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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3학기 졸업생 이영옥입니다.
초기불교의 수행방법인 위빠사나 명상의 길로 안내합니다.
광주에는 구 대동고등학교 건너편에 마하연 선원에서
미얀마 에서 공부하고 오신 뒤 많은 제자를 기르신 목우 스님이 지도하고 계십니다.
모든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서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관심있는 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마하연 선원 안내
위치 : 광주 남구 주월동 구 대동고 건너 편 엘리트 학생복 3층
전화 : 676-2840
지도법사 : 목우 스님
◈ 위빠사나 수행의 기초
(1) 여덟 가지 고귀한 길
(2) 수행자를 위한 예비적인 가르침
(3) 위빠사나란 무엇인가?
(4) 네 가지 요소에 대한 마음 챙김
(5) 정신적인 상태와
감정적인 상태에 대한 마음 챙김
(6) 침묵 속의 알아차림
수행자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현상을 깨달았을 때, 이는 곧 그가 괴로움의 진리를 깨달았음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가 제거되어, 수행자는 괴로움이 소멸해버린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1) 고귀한 여덟 가지 길(八正道)
(깨달음을 얻는) 그 순간, 그는 고귀한 여덟 가지 길을 완전하게 갖추게 됩니다.
1. 바른 이해(正見 ; Sammaa-di.t.thi)
2. 바른 사유(正思 ; Sammaa-sankappa)
3. 바른 말(正語 ; Sammaa-vaacaa)
4. 바른 행위(正業 ; Sammaa--kammanta)
5. 바른 생계(正命 ; Sammaa-aajiiva)
6. 바른 노력(正精進 ; Sammaa-vaayaama)
7. 바른 마음 챙김(正念 ; Sammaa-sati)
8. 바른 마음 집중(正定 ;Sammaa-samaadhi)
수행자가, 정신적 육체적 과정이라는 수행의 대상에 대해서 폭넓게(large extent) 마음을 집중시킬 수 있을 때부터, (비록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이 고귀한 여덟 가지 길을 닦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발의 움직임에 마음을 집중시킬 때, 그는 마음으로 노력을 기우려야만 합니다. 이 마음의 노력이 ‘바른 노력(正精進 ; Sammaa-vaayaama)’입니다. 이 마음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그는 마음을 집중시킬 수 있게 되고 따라서 그는 발의 움직임에 제대로 마음을 챙길 수 있게 됩니다. 이 마음 챙김이 ‘바른 마음 챙김(正念 ; Sammaa-sati)입니다.
왜냐하면, 이 마음 챙김에 의해서, 정신적 육체적 과정에 대한 바른 이해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발의 움직임에 집중해 있을 때, 마음은 한 순간 동안 그 대상에 집중하게 된다(刹那三昧). 하지만 마음집중이 지속되어 끊어짐 없고, 더욱 강해지고, 더욱 깊어지게 되면, 그 마음집중이 ‘바른 마음집중(正定 ;Sammaa-samaadhi)’입니다.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 마음이 헤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수행자가 많은 노력을 기우리더라도, 처음에는 마음이 발의 움직임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때, 발의 움직임에 대한 마음 챙김과 함께 생겨나는 하나의 마음 상태가 있어서, 마음을 수행의 대상인 발의 움직임으로 인도합니다. 수행의 대상으로 마음을 인도하는 이 마음 상태가 ‘바른 사유(正思 ; Sammaa-sankappa)’입니다.
