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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스칼라좌로 가는 도중의 길거리 풍경이 이채로웠다. 이 곳 이태리 사람들은 담배 꽁초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버린다. 심지어 경찰까지 단속은 커녕 행인과 함께 버리면서 이렇게 해야 청소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고 한다니 참 그들의 사고가 한심하기 보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 COEX 전시장길에서 무심코 담배 꽁초를 버렸다가 단속반원에게 걸려 5만원 의 과태료 처분을 받고, 그 뒤론 담배재만 털고, 꽁초는 항상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는 나로서는 이태리라는 나라의 도시 청소행정이 이렇게 너그러울 수 있는건지 의아하기만 했다. 일주일간 이태리를 여행하면서 환경미화원이 청소 하는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길거리는 노천 카페의 천국이었다. 우리 같으면 이런 노점상을 차리면 당장 철거 반원들한테 경을 칠 일이지만, 이 곳 이태리는 따사로운 햇볕아래서 여유있게 노천카페의 와인을 마시며 담론을 즐기는 시민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
이 노천카페를 지나갈 때 불현듯 나 혼자서라도 덜썩 주저앉아 이 시민들과 와인이라도 한 잔 같이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꾹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어미닭을 쫒아가야하는 병아리 신세인데다, 이태리 말 한마디 못하는 내 주제를 알고 있음이렸다.
쇼핑아케이드인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 (유리돔)에 도착하였다. 전면에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 유명한 듀오모 성당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여행일정상 이 갤러리아와 스칼라좌를 먼저 보고 나중에 두오모를 관람한다는 것이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서로마제국 멸망 후 근 1천여년이 넘게 이태리가 각지의 도시국가 형태로 군웅할거하던 암흑의 중세 이태리를 1861년 통일왕조로 만든 이태리 건국의 아버지다.
이 갤러리아는 밀라노의 두오모와 스칼라 극장사이의 십자형 아케이드 쇼핑몰 이다. 밀라노 사람들은 여기가 바로 밀라노의 응접실이라며 한껏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토리오 에마누엘 2세가 이태리 통일을 이룬 바로 1861년 Giuseppe Mengoni가 설계, 1865-1877년 건축, 설계자인 Giuseppe Mengoni 는 갤러리아 준공 이틀 전에 중앙 철골 돔의 세부 장식을 살펴보다 떨어져 사망 했다는 비극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었다.
중앙 유리돔이 절로 감탄사로 새나올 정도로 극치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었다. 설계자인 Giuseppe Mengoni의 안타까운 죽음은 모르고 보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진정한 예술혼은 때때로 이처럼 죽음을 담보로 하나 보다.
이 갤러리아의 길바닥은 모두 예술적인 문양으로 가득차 있었다. 물론 다 대리석 문양이다. 이 황소 문양은 옛 토리노 도시국가의 문양이란다. 옛날 밀라노와 토리노는 서로 이웃사촌이면서도 사이가 영 안좋았다고 한다. 밀라노가 더 부강한 도시국가였는데도 토리노를 정복하지는 못했고, 토리노는 사사건건 밀라노에 대들고 적대적으로 대하니 밀라노는 토리노를 영 골치아프게 여겼다고 현지 가이드가 설명해주었다.
관광객들은 이 황소의 거시기를 발뒷굼치로 밟고 한바퀴 돌리면 행운이 오고 또 밀라노를 다시 찾게 된다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사실은 토리노를 미워하는 밀라노 사람들이 토리노 사람들을 혼내주는 통쾌한 해학이 숨어있었다.
밀라노에만 이태리 프로 축구 1부 리그 팀이 두 팀이나 있단다. AC 밀란과 인터 밀란이다. 두 팀이 밀라노에서 맞붙을 때도 두 팀의 응원전은 같은 도시 의 팀인데도 거의 광기에 가깝다고 한다.
이런데 하물며 다른 도시 팀과 맞붙을 때는 무슨 설명이 필요 있겠는가? 이태리의 도시간 지역감정의 골은 한국의 영호남 지역감정은 아무 것도 아니란다. 이태리 축구 홀리건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그 악명을 날리고 있지 않는가?
스포르체스코 스폴리짜 가문의 문양임과 동시에 고대 밀라노 국기인 붉은 십자가 문양이다. 이 스폴리짜가의 문양은 현재 이태리의 자동차인 '알파로 메오'의 문양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한다. 난 의문이 들었다. 그럼 현재 스위스의 국기인 이 문양을 스위스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라 스칼라좌 극장(Teatro alla Scala, 널리 알려진 대로는 La Scala)은 밀라노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이다. 이 극장은 1778년 8월 3일에 "Nuovo Regio Ducal Teatro alla Scala"라는 이름으로 살리에리의 L'Europa riconosciuta 공연과 함께 개장되었다 한다.
현재의 건물은 1776년 2월 25일에 소실된 것을 그 후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의 명령으로 산타 마리아 델 스칼라의 교회 자리에 세워졌으므로 그 이름이 지어졌다. 스칼라 극장은 1776년 불에 탔을 때 1778년에 모든 점에서 당시 최고의 조건을 갖춰 개장하였으나 그 후 다시 개수, 제 2차 세계대전 때에는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대전 후의 무대는 당시로서는 최신 최고의 시설을 갖추어 객석도 3,200석이나 되었으며 천장 가까이에 입석도 두어 재건, 1946년 4월에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개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노루마>, <오텔로, <팔스타프>, <나비부인>,<투란도트> 등 여러 명작을 초연하였다 한다. <이상 인터넷 참조>
밀라노와 토리노는 알프스 산맥아래의 이태리 북부지방이다. 이 스칼라좌를 오스트리아 여왕이 다시 개축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스폴리짜 가문의 붉은 십자가가 스위스의 국기로 채택된 역사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였다. 알프스 산맥을 끼고 서로 국경을 분할하고 있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는 중세 유럽시대에 서로 먹고 먹히는 전쟁을 수없이 반복 하였다는 역사를 갖고 있었고, 근세의 나폴레옹도 밀라노를 침공하지 않았던가?
