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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에 대해 미지근한 태도를 취하는 한국교회들이여 회개하라!
WCC가 배도라는 결정적 증거 5가지
1. 명성교회에서 울려퍼진 '사라남'
2. WCC를 주도한 NCCK 생명의 강 살리기 공동기도문 中
3. WCC 총회시 정현경 교수 기도문 中
“흑인 노예여자, 이집트인 하갈의 영이여 오소서!,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착취당하고
버림받은 하갈의 영이여. 오소서!
우리아의 영, 그의 아내 밧세바에 대한 다윗왕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전쟁터에 보내져서 죽임당한 장군의 영이여. 오소서!
입다의 딸의 영, 그의 아버지의 신앙에 희생되어
'그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하면서 하나님께 맺은 그녀
아버지의 약속 때문에 불태워 죽은 입다의 딸의 영혼이여. 오소서!
예수 탄생시 헤롯 왕의 군인들에 의하여
살해된 어린 아기들의 영이여. 오소서!
쟌 다르크의 영혼과 중세기에 화형으로 살해된
무당들의 영이여. 오소서!
십자군 때 죽은 사람들의 영이여! 오소서!
토착민의 영이여. 식민지 시대와 위대한 기독교 선교 시대에
죽어간 영혼들이여. 오소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당시
가스실에서 죽어간 영혼들이여. 오소서!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서 원자탄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이여 오소서!”
“인간들의 금전욕에 의해서 고문당하고 착취당한
흙, 공기, 물의 영들이여. 오소서!
걸프전에서 죽어가는 군인들,
민간인들, 해양생물의 영들이여.”
4. WCC 총회시 정현경 교수 초혼제 장면
3분28초~4분15초
[출처] 이것이 바로 'WCC4. '의 실상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아가페목장) |작성자 돌쇠5. WCC5. WCC 홈페이지에 아직도 현존하는 문서
5. WCC 홈페이지에 아직도 현존하는 문서
먼저 아래는 WCC 홈페이지에 지금도 현존하는 문서이다.
확인해 보시기를 바란다.
위의 문서 주제는 '다양한 종교의 신학 이해' (A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Religious Plurality) 이다.
그 중 심각한 내용을 공개하기로 한다.
We therefore take this witness with the utmost seriousness and acknowledge that among all the nations and peoples there has always been the saving presence of God. Though as Christians our testimony is always to the salvation we have experienced through Christ, we at the same time "cannot set limits to the saving power of God" (CWME, San Antonio 1989).
그러므로 우리는 이같은 증언에 대해 지극히 진지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며, 모든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 항상 하나님의 현현(presence)의 구원 역사가 항상 존재해 왔음을 안다. 기독교인인 우리의 증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경험한 구원'에 언제나 집중하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 구원의 능력을 제한할 수 없다"(CWME, San Antonio 1989)
We see the plurality of religious traditions as both the result of the manifold ways in which God has related to peoples and nations as well as a manifestation of the richness and diversity of humankind. We affirm that God has been present in their seeking and finding, that where there is truth and wisdom in their teachings, and love and holiness in their living, this like any wisdom, insight, knowledge, understanding, love and holiness that is found among us is the gift of the Holy Spirit. We also affirm that God is with them as they struggle, along with us, for justice and liberation.
우리는 종교 전통의 다원성을 하나님께서 각 나라와 민족과 관계하시는 다양한 방식의 결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다양성과 풍성함이 표현된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종교적 모색과 발전 가운데 함께 하셨음을 인정하며, 그들의 가르침 속에 지혜와 진리가 있고 그들의 삶 속에 사랑과 경건이 있는 이상, 이는 우리 가운데 발견되는 지혜, 통찰, 지식, 이해, 사랑, 경건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선물임을 분명히 밝힌다. 또한 그들이 정의와 해방을 위해 우리와 협력하고 고민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다.
This conviction that God as creator of all is present and active in the plurality of religions makes it inconceivable to us that God's saving activity could be confined to any one continent, cultural type, or groups of peoples. A refusal to take seriously the many and diverse religious testimonies to be found among the nations and peoples of the whole world amounts to disowning the biblical testimony to God as creator of all things and father of humankind. "The Spirit of God is at work in ways that pass human understanding and in places that to us are least expected. In entering into dialogue with others, therefore, Christians seek to discern the unsearchable riches of Christ and the way God deals with humanity" (CWME Statement, Mission and Evangelism).