‘바른 사유’의 기능은 수행의 대상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수행의 대상인 발의 움직임에 마음은 잘 집중하게 됩니다. 그때, 마음은 육체적인 움직임의 과정의 참된 본질로 꿰뚫고 들어가게 되어, 자연스런 과정으로서의 (발의) 움직임에 대한 이 앎 또는 이 이해가 ‘바른 이해(正見 ; Sammaa-di.t.thi)’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발의 움직임에 마음을 챙길 때, 고귀한 여덟 가지 길의 다섯 가지 정신적인 요소를 닦아온 것이 됩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바른 노력 (正精進 ; Sammaa-vaayaama)
2. 바른 마음 챙김 (正念 ; Sammaa-sati)
3. 바른 마음 집중 (正念 ; Sammaa-samaadhi)
4. 바른 사유 (正思 ; Sammaa-sankappa)
5. 바른 이해 (正見 ; Sammaa-di.t.thi)
이 다섯 가지 정신적인 요소들은, 마음-몸의 과정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마음 챙기는 일로 모두 귀결됩니다. 마음 챙김 수행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잘못된 말, 잘못된 행위, 잘못된 생계를 삼가게 됩니다. 잘못된 말을 삼가는 것은 바로 ‘바른 말(正語 ; Sammaa-vaacaa)을 뜻합니다.
잘못된 행위를 삼가는 것은 바로 ‘바른 행위(正業 ; Sammaa--kammanta)를 뜻합니다. 잘못된 생계를 삼가는 것은 ’바른 생계(正命 ; Sammaa-aajiiva)를 뜻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모든 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과정에 대해서 마음 챙기고 있는 동안, 고귀한 여덟 가지 길이라는 여덟 가지 정신적인 요소가 모두 갖추게 됩니다. 우리가 고귀한 여덟 가지 길을 닦아나갈 때, 우리는 고귀한 여덟 가지 길 가운데 하나의 요소인 바른 이해(正見)의 힘으로 잘못된 견해(有身見 또는 我見)를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행자가 첫 번째도(道)인 수타원도에 들어갈 때, 그는 고귀한 여덟 가지 길(八支聖道) 즉,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게 하는 도의 진리(道言帝; Magga-sacca)를 완전하게 갖추게 됩니다. 이것이 정신적 육체적 과정에 대해 그 참된 본질에서 마음 챙김을 닦는 것에 의해서,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방법입니다.
(2) 수행자를 위한 예비적인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세 가지 익혀야 할 것(三學)이 있습니다.
도덕적인 행위(戒)를 익히는 것
마음집중(定)을 익히는 것, 그리고
지혜, 통찰 또는 깨달음(慧)을 익히는 것
도덕적인 행위를 지켜나갈 때, 그것은 말과 행위를 삼감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재가자의 경우에는 최소한 5계 또는 8계를, 상가(승려)의 경우에는 227계 또는 별해탈(別解脫 ; pa.timokkha)이라는 지켜야 할 규범을 지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온전치 못한 (unwholesome ; akusala : 不善) 행위와 말을 삼갈 때, 이 계들을 온전하게 지니는 것입니다.
5계를 지닐 때, 우리는 살생, 도둑질, 잘못된 성행위, 거짓말 그리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어떤 종류의 술이나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첫 번째 계인 살생을 삼간다는 것은, 온전치 못한 행위를 피하는 것을 뜻합니다.
두 번째 계인 도둑질과 소유자가 주지 않는 물건을 불법적으로 취하는 것을 삼간다는 것도, 온전치 못한 행위를 피하는 것을 뜻합니다.
세 번째 계와 다섯 번째 계인 잘못된 성행위를 삼가는 것과 술을 마시는 것을 삼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온전치 못한 행위를 피하는 것을 뜻합니다. 네 번째 계인 거짓말을 삼가는 것은, 잘못되고 온전치 못한 말을 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온전치 못한 말과 행위를 피한다면, 우리는 계(戒 ; silla)를 완전하게 지니게 될 것입니다.
집중수행 기간 동안에는, 8계를 지녀야만 하는데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보다 많은 시간을 수행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의 계는 오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음식을 먹는 것을 삼가는 것입니다. 이 시간 동안에 어떤 종류의 음식도 삼가야만 하지만, 꿀과 주스 그리고 레몬주스와 같은 과일 주스는 먹을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춤추고, 노래하고, 음악을 연주하거나 듣는 것 그리고 꽃이나 향수 등을 사용해서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을 삼가야만 합니다.
여덟 번째 계는 높고 사치스러운 침구를 삼가는 것입니다.
