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간정의 창건연대나 창건자는 미상이나 조선조 중종 15년 (1520년)에 간성군수 최청이 중수한 기록으로 보아 정자의 건립은 그 이전으로 추측된다. 1884년 갑신정변에 소실되었다가 1928년 당시 토성면장 김용집의 발의로 재건하였고, 그 후 1980년 8월 1일 전 최규하 대통령이 동해안 순시중보수 정화지원한1억 3천만원으로 정자를 완전 해체 복원하여 명실공히 문화재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청간정의 현판은 이조 현종 때 우암송시열이 좌상으로 재직시 이곳에 들러 친필로 썼었고, 그 후 1953년 고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쓴 현판이 현재까지걸려 있다.
청간정의 규모는 전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초석은 민흘림이 있는 8각 석주로써 전후면 8개의 높이는 220cm가 되어 마루 귀틀을 받치는 1층 기둥우로 되어있고, 중앙부의 높이 1.2m 초석 위에 팔각형의 동자기둥을 세워 누마루형식의 아래층 구조체를 형성하고 있다.
층은 8개의 기둥이 모두 원주이며 기둥중심에서 외측으로 60Cm정도 띄어 사면을 모두 단층 궁판을 평난간으로 둘렀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지붕측면 첫째와 둘째 기둥사이에 정자위로 올라오는 목조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정자주위에는 잔잔한 대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우거진 노송과 망망대해, 그리고 신평들의 어우러짐은 가히 관동제일경이다.
청간정은 설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만경창파가 넘실거리는 기암절벽위에 팔각지붕의 중층누정으로 아담하게 세워져 있다. 주위가 모두 석봉으로 되어 층층이 대(臺)를 이루고 높이도 수십 길에 달하는 곳에 위치하여 동해의 파도가 암석에 부딪쳐 흰 거품을 남기며 부서져나가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다. 특히 해와 달이 솟을 때의 정경은 관동팔경의 하나로서 희귀한 경치라고 할 만하다.
영랑호
영랑호는 석호이며 자연호수로 삼국유사의 기록에 신라화랑 영랑이 동료 술랑, 안상, 남석 등과 금강산 수련 후 귀향길에 명경같이 잔잔하고 맑은 호수에 붉게 물든 저녁노을, 웅대하게 부각된 설악산 울산바위, 웅크리고 앉은 범의 형상을 한 바위가 물 속에 잠겨있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머물면서 풍류를 즐겼다하며 그 후부터 영랑호가 화랑의 순례도장이 되었고 호수의 명칭을 영랑호라 부르게 되었다.영랑호주변(속초의료원 뒤 남서쪽) 산봉우리에 커다란 바위가 여러개 모여 있다. 이를 관음암(觀音岩)이라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오랜 옛날 이곳에 수목이 우거지고 인적이 드물때 어느 도사가 이곳에 수도를 하는 중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득도를 도왔다고 하여 관음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이와 같이 영랑호 변에서는 아득한 옛날에는 화랑과 도사들이 찾아와 수도를 했고 지금은 이름난 궁사들이 궁도를 연마하는 활터도 있으며, 춘하추동 4계절에 남녀노소 할 것없이 아침이면 수많은 속초시민들의 산책코스로도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철새의 도래지로 유명하다. 특히 백조의 무리인 고니떼가 날아와 장관을 이룬다. 천연기념물 201호인 고니는 오리과에 속하는 조류로 10월 하순에 우리나라에 와서 이듬해 4월 되돌아 가는 겨울 철새이다. 고니 외에청둥오리, 가창오리까지 함께 날아들어 늦가을부터 봄까지의 월동기간에는 철새의 군무로 장관을 이루는 영랑호변이다. 옛날부터 영랑호는 낭만이 깃든 호수로 이름나 영랑호를 주제로한 시도 많다. 영랑호는 유원지개발 사업으로 둘레 8km 넓이 36만평의 부지에 콘도시설이 일부 건립되었고 9홀의 골프장이 있으며 카누경기장이있어 심신 수련장소로, 드라이브 코스로,산책로로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이다. 용카누용카누,윈드서핑,골프 등 영랑호 휴양지에서 나만의 여유를 찾아 즐기는 것도 묘미이다. 또한 설악산을 배경으로 그린에서 치는 골프는 가히 환상적이다. 설악산자락에 인접한 골프장 두곳은 언덕이 아늑한 느낌을 주며 설악의 정상을 향해 마음껏 나이샷을 날릴 수 있다. 영랑호 레익스빌 골프장은 9홀을 갖춘 골프장으로 비회원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해마다 4~5월이면 만개한 벚꽃으로 구경꾼들이 모여드는 곳이며, 영랑화랑축제가 펼쳐지는 장소이기도 하다.또한 제1회 국제아쿠아슬론대회가 이곳 영랑호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 투고 / 영랑호 범바위에 복원되는 정자 [설악신문 ] "글 : 박영도 영랑호(永郞湖)
이 호수를 영랑호라 부르게 된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 근거하는 것으로 신라의 화랑, 영랑(永郞)은 술랑(述郞)ㆍ안상(安詳)ㆍ남랑(南郞) 등과 함께 금강산에서 수련을 마치고 명승지 삼일포에서 3일 동안 유람한 후 각기 헤어져 동해안을 따라 서라벌로 돌아가는 길에 이 호수를 발견하게 된다. 명경과 같이 맑고 잔잔한 호수에 붉은 노을과 웅대한 울산바위와 범이 웅크리고 앉은 듯한 범바위가 호수에 잠긴 양 비치는 것에 매료된 영랑은 서라벌로 돌아가는 것도 잊고 머물러 풍류를 즐겼다. 그때부터 이 호수를 영랑호라 부르게 되었고 이후로 영랑호는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영랑호는 고을 남쪽 55리에 있다. 주위가 30여 리로 맑은 물결이 굽이쳐 돌아오고 암석이 기괴하다. 호수 가운데로 들어간 작은 봉우리에 옛 정자터가 있으니 이것이 영랑 신선 무리가 놀며, 구경하던 곳이다. 永郞湖在郡南五十五里周三十餘里汀四淸曲巖石奇 怪湖東小峯半入湖心有古亭基是永郞仙徒有賞之地※《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간성군조(杆城郡條)※중종(中宗) 5년(1530)에 이행(李荇! )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을 증보한 것으로 55권 25책으로 되어 있다. 