다양한 종교들 속에 임재하시고 움직이시는 만유의 주로서 하나님을 확신한다면, 그분의 구원행동이 어느 한 대륙, 문화, 민족에 갇힌다는 편협한 사고를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의 여러 민족과 나라가 보존해 온 각기 고유한 종교적 증언들을 무시하는(disowning) 처사는, 인류의 아버지요 만유의 주라는 성서 메시지를 결국 부인하는 결과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신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pass human understanding)과 예측 불가능한 장소(in places that to us are least expected)에서 활동하신다. 그러므로 이웃과의 대화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신비한 부요함을 깨닫고, 인간을 대하는 하나님의 방식(the way God deals with humanity)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It is our Christian faith in God which challenges us to take seriously the whole realm of religious plurality. We see this not so much as an obstacle to be overcome, but rather as an opportunity for deepening our encounter with God and with our neighbours as we await the fulfilment when "God will be all in all" (1 Cor. 15-18). Seeking to develop new and greater understandings of "the wisdom, love and power which God has given to men (and women) of other faiths" (New Delhi Report, 1961), we must affirm our "openness to the possibility that the God we know in Jesus Christ may encounter us also in the lives of our neighbours of other faiths" (CWME Report, San Antonio 1989, para. 29). The on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has not left Himself without witness, anywhere (Acts 14.17).
기독신앙은 우리에게 종교 다원성의 전 영역을 진지하게 검토할 것을 요청한다. 종교다원성은 극복해야 할 장애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 되실" (고전 15-18) 때를 갈망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과 이웃을 더 깊게 만날 수 있는 호기인 셈이다. "하나님께서 타 종교인들에게 주신 지혜와 사랑과 힘"을 새롭고 더 원숙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께서 타 종교인들의 삶 속에서 만나실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는 개방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디에든지, 자신의 증인들 없이 내버려 두신 곳이 없다.
Because we have seen and experienced goodness, truth and holiness among followers of other paths and ways than that of Jesus Christ, we are forced to confront with total seriousness the question raised in the Guidelines on Dialogue (1979) concerning the universal creative and redemptive activity of God towards all humankind and the particular redemptive activity of God in the history of Israel and in the person and work of Jesus Christ (para. 23). We find ourselves recognizing a need to move beyond a theology which confines salvation to the explicit personal commitment to Jesus Christ.
다른 종교의 길을 걸어온 이웃들의 삶 속에서 선함과 진리와 경건함을 보고 경청한 우리는, '대화를 위한 지침'(1979)에서 제기된 문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 구속의 활동과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 사역을 통한 특수한 구속의 활동에 대한 문제 제기를 매우 진지하게 해야만 한다. 우리는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향한 명백한 인격적 위임으로만 국한시키는 신학을 넘어서야 할 필요를 느낀다.
Our recognition of the mystery of salvation in men and women of other religious traditions shapes the concrete attitudes with which we Christians must approach them in interreligious dialogue.We need to respect their religious convictions, different as these may be from our own, and to admire the things which God has accomplished and continues to accomplish in them through the Spirit. Interreligious dialogue is therefore a "two-way street". Christians must enter into it in a spirit of openness, prepared to receive from others, while on their part, they give witness of their own faith. Authentic dialogue opens both partners to a deeper conversion to the God who speaks to each through the other. Through the witness of others, we Christians can truly discover facets of the divine mystery which we have not yet seen or responded to. The practice of dialogue will then result in the deepening of our own life of faith. We believe that walking together with people of other living faiths will bring us to a fuller understanding and experience of truth.
We feel called to allow the practice of interreligious dialogue to transform the way in which we do theology. We need to move toward a dialogical theology in which the praxis of dialogue together with that of human liberation, will constitute a true locus theologicus, i.e. both a source of and basis for theological work. The challenge of religious plurality and the praxis of dialogue are part of the context in which we must search for fresh understandings, new questions, and better expressions of our Christian faith and commitment.
우리는 타 종교 속에 신비한 구원이 있는 것을 인정하며(Our recognition of the mystery of salvation) 반드시 타 종교들과의 대화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 준다. 우리와 다른 그들의 종교적 확신들을 존중하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들 가운데 성취하시고 또 성취하실 일들을 존경하는 자세는 이제 무엇보다 필요한 조건이 되었다. 그러므로 종교 간의 대화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교차로인 셈이다. 우리는 개방적인 정신으로 대화에 임하고, 자신의 종교적 확신을 신실하게 증언하는 타 종교인들로부터 배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진정한 대화는 쌍방의 지평을 넓혀주면서, 각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더 깊은 회심으로 인도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타 종교인들의 증언을 통하여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신비를 다각도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를 통해서 신앙적인 삶의 깊이를 더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장황하게 부언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타 종교인들과 협력하는 태도야 말고 진리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더 깊게 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소명의식 가운데에서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하여 기존 신학의 방법을 개혁해야 할 필요성을 걸감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화적 신학과 인간 해방의 실천을 통해 진정한 신학 작업의 원천과 근거가 형성될 것을 믿는다. 종교 다원주의와 대화적 실천의 도전은, 기독교 신앙의 신선한 이해, 새로운 질문들, 그리고 더 나은 표현을 규명해 가야 할 우리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서야할 자리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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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국교회는하나님눈치는아니보고목회자눈치만보는성도들이늘어만가고있는것같아요.주님곧오신데요.
내용을 보는 중 토가 나올려고 해서.....ㅠㅠ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