8계 가운데의 세 번째 계는, 단지 잘못된 성행위가 아니라, 모든 성행위를 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행위들을 피함으로써, 여러분의 말과 행위는 청정해집니다. 이것이 집중수행 기간 동안에 여러분이 지녀야만 할 8계입니다.
8계를 지니는 것은 도덕적 행위의 정화(戒淸淨 : silla-visuddhi)를 의미합니다. 계청정은 수행자가 수행을 하면서 향상을 이루기 위한 선행조건입니다. 도덕적인 행위(戒)가 청정해졌을 때, 절대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죄의식이 없을 때,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따라서 그는 어렵지 않게 마음집중(定)을 얻게 될 것이며, 그 다음에 꿰뚫어보는 지혜(慧)가 생겨날 것입니다.
(3) 위빠사나란 무엇인가?
위빠사나(vipassanaa)는 두 말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하나의 법(Dhamma)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위(vi)'라는 말은, 마음과 몸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 불만족 또는 괴로움, 무영혼, 무아 또는 에고가 없음을 말합니다. ‘빠사나(passanaa)'라는 말은, 바른 이해 또는 깊은 마음집중을 통한 깨달음(realization), 또는 마음(名 ;naama)과 몸(色 ; ruppa)의 세 가지 특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뜻합니다. 위빠사나 수행 또는 마음 챙김 수행을 할 때, 그 목적은 현상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 고, 무아를 깨닫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의 세 가지 특성을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탐욕, 욕정, 욕망, 갈망, 분노, 악의, 질투, 아만, 혼침과 수면, 슬픔과 걱정, 들뜸과 회한 등과 같은 온갖 번뇌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번뇌들을 없애버렸을 때, 우리는 해탈 또는 괴로움의 소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번뇌들 가운데 어떤 것이라도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경험할 것임에 분명합니다. 번뇌는 괴로움의 원인이기 때문에, 번뇌가 제거되어 버릴 때, 온갖 괴로움도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4) 네 가지 요소(四大)에 대한 마음 챙김
수행을 하는 동안에 우리는 하나하나의 그리고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과정들을 그것들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관찰해야만 합니다. 수행(坐禪의 경우)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우리는 대장로(大長老) 마하시 사야도의 가르침에 따라서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 역주 : 호흡에 동반된 복부의 안쪽으로의 움직임과 바깥쪽으로의 움직임을 한국어로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명명하는 데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행자도 있습니다. ‘일어남, 사라짐’이라는 용어는 영어의 ‘rising, falling'의 번역입니다. 실제로 복부가 일어난다는 표현과 사라진다는 표현보다는 ’불러옴, 꺼짐‘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릅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관찰대상에 이름을 붙여가면서 관찰을 하는 이유는 집중력의 향상과 대상에 대한 분명한 파악을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실제로 자신의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 어떤 용어를 쓰던지 그 대상을 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면 됩니다.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하던지 ‘불러옴, 꺼짐’이라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영어로 ‘rising, falling'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명칭을 붙이는 것은 수단입니다. 자기에게 맞는 수단을 잘 사용해서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목적을 이루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은 [대념처경](Mahaa-satipa.t.
thaana Sutta)에 따른 것입니다. 이 경에는 네 가지 요소에 대한 마음 챙김에 관한 부분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붓다는 우리들에게 네 가지 요소(땅의 요소[地界 ; pathavi-dhaatu), 물의 요소[水界 ; apo-dhaatu), 불의 요소[火界 ; tejo-dhaatu), 바람의 요소[風界 ; vayo-dhaatu)가 발생할 때, 그것들에 대해서 마음을 챙기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네 가지 요소뿐만 아니라, 모든 정신적 육체적 현상들도 관찰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땅의 요소(地界)가 실제적인 땅(地)이 아니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대신에 그것은 땅의 요소의 참된 본질을 가리킵니다. 땅의 요소란, 딱딱함(hardness), 부드러움(softness) 등과 같은 그것의 개별적인 특성에 주어진 명칭입니다.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딱딱함, 부드러움이 땅의 요소의 개별적이며, 독특한 특성입니다.”따라서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몸의 어느 부분에서 딱딱함이나 부드러움을 자각했을 때, 그것은 여러분들이 땅의 요소의 참된 본질 또는 개별적인 특성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물의 요소(水界)는 실제적인 물(水)이 아니라, 그 요소의 개별적인 특성에 주어진 명칭입니다. 유동성과 팽창성이 물의 요소의 특성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몸의 어느 부분에서 유동성이나 팽창성을 자각했을 때, 그것은 여러분들이 물의 요소를 자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의 요소(火)는 실제적인 불(火)이 아니라, 그 요소의 독특한 특성을 말합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불의 요소의 독특한 특성입니다.
