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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교육감> 곽노현 저자 강연회
우리 교육의 현재와 희망찾기
순천연향 도서관의 이 표어가 마음에 와 닿는다 “부모가 책을 읽을 때 아이들은 부모를 읽는다” 영락없이 읽히고 있는 어른, 부모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아이들은 자란다. 만델라는 “사람은 증오를 태어나면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사회화 과정에서 증오를 배웠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랑도 사회화 과정에서 배울 것이다. 우리가 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갈 것인가? 누군가 강제하는 것 아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 구조와 강제는 우리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만들어내고 강화하고 흔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 사회를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다. 대한민국의 희망지도를 그린다면 13개 진보교육감에 있다. 17개 시도교육청 중에 13군데가 진보교육감이다. 85%의 아이들이 그 책임하에 있다. 13군데 지역 진보교육감들이 지금보다 더 자유와 평등, 우정과 환대가 넘치는 가정과 국가를 만들 수 있는 토대, 혁신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우리 교육의 목표는 지적흥미도를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보수 교육감과 진보 교육감의 차이는 어떤 것으로 평가할 것인가?
첫 번째가 학력이다. 두 번째는 자기주도 학습능력이 높아졌는가이다. 학력말고 뭘로 평가할 수 있나? OECD 중심의 시험 ‘피사’에서 언어, 수학, 과학이 1등이다. 만사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수학, 과학 잘하지만 학생들에게 그 공부가 재미있냐고 물으면 지적흥미도는 꼴지다. 우리 교육의 목표는 지적흥미도를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알고싶은 마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억지로 공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자기주도학습능력은 필란드가 최고고 우리나라는 꼴지다. 세 번째는 부적응 학생이 줄었는가다. 네 번째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했는가이다. 수능성적 떨어져도 지적호기심과 자기주도성, 몰입도를 높이면 장기적으로 더 잘할 것이다. 단기적인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이 길을 가야한다. 이제 앞으로의 세대는 100살 시대를 산다. 120살 살지도 모른다. 청소기는 특권적 지위가 있다. 청소년기는 평생을 살 수 있는 인생관과 성격형성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 시기에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면 100년 동안 찌질이로 골치 아프게 사는 것이다. 좀 더 투자해서 넉넉한 예술적 감수성, 공감능력, 몰입, 창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내야 한다. 세계는 무지하게 바뀌고 있다. 2040년의 세상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덕성과 역량을 길러내야 한다. 그런 태도, 의식, 가치, 덕성은 어디서 배우나? 암기 문제 풀이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인류 역사상 이만큼 교육을 바꾸어야 할 이유가 큰 적이 없다. 기후변화와 온난화, 자원의 고갈, 화석원료의 고갈, 지금 당장도 기후가 변하고 있다. 새로운 생태감수성이 필요하다. 좀 전 시대 누구도 이런 변화를 겪지 않았다. 노령화 하나만으로도 세상 전체를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 기후변화, 노령화, 정보화, 온난화 이 네가지 변화를 겪고 있는 최초의 세대를 살고 있다. 이 일은 선진국과 후진국이 동시에 겪고 있다. 이 변화에 올바르게 대처하고 현명하게 대응하고 잘 살기 위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 공교육 혁신이 숙제다. 공교육 혁신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엄청난 격변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그 일을 제 때에 해내면 원동력이고 못하면 주저 않는다. 다행스럽게 막차를 탄 것 같다. 늦으면 쫄딱 망하는 시점에서 간신히 희망을 붙잡았다.
어떻게 가는 것이 제대로 가는 것이냐?
=호기심을 왕성하게 권장하는 교실이어야 한다.
