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2일(현지시간) 열린 페이스북 F8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페이스북 메신저 담당 부사장 데이비드 마커스가 챗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아하는 스타일은 무엇입니까?”
모바일 메신저로 제품·서비스 구매부터 결제까지 글로벌 IT공룡 개발 각축전
“후드 재킷을 좋아합니다.”
“후드 재킷 스타일에 어울리는 가방과 바지를 추천합니다.
우리가 추천하는 가방, 티셔츠, 바지, 후드 재킷을 모두 합해 96.96 달러입니다.”
“맘에 듭니다.”
“그래요? 지금 바로 구입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보관할까요.”
의류매장 점원과 손님의 대화가 아니다.
요즘 미국 젊은이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킥(kik) 메신저에 있는 H&M 챗봇(
ChatBot)을 이용해 옷을 구매하는 과정이다.
1~2분 만에 채팅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고를 수 있다.
제품을 사고 싶으면 클릭 한번으로 H&M 쇼핑 사이트로 갈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오프라인 매장이나 H&M 관련 애플리케이션(앱), 혹은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해야만 했다.
이젠 메신저 앱 하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위챗으로 제품 결제도 가능
이젠 앱이 아닌 킥, 페이스북 메신저, 위챗, 텔레그램,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제품을
사고, 항공권을 예약하고, 꽃을 주문하는 일이 가능하다.
스마트폰에 수십 개의 앱을 깔지 않고 메신저 하나만 있어도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챗봇 덕분이다.
챗봇은 메신저에서 사람이 묻는 질문에 사람처럼 응답할 수 있는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강서진 연구원은 “모바일 메신저 업체들은 다수의 가입자를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의 서비스를 추가하면서 서비스 플랫폼 기반을 확장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지난 4월 12일 열린 페이스북의 F8 개발자 컨퍼런스는 챗봇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려주는
행사였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챗봇으로 꽃배달을 요청해 배송할 수 있는 서비스를
보여줬다.
당시 저커버그는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과 같이 업체와도 메신저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은 택시 예약, 주가 정보, 휴가계획 서비스, 뉴스 추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은 챗봇을 개발할 수 있는 AI 개발 도구도 공개할 계획이다.
CNN은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챗봇을 운영하고 있다.
사용자가 관심 분야를 선택하면 이후 자동으로 기사를 사용자에게 정기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회원 수 10억 명을 넘어선 텐센트의 위챗은 챗봇의 미래를 보여준다.
호텔과 병원 예약, 영화표 구매, 택시 예약 등을 해결할 수 있다.
인증을 받은 회사와 서비스는 위챗을 통해 결제할 수도 있다.
수백만 개의 기업이 위챗 계정을 통해 상품 광고와 결제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킥을 창업한 테드 리빙스턴은 미국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는 (챗)봇이 사회를
이끈다”고 말할 정도다.
글로벌 기업의 챗봇 진출은 가속화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4년 5월 인공지능 기술과 자사 검색엔진 ‘빙’을 결합한 중국어
챗봇 ‘샤오빙’을 서비스하고 있다.
MS 아시아연구소장 샤오우엔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2억 명 이상이 MS
챗봇을 일상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코타나 서비스를 기업의 챗봇과 자동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의 대화’라는
비전도 공개했다.
지난 6월 16일(현지시간)에는 iOS 채팅앱 ‘완드(Wand)’를 만드는 완드 랩스도 인수했다.
완드 개발팀원은 MS 지능형 챗봇과 가상비서를 개발하는 업무를 맡는다고 밝혔다.
미국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킥(실사용자 8000만 명 중 10대 사용자가 50%
차지) 메신저는 아예 ‘Bot Shop’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H&M을 포함해 화장품 업체
세포라 등 50여 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한국 메신저, 뒤늦게 챗봇 시장에 뛰어들어
독일의 텔레그램은 지난해 6월 챗봇 플랫폼을 발표했다.
채팅 창에 있는 검색창을 통해 게임·날씨·뉴스·음악 같은 다양한 형태의 챗봇 서비스를
검색 후 이용하면 된다.
구글은 행아웃의 부진을 떨쳐내기 위해 챗봇 메신저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한국은 챗봇의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는 챗봇 시장에 진출할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카카오의 옐로우아이디 서비스가 아직까지는 챗봇 역할을 하고 있다.
카카오도 진화 단계이므로 소비자의 니즈가 커지면 챗봇 서비스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의 옐로우아이디는 기업과 소비자의 1:1 채팅이 가능한 서비스다.
친구로 추가하면 채팅으로 주문을 하거나 예약을 할 수 있다.
다만 AI 기능이 접목되지 않았다.
사람이 직접 채팅으로 주문과 예약을 받는 셈이다.
효율성면에서 챗봇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라인은 일본에서 택시를 예약할 수 있는 챗봇을 운영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번역 외에는
별다른 챗봇 서비스가 없다.
라인 관계자는 “올 하반기 기업들이 챗봇을 이용한 콜센터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별다른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챗봇 시대 대응이 늦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인공지능 기술의 한계로 챗봇 확산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선보인 인공지능 챗봇 ‘테이(Tay)’가 일부 사용자의 세뇌로 욕설과
성차별 발언을 쏟아내면서 16시간 만에 운영을 중단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자동 메시징 기능인 ‘봇’은 MIT 조셉 와이젠바움 교수가 처음 만들었다.
1964년 와이젠바움 교수는 인공지능 연구 결과를 응용해 인공지능 대화 프로그램
엘리자(ELIZA)를 개발했다.
사람에게 주관식형 질문을 하고, 상대가 답변을 하면 엘리자가 다시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봇은 PC 시대에도 이어졌다.
야후 메신저나 MSN 메신저 등에서 채터봇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2002년 MSN 채터봇인 ‘심심이’는 한국인에게도 봇을 친숙하게 한 서비스였다.
SK텔레콤에서 휴대폰 서비스로 제공한 ‘일미리(1mm)’는 현재의 챗봇과 유사했다.
대기 화면 챗봇으로 휴대폰을 열면 사용자에게 말을 걸어 정보를 제공했지만, 비싼 정보
이용료 문제로 활성화 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