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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 기도와 간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11-13)
- 이 세 간구는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욕구와 관계가 있다.
첫째, 이 간구들의 포괄성으로, 이 세 간구 속에 우리의 전체 삶이 요약되어 있다. 주기도가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것은 이런 까닭에서 이다. 우리 육신에 필요한 것, 우리 정신에 필요한 것, 우리 영혼에 필요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육은 생존에 관련되어 있고, 혼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관련되어 있으며, 영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이 간구의 포괄성으로 인해 우리는 상세하게 다루어야한다.
둘째, 이 간구들의 순서로 놀라운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것에 뒤이어 사람의 영혼에 필요한 것이 올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배열하지 않으시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육신으로 시작하셨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생존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은 죄의 오염과 죄책감을 깨끗이 씻어야 할 필요를 다루고 계신다. 그리고 끝으로 죄와 죄의 세력에서 보호를 받아야 할 필요를 말씀하셨다.
생물학적 의미의 생명은 모든 것의 기초가 되므로, 생존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육신의 생존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 이제 나는 삶을 ‘삶다웁게’ 만들어 주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교통을 가져야 하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요한1서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삶을 대하는 참된 방법은, 여러 모순과 어려움 속에서도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함으로써 되어진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의 교제를 방해하는 것인, 죄의 용서를 받을 필요가 있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가 회복되었을 때 내게 필요한 또 한 가지는 계속 그와 교제를 누리는 일이다.
곧 일용할 양식과,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기 위한 죄의 용서, 그리고 나를 다시 죄에 넣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에서 구원받는 것의 순서로 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해 보면 성경 전체에서 주의 기도처럼 그리고 특히 이 세 간구에서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절대 의존해야 할 것을 명백히 보여 주는 곳은 없다. 실로 중요한 오직 한 가지는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로 안다는 사실이다.
- 첫 번째 간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오늘 우리에게 매일 먹을 것을 주시오며’ 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일용할 양식’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물질, 이 세상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구해야 할 바 모든 것, 혹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매일 충분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첫째, 이 간구와 앞의 간구들 사이에 놀라운 것이 있다.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유지자이신 하나님, 그의 영원한 나라를 만드시며 종말로 그 나라로 영접하실 하나님, 세계만방이 그 앞에서는 작은 먼지와 같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세밀한 일용할 양식 문제에 이르기까지 고려하실 준비가 되어 있음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주님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고서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질 수 없으며 우리는 많은 참새들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고 하신다. 내 머리털의 하나도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지 않으시는 것은 없다. 나의 비천한 생활의 가장 작고 사소한 일들마저도 영원한 보좌 위에 계신 하나님에게 알려진 바 되는 것이다. 만일 이 사실을 우리가 파악할 수만 있다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란 말씀에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로 바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구속의 기적이요, 이것이 성육신의 의미이다. 성육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여기 땅위에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고 전능하신 영광의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켜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 – 나 - 일용할 양식!
물론 기도하는 것은 사치품이나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절대 필수품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받을 것이 약속되어 있다. 다윗은 노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헛되지 않는다. 우리의 필수품관이 하나님의 필수품관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럼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신다면 어째서 필요한 것을 말씀 드려야 하는가?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기도의 가치는 우리로 하나님과 접촉하고 만남을 유지시켜 주는 데 있다. 심프슨 박사가 예를 들어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로서 은혜의 큰 선물을 덩어리로 우리에게 주신다면 우리는 그 선물을 받아 누리며 하나님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위험에 빠져버릴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은행에 거액을 예치시켜 놓고 아들이 필요할 때마다 수표를 끊어 조금씩 받을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하나님은 선물을 한꺼번에 주시지 않는다. 은혜 안에서 보증을 서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어음에 서명을 하여 그것을 제출하는 일이다. 이것이 기도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로서 우리가 그분께 와서 아뢰는 것을 원하시며 좋아하신다. 우리의 혀 짧은소리를 듣기 좋아하시며 우리의 간구를 듣기 좋아하시는 하나님, 그분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한 것을 모두 아시지만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러 오는 것을 보실 때 이것이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께 철저하게 의존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은 해와 그 영향력을 철회하실 수도 있으며 비를 멈추실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수확을 헛되게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절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 하나님께서 지탱하고 유지하시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양식과 필요한 모든 것은 그로부터 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의존하고 있다.