현재 영랑호 명칭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이라면 고려 충정왕(忠定王) 1년(1349) 이곡(李穀)에 의해 씌어진 《동유기(東遊記)》 이 문헌에 영랑호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볼 때 가깝게는 고려 시대. 더 멀리는 삼국 시대로부터 ‘영랑호’라고 불리워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터이다. 지금 ‘영랑’이라는 명칭들은 영랑동, 영랑동과 장사동을 연결하는 영랑교, 영랑초등학교와 속초경찰서 영랑동 파출소 등으로 공공기관의 명칭들로부터 공사간의 명칭들이 이에 연유하는 것으로, 영랑호 범바위 금장대(金將臺)터에 복원되는 전통 한식 양식의 정자 명칭은 바로 영랑호의 명칭에 따라 영랑정(永郞亭)이라고 명명되어야 하는 적확성(的確性)을 가진다. 이 외의 어떠한 적확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금장대는 6ㆍ25 동란의 부산물로 이 고장 수복에 공이 많은 당시 육군 제11사단장 김병휘(金炳徽)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었으나 긴 세월의 풍우에 퇴락하여 그 터만이 남은 자리에 3평규모의 전통 한식 양식의 정자가 세워진다. 또 하나의 문화 경관이 11월이면 법고창신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소식이다.
범바위
영랑호 중간지점 서남쪽에 잠겨있는 큰 바위로서 위엄이 당당하며 마치 범 형상으로 생겼다고 하여 범바위로 불리운다.경관이 뛰어나 영랑호를 찾는 이들이 이 바위에 오르곤 하였으며 옛날에는 범이 출범할 정도로 살림이 울창하고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범바위 바로 옆(동쪽)에 금장대란 정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시멘트로 축조한 6각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있다. 6.25때 이 지방 수복에 공이 많은 11사단장 김병취 장군의 공적을 그리기 위하여 세운 정자였다.
호수산책로
영랑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도로변을 중심으로 산책로와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도로가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맑은 공기를 마시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볼 수 있다. 또한 저녁에 더위를 피해 조깅을 하거나 돗자리를 펴고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휴식공간이다
아바이마을
행정상 명칭은 청호동(靑湖洞)이고, 아바이마을은 속칭이다. 1·4후퇴 당시 국군을 따라 남하한 함경도 일대의 피난민들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없게 되자, 휴전선에서 가까운 바닷가 허허벌판에 집을 짓고 집단촌락을 형성하였다. 이후 함경도 출신 가운데서도 특히 늙은 사람들이 많아, 함경도 사투리인 '아바이'를 따서 아바이마을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주민의 50%는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다. 그러나 실향민 1세는 거의 없고 2세들이 중심이 되어 마을을 이끌어 가고 있다. 주민들의 결집력과 생활력이 강하고, 어황도 풍부해 많을 때는 6,000여 명이 거주하였으나, 어업활동이 줄어들면서 인구도 감소 추세에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관광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하면서 낚싯배 영업이나 횟집 등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원래는 배를 타고 건너야만 했으나, 지금은 속초시 조양동(朝陽洞)과 연결되는 도로가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그러나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도로보다는 예전의 교통 수단인 '갯배'를 이용해 중앙동(中央洞) 갯배나루(오구도선장)에서 아바이마을까지 배를 타고 건넌다. 갯배는 30여 명이 탈 수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거룻배로, 한 쪽에서 다른 한 쪽까지 연결된 쇠줄에 고리를 걸고 잡아당겨 건넌다. 갯배 외에 넓고 한적한 해안의 모래톱,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동해, 석호(潟湖)인 청초호(靑草湖) 등이 볼 만하고, 먹을거리로는 일명 '아바이 순대'로 불리는 오징어 순대가 별미로 꼽힌다. 설악산·영금정(靈琴亭)·동명항(東明港)·영랑호(永郞湖) 등 인근 볼거리도 풍부하다.
http://blog.daum.net/14935/7016183
청조호 갯배
속초시내와 청호동 아바이 마을 사이에 놓인 속초항 수로를 건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바로 ‘갯배(도선, 渡船)’이다. 이 갯배는 긴 선 두 가닥을 매어 놓고 철선 하나에 각각 배를 1대씩 고정시켜 갈고리를 철선에 걸어 당기면서 배를 앞으로 끌어당기는 방법으로 운행하고 있다.물론 승선하는 사람은 노약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갈고리로 이 배를 끌어야만 청초호의 수로를 건널 수 있다. 속초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이 갯배를 타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을 전해 준다.
운행간격은 사람이 모이면 바로 출발하여 승선원이 아닌 손님들의 도움을 받아 끝과 끝이 연결된 밧줄을 잡아당기며 운행하는 대한민국 유일의 무동력선이다. 도로를 통해서 움직이면 30분이 걸리지만 갯배를 이용하면 청호동에서 중앙동은 5분만에 왕래할 수 있는 잇점이 있다. 가을동화 촬영명소로 관광객들이 직접체험하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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