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에베소 유적지 자료 에페소는 이즈미르(Izmir)로부터 74km 거리에 위치한 도시로서, 바울로 시대만 해도 번창한 항구였으나 카이스트로스강을 타고온 토사가 항구를 매워서 지금은 항구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바다는 에페소로부터 멀리 물러나 있다.
에페소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BC 334년 알렉산더 대왕에의해 해방되었다. 대왕이 죽은후, 에페소는 대왕 휘하의 장군 리시마코스(Lysimachos BC 361 ~ BC281)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리시마코스가 에페소에 경기장, 체육관, 원형극장을 세워 에페소를 크게 발전시켰다.
그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에페소는 로마의 소아시아 서부지역 수도가 되었고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정치적, 경제적 번성기를 맞이하였다.(오늘날 발굴되는 에페소의 모습은 로마시대의 것이다.) BC 88년 시민들이 로마의 압제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어키자, 로마의 실라(Sylla)장군은 에페소를 완전 초토화시켰다. 아우구스투스 황제(BC27∼ AD14년) 때부터 다시 재건된 이 도시는 로마의 아시아 속주의 정치, 상업,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1 바리오 목욕장 AD 1세기의 것, 냉실, 탈의실, 미온실, 온실, 사우나실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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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고라 행정관
대성전 아래에 위치, 시의 공식적인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6 에페소 유적지에 있는 천주교 신자 사인몰 성체빵과 물고기 그림이다.
7 바실리카 대성전
오데온의 좌석에 앉으면 무대 뒷 편으로 두 줄의 기둥이 서 있는 곳이 바실리카이다. 지금은 그 기둥의 온전한 모습을 알 수 없고, 기단과 기둥의 일부 만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곳은 화폐를 교환하는 곳으로서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AD 1세기에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165m에 이른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그 기둥의 머리는 황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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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데온(Odeon)
AD 2세기에 극장형으로 세워진 원로원이며, 문화의 장소이기도 했고, 연극 상연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서기 150년 경에 지어졌다는 이곳은 15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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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시청사
AD 3세기에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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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메비우스의 기념비
도미티아누스 광장의 산 기슭에는 100년 경 뫼비우스의 가족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기념동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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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히포크라테스의 병원 분점이 있었던 곳, 지금도 이 표시는 의사를 상징하는 마크로 사용중이다.
20 헤르메스상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가운데 하나, 로마신화의 메르쿠리우스에 해당한다. 주신 제우스와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축의 증식을 관장하는 부와 행운의 신, 길을 지배하는 길손의 신, 통역·상업·도적의 신, 꿈을 옮겨다 주고 경계를 지키는 신으로서, 죽은 자를 지하세계로 인도하는 신이기도 하다. 지팡이와 샌들이 트레이드 마크이다.
21 니케(Nike) 여신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로마신화의 빅토리아에 해당한다. 팔라스와 스틱스의 딸이다. 제우스와 아테네의 종자(從者)이며, 날개가 있고 종려나무 가지와 방패·월계관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전쟁의 여신 아테네와 모습이 비슷하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지금의 나이키의 로고가 바로 여신의 손 아래 있었다.
22 폴리오의 우물
이 우물은 97년 재건축된 것으로, 에페소의 부자인 폴리오와 그의 가족의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이 우물 앞에는 큰 분수대가 있었으며, 이 도시의 수도 공급지인 물저장 창고와 더불어 기억할 만한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이 곳에서는 트로이 전쟁 이후 오디세우스의 포리펨 무리의 모험을 보여 주는 동상이 발굴되었다.
23 도미티아누스의 신전
저수 창고의 앞에 위치한 광장이 도미티아누스의 광장이다. 이 광장의 서쪽에는 서기 81~96년 사이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신전이 있다. 이 곳에서 발굴된 도미티아누스의 동상 팔과 머리 부분은 현재 에페소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복원된 것이 당시의 것과 다르지 않다면 이 신전은 완전히 기둥 위에 건축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신전 앞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제단은 에페소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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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헤라클레스문에서 바라다본 시청사 쪽 거리다.
27 셀소스 도서관쪽으로 내려다본 쿠레띠의 거리, (헤라클레스문 ↔ 셀소스 도서관) - 꾸레띠란 로마 시대에 행정과 종교 업무를 맡던 사제들을 말함. 꾸레띠의 거리는 양 쪽으로 높은 기둥들이 세워저 있으며 에페소의 저명 인사들을 조각상에 표현하고 있었다.
28 트라이아노(Traianus) 황제 기념 분수
AD 2세기초에 세워젔으며, 트라이아노 황제에게 바쳐진 기념 분수로 중앙 받침대 위에 서 있던 12m 높이의 황제동상 발목에서 물이 흘러나오도록 설계됐다. 물은 수로를 통해 귀족계층 가정과 목욕탕에 공급됐다고 한다. 지금은 받침대와 동상의 오른 발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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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하드리아누스 신전
2세기 경에 지어진 이 건물은 하드리안 황제와 에페소의 시민, 아르테미스 여신을 위해 지어졌다. 건물은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 손실되었지만 남아있는 부분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입구에 있는 기둥은 아치를 이루고 있는데 조각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안으로 들어가면 아테네, 아폴로신등 여러 신들이 조각되어 있으며 데오도시우스 황제와 그의 아버지, 아내, 아들도 조각되어 있다.
31 공중화장실
아래에 배수망으로 연결된 수로가 흐르며, U 자형 구멍으로 용변을 본후에 변기 앞에 흐르는 물로 그것을 깨끗이 씻어낸다.
32 셀수스 도서관
에페소 유적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로 손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은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의 도움으로 최근에 재건되었다. 높은 초석 위에 세워진 이 건축물은 넓은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셀수스 도서관은 서기 135년, C. Aquila에 의해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였던 그의 아버지, 셀수스 플레마이아누스 (Celsus Polemaeanus)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이 도서관에는 세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 운명, 지식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셀수스의 무덤은 중앙 적소 아래 지하에 위치해있다. 세계 3대 고대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페르가문 도서관 및 셀수스 도서관이다.
33 셀수스는 당시 이 지역의 총독으로 부임해 통치하였으며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도서관은 많은 부분이 무너졌지만 외벽은 아직도 굳건히 서 있으며 벽에는 화려한 문양과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리저리 연결된 도서관의 지하가 홍등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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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좌측의 이 건물을 창녀의집으로 추측을 하고 있다는데 그 옛날에는 창녀의집은 거리의 가장 번화한곳에 기거를 하면서 정보를 수집하여 그 정보를 돈을 받고 파는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36 이곳의 소나무는 모두 우산같이 둥그렇다.
37 야외 원형 극장
Cladius황제(A.D. 41~54) 때 공사가 시작되어 Trajanghkd황제(A.D. 98~117)때 완성되었다. 터키 전역에 산재한 노천극장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관중 약 25,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야외극장이다. 3단 구조이며 각 단은 22계단으로 되어있다. 사도 바울이 선교중 은세공장이들과 논쟁이 붙었던 곳이라 한다. 1964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많은 부분이 복원되었다. AD 2세기 초에 로마시대에 완공되었으며, 지금도 공연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세계의 유명한 음악가들이 이무대에 서기를 원하고 소리의 울림을 과학적으로 설계하여 건축을 했기때문에 지금도 그어떤 공연장보다 소리의 울림이 좋다고 한다
38 건축 초기에는 공연을 위한 곳으로만 이용되었지만 이후 로마제국의 유행(?)에 따라 검투사 혹은 맹수와의 결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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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자료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