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도사리(2013-221호)≫
《 비 오는 날 》
- 「2013-112-2(토월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에서 -
< 비 오는 날 > - 김수열 -
수학 시험 볼 땐데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아, 짱나
배 둘레만 알면 됐지
도형의 둘레랑 나랑
뭔 상관?
창밖엔 운수 좋은 날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틀렸다, 틀렸다 하면서
사선으로 내리는 거예요
아, 졸라
그런데요, 운동장 물웅덩이 보니까
맞았다, 맞았다 하면서
동그라미를 그리는 게 아니겠어요?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
다 동그라미예요
선생님,
내 답안지가요
물웅덩이였음 졸라 좋겠어요
아, 진짜
♨ 주저리주저리 ♨
‘아, 짱나, 뭔 상관?, 아, 졸라, 다 동그라미예요, 아, 진짜’
각 연의 시어(詩語)들이다. 그들만의 언어일 수 있겠다.
이 글 속에 詩민 갖는 깊은 함축적인 메시지가 없더라도,
요즘 아주 난해한 시들보다 내가 보기엔 백번 난 것 같다.
난, 시에 대해선 그나마 문외한이다. 그
러나 시를 비롯한 문학과 예술은 결국 자기 마음의 진솔한 표현, 표출이다.
시험 답안지의 맞음의 ‘동그라미’표와 ‘틀림’의 사선표가 묘하게 대조되다. 빗속에서….
모든 학생과 엄마가 원하는 100점도 전부 동그라미다.
마치 물방울의 동심원처럼 말이다.
또, 100점에도 동그라미가 2개임에.
「비 오는 날」의 비까지 ‘졸라’ 사선과 ‘아, 진짜’ 물웅덩이!
‘동그라미‘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형이 아닌가?
맞음, 긍정, 순환, 사랑, 무한대, 원만, ok, 지구,
그리고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돈! 돌고 도는 것이 돈이라고 한다.
요즘 눈 먼 돈이 그리도 많다는데 나만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동그라미’ 하면, 생각나는 사연이 있다.
아주 오랜 전에 초등 3학년 우리 반에 키가 멀쑥하게 크고 마치 애잔한 가을 코스모스 같은 여자 아이가 전학왔다.
엄마를 일찍 여위고, 아빠와 오빠와 같이 사는….
오락시간이었나, 그 녀석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노래 제목이 ‘얼굴’이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가 버린…….”
어떻게나 애잔하게 부르는지, 그 녀석의 엄마 없는 사정을 아는 내 마음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 아이는 어느 새 엄마 얼굴을 그리며 노래 부르고 있었다. 나도 여덟 살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을 그리며….
이름도 지워진 그 녀석, 아마 아이 엄마 되어 자식을 키우겠지.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며 ‘얼굴’이라는 노래를 웅얼거리면 눈물이 ‘핑’ 돈다.
오래 전에, 1학년 담임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 사회 시간이었나 보다.
다들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다들 대통령, 판검사, 사장, 군인, 간호사 등이 되겠다고 거대하고 장밋빛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중 유독 한 여자아이는 자기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수군수군거렸지만,
그 애 사정을 잘 아는 나는 마음이 어찌나 아프던지.
그 녀석은 또래보다 약간 미숙했다.
그 녀석도 일찍 엄마가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렵게 살았다.
‘엄마’가 얼마나 그리우면 ‘엄마’가 되고 싶겠는가!
그 녀석도 그리도 되고 싶은 엄마가 되었겠지…….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가 버린…….”
지금도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면,
내 마음은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