다만 진보교육감이 제대로 가고있나? 어떻게 가는 것이 제대로 가는 것이냐? 호기심을 왕성하게 권장하는 교실이어야 한다. 그 일이 일방적으로 수업해서 되나? 아이들간의 자기주도성, 협동이 몸에 익어야 한다. 자기장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협동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상대를 존중, 배려하고 공감해야 협동이 일어난다. 존중, 배려, 공감, 감성의 시대, 창조의 시대이다. 이런 것이 교실 수업시간에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야 한다. 지금은 금지와 통제, 지시로 이루어진다. 정답 맞춰봐. 가만히 있어봐 이런 언어들이 귓가를 맴돌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수업혁신이고 생활지도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자율과 책임, 존중과 배려로 학생자치를 북돋워주어야 한다. 창의 체험활동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 자율활동, 동아리 활동, 진로, 봉사활동을 현재 어떻게 하고 있나? 자율활동은 1주일에 서너시간 정해져 있지만 보건교육이나 국책교육 시간이다. 학급회의도 안하는데 무슨 자치나 민주나 책임을 기를 수 있나? 내가 만든 규칙은 지키게 된다. 생활지도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학생 인권이다. 자기가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집단이 함께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민주적인 결정이다. 현재 우리 시스템으로는 민주시민의 역량을 기를 길이 요원하다. 이 부분 해결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생물과 가정시간에 가능하다. 두 번째 진로교육은 교육과정을 잘 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할 때 반응을 어떻게 보일지? 어떻게 인격적으로 응할지? 과정에 대해 칭찬을 할지? 모든 교사가 모든 수업시간에 하는 일이다. 이 부분이 바뀌면 아이들의 말투도 바뀐다. 당위적이고 꼰대스런 말투를 교실에서부터 바꾸어야 한다. 우물에서 숭늉을 원할 수 없다. 학교에서 경쟁구조인 언설이 붙어있는데 학교 밖을 나가면 민주시민의 되나? 폭력의 뿌리는 체벌에 대한 두려움이다. 21세기가 요구하는 역량, 덕성, 자율, 책임, 몰입, 창조, 존중과 배려, 공감과 경청이 가능한 사람들로 바꾸어아가야 한다.
진보교육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창의, 몰입, 호기심, 격차해소, 민주시민성, 협동성, 존중, 사회성, 이 모든 것으로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행복도다. 우리나라는 행복도가 꼴찌다. 부모가 불행한데 아이가 불행한 것은 당연하다. 구조적으로 조건지워져 있다. 애들은 행복해보려고 일탈을 통해서라도 행복을 맛보기 위해 기를 쓴다. 그 애들이 날때부터 그랬나?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학교와 가정이 우리가 엄연하게 만들어낸 모습이다. 여기서 교사들의 독특한 지위가 나온다. 교사가 기침을 하면 아이들은 감기에 걸린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압도적인 존재다. 칭찬 한마디에 인생이 바뀐다. 칭찬한 방향으로 간다. 질책 한마디에 삶을 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교사의 절대적인 중요성, 교사가 바뀌거나 부모가 빠귀면 세상이 바뀐다. 어른은 안 바뀌고 애들만 바뀔 수 있나? 부모는 제각각 이질적이다. 계급, 계층, 극우, 극좌, 영남, 호남 등으로 나뉘어 이질적인 존재다. 전국의 교사 40여만명이 조금 더 깨어나고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공감대화 역량 커지는 순간 사회 모두의 선순환이 시작된다. 그럴려고 있는 것이 교사다. 그래서 사회에서 대우를 잘 해 준다. 그런데 딱하게도 21개국 비교연구 조사에서 우리나라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받는 존경심이 꼴지다. 선진국, 개도국 다양한 구성에서 확실한 꼴지다. 교사가 뭘로 사나? 아이들로부터 오는 존경과 사랑으로 산다. 그것이 없다면 교사라 할 수 있나?
