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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대하여 전체의 대강?
먼저 내 생활의 변명
퇴직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하고 싶었던 일을 천천히 해나가려고 마음먹었었다.
퇴직을 하고 제일순위에 둔 것은 여유이다. 가장 먼저 건강을 위하여 밥을 천천히 먹는 것이다.
여유를 부리면서 밥알을 한 알씩 세어가면서 먹어 보려고 하지만 습관이 되어 천천히 먹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마음만 바빠서 언제나 식사시간은 10분도 채 안되었던 것 같다. 실제로 바쁘기보다는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돌아보면 그리 바쁜 것도 없었는데 그냥 그래야 마음이 편했었던 것 같다.
그 다음은 책을 읽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직에 있을 때, 좋은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철학이 있는 선생님이 되었어야, 학생들도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좋은 삶의 태도를 배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처리할 사무가 있고, 가르칠 교과서 내용연구가 있어 조급한 마음에 책을 읽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철학책을 읽는 다는 것은 내게 무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좋은 철학서적은 교사가 꼭 읽어야만 될 책들이었지만, 현직에서 근무하면서 어려운 철학책을 읽으며 여유를 부리기에는 시간과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어려운 철학책이라도 한 페이지를 가지고 사전도 찾고 인터넷도 뒤지고 씨름하면서 하루를 보내도 여유가 있으니 좋다.
평소 많이 들어본 말이고 친구들 간에 잘난 체 한다거나 아는 체하면 쓰는 말,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이다. 스스로에게 말하면 “나 자신을 알라”이겠지만 말이다. 평소 독서량이 많지 않았던 내가 소크라테스에 대한 책을 직접 접하기는 난생처음 처음이다.
소크라테스(B. C 469~399), 플라톤(B. C 427~347)이 살았던 시대를 역사책에서 찾아보니 우리나라 삼국시대 초기 신라의 내물왕이 즉위했을 때쯤이다. 대략 2,500년 전, 그 시대에 법정과 배심원 재판제도, 토론문화 등 민주주의의 모태가 되는 고대 그리스를 상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나름대로 전체의 대강
● 최초의 고발자들에 대한 변명
소크라테스는 재판관들에게, 훌륭한 어법을 써서 말을 교묘히 꾸면 대는 훌륭한 웅변이라도 “웅변의 힘이라는 말이 진실의 힘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가장 파렴치한 것이다.” 이런 웅변에 기만당하지 말고 진실한가 하는 점에만 귀를 기울이고 판단해 달라고 말한다.
고발자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소장 내용을 요약해보면, ‘소크라테스는 악행을 하는 자이며 괴상한 사람이다. 그는 지하의 일이나 천상의 일을 탐구하고 나쁜 일을 좋은 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위와 같은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친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고 고발내용을 말한다. 또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그가 공중을 비행 할 수 있고, 자연철학을 경멸했다.’는 등 위와 같은 고발 내용을 극장에서 상연 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는 인간에 의해 획득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지혜만을 가지고 있으며, 초인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소피스트들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자기에게 초인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사람들은 거짓을 말하는 것이며, 중상이라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의 가장 친한 친구 카이레폰은 ‘누가 가장현명한가?’에 대해 델포이의 신에게 신탁을 구했는데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이 없다고 무녀가 대답 했다고 합니다. 이때 신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를 자문해 보니 “나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현명하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는 사람들도 그들을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 자신도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현명하지 않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고 했고, 이 때문에 적의를 사서 고발을 당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명성이 높은 사람들은 오직 어리석을 뿐이며, 그다지 존경 받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더 현명하고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시인들은 시에 대하여 작가 자신보다도 더 훌륭한 설명을 했다는 것은 시인들은 지혜가 있어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소질과 영감에 의해 시를 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말을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예언자나 점쟁이 같고 자신의 현명함을 자처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보다 내가(소크라테스) 더 현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장인(匠人)들도 그들은 훌륭한 기술자 이므로 자신들이 모든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지혜를 가리는 결점이라고 말합니다.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그의 지혜가 실은 아무 가치가 없음을 알고 있는 자가 가장 현명하다.” 자기 자신의 무지함을 아는 사람이 현명하다고 말합니다.
