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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구경을 마치고 점심을 끝낸 우리는 이태리 와인의 본고장인 토스카나 지방의 키안티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1시간 반 정도 버스를 달려 와인어리에 도착하였다.
나는 강이나 시내를 찾아보았지만, 이곳 와인어리에는 강은 없었다. 프랑스등 유럽의 유명 와인 산지의 와인어리는 대부분 비탈진 협곡을 낀 구릉지나 산에 포도밭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토스카나 지방의 이 끼안티 와인어리는 그런 협곡을 낀 강이 없다니 조금 실망스러웠다.
협곡을 낀 강물에 반사된 햇빛이 더욱 증폭된 뜨거운 일조량을 포도밭에 내리 쏟아 당도가 더 높은 포도를 생산해 내는 것이지만, 이 끼안티 지방의 포도밭은 강이나 협곡을 품고 있지 않는 높은 산지에 형성되어 있었다.
원래 와인어리란 거대한 포도밭과 큰 성채, 그리고 와인을 양조하는 양조장 이 세개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방문한 이 와인어리는 비교적 성채의 규모는 작지만, 이런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었고, 생산되는 와인도 이태리 정부에서 인증한 1등급(DOCG)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와인어리였다.
나는 이 성채의 정문을 들어서면서 이 와인어리도 축복받은 집안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포도밭의 규모가 60만평이 넘는다니 ........
이태리가 서로마제국 멸망후 근 천여년이 넘게 도시국가의 형태로 군웅 할거 시대의 암흑기를 보냈다는 사실을 일전에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이태리의 도시국가 영주들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이후 그들은 영국이나 스페인처럼 식민지를 건설하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신대륙을 탐험하는 항해를 도시국가의 영주나 큰 가문들이 시도 하였다고 한다.
이 와인어리 가문의 조상들도 이런 탐험을 하여 미국 뉴욕에 닻을 내리고 그 당시 뉴욕에서 가져온 돌을 이처럼 기념으로 이 현관의 정문 벽에 간직 하고 있다는 와인어리 사장의 설명을 가이드의 통역을 통해 전해 듣고 정말 역사가 있는 대단한 집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사실은 발견이 아니라 표류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정확하다. 아메리칸 인디언들도 기원 전이라는 BC를 사용한다. 이 BC는 Before Columbus 라는 뜻이다.) 하던 15세기 초 만약 이태리가 옛 로마제국 같은 강력한 통일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아마 지금의 세계 공용어는 분명 이태리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태리 사람들은 비록 영국이나 스페인처럼 통일국가 체제가 아닌 도시국가체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식민지를 건설하지 는 못했지만, 서유럽과 신대륙간의 중계무역권을 베네치아(베니스) 상인 들이 거의 독점하여 사실상의 돈벌이는 이태리의 베네치아 상인들의 몫이었다는 와인어리 사장의 설명을 듣고 역시 중세 이태리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코를 베어먹은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않다면 그 당시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모두 샤일록같은 유태인이었으리라.
와인어리 정원 휴계실에서의 툭 트인 전망이 한폭의 수채화 같고, 또 한폭의 한국화라고 해도 별로 의의를 달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곳 산수도 우리 산하와 별반 다를게 없었다.
건너편 산야에도 우리가 방문한 이 와인어리 보다 더 규모가 큰 성채를 가진 와인어리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여수에서 자산어보 횟집을 운영하시는 김사장 부부이다. 이들 부부는 부부간의 금슬이 너무 좋았다. 원우들이 닭살 부부라고 놀려대도 그들은 싱긍벙글 웃기만 한다.
와인어리 지하 셀러를 둘러 보았다. 아마 이 성채도 최소한 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음즉 하였다. 이미 500년전에 그들의 조상이 미국 뉴욕을 탐험하였다니..