바람의 요소(風界)도 마찬가지로 바람(風)이 아니라 바람의 요소의 독특한 특성에 주어진 명칭입니다. 그 특성이란, 여러분 몸의 어느 부분에서의 움직임, 동작, 떨림 또는 지탱해주는 힘(support)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 몸의 어느 부분에서 움직임, 동작, 떨림 또는 지탱해주는 성질을 느끼고, 자각하고, 바르게 이해할 때, 그것은 여러분들이 바람의 요소를 자각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 요소에 대한 마음 챙김입니다.
일체지자이신 붓다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떠한 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과정도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만 합니다.”라고. 우리가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우리의 마음과 몸의 과정에 마음을 모을 때, 처음에 어느 대상을 관찰해야 하는가 모를 때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장로 마하시 사야도는 수행자들에게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과 함께 수행을 시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숨을 들여 마실 때, 복부는 불러오고, 숨을 내쉴 때는 복부는 꺼집니다. 우리는 이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복부가 불러올 때, 우리는 그것을 ‘일어남’이라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복부가 꺼질 때, 그것을 ‘사라짐’이라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복부의 안쪽으로의 움직임과 바깥쪽으로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이러한 바람의 요소의 독특한 특성을 완전하게 자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때, 수행자들은 사람이니, 존재니, 영혼이니 하는 잘못된 견해를 깨버릴 수 있습니다. 수행자들은 복부의 안쪽으로의 움직임과 바깥쪽으로의 움직임 또는 복부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움직임을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하고 마음속으로 알아차리면서 관찰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챙기는 수행을 하는 동안에, 알아차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큰 소리가 들릴 때, 여러분들은 ‘들음, 들음, 들음’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여러분은 그 (시끄러운) 소리를 이겨낼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많이 ‘들음, 들음’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소리를) 알아차리는 일을 그만둘만하다고 생각될 때, 여러분은 일차적인 대상인 복부의 움직임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어떤 때에는 소리가 1~2초 동안 지속될는지도 모릅니다. 소리가 사라져버렸을 때, 여러분들은 평상시 알아차려야 하는, 일차적인 대상인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자연스럽게 되돌아갈 것입니다.
(5) 정신적인 상태와 감정적인 상태에 대한 마음 챙김
여러분이 행복함이나 불행함을 느낄 때, 또는 유감스러움이나 슬픔을 느낄 때, 이러한 감정적인 상태도 있는 그대로 ‘행복, 행복’, ‘불행, 불행’ 또는 ‘슬픔, 슬픔’하고 마음으로 알아차리면서 관찰해야 합니다. 감정적인 상태가 사라지고 난 후, 알아차리는 마음은 평소 관찰해야 하는 대상인 복부의 움직임으로 자연스럽게 되돌아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일차적인 알아차림의 대상을 놓쳐 버리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며 일이나 가족, 친척들에 대해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복부의 움직임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헤매는 생각을 관찰하면서, 마음으로 ‘생각, 생각’하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 점에서 여러 분은 아주 주의를 기우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정신적인 상태나 감정적인 상태를 관찰할 때, 알아차리는 마음은 활기 있고, 주의 깊고, 정확하고, 어느 정도 민첩해야만 하는데 그래야만 그 알아차리는 마음이 지속적이고, 끊어짐이 없고, 항상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리는 마음이 강해질 때, 생각이나 관념 또는 생각하는 마음은 저절로 멈추어버립니다. 그 때, 알아차리는 마음은 더 이상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평상시 알아차려야 하는 복부의 움직임으로 되돌아옵니다.