- 두 번째 간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잘못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첫째,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주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하시니”(요13:9-10)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온 몸이 씻음을 받은 것은 한번 뿐이다. 이것이 칭의이다. 그러나 칭의를 받고나서 이 세상을 통과할 때 죄의 때가 묻고 더러워진다. 우리가 용서받은 사실은 알아도 특정한 죄와 허물에 대해서 여전히 용서받을 필요가 있다. 요한일서 1장에서 요한은 ‘죄를 자백하라고’ 말한다.
두 번째 이 기도는 ‘자녀들의 기도’이다. 이것은 모두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만을 위한 기도이다. 이것은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이며, 우리가 아버지에 대해 죄를 범하고 아버지를 슬프게 한 것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용서받은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이 검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이론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자기를 참으로 검토하지 않는 사람이다. 위대한 성도일수록 죄의식과 내부의 죄를 더 크게 느끼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이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렇게 하면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 기도는 그 당시 실제로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 또한 주기도에는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어구가 없고 속죄 내용의 진술이 없으므로 주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성경 본문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한다는 근거로 해서 우리 용서하소서라고 되어 있지 않다. 본문은 ‘--같이’ 즉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탕자의 비유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탕자의 비유도 속죄를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탕자의 비유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와 같은 뜻을 담고 있지 않다. 이 비유는 그저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 주님은 여기서 용서의 필요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시며 용서의 사실을 확증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계신다. 주님은 여기서 용서의 방법이나 절차에는 탕자의 비유에서 만큼이나 별 관심이 없으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전체로 받아들여야 하겠고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해야 한다.
여기서 주님은 단순히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속죄론을 설명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다. 이곳의 교훈을 마태복음 18장의 청기기 비유에서 명백히 가르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 청지기는 주인에게 용서를 받았으나 자기 부하를 용서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용서를 받은 증거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주는데서 나타남을 의미한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고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며 우리가 용서를 받은 일이 없는 것이 된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흘려진 피 안에서 그 피를 통해서만 용서를 받은 것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줘야 할 사람이다. 용서받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간구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 있다. 주님은 주기도를 끝내시고 나서 14-15절에서 다시 반복하신 점을 봐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한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일은 절대적이고 불가피한 것이다. 우리가 용서를 모른다면 우리의 기도는 참된 것이 아니며 효과가 없을 것이다.
- 세 번째 간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
첫째, 우리가 사탄에게 유혹을 받는 상황 속에 빠져들어가지 않도록 기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광의 세계를 위해 준비함에 있어 많은 훈련이 필요함을 아신다. 그것이 하나님께 감히 지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우리를 시험에서 지켜 주십사고 요구해야겠다는 뜻이다. 주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실 때의 의미도 이것이다. 우리는 늘 기도하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둘째, 또한 악에서 구하심 받기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악한 자’로부터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 의미를 제한하게 된다. 여기서 ‘악’이란 사탄뿐만 아니라 모든 유형의 악을 포함한다. 우리 마음속의 악에서도, 세상의 악에서도 구원받아야 한다. 이것은 큰 요구요, 포괄적인 간구이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결단코 깨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의 최고의 갈망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며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과 부단한 교제를 가져야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기도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즉 우리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광채와 영광과의 사이에 아무것도 들어와서는 아니 되겠다는 것이다.
- 추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 이 구절은 추신으로 어떤 역문에는 있고 어떤 역문에는 없어 주님이 실제로 말씀하셨는지 아니하셨는지 확실히 모른다. 그러나 이 구절은 매우 적절하다. 이런 기도는 후에 최종적 감사가 있어야 하겠고, 송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작할 때처럼 끝날 때도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끝나야 한다. 우리의 영성의 크기를 측정하려면 우리의 기도에서 찬양과 감사의 분량을 측정하면 된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보장되어 있다. 우리는 지옥에서, 사탄에서, 모든 것에서 지킬 수 있는 분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 “나라와 권세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우리에 관한 한 아버지의 영광이 영원히 영원히 있어야 하겠고, 또 있을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