거대한 오크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오크통 하나에 와인 6,000병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좀 더 큰것은 8,000병이 가능하단다. 와인 한 병에 약 20,000원만 처도 이 오크통 속에서 발효되고 있는 와인의 값이 무려 1억2천만원이다. 세속적인 속물 근성을 벗어나고자 이 와인어리의 오크통 수는 공개하지 않겠다.
먼지가 끼고 와인 병 표면에 곰팡이가 낀 이 수십년 된 와인병이 이 와인어리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으나, 이 토산품은 말이 없었다.
우리가 찾은 이 토스카나의 끼안티 와인어리는 이태리를 대표하는 레드와인의 주산지로 주 포도 품종은 산지오베제라는 종이다. 이 품종을 주원료하여 기타 다양한 다른 품종을 섞어 와인을 생산 한단다. 상표는 검은 수탉을 사용하는 끼안티 와인조합을 형성하고 있다. 그 외에 몬탈치노, 볼제리등의 와인어리가 있다.
와인어리의 지하 저장고 구경을 마치고 나니 우리 일행을 위하여 미리 준비된 식탁위의 와인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와인의 콜크 마개를 땄다. 원우들이 잘 와인을 모른 것 같아 지난 번 강남 와인스쿨에서 배운 짧은 와인 지식을 써먹었다. 와인은 발효된 생주이다. 즉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음료인 것이다. 따라서 막 와인을 따서 그대로 마시면 와인의 참맛을 모른다. 가장 좋은 와인의 맛은 콜크 마개를 따서 병을 개방한 채로 냉장고에 한 30분 정도 보관했다 마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할수 없으니 최소한 와인잔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고 서너번 잔을 흔들어 돌려줌으로서, 지금 병속에서 잠들어 있다 갑자기 잠이 깨 얼떨떨한 와인이 좀 정신을 차린 연후에 마시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고 난 다음 둘씩 짝을 지어 와인잔을 짠짠짠 세 번 정도 소리 나게 부딪쳐야 한다. 그러면서 상대의 눈을 보며 눈웃음을 처라. 그래야 진짜 와인의 참맛을 느끼게 된다. 원우들이 서로 마주 보고 눈웃음을 치며 짠짠짠 잔을 부딪치며 즐거워 했다.
와인을 상대편에 따라줄 때는 상표가 보이도록 해야한다. 와인은 눈과 코와 입으로 마신다. 눈으로는 와인의 빛깔을 보라 코로는 와인의 향기를 맡고, 입으로는 와인의 맛을 느껴보라. 그리고 와인의 바디(무게)를 측정해 봐라. 내가 앉은 원탁이 내 목소리로 제일 시끄러웠다. 원우들은 서로 짠짠짠 웃고 난리였다.
바디는 와인을 마셨을 때 입안에 감도는 무게감이다. 물처럼 가벼우면 가벼운 거고(Light body), 밀크를 마실 때처럼 무거우면 무거운 거다 (Heavy) 그리고 중간 정도이면 중간인 거다. (Middle body)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와인의 바디는 미들급이다.
그리고 와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빈티지와 등급이다. 빈티지는 와인의 생산년도다.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와인의 빈티지는 병에 붙은 상표에 기재된 2006이라는 숫자가 바로 그 생산년도를 말해 준다. 와인에 있어서 이 빈티지는 그 해의 일조량이 좋아 포도 작황이 대풍을 이뤘다면 당연히 그 포도로 만든 와인의 맛이 뛰어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빈티지가 좋은 와인은 세월이 흐릴 수록 값이 치솟기 마련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등급이다. 이 와인어리의 등급은 1등급인 DOCG이다. 2등급은 DCG다. 나라마다 이 등급의 표시방법이 다르다. 그리고 맥주를 브랜딩(증류)한 것이 위스키이고, 와인을 증류한 것이 브랜디나 꼬냑이라고 하는데, 꼬냑은 정식 술 명칭이 아니라 프랑스 꼬냑지방에서 생산되는 브랜디의 대명사다. 나의 이 마지막 코멘트를 어떤 원우는 처음 들었단다. 이렇게 배워 나중에 써먹으라고 말하니 원우들이 웃었다.