(6) 걷는 수행(行禪)
붓다는 걷고(行), 서고(住), 앉고(坐), 눕는(臥) 네 가지 동작에 대해서 마음 챙김을 지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걷고 있을 때, 그 동작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야 합니다.
서 있을 때, 그 동작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야 합니다.
앉아 있을 때, 그 동작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야 합니다.
누워 있을 때, 그 동작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야 합니다.
이처럼 모든 자세에 대해서 마음 챙김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수행자들이 걷는 수행(行禪)과 앉는 수행(坐禪)을 번갈아가며 실행하라고 지도합니다. 그래야 그들은 보다 쉽게 마음을 집중할 수 있게 되어, 걷는 과정과 앉는 과정에 대한 꿰뚫어 보는 앎(insight)을 얻게 됩니다.
매번 (좌선을 하기 위해) 앉기 전에는 걷는 수행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걷는 수행에서의 발의 움직임은 앉아 있을 때의 복부의 움직임보다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수행이 점차 향상되면, 그때는 걷는 수행보다도 앉는 수행을 오랫동안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위빠사나 앎(Insight knowledge)의 제 6단계에 이르게 되면, 걷는 수행보다 앉는 수행을 더 오래 하게 될 것입니다. 앉는 수행을 2~3시간 동안 하고 걷는 수행은 1시간 정도로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단계가 되면, 여러분의 마음집중은 정신적 육체적 현상의 소멸을 자각하는데(名色消滅智) 충분할 만큼 좋고, 깊고, 강합니다.
하지만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에는 좌선보다 행선을 오래할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는 없더라도 오랫동안 걸을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좌선할 때보다는 행선할 때, 어느 정도 마음집중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선 여러분은 발걸음을 알아차리면서 걷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왼발을 내딛을 때, ‘왼발’하고 알아차립니다. 오른발을 내딛을 때 ‘오른발’하고 알아차립니다. 이런 식으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또는 ‘걸음, 걸음’하고 알아차립니다. 명칭 붙이기나 이름 붙이는 것은 발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마음만큼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발의 움직임에 대한 알아차림, 예리한 알아차림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걷는 수행을 할 때, 눈을 감아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편안하게 보통 상태로) 눈을 반개해야 하며, 여러분의 발 앞의 1~1.5미터 전방의 바닥에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머리는 앞으로 너무 수그려서는 안 됩니다. 고개를 너무 수그리면, 목과 어깨에 바로 긴장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두통이나 어지러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발을 바라보아도 안 됩니다. 만일 발을 바라보면 발의 움직임에 제대로 마음을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보게 되면 마음은 눈과 함께 움직여서 여러분의 마음집중은 깨지고 맙니다. 누군가 여러분 앞으로 다가오거나 지나가고 있다고 느낄 때, 여러분은 쳐다보려고 하는 경향이나 욕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쳐다보려고 하는 경향이나 욕구는 즉시 관찰되어야 하면 ‘경향’ 또는 ‘바라보려고 함’하면서 사라질 때까지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한 경향이나 욕구가 사라지면 주위를 둘러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마음집중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주변을 둘러보지 않도록 주의해서 여러분의 마음집중을 지속시켜 나가고, 걷는 수행을 통해서 마음집중을 이루는데 향상을 이루기 바랍니다. 손의 위치를 바꾸어야 하겠다고 느꼈다면 바꾸어도 좋으나 마음을 챙기고 바꾸어야 합니다.
