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불과 삼세불의 명칭에 대하여
삼세불을 최근 삼계불로도 부르고 있는 것에 대해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고 그렇게 불러서는 안된다는 분도 있어 자료를 더 찾아보았다.
이런 논의에 대해 가장 명확하게 쓴 논문은 <조선시대 三世佛像의 연구/심주완>이다. 이 논문에서 삼세불은 과거세, 현재세, 미래세의 부처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이런 시간적 삼세불의 개념은 반야경류, 법화경류, 화엄경류 대부분에서 보이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석가불을 중심으로, 약사불, 아미타불이 나타는데 이것도 삼세불로 명기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시간적 개념에다 공간적 개념이 추가되어 나타난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삼세불에 공간적 개념이 도입된 것에 대한 체계적 연구는 <朝鮮時代 三世佛 圖像에 關한 硏究/황규성>에서 볼 수 있다. 인도 초기에는 법륜 등으로 나타난 부처 옆에 범천과 제석천이 있는 삼존불 형식으로 나타나다가 간다라지방에서 인물상으로의 부처가 나타나면서 삼존불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여래상 옆에 싯달타와 미륵보살이 나타난 삼존불이 나타난다고 한다.
2,3세기에는 보살의 개념인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에서 상구보리를 상징하는 미륵보살과 하화중생을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모신 삼존불의 형식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시간적인 개념은 공간적인 개념으로 발전하면서 1세기경부터는 동서남북은 물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세계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十方三世諸佛의 개념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초기에는 시간개념의 삼세불인 수삼세불竪三世佛(연등불/석가/미륵 또는 다보/석가/미륵)이 조성되다가 수나라(581-618) 때 아미타/석가/미륵의 삼세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전 다보불이나 연등불의 위치에 아미타불이 들어선 것이다. 이후 당나라 때부터는 수삼세불이 급격히 줄고 앞서 말한 아미타/석가/미륵의 삼세불이 많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또한 당나라 때에 들어서 미륵대신 약사불로 조성하여 소위 말하는 횡삼세불橫三世佛(아미타/석가/약사)이 나온 것을 추정하고 있다. 이런 횡삼세불이 정착된 것은 원나라 때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세불이 만들어졌는데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윤을곡마애불에서는 약사/석가/미륵의 삼세불로 추정하면서 수와 횡이 결합된 삼세불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경천사지 석탑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황규성 논문에는 정확하게 수삼세불인지 횡삼세불인지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원나라 때 횡삼세불이 확립되고 경천사지석탑에 원나라 장인이 참가했다고 하니 횡삼세불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미 고려시대 횡삼세불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시대에서는 아미타/석가/약사불을 삼세불로 부르고 있으며 동양삼국에서는 거의 통일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미타/석가/약사불을 삼계불로 부르는 것이 맞는지 또는 언제부터 부르게 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앞서 소개한 두 논문 중 <조선시대 삼세불 도상에 관한 연구/황규성>는 2003년에 발표되었고, <조선시대 三世佛像의 연구/심주완>의 논문은 2008년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황규성 논문에서는 “시간적 개념만이 아니라 공간적 개념까지도 포함되어 시대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여러 명칭이 나오지만 “삼계불三界佛”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심주완의 논문에서는 여러 학자들이 “三世佛, 三佛, 三界佛, 三方佛” 등으로 명명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계불’ 만이 아니라 향의 개념으로 보아 ‘삼방불’로도 부른다고 하고 있다. 즉 학문적으로 ‘삼계불’이라고 인식하고 학문적으로 연구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여러 자료를 보면 인터넷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조금 특별한 불교 이야기>를 쓴 저자인 자현스님도 다른 책을 소개하면서 ‘삼계불’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따라서 ‘삼계불’이란 단어는 이미 어느 정도 보편화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삼계불’이라는 단어가 “맞는 명칭이다.”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이미 내가 언급했던 “잡상”을 “어처구니”라는 부른다는 것도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삼계불’이란 명칭이 지금 어느 정도 우세한 언어가 되었다고 무조건 맞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심주완은 그의 논문 중 <2. 삼세불의 명칭에 대한 제설과 문제점>이라는 별도 항목을 만들어 다루고 있다.
여기서 심주완은 아미타/석가/약사불을 삼계불로 부르는 것은 시간상의 개념인 삼세불과 구별하기 위해 부른 것으로 이 경우 ‘欲界, 色界, 無色界’로 표현되는 ‘三界’와 혼돈될 수 있고, 삼방불로 부르는 것도 경전에서는 ‘四方, 六方, 八方, 十方’ 등으로 사용될 뿐 ‘三方’으로 사용되는 예가 없다고 하면서 그렇게 불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세불’에 대한 명칭은 불교가 발생된 이래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미타/석가/약사불’에 대한 명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나라에 반 복속상태에 있었으므로 불교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마곡사의 탑에서 보듯이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 보이고 경천사지 10층석탑 역시 친원파였던 사람이 만들었고 원라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만든 것이고 원나라 장인이 참여했다는 것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아미타/석가/약사불’를 삼세불이라는 부른 것도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논문에 의하면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록에서 ‘아미타/석가/약사불’을 모두 ‘삼세불’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이후 그렇게 불러왔던 것을 새롭게 자신의 논리를 내세워 ‘삼계불’ 또는 ‘삼방불’로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도 ‘삼계’란 앞서 언급했던 ‘欲界, 色界, 無色界’의 개념이 더 강하므로 '삼계불‘보다는 기왕에 오랫동안 써온 ’삼세불‘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닌가 한다.
추 기
중국에서 삼세불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초기 삼세불이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개념이 명확했다가 아미타/석가/미륵으로 바뀌고 후에 아미타/석가/약사불로 바뀐다. 여기서 신앙대상의 변화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사후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미타불이 과거불보다는 우선 되었던 것이고,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이 고착된 후에는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실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약사여래가 더 필요해 약사여래가 미륵불 대신 자리한 것이 아닌가한다.
그 과정에서 삼세불로 불리던 명칭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게 되어 삼세불이란 이름으로 고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적 개념과 맞지 않다보니 과거/현재/미래의 시간개념이 있는 것을 수삼세불 그리고 현재 공존하는 개념의 삼세불을 같이 있다고 해서 횡삼세불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 수竪란 더벅머리 수로서 아래로 내려간다는 개념이다. ‘竪穴式무덤’이라는 단어도 아래로 수직으로 묻는 무덤을 말하는 것으로 수직적인 시간개념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횡삼세불은 동시적同時的 개념의 三佛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불러오던 것을 대체할 이름을 찾지 못하다보니 앞에 橫자를 붙여 구분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