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대구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청년입니다.
이번 성탄에 제가 예수님을 모시는데 있어 너무 소홀했습니다.
1. 먼저 성탄이 오기전 봐야했던 판공성사를 보지 않았습니다. 저의 마음이 어느정도 깨끗이 비우고 나서 판공성사를 봐야겠다고 생각해 몇번 미루다 저도 깜밖하고 그만 판공성사를 보지않았습니다. 판공성사표 역시 저한테 아직
있구요. 낼 신부님께 가서 판공성사 못봤다고 하면 엄청 혼나고 저를 안좋게 보실까봐 얘기조차 못하겠는데
어쩌죠? 판공성사 한번 안보게 되면 냉담자로 분류되나요?
2. 성탄 전날인 이브때 성당에서 성가대회를 먼저 하고 나서 저녁늦게 이브미사를 하였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어느본단에서나 주로할 것 같은 청년 포장마차를 운영해 먹거리 판매를 하였습니다. 저 역시 청년이라 이일저일
도와준다고 너무 정신도 없었고 다른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쁜가운데 미사를
드리게 되었고 미사시간 내내 아까 안좋았던 일에 집중도 되자 않고 마음속에 흑심이 가득 했습니다. 봉헌금 준비도 못해 봉헌금도 못내고 성체를 모실때에도 이런마음가짐에 어떻게 예수님을 모실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성체도 안하였습니다. 저번에도 두번정도 미사에 너무 집중이 안되고 제 마음속에 앙심이 가득해 이런마음 가짐에 주님을 모시면 머하겠냔 생각에 제가 판단해 모시지 않았는데 제 행동이 잘못된 것을까요? 그리고 성탄미사도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 상태가 이런데 성당에 가면 멋하겟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당 신부님께 상담을 하고 싶어도 저에게 실망하실것 같고 부끄러워 말도 못할것 같아 이렇게 나마 신앙상담을
합니다. 신부님 명확한 답좀 주세요...제가 이번에 한일 잘못되었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될까요??
반갑군요.
시처럼 성가처럼 살려고 애쓰는 청년 바오로님에게 성령의 은사 잊혀지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의 기복성도 만만치 않치요.
아름다운 화음을 위한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더 많이 만나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이긴다? 싸움한다? 힘들다. 기권하다 등을 예견할 수도 있겠습니다.
꼭 이겨야 하나? 싸워야 하나? 힘들게..., 그러다 지치는데..., 등에 관한 막연한 두려움도 앞설 수 있지요.
이 때에 그 것을 성가에 접목해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1. 첫소리는 다시 아기 예수님처럼 여리게 시작해야지
2. 가운데 소리들 특히 고음은 내가 하늘로 오르려 하는 것도 좋치만, 하느님과 함께 가장 높은 곳으로부터 세상에 뿌려지는 자유자재 음처리를 만끽해야지~! 이렇게 부르면 감기 기운으로 잠긴 내 목소리는 겨우 목 근처에서 맴돌던 그것들도 다시 두성이나 복식 호흡도 별것 아닌 그야말로 천사들이 후원하는 음역까지 매우 즐거운 화음으로 이어집니다.
3. 마지막 소리는 그 숨소리 마저 내 의지로 끊지 않고 저 멀리 하늘 높이 올림으로 다시 첫 소리로 안녕합니다.
이런 것을 구경 하면서도 '나는 계속 노래를 못해' 하면 낙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하여 비우기 위한다며 자기 안으로 빠질수록 고해성사는 더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이는 과연 악의 간계일까요? 아니면 심리학적으로 미운 4살짜리 자아 때문일까요?
청년 바오로 형제님은 그것을 규명하려는 의지가 건강한 편입니다.
단지 미운 자아와 악령과의 혼돈감을 만난 것이지요.
신부님은 고해성사와 관련하여 영적 환부를 상담하는 신자에게 꾸중이라는 처방만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라파엘 대천사의 도움의 치유 은사는 기본이니 그 보속을 위한 성찰, 참회 단계에서 정개를 다지려는 한 청년에게 기도를 허락, 지원하시지요.
