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6장은 백성들의 죄가 어떻게 사해지는 가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며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15-16절)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는데, 염소의 피를 가지고 성막에 들어가서 속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죄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었는데, 피는 성막 안에 들어가서 뿌리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백성이 죄를 지었으면 백성에게 뿌려야 됩니다. 그것도 머리가 죄를 지었으면 머리에다가, 가슴이 죄를 지었으면 가슴에다가, 손이 지었으면 손에다가 뿌려야 이치에 맞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백성은 그대로 놔두고, 물질로 지어진 성막에 들어가서 놋단과 향단과 속죄소 위에 피를 뿌려서 속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백성의 죄가 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백성이 죄를 지으면 성막이 부정하게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지성소를 속죄하라는 말은 지성소가 더러워졌다는 뜻입니다. 왜 지성소가 더러워졌습니까?
백성이 범죄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것은 백성인데 정작 더러워진 것은 지성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성소를 속죄하면 백성이 속죄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 2백만명을 모두 속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막 안의 지성소 한군데를 속죄하면 2백만 백성이 한꺼번에 깨끗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백성과 성막 사이에 놀라운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막은 백성의 마음을 상징하는 구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백성이 지었지만 속죄는 성막에 들어가서 하였고, 그것은 곧 백성을 깨끗케 하는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대리속죄를 가능케 하는 원리이고, 대표속죄를 가능케 하는 원리입니다. 어느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유대교와 기독교 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대리적이고 대표적인 속죄와 성화와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기본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속죄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개인적인 노력으로 거룩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영화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 분께서 속죄되시고, 성화되시고, 영화롭게 되신 하나의 사건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결과물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실제 사건에 동참하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동참함으로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개인적인 수도를 통하여 구원에 들어가는 종교가 아니요, 집단적인 참여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종교인 것입니다.
성서적으로 예를 들겠습니다.
1. 죄사함
성경은 믿는 자들은 <죄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엡1:7)
"받았다[에코멘]"는 말은 시제상으로 현재형입니다. 즉, 우리가 현재 <구속 곧 죄들의 사함을 가지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입니다.
이것은 이미 용서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왜, 언제, 우리가 속죄제물을 드렸습니까? 우리 자신이 각각 자기의 죄를 인해 드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죄사함이 주어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의 피를 바르실 때, 우리의 죄가 사해졌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서 이 은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2. 죽음
성경은 믿는 자들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롬6:6)
"이는 너희가 죽었고..."(골3:3)
이 두 구절에 나오는 "십자가에 못박힌[쉬네스타우로데]"이나 "죽었고[아파다네테]"라는 말 역시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불순종하는 아담에게 속했던 우리가 이미 과거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언제, 아담에게 속한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습니까? 우리가 실제로 죽은 적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과거에 이미 죽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3. 거룩해짐
성경은 우리가 이미 <거룩해졌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거룩함을 얻었노라[헤기아스메노이 에스멘]"는 "현재 거룩해진 상태이다"란 뜻입니다. 다시 말해 죄가 없는 상태, 완전히 깨끗해진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마음 속에 조금도 불의한 생각조차 없어지기 까지 회개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성결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모든 죄를 다 처리하셨기 때문입니다.
4. 영화롭게 됨
성경은 우리가 이미 영화롭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여기에 나오는 "영화롭게 하였다[에독싸센]"는 말씀 역시 과거형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미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영광스런 빛에 휘감겨 본적이 있습니까? 신령한 몸을 입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녀본 적 있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이미 영화롭게 하셨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정오의 햇빛보다도 더 밝은 빛으로 바울에게 나타나신 적이 있으시고, 잠가놓은 문을 열지도 않고 들어오신 적이 있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영화롭게 되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해 놓으신 것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성막과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는 보이는 광야의 성막에서 제물을 드림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속죄를 얻었지만, 신약시대엔 보이지 않는 하늘의 성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를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속죄와 성화와 영화를 얻은 것입니다.
이 관계는 오직 믿음으로 만이 생성되는 관계입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객관적으로 이루어진 사실을 우리 안에서 주관적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늘 성소에서 다 이루어졌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대제사장으로써 완전하고 흠이 없는 제사를 드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늘 성소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진 이것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서도 완전히 이루어지느냐 이루어지지 않느냐하는 것은 오직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진리가 우리 안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하여 우리는 성령님께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도록 가르쳐 주셨듯이 말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첫댓글 진리의 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귀한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름대로 정리를 할려고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설명이 위의 백성의 죄 때문에 부정하여진 회막과 지성소에 뿌리는 짐승의 피의 의식과 다른 부분을 발견하여 질문 올립니다.
히브리서 13:11-12절 말씀입니다.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구약의 제사방식대로라면 예수님의 피는 하늘의 지성소에 뿌려져야 되지 않을까요?
구약의 제물도 성소 밖에서 죽임을 당하고, 피는 지성소에 뿌려졌고(레16:15), 신약의 제물도 성밖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 피는 하늘의 지성소(히9:12)에 뿌려졌습니다.
히9:12의 <성소>를 <지성소>라고 유추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는 지성소에서 속하기 때문입니다.
또 10:19는 우리가 <성소(킹제임스에서는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했는데 그리스도로 인해 지성소가 속죄되지 못했다면 우리가 감히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지성소를 깨끗케 하신 것이 분명하며 이로 인해 우리 마음의 지성소도 정화되었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혼은 여전히 부정하기 때문에
성령과 말씀을 믿음으로 정화시켜 나가야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히브리서9:12-14절의 성경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시려고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피를 흘리신 곳은 성전 밖 골고다 언덕이었는데 이것을 저 같이 어리석은 인간의 지혜로 하늘의 성전에 뿌려진 보혈로 어떻게 연결하느냐입니다. 성령님 도와 주세요.
오늘 히브리서9:11-12절 말씀을 통해 은혜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또 히브리서10:23-26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계시록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말씀과도 연관하여 생각하여 보았으나 충분히 이해를 못했습니다.
성소(혹은 성전)는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건조물(건축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데 반하여 백성은 부정하기 때문에 성역(불가침영역)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백성들도 모두 거룩해졌다면 따로 구별된 성역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성안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모신 성전이기 때문에 구태여 예전에 세상 속에서 보던 성전이 필요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젠 건물 성전이 아니라 사람들을 성전삼고 계시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