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도 없이 책들이 늙어버렸습니다. 석양을 등에 지고, 늙어버린 책들은 찢어진 페이지의 이야기를 애써 반추합니다. 폐허가 된 서가로부터 책들은, 애초의 모든 세계와 원형을 떠올리고요. 오래전에 사라진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는 유폐를 서성입니다. 책들의 과거는 소멸된 예언과 주술로부터 오래도록 소환되었지만, 사라진 주술처럼 세계는 영원토록 쓸모없습니다. 소문도 없이 늙어버린 책들을 읽으며 당대는 엄숙하고요. 진부한 서가로부터 세계는 진실하지만, 페이지마다 기록된 진실을 덮으며 독자들은 저마다의 눈물을 계량합니다. 소문도 없이 서가는 폐쇄되었고, 황폐한 세계로부터 누군가는 잃어버린 신화를 기원합니다. 찢겨진 페이지마다엔 사라진 눈동자가 선명하고요. 잃어버린 문자는 대륙으로부터 영원히 추방됩니다. 폐기된 기록을 호명하며 책들은 놀랍도록 늙어버립니다. 책들은 늙고, 사라진 세계에 대한 소문은 오로지 바다로부터 무성합니다. 소문도 없이 책들은 어느새 찢어진 페이지로 가득하고요. 추방당한 대륙의 석양으로부터 책들은, 소문도 없이 오래도록, 오래도록 타오릅니다.
조동범 〈늙어버린 책들의 세계〉(《시와 사상》 2011 겨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