한국의 교사집단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 가장 잘난 사람들이 들어 왔는데도 존경받는 것으로는 현격한 꼴찌다. 여기에 교육개혁의 열쇠가 있다. 각종 정책들이 교육청에서 보내오는 공문만 5000건이다. 핀란드는 5건도 안된다. 그만큼 학교의 자율성이 있다는 말이다. 교육부에서 간섭하지도 않고 보고 받을 것도 없다. 우리는 철저하게 관료주의화 되어 있다. 모든 것을 공문으로 보고한다. 교육자가 아니라 행정사다. 이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은 교육청을 바꿀 기회다. 교육부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교사는 오직 수업준비와 생활지도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교장의 관심사는 공문을 보고하는 것이다. 공문을 잘 처리해야 승진하기 때문이다. 교무행정 처리 기능을 교무부와 기획부에서 하는데 만일 교육 활동 중심인 학년부로 바뀌면 된다.
초등에서는 발표토론 수업을 50% 이상 바꾸면 일방적으로 떠들지 않아도 되고 힘들지 않아도 된다. 활동중심으로 수업하면 수업에 집중한다. 아이들에게 프로젝트를 주어서 의논하게 하고 협동하게 해야 한다. 참여를 안 하면 손해를 보니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다.
교육 개혁의 성공 척도는?
평교사가 수업준비에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것.
교사들이 비폭력대화 한다고 교권이 살아나나? 아이들이 3분의 1이 자는데 교권이 살아나나? 활동적으로 발표하면 엎드려 자지 않는다. 그동안은 그렇게 수업하지 않아도 됐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해야 한다. 교사로서의 역량이 증진된다는 느낌이 들면 선순환된다. 전문직업의 탁월성 그 안에 무지무지한 기쁨과 보람이 있다. 레져나 사적인 삶에 치중하는 교사들을 보면 부끄럽다. 그 결과가 학생들로부터 받는 존경과 사랑이 골찌인 것이다. 이걸 뼈 아프게 생각하고 바꾸어야 한다. 더 빨리 바뀌어야 한다.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교육자로서의 사명이 거기에 있다. 우리나라에 교사들의 집단적 사명감과 효능감을 불러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교사들이 직업적 탁월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면 세계 최고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아이큐가 세계에서 1~2등이다. 전 세계에서 1등이 가능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 교육청의 몸짓이 필요하다. 관료주의를 없애고 자율성이 꽃 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 개혁의 성공여부, 척도는 평교사가 수업준비에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 공무처리 비중 높을수록 학교혁신은 실패한다. 21세기 아이들 길러내는 숭고한 사명에 실패하게 된다.
장윤호 문학박사 사회로 곽노현 전 교육감과 청중의 질의와 응답
교육 정책은 모름직이 하위 30%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학부모의 역할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학부모는 가정의 교사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서 교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부모는 교사들이 좋은 뜻을 펼 수 있게 교사의 덕성을 키워드리도록 100% 인정해 드려야 한다. 학부모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내 자식 잘 되기를 바라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은 똑 같다. 그러나 자식은 맘대로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의 성공을 거두는데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자식과의 관계를 좋게 하려고 감수성을 기르는데는 소홀하다. 여기에 희망의 근거가 있다. 이 부분에서 지지 말아야 앞설 수 있다. 부모는 아이들을 통해 아동기를 다시 산다. 아이를 키우며 내 인격이 성장하는 계기다. 사랑 때문에 공부하자. 우리 모두 학부모 시절 마음공부, 인격공부 하는 것을 호소한다. 당연히 학교장은 학부모 교육을 체계적, 기술적으로 해야 한다. 나는 누구이고 아이와의 관계는 어때야 좋은지 평생 교육의 첫걸음이다.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적당한 곳이 학교다. 학부모교육 안하는 학교장은 나쁘다.
-바람직한 학부모 상은?