라 스칼라좌는 외견상 보기에는 작아 보였지만, 모든 성악가들이 이 스칼라좌의 꿈의 무대에 한 번 서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조수미도 이곳에서 공연을 가진바 있다 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서 가져온 스칼라좌의 공연사진을 아래에 싣는다. 3,200석 규모의 내부 공연시설이 정말 화려하고 웅장할 뿐 아니라 아름답기 그지 없어보인다.
라 스칼라좌 바로 앞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상을 찾았다. 그는 말년에 프랑스 국왕의 초청을 받아 근 6년간 프랑스에 머물다 여생을 마쳤는데, 이에 대한 보은으로 그가 가장 아끼던 작품인 모나리자를 프랑스 국왕에게 선물하였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를 소장하게 됐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참새가 짹짹거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가지 더 보충 설명할 것은 그는 서자로 태어나 성(姓)을 받지 못했다. 다빈치는 성이 아니고, 빈치(地名)에서 태어난 뜻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정확한 그의 이름은 빈치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인 셈이다.
밀라노는 광범위한 도로·철도·통신망과 좋은 지리적 위치를 갖추고 있는 이태리의 가장 중요한 경제 중심지이다. 기계공업과 섬유공업은 밀라노 주 안에 있으나 도시 자체는 기성복과 디자이너 패션품이 우세하다. 밀라노의 명품 디자이너의 가게들이 세계 패션산업을 리드하고 있다고 한다.
갤러리아 쇼핑몰에 원우들과 함께 들어가 아이 쇼핑을 즐겼는데, 과연 명품의 도시 답게 가방이나, 썬글라스, 시계, 의류들이 최상의 명품들로 진열되어 있었다.
썬글라스 하나에 5백 유로, 그럴듯한 여성용 핸드백은 5,000유로를 호가했다. 썬글라스 하나에 90만원, 핸드백은 900만원이라니, 세계 최고 디자인의 명품 은 이래도 강한 경쟁력을 갖는가 보다.
이태리의 명품은 다 중소기업 제품이고, 세계 1등 브랜드가 270개가 넘는단다. 우린 대기업이 세계 1등 브랜드를 70개 정도를 갖고 있다고 들었다. 그들의 국민소득이 1인당 35,000불이고 마피아의 지하소득까지 합치면 40,000불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우리의 2배 수준이다. 대단한 나라다! 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로마의 건국설화 카피톨리누스언덕의 늑대>
로마가 고대 도시국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무렵, 16대째 왕에 누미토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 동생 아물리우스는 형인 누미토르를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였다. 뒷날의 걱정거리를 없애기 위하여 누미토르의 아들을 살해하고 외딸인 레아 실비아를 베스타 신전의 무녀로 만들어 버렸다.
베스타 신전의 무녀는 죽을 때까지 처녀의 몸으로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그녀의 몸에서 아기가 태어나지 않도록 해 누미토르의 가계를 단절시키고자 하는 음모에서였다. 그런데 그녀가 물을 긷기 위해 수풀에 나갔을 때, 군사와 전쟁을 주관하는 신(神)인 마르스가 인간인 레아 실비아를 범했는데, 그녀는 이로 인해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사내 쌍둥이를 낳았다.
아물리우스는 대노하여 이 쌍둥이를 광주리에 넣어 티베르강에 버렸는데, 광주리는 흘러 내려가다 강기슭에 닿고, 두 아기는 늑대가 주워 젖을 먹여 키웠다. 이윽고 이를 발견한 양치기가 이들을 데려다가 길렀다.
그후 자신들의 근본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아물리우스를 죽이고, 할아버지인 누미토르를 왕으로 복귀시킨 후, 새로운 도시 로마의 건설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형인 로물루스는 팔라티누스언덕에 나라를 세우기를 주장하고, 동생인 레무스는 아벤티누스언덕을 주장하여 서로 싸우던 중 레무스가 살해되고 만다. (이상 로마 문명사에서 인용)
★주ㅡ상기 문양속의 SPQR은 '로마 원로원과 시민'을 뜻하는 라틴어 문구인 'Senatus Populusque Romanus'의 약자이다. 로마 공화정과 로마 제국의 공식 명칭이다. 이 문구는 현재 로마 시의 공식 문장에도 들어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참조)
우리의 단군설화와도 같은 로마 건국에 관한 신화이다. 그러나 설화의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다만 군신(軍神)이 인간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점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인간과 신들이 서로 동격 으로 술도 마시고 싸우기도 했다는 관점에서 어느 정도 수용이 가능하지만 늑대가 어린 인간을 젖을 먹여 키웠다는 것은 어쩐지 좀 허구에 가깝다.
1861년 이태리가 통일되었을 때 밀라노 사람들은 여러 지정학적, 역사적 사실을 열거하며 밀라노가 통일 이태리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지 만, 로마에게 명분상 밀렸다고 한다. 그래도 이들은 자기들의 응접실이나 다름없는 쇼핑아케이드 갤러리아의 길바닥에 로마 건국의 아버지 로물루 스와 레무스 형제가 늑대의 젖을 빨고 있는 문양을 자랑스럽게 새겨 간직 하고 있었다. <끝>
2009.7.3 작성 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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