정개, 참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걸려 넘어져 고해성사를 멀리하고 아예 성당과 미사 자체를 잊어버리려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탄 미사곡 발표가 끝나고 곧바로 부활 미사곡 준비를 위하여 연습에 들어가는 바오로 형제님은 그 열정과 적극성이 빛나기에 정개를 또한 평화롭게 풀 능력도 주실 것이기에 그것을 상기 삼자 발성 빨랑까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청년들에게 묻습니다. 바오로 형제님은 한 사람의 탄생과 죽음까지 본 적이 있나요? 기성 세대들도 이 질문에 한참을 머뭇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본적이 없다고 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성탄과 죽음을 성당에서도 가까이 봅니다.
판공성사에 임하지 않으면 냉담자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적내 판공성사 출석부에 결석처리 되어 개근상 받기는 틀렸다 하면서 실망감으로 냉담 유혹까지 또는 케세라 세라 신앙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땐 좋은 수를 쓰는 방법이 있지요(이건 비밀이니 절대 혼자만 보세요).
성탄 8부 축제라는 것이 있지요. 즉 성탄 후 8일동안 이어지는 축제기간 동안 고해성사에 임하여 보속을 이룬 다음 신부님께 결석계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혹시 알아요? 판공성사표 사무실에 몰래 전해주라고요(그러니 절대 비밀~☆♪♬). 하지만 편의적 발상으로 허락 없이 성사표를 내지는 마세요. 그러면 하느님도 바오로 형제님 안 붙여~! 무효야~! 하시며 엄포를 놓으실 수 있어요.
그것은 미운 4살 자아를 방관하거나 선과 악 흑백논리에 젖기 쉬운 노래 잘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것이랍니다. 하느님을 무시하거나 떠날 수 있는 경우지요. 청년 바오로 형제님이 지금 그런 유혹의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봉사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공부생활의 선두 바통 주자인 매일 복음 하단에 나타나 있는 신부님 빨랑까를 소홀히 한다는 인상이 있지요. 물론 학생인듯 하니 다른 공부생활도 열심히 할듯 합니다. 하지만 성경 공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랍니다. 기회 닿는대로 인터넷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그것을 보기 바래요.
기도생활 의지도 좋습니다. 일단 두 배의 기도인 성가를 접하니 참 좋은 환경이군요. 노래할 때도 옆 사람과 하모니에 신경쓸 수 있는 달란트가 보입니다. 서로서로 내 목소리가 더 잘났다 목소리 클수록 장땡이닷! 하면서 싸우는 목소리들은 경계하시고요.^^ 하모니를 이루다 보면 형제님의 그 의지는 들리는 소리보다 들리지 않는 소리도 더욱 친밀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주산 왕들이 머리에 보이는 것과 똑같은 주산을 그려놓고 자연스럽게 암산왕으로 이르듯이 보이지 않는 음역 쉼터에서 어서 빨리 다시 주님을 만나야겠노라고 기쁘고 아주 밀접하게 그 첫음을 만나는 원리에 충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7인조 밴드의 건반에 닿는 손가락도, 기타를 튕기는 손가락들도 혼연 일체 되어 보이고 들림으로서 내 소리와 화음으로 일치하는 박자 음정 기본, 원칙이 식은죽 먹기인 초 현실적 성가 화음을 누림과 같은 것이지요.