(손의) 자세를 바꾸려고 하는 의도가 생겨났을 때, 여러분은 (먼저 그 의도를) ‘의도함, 의도함’이라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아주 천천히 자세를 바꾸면서, 자세를 바꾸는 행위에 따르는 모든 행위와 움직임은 관찰되어져야 합니다. 어떤 움직임이나 행위에 대해서도 마음 챙김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손의 자세를 바꾸고 난 후, 여러분은 다시 전처럼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좌선의 경우에도 역시 어떤 이들은 적어도 45분 동안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초보자들은 최소한 20~30분 정도는 자세를 바꾸지 말고 앉아 있어야 합니다. 만일 초보자가(주로 다리의 어느 부분에서) 생겨난 심한 통증을 참을 수 없을 경우에, 그는 자세를 바꾸었으면 하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자세를 바꾸기 전에, 먼저 자세를 바꾸려고 하는 의도를 ‘의도함, 의도함’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자세를 바꾸는데 따르는 모든 동작과 행위를 알아차리면서, 아주 천천히 자세를 바꾸어야 합니다. 자세를 다 바꾸었으면, 다시 일차적인(알아차림의) 대상인 복부의 움직임으로 돌아와서 평상시처럼 알아차려야 합니다.
(7) 침묵 속의 알아차림
집중수행기간 동안에, 어떤 행위나 움직임도 빠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가능한 만큼 모든 행위나 움직임을 천천히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매 순간의 몸의 움직임이나 행위에 마음 챙김을 적용시킬 수 있게 됩니다. 가정에서는, 이러한 모든 행위와 움직임을 천천히 할 필요는 없으며, 평상시대로 하되 마음을 챙겨서 관찰해야 합니다. 모든 행위와 움직임은,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이 일상적인 마음 챙김입니다.
집중수행기간 동안에는, 모든 행위와 움직임을 천천히 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과 몸의 모든 행위들에 대해 마음 챙기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몇 마디의 말을 제외하고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몇 마디의 말도 천천히 부드럽게 해야 하며, 이 말 때문에 다른 수행자들의 마음집중이 방해받아서는 안 됩니다.
*** 역주 : 집중수행 동안에 마음 챙김이 끊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수행과는 관계가 없는 잡담은 결정적으로 마음 챙김에 단절을 초래합니다. 수행과 관계가 있는 말(법문이나 법에 대한 토론)도 일정한 시간(길어도 1시간 정도)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해야 하며, 말을 하는 당사자는 최대한 마음 챙김을 지니고 해야 합니다.
부득이 말을 하게 될 때에는 자신의 입술의 움직임에 마음을 챙기면서 말을 해야 합니다. 언어활동의 배경에는 의식의 흐름이 있지만, 이 의식의 흐름에 마음을 챙기기는 어렵기 때문에, 육체적인 현상인 ‘입술의 움직임’을 마음 챙김의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상당한 마음 챙김의 힘이 있어야 자신의 입술의 움직임을 알아차려 가면서 고요히,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술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때에는 단지 입술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면서 말을 하면 됩니다. 입술의 움직임에 명칭을 붙이는 일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일들을 아주 소리가 적게 또는 아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신을 끌거나 몸이 축 쳐져 걸으면서 소리를 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발의 움직임에 마음을 챙기고 있다면, 걸으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마음을 챙겨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과 몸의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라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 모든 먹는 행위와 동작에 대해서 마음을 챙겨야 합니다. 목욕을 할 때, 옷을 입을 때, 물을 마실 때, 여러분은 모든 행위를 천천히 해야 하며, 그 움직임을 관찰해야 합니다.
앉을 때에도, 모든 앉는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아주 천천히 앉아야 합니다. 일어날 때에도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아주 천천히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정신적 또는 육체적 과정을 그 참된 본질에서 자각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과정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즉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생겨났다가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는 정신적 육체적 과정들의 이러한 참된 본질을 자각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행위와 움직임을 천천히 해야 합니다.
마음 챙김(念)과 마음집중(定)은 지혜(慧)가 펼쳐지기 위한 길을 장엄해줍니다. 마음 챙김이 이어질 때, 마음집중은 자연스럽게 더욱 심화됩니다. 마음집중이 더욱 심화될 때, 지혜는 저절로 펼쳐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끊어짐 없고 지속적인 마음 챙김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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