그럼 이건 뭐냐고 우리가 와인의 안주로 먹고 있는 생고기 같은 돼지 고기를 물어왔다. 나도 이 음식의 정식 명칭은 잘 모른다. 그러나 이건 돼지고기 다릿살을 염장하여 오랫동안 숙성한 쉽게 말하면 발효시킨 이태리 음식이다. 그러니 이렇게 생고기처럼 색상이 선홍빛이고 맛도 부드럽지 않느냐고, 그리고 이 음식을 동경 국제식품전 이태리관에서 먹어보았다고 말해주었다.
끼안티 와인어리측의 배려로 우린 레드와인, 화이트 와인, 그리고 아이스 와인까지 두루 맛보았으나, 아이스 와인은 캐나다나 프랑스 와인 보담 그 향과 단맛이 뒤졌다.
이 지상에 와인처럼 그 종류와 향과 맛과 바디가 천차만별인 음료가 있을까? 유럽인들은 이미 기원 전 수천년전 부터 이 와인을 마시며 이를 신(神)이 마시는 음료라고 자랑스러워 한다지만, 우린 역시 소주나 막걸리가 우리 입맛에 맞다.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리라. 와인 새참 잔치가 끝나갈 무렵 원우들이 나한테 우리 테블이 제일 재밌었 다고 말하며 웃었다. 짠짠짠 마지막까지 러빙컵을 마주치고 눈웃음을 교환하면서......
와인 새참 정찬을 끝내고 이 끼안티 와인어리 사장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는 참으로 미남이었고 자상한 남자였다. 이태리 남자들은 바람둥이가 많다 한다. 여자들을 배려하고 자상하게 보살피며 남존여비를 실천한단다. 남자는 존재한다 여자들의 비용을 위해서 이런 상황에 하물며 이렇게 집안 좋고 호남이고 이런 큰 와인어리를 갖고 있는 대부호인 그가 달콤한 말로 속삭인다면 모든 여자들이 다 흔들릴 것 같은데 그래도 싫다하는 여자가 있을런지 모르겠다. 여자의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남자들이 이 지구상에 단 한명이라도 있단 말인가? 만약 있다면 그는 수많은 실전경험을 통하여 여자의 마음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노회한 제비일 것이다.
이 끼안티 지방은 슬로우 시티 운동을 창시한 고장이란다. 1999년 10월 슬로우 푸드 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으며,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빠르게 획일화되어 가는 세상에 반대하면서, 작은 도시를 중심으로 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자는 운동이다.
슬로우 시티를 직역하면 느린 도시, 느리게 사는 도시로 말할수 있고 좀 더 의역한다면 느림의 미학을 갖추고 고향 산천의 자연에 귀의하여 자족 하는 삶을 사는 도시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슬로우 시티의 배경과 목적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슬로우 시티 운동은 생태주의를 바탕으로 주민들의 전통을 보존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의 슬로우 시티는 모두 전남에 있다. 담양, 장흥, 청산도, 신안군 증도등 네군데다. 최근 박경리 토지의 경남 하동 평사리가 슬로우 시티를 신청하였다고 들었 으나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아직 접하지 못했다.
와인어리 사장과 작별한 후 그의 정원의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이 사진을 남겼다. 풍광이 수려한 고산지대의 아름다운 햇빛을 끌어 안은 포도밭과 올리브밭의 푸른 잎새들이 북알프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그 바람에 실려온 산야의 풋풋한 풋내가 마치 초록색 수채화 물감을 내 손잔등에 떨어뜨려 놓은 듯 후각이 아른거렸다. 대낮에 여섯 잔도 넘는 와인을 마셔서인지 은근한 취흥도 일었다.<끝>
-2009.7.15 작성 골드리버
다음 이야기/ 드디어 로마를 향하여-2009.6.23-24 (바티칸 시국에서 입국절차를 받다.(이태리 여행기 제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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