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리 사
신라 진흥황 때 창건된 사찰로 수리산 남서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그 뒤 어느 왕손이
이 절에서 기도하던 중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하여 산 이름을 불견산이라고 했으나, 1940
년대에 절 이름을 따서 수리산으로 바꾸었다. 대웅전 외에 36동의 건물과 산 내에 132개
의 암자가 있는 대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고 곽재우 장군이 말년에 입산하여
중창하고 수도한 곳이다. 그 후 6.25전쟁으로 다시 전소되었으며, 현재 산내에는 주춧돌,
불족석판, 석수각, 기와편 등이 대량 발견되고 있으며 1955년 다시 재건되었다. 수리사
입구 외길은 산림이 무성하고 계곡을 끼고 있어 경관이 뛰어나고 사찰을 두르고 있는 수
리산은 병풍을 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수리산 입구의 얼어붙은 갈치 저수지
수리사 가는길목에 자리한 정난영 선생 묘. 묘비.
수리산의 바위
여러 형태의 모습을 한 바위들
대웅전 내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었으며. 좌,우로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모시었다.
우측으로 신중단과 좌측으로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시었다.
라한전
전설이 깃든 약수터
부모은중경 탑
삼성각
대웅전 뒤로 수리산 정상이 보입니다.
라한전 내부
나한전 양옆으로 약 500여분의 나한님들이 계신다.
탑과 라한전
석등과 손상된 불상
산신 호랑이가 막 뛰어 나올것 같은 산신전.
수리사 전경
수리사(修理寺)의 전각(殿閣)은 대웅전(大雄殿), 나한전(羅漢殿), 산신각(山神閣)과 요사 및 창고 등이 있는데, 이들 전각은 6.25때 소실된 것을 1961년부터 꾸준히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여래좌상(釋迦如坐像)을 중신으로 좌우에 관음보살(觀音菩薩)과 지장보살(資裝保薩)을 모셨으며, 불화(佛畵)로는 삼세불화(三世佛畵)와 신중(神衆)탱화, 칠성탱화가 봉안되어 있는데 모두가 근래에 조성된 것이다.
나한전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재무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 문주.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석가삼존물(釋迦三尊佛)과 십육나한상(十六羅寒傷)이 봉안되어 있고, 나한탱화도 2점이 있다. 그리고 산신각에는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다. 경내에는 예전에 5층 석탑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탑의 부재로 보이는 것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그밖에 대웅전에서 약 50m 가량 떨어진 곳에 물확이라고 불리우는 석물이 있으며, 대웅전 앞의 축대에는 곳곳에 옛 건물의 주춧돌. 장대석 등으로 생각되는 석재가 보이고 있다. 또한 최근에 부모은중경탑을 대웅전 앞마당에 새롭게 조성하였다. 용주사의 것에 비하여 규모는 약간 작지만 그것과 동일한 양식으로 3층의 옥개석(屋蓋石)을 올리고, 1층의 에 부모은중경을 우리말로 새겨 절을 찾는 참배객들에게 효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첫댓글 지난 가을에 가족과 함께 수리사에 다녀왔지요. 걸어서 오솔길을 따라 산본 쪽으로 내려왔는데 편안한 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삼학년 시절 부터 그 수리사는 아름드리 고목과 바위로 둘러 싸여있는 단골 소풍 장소였습니다.
수암쪽에서만 덕산 법우님과 몇 번 다녀왔는데 법우님이 가는 길도 멋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