=사람들의 대부분의 행동원리가 불안과 공포다. 나머지는 지시와 권위에 복종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사유, 성찰이 없다. 분명한 것은 불안과 공포에 터잡은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악의 열매는 악이다.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이 나올 수 없다. 비교 경쟁심리에서 작은 우위를 차지하고픈 욕망, 학벌사회, 기업구조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공부 못한다고 루져로 낙인 찍고 사회도 그리보면 인생도 루져가 된다. 우리가 다른 것에는 실패하더라도 인성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다. 서울대는 아무나 못가도 인성은 누구나 풍부해 질 수 있다. 인성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하는 것이다. 인생의 단단한 뿌리를 위해 베짱으로 살자.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예체능과 인성교육은 어떻게 했나?
=세계적인 석학 제리미리프킨을 좋아한다. 히트작 <공감의 시대> <노동의 종말><소유의 종말>이라는 책을 쓴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한계비용 ZERO>라는 책을 냈다. 지금 우리의 기술 문명이 결핍의 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이니 집단적으로 그렇게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지 않으려는 이들이 기득권이다. 국내외에서 갈등과 투쟁 계속 되고 있다. 가야할 길이 정해져 있다. 만일 경쟁이 사라지고 기본소득이 도입 된다면 그때부터는 심오한 놀이에 종사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고 돌봐주는 휴먼서비스가 필요하다. 낮에는 농사짓고 아침엔 시를 쓰고 저녁에 기타를 치고 이런 식으로 삶을 살 수 있는 한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정치적 선택이 어떻게 집적되느냐에 따라 그런 모습으로 살 수 있다. ‘호모루덴스’ 유희하는 인간의 중요성, 놀이의 중요성 그 순수한 기쁨의 세계로 함께 가야한다. 학령기에 학교가 제공해야 할 인문, 예술, 몸 쓰는 교육이 필요하다. 컴퓨터 발달로 뇌가 하던 많은 일들을 해결한다. 논리적 사고, 연산 당할 수 없다. 기계가 못하는 것이 몸이다. 결국 문예체 교육 점점 더 중요하고 그쪽에서 역량 발휘 못하면 저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문적 소양, 예술적 소양, 몸으로 하는 교육 그것을 노작, 예술, 진로 교육으로 이야기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위 클라스에 포함되지 않으면 꿈을 접는다. 절망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못 갖는다. 사회구조와 풍토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현재 풍토는 학급회의도 토론수업도 불가능하다.
=사회구조 바꾸지 않고는 학교 바꾸지 못 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교육 외적 요소 바뀌지 않은 채로 한계 있다는 것에 동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수업의 예를 들면 서울의 혁신학교들은 가난한 학교들을 지원했는데 그 학교들은 누적 학습부진 학생을 위한 삶의 기술을 중심으로 교육하기 때문에 다 듣는다. 동기부여부터 해야 한다. 수업방식을 바꾼다 해서 가난한 아이들이 보나 나은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나? 수업방식이 개선돼도 바깥이 서열화 되어 있는데 ..그것에 대한 대응 방안은 교육 정책은 모름직이 하위 30%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장의 관심사는 하위 30%여야 한다. 학교 부적응에 빠진 아이들을 그 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아야 한다. 나라전체가 교육부가 학교가 우선적으로 하위 30%를 지원해야 한다. 학교 사회가 양극화 완화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교육개혁의 첫 번째 책무가 학교간 교육성과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학교 차원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이 70%에서 60%가 되도록 하는 것이 교육자로서 사명이다. 이런 사명을 가지지 않는 어떤 교육자도 교육자라고 할 수 없다. 나의 반에서 30% 우선 집중 지원해야 학교다운 학교다. 현재 사회는 상위 30% 만 끌고간다.
-순천의 우수한 성적의 아이들이 100여명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간다. 순천만의 독창성을 찾는다면 ?