나를 따르는 청년들에게 시험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잘못을 나에게 돌립니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일을 저지르게 했다.” “청년들을 부패시키는 극악한 자이다.” “소크라테스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상투적인 비난으로 소크라테스는 ‘천상의 일과 지하의 일을 가르치고 신을 믿지 않으며, 나쁜 일을 좋은 일처럼 보이게 한다’는 등 상투적인 비난을 되풀이 합니다. 바로 이것이 멜레토스는 시인을 대신해서, 아니토스는 장인등과 정치가들을 대신해서, 그리고 리콘은 웅변가를 대신해서, 이들 세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이유입니다.
● 두 번째 고발자 멜레토스에 대한 변명
선량한 사람이며 애국자를 자처하는 멜레토스가 그들(고발자)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소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청년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신앙하는 신들의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을 믿음으로써 최를 범했다’고 소장에 주장하고 있습니다. ‘내가 함께 사는 사람을 타락시키면 나 자신이 그 사람으로부터 손해를 입게 되기 쉽다는 것을 알지 못할 만큼 무지 몽매하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고의로 타락을 시킬 만큼…….’ 그렇다면 나는 청년들의 타락시키지 않았거나 부패시켰더라도 고의가 아니었다면 법률은 비고의적인 범죄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개인적으로 훈계 또는 잘못을 가르쳐 주었어야지 졸지에 처벌하는 자리인 법정으로 나를 끌어냈습니다. 멜레토스는 근거 없이 ‘소크라테스가 해는 돌이고 달은 흙이라고 말을 한다.’며 나를 무신론자라고 주장합니다.(아낙사고라스의 주장) 당시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믿지 않는 것은 큰 죄였나 봅니다.
아낙사고라스는 천체현상을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원인에서 찾으려고 하는 자연 철학자였으며 그 당시 신으로 신앙되고 있던 해와 달을 단지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함으로서 무신론자로 규탄을 받아 추방되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는 신을 믿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을 믿기 때문에 죄가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마술(馬術)을 믿으면서 말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멜레토스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은 자가당착이라고 반박한다.
세상 사람들은 시기와 비방으로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죽었고 자기도 그 때문에 희생하는 한사람이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할 것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하는 위험을 헤아려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일을 하면서 오직 ‘올바른 행위를 하느냐 나쁜 행위를 하느냐’하는 것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킬레우스의 예를 듭니다.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그다지 보람은 없었지만 그는 치욕에 비하면 위험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 했던 것입니다. 아킬레우스는 친구인 파트로클로스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헥토르를 죽여야만 했습니다. 죽음보다는 원수를 갚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죽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현명하지 않으면서 현명한 체하고 신탁에 복종하지 않았다면, 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소환을 당해도 마땅할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혜로움을 가장하는 것이지 진정한 지혜로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최대의 선인지 아닌지를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려운 나머지 죽음이 최대의 악이라고 합니다. 이런 인간에게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확신하는 것은 무지가 아닐까요? 나는 이 나라에서는 신에 대한 나의 봉사 이상으로 위대한 선이 생긴 일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육신이나 재산보다도 영혼의 최대향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청년을 타락시키는 이론이라면 나는 해로운 사람입니다. 아테네 인 여러분, 아니토스에 찬성하든 찬성하지 않든, 또 나를 방면하든 방면하지 않든, 나는 몇 번이고 사형을 당한다 할지라도 나의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을 죽인다면 여러분은 나보다도 여러분 자신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해칠 사람은 없습니다. 멀레토스도 아니토스도 나를 해치지 못합니다. 악인은 자기 자신보다 착한 사람을 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당하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악행을 하는 것은 더 큰 화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신을 위해 변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이 여러분에게 보내준 선물인 나를 처벌함으로써 여러분이 신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여러분에게 변명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정치에 관여했더라면 오래 전에 생명을 잃었을 것이고 아테네 시민이나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는 많은 불법, 부정행위에 정직하게 대결함으로서 여러분이나 다른 대중과 싸우는 행위를 일으킨 사람은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보존하면서 정의를 위해 싸우려면 공인(公人)이 아니라 사인(私人)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가 한번 공직에 있을 때 일입니다. 과두제 밑에서 30명의 집정관이 집권했을 때 입니다. 아르기누사이 해전(아테네가 승전) 때, 폭풍 때문에 전사자의 시체를 수용하지 못한 장군들에 대한 재판을 주제할 때, 위법에 반대한 집행부의 평의원은 오직 자신 나 혼자였습니다. 투옥이나 죽음이 두려워서 부정에 가담하느니 차라리 법과 정의 편에 섰던 것입니다.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써 죽음을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내가 가장 걱정하는 유일한 것은 부정하거나 불경스런 일을 저지르지 것이었습니다. 30명의 집정관의 정권이 일이 있은 직후에 무너지지 않았다면 이일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공직에 남아 종사하면서 항상 옳은 일에 편들고, 정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면 진정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공직자는 정의 편에 서기 보다는 권력의 편에 서야 유리했던 것 같군요.
