 믿으라고 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지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억지라 보았다.
불트만은 이런 전근대적 우주관에 기초한 신화적 요소들이
더 이상 문자적으로 설득력이 없을 뿐 아니라 전혀 믿을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세계관은 그 자체로 그리스도교에만 해당되는 그리스도교 특유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당시 유행하던 조로아스터교나 영지주의 세계관일 뿐이기에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이런 비그리스도교적 신화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교에서 현대인들에게 할 일은
이런 전근대적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라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 신화적 표현 속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교 특유의 복음,
이른바 ‘케류그마(kerygma, 선포)’만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 일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비신화화’ 혹은 ‘탈신화화’ 작업이라 했다.
그는 신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화의 참된 목적은 세상이 어떻게 생긴 것인가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이야기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기를 스스로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10)
따라서 불트만은 신화를 이해할 때
그것이 마치 우주의 어떠함을 말해주는 무엇인 것처럼
‘우주론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이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실존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말해주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실존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신화를 이해할 때
신화적인 표현으로 가득 찬 성경에서 복음의 진수를 발견하게 된다고 역설하였다.
한 가지 지적하여야 할 것은 ‘비신화화’라든가 ‘탈신화화’라고 했을 때,
신화를 제거하는 작업이라 오해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신화’란 상식적으로 생각하듯 ‘거짓’이나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적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쓰이는
하나의 상징 수단이므로 신화를 제거한다는 것은
진리 자체를 방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많이 쓰는 말로 아기를 목욕시키고
목욕물은 버리더라도 아기를 버리면 안 되듯,
특수한 신화적 표현 자체는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시대가 지나면 효력을 상실할 수 있지만
그 신화가 말해주려는 뜻까지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탈신화화’라는 오해하기 쉬운 말 대신에
‘탈문자화(deliteralization)’
혹은 ‘신화의 껍질을 깨기(breaking myth)’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보았다.
사실 어느 의미에서 종교적 진리는 신화적인 표현이 빌리지 않을 수 없기에
옛 신화적 표현을 완전히 버릴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는 새로운 신화로
‘재신화화(remythologizing)’하는 것이 더욱 적절한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불트만의 사상이나 그의 해석학적 업적이
그 후 ‘후기 불트만 학파’에 의해서 수정되고 정교화 되었지만,
그의 기본 주장은 그리스도교 신학 역사에서
획기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아직도 발휘하고 있는 특별한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