=농어산촌은 너무 작아서 문제다. 너무 작은 규모는 아이들이 자극받지 못 한다. 적당한 규모 있어야 협동과 경쟁이 일어난다. 교육적으로 통합이 필요하다. 자유학기제 어찌하면 성공할 수 있나? 초등학교 시절 중 1년을 농촌에서 보내면 자립심 좋아지고 관계 좋아진다. 그런데도 안심이 안 되어 못 한다. 군수나 시장이 공식적으로 보장하면 된다. 좋은 기숙사 지어주면 움직인다. 지역사회 학교는 폐지 안해서 좋고 도시에서는 학생들이 빠져나가 숫자가 줄어든다. 농촌도 좋고 도시도 좋아진다. 관찰이 모든 배움의 출발이다. 여유있고 시간 있어야 관찰한다. 호기심 있어야 공부 되고 뛰어 놀아야 사회성 길러진다. 적당한 협동과 경쟁 일어날 수 있는 인원이 되어야 한다.
-소도시에서 학교답게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문예체 교육을 하는데 서울은 사람이 많으니 막강하다. 그분들이 학교에 역략 쏟아 주는 것 부러웠다.
=순천은 그런 전문가 집단이 부족하다. 전남은 국악 자원이 풍부하다. 전남 지역은 그 분야를 특성화해서 졸업하면 시조, 단가. 판소리 한자락 뽑을 수 있게 교육하면 어떨까? 예향은 전남이 서울보다 훨씬 발전해 있다.
-물러날 때 억울함이 있었을 것 같다. 소회를 밝힌다면.
=동양적 미덕으로 말하자면 모든 것은 제 불찰이다. 운명도 내 소관이다. 나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다. 틀린 일 한 적 없다. 그럼에도 국가폭력에 모든 것을 빼앗겼다. 왜 이런 운명을 맞이했는지 싶다. 얼마전 백기완 선생을 뵈었다. 그분이 “곽 선생 주눅들거 없다. 공민권 있어도 할 수 있는 것 없고 공민권이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거야. 절대 주눅들지 마라. 무엇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시간 잘 써라.” 고 말하셨다.
맞는 말이다. 생각이 반듯하면 전 세계인과 소통이 가능하다. 얼마든지 지금처럼 여러분을 만나 이야기 할 수 있다.
-교육의 희망을 대안교육, 무지개 학교에서 본 이유는?
=대한민국에 초중고 만개의 학교가 있다. 모두 표준형에서 차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연구, 거점학교는 지정 기간이 끝나면 남는 것이 없다. 보고서만 남을 뿐 교육활동의 변화는 없다. 혁신학교들은 학교를 통째로 바꾼 사례다. 300개 정도의 학교가 학교문화, 학생문화, 교사 문화를 바꾸었다. 놀라운 일이다. 그동안은 통째로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다. 교장의 민주적 리더십, 교사들간의 집단지성, 학생들 자율, 학부모와 동등한 파트너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런 문화가 일찌기 없었다. 진보교육감이 지난 4년간 만들어낸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그러니 이떻게 희망을 안 갖겠나? 그 정신이 퍼져나갈 것이다. 절망적이지만 이 것 하나에 희망을 걸고 있다.
-교육에서 희망 찾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도 정치적으로 진영논리를 만든다.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상생할 길은?
=“너 진보지” 하고 물으면 “교육에 진보와 보수가 어디있냐?” 고 답했다. 시민이 물을 때 핵심은 교육의 본질을 향해 진일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인식 가능하다면 교육의 본질로 다가가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할 일은 교육의 본질을 향한 회복 움직임이다. 어느 교육의 본질에서 점수로 일렬로 세우나? 점수로 대학의 당락을 결정하나? 우리나라 교육현상은 국가의 철학에 영향받게 돼있다. 유권자들에게는 보수적 욕망과 진보적 욕망이 내재돼 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진보와 보수로 나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놓고 정치한다. “내가 가진 가치관과 교육정책이 요소요소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저를 뽑아주세요” 라고 선거하는 거다.
첫댓글 기냥, 또 다시 그대로 듣는 강연이구만요. 어찌 이리 다 입력이 가능한감요? 놀라 자빠짐, 꽈당!
경숙샘을 기록의 달인으로 인정합니다.
저도 꽈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