나는 죽음이 선인지 악인지 잘 모릅니다. 사형이 두려워서 악임이 분명한 처벌을 제안할까요? 징역을 제안할 수도 없습니다. 어째서 감옥에 살아야 하며 옥리(獄吏)의 노예가 된단 말입니까. 내게 추방을 제안한다면 나는 진실로 생에 맹목적인 집착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부족한 점이 있어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것이 말의 부족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후안무치(厚顔無恥)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울부짖고 한탄하는 등 여러분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고, 위험에 직면하더라도 비열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나의 방식대로 말하고 죽는 것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과 법률에 있어서 모든 책략을 동원하여 죽음을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회피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의(不義)를 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나는 죽음에 붙잡혔지만, 나를 고발한 자들은 죽음보다 빠르게 달리는 불의에 붙잡혔습니다. 나는 여러분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받기 위해 떠나지만, 그들도 진리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고 흉악과 부정에 대한 처벌을 받기 위해 떠나갑니다.
● 재판관들에게 경고와 죽음에 대한 견해
나는 나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관 여러분에게 예언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비난하는 자로부터 벗어나려고 나를 죽이지만 여러분 생각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여러분을 비난하는 자는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살해함으로써 올바르지 못한 생활에 대한 책망을 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능하지도 않고 명예롭지 못한 도피법입니다. 가장 쉽고 고상한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여러분 자신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나의 무죄를 인정한 친구들이여, 진실로 재판관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법정으로 오는 도중에 변론 중에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에도,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신탁이 반대표시를 나타내지 않은 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 좋은 일이며, 죽음이 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암시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탁은 반대를 했을 테니까요.
죽음이 선이라는 희망에는 유력한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은 다음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죽음은 허무 상태로서 전혀 감각을 갖지 못하든가, 또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세계로부터 다른 세계로의 영혼의 이동이든지……,
그런데 만일 죽음이 무감각 상태로 어지러운 꿈조차 꾸지 않는 잠과 같은 것이라면 죽음은 뛰어난 소득일 것입니다. 꿈조차 꾸지 않는 숙면한 밤을 보낸 이 하룻밤보다 더 좋고 즐겁게 보낸 주야가 얼마나 되는가를 말해야 된다면, 페르시아 대왕조차도 극히 적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라면 죽음은 소득이고 그렇다면 영원은 단 하룻밤에 집약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이 다른 곳으로의 여행이고, 사람들의 말과 같이 그곳에 고인들이 살로 있다면, 오 나의 친구와 재판관 여러분, 이보다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순례자가 명부(冥府)에 도착해서 이 세상의 재판관이라고 자처하는 자들로부터 풀려나고, 거기에서 재판을 한다고 알려진 미노스 등과 그리고 일생을 올바르게 산 신의 다른 아들들을 발견한다면, 이러한 순례는 분명히 보람 있는 일일 것입니다. 오르페우스, 무사이오스, 에시오도스, 호메로스등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떤 대가인들 못 치르겠습니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몇 번이고 죽고 싶습니다. 그리고 팔라메데스, 아이아스, 그리고 공정하지 못한 재판 때문에 죽은 기타 옛 영웅들을 만나는 일에 비상한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오디세우스, 시시포스 등 그 밖의 많은 영웅들을 실험하고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한다면 무한한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행복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떠도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영원히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재판관 여러분, 죽음을 흔쾌히 여기시고 착한 사람에게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나쁜 일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착한 사람이 한일은 신들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나의 다가오는 최후도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나는 죽어서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좋은 때가 왔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를 유죄판결을 한자와 고발한 자들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좋은 일을 할 의도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나에게 해를 끼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들은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리고 나의 아들들이 덕 이상의 재산을 가졌거나 보잘 것 없으면서 훌륭한체하면 꾸짖어 달라고 한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을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가는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되는 줄은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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