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장 염려하지 말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6:25)
- 산상설교는 이론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생활의 실제를 다루고 있다. 19-24절은 주로 땅에 보물을 쌓고 비축하며 이 짓을 하기 위해 사는 삶의 위험을 강조하며, 25-34에서는 땅에 보물을 쌓는 것에 대해서라기보다 이것들에 대한 우리의 염려와 근심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여기서 사탄과 죄의 무서운 교활성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사탄은 여러분이 땅에 보물을 쌓든, 세상 일들에 근심을 하든, 중요하지 않다. 사탄이 관심을 갖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에게가 아니라 이것들에 있게 해야 한다는 데 있다. 감사하게도 우리 주님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명백한 교훈을 주신 것이다. 주님은 경고를 계속하시면서 그것을 우리의 상식 앞에 내어놓으신다. 우리에게 이치를 논하며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러므로’ 란 말씀으로 시작하시면서 세 번씩 거듭 말씀하셨다.
25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참된 교사는 한 번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여 반복할 필요가 있음을 항상 아신다.
- ‘염려하지 말라’ - 이 말은 우리를 나누고 분리하고, 어지럽히는 어떤 것을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된 단어이다. 즉 이것은 ‘성한 눈’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종의 이중적 시각, 두 방향에서 하나를 동시에 보는 것, 그러므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눅10:38-42절에서 주님은 마르다에게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한다”라고 꾸짖으셨다. 마르다는 ‘마음이 혼란해졌던 것’이다. 이것이 이 표현의 의미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땅의 일들에 대해서 염려하고 노심초사하며, 삶의 주된 목적에서 빗나가는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은 여기서 우리가 이런 것들을 조금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교회사에는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어떤 의미에서든지 미래를 생각하지 말아야 하며 미래를 위해 조금도 준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은 ‘염려하지 말라’란 의미가 아니다. 주님께서는 새와 백합화를 예로 들어 말씀하신다. 새들이 나무 위에 앉아 음식이 자동적으로 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새들은 음식을 위해 어떻게 바쁘게 찾아 다니는지, 백합화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양분을 어떻게 빨아올리는가를 보라. 주님은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둬 곡간에 들이는 일을 결코 정죄하지 않으신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한다. 이것은 삶의 기본 원칙이다.
바울은 빌4:6-7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한다. 이것은 나태에 대한 금지명령이 아니라 근심과 염려에 대한 경고, 이생에서 항상 우리를 공격하는 이 염려하는 성벽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우리는 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것에 굴복할 때가 허다하다. 이 세상에서 근심하며 괴로움을 당하며 염려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더 자연스러운 일은 없어 보인다. 평생 이것들에게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다.
-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주님은 먼저 법을 설정하시고 난 후 그 법을 지켜야 할 이유를 말씀하신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고 염려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삶을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육체를 통해 살고 있다. 주님은 우리의 목숨이나 우리 몸의 의복을 우리가 염려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주장하신다. 이것은 매우 철저한 명령이다. 이것은 우리의 생활의 어떤 면들만이 아닌 우리 삶 전체, 곧 우리의 건강, 우리의 기력, 우리의 성공, 기타 우리에게 일어나려는 것, 어떤 형태 어떤 모양으로든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 주님은 명령을 주시고 난 다음 이것을 준수해야 할 이유를 말씀 하신다. 주님은 너희가 근심하기 전에 이것을 먼저 생각해 보아라. 너희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얼마나 잊기를 잘하는가? 또 주님은 너희가 근심하고 염려하는 너희 생명은 어디서 왔느냐? 라고 물으신다. 그 답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순간 우리가 살아있다는 바로 그 사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고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보다 큰 선물인 목숨을 선물로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갑자기 자신을 부인하여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고 지속시킬 수 있도록 하시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추수하여 곡간에 들여야 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람이 그 목숨을 위해 정해 놓으신 일들을 해야 하게 되어 있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주께서 하시는 말씀은, 갑자기 목숨을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못하기라도 할 듯 염려하고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일은 결코 내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생명을 주셨다면 내 생명이 지속되도록 함께해 주실 것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우리들 대다수에게 주된 문젯거리는 우리가 중요한 원칙들을 잊는다는 것이며, 특히 이생에서 누리는 것들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이 사활로 중요한 원칙을 망각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생명의 선물에 대해서 하나님께 얼마나 자주 감사하고 있는가? 생명은 어디서 오는가? 주님께서 여기서 가르치시는 것은 생명과 존재와 선물로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 관심을 가지신다.
생명과 음식과 생존을 선물로 주시고 우리에게 주신 몸의 신비와 경이를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날이 하루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들은 오직,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것을 인식하는 데 실패하면 우리는 다른 모든 것에서도 실패할 것이다.
- ‘믿음이 적은 자들아’ 우리의 믿음은 막연한 원칙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님은 성경적 인간관과 생활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될 실례들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고 있는가를 보여주시는 데 있다. 주님은 이것이 사실임을 너희가 판에 박은 듯이 보지 못함은 어째서이냐? 라고 물으신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다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의중에는 모든 생명을 위한 계획이 있다. 이 세상의 우리의 삶을 결코 우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위한 계획과 목적이 있으심과, 그 목적이 수행될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숨과 목숨의 유지에 대해 결단코 염려해서는 안 된다. 폭풍우 한 가운데서도 결코 염려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리 목숨과 몸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이 올바른 개념을 갖는다면 이런 것은 없어질 것이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개개인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은 확정되어 있으며 또한 확실한 것이다. 이것은 수십 세기를 일관되어 온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이다.
이것이 히브리서 11장에 서술된 위대한 신앙의 영웅들의 신앙이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았으나,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아시며 하나님이 떠맡으신다’라고 하였다. 그들을 낳으시고 그들을 위해 큰 뜻을 가지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거나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는 이 최종적인 확신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그들의 목적이 완성되기까지 하나님께서 확실히 그들의 모든 여정을 둿받침하며 인도하실 것이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이것을 철저히 토론해 보고, 중요한 원칙들로 시작하여 필연적인 추론을 도출해 보라. 이렇게 하는 순간 근심과 염려와 걱정은 사라질 것이며, 여러분은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서 영원한 처소를 향하여 평화롭고 고요하게 나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