성사생활은 현재 정개를 위한 단계에서 곧 고해 및 보속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정리해봅시다. 1. 성찰, 2. 참회, 3. 정개, 4. 고해, 5. 보속의 고해성사 다섯 단계가 이어지고 있는데 공동체 생활도 그만하면 건강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바쁜 가운데 미사에 임한다는 것도 더욱 좋은 것입니다. 타인의 어렵고 힘든 일을 방관하면서 미사 때 아무리 지하철 내에서 "도를 아십니까?"하던 사람들에게 대답하듯 기도한들 그 사람에게 기다리는 것은 다시 더 바쁘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기회 자체를 기다릴 뿐입니다. 따라서 힘들고 지치기 쉬운 앞으로의 여정도 그 찬미의 시처럼 성가처럼 이루겠다는 지금의 의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의지과(영혼)가 아닌 정신과(이성의 자아)의 틈새를 타고 누군가 미사를 궐하라!하고 유혹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바오로 형제님의 경우 성가가 큰 약이 될 것이라 하였고 대체적으로 건강하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뒤 엉켜 그것이 흑심으로 변하기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때에도 흑심을 흑심으로 변모 되도록 하는 것도 좋습니다. 신부님처럼 검은 옷을 입고 섞갈리도록 몰려다녀야 하는 조폭들, 신부님들처럼 상하 관계가 분명한 조폭들을 우린 쉽게 혼동하며 바라봅니다. 그런데 조폭들은 자세히 보면 검은 선그라스도 많이 낍니다(또 한가지 비밀이지만 가끔 신부님들도 미사 후 검은 선그라스 낀 분 보았음.ㅎㅎ). 이러한 색안경을 우린 미사 때 벗으니 색안경 꼈어도 세속 성당 미사와 조화를 이끌어 주시는 것에 감사하세요.
따라서 흑심은 신부님의 겨울 수단이 왜 검은 색인지를 보면 도움 될 것입니다. 노래 잘하면 감성도 맑아져서 시상도 잘 떠오르고 또한 관상에 유리한 그림도 잘 그려질 수 있지요. 그런데 신부님들의 검은 수단은 모든 흑심과 화려함 마저 사랑으로 포용한답니다. 검은색은 그래서 가장 친숙하고 부담없는 색으로 변모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악령은 계속하여 조폭 칼라인 검은색 다음 아주 화려한 흰색 등으로 변장하여 다시 도전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살 왕국, 자퇴 왕국, 신앙 끝, 봉사 끝, 이제부터 룰루랄라다~! 하고 내가 휘파람을 불지만 이번엔 하느님이 흐흐흐 기다렸다. 네가 드디어 파견을 이루는구나 하면서 그동안 아들이 갈고 닦은 만큼의 그것의 마지막 담금질을 시작하십니다. 이 때에는 내 안의 그것들이 몽땅 심판을 받아 감옥과 천국 구분이 더욱 분명해지는데 평소 신앙에 소홀한 사람들에게는 때는 늦으리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다시 그곳을 탈출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영원한 죽음으로 떠나는 자살자들을 보면 안타깝지요.
하지만 주님은 늦으리도 너의 말이니라 하시면서 계속 우리를 보살피지요. 그래서 주님은 자주 더욱 힘드신 일에 왕따를 당하십니다. 봉헌금도 열심히 내는 형제님 마음을 보기 좋아하시고 모령성체도 경계하는 그 자세를 인간적으로 는 보기 좋치만 이 때에 바오로 형제님이 또한 성탄 8부 축제도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단란트가 좋을테니 이를 잘 생각해보세요.
일생중 가장 왕성한 식욕, 표출의 시기인 청년기를 지나며 미사에 대한 집중력을 키우고 있는 바오로 형제에게 그와 같은 실수를 답습해 온 성가 선배로서 몇마디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성당 문을 나서면 다시 성당을 가지 못하게 하는 유혹을 만납니다.
성체를 영하지 못하였고 주님을 모시면 뭐하겠냐는 바오로 형제의 '미운 4살 자아'를 악령이 유혹하여 "성당게 가면 뭐 하겠느냐?"고 유혹하는 것 바라봅니다. 따라서 용기 잃지말고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미사를 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참례하세요. 사실 청년 바오로 형제님은 그것을 집중하려는 의지도 좋은편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모두 주님 제대에 가장 먼저 올리려는 자세도 지향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당 밖이나 안이나 그 천국문을 통한 순간에서 이미 기도하는 성당 입당시 왜 먼저 그리스도 제대를 바라보는가?를 묵상해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당에 가면 무엇하느냐는 그것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성가 등으로 인하여 영혼이 맑아지고 성령 충만감으로 행복감 이어질 때 실망하실 것 같고 두렵기만 한 신부님이 더 따듯한 아빠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바오로 형제님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요? 라고 물으면서 또한 저는 죄인입니다 하고 두 손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지요. 화이팅!입니다.
海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