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역은 [한점동해]때의 모습과는 달리 여름을보낸 가을의 쓸쓸하면서 고귀한 공허함으로 정갈하게 거기에 있엇다.
기차는 지나가도 아무도 지키지않는 그러한 역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깨끗한 모습으로 다시 채색된 정갈함. 물론 사람들은 다시 낙서를 시작하고 있엇고 플페가 준비해간 갤러리 혹은 까페로서의 만남을 기다리고있었다.
페스티벌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낯설게 첫 만남을 가꾸었다.
연출되지않은 구성하지않은 진정한 절실함으로 모인 사람들이 가구어 만들어내는 페스티벌의 모습은 아직은 우리에게 서툰 것이엇지만 낯설면서도 그 낯설음에 자신을 투영해보려는 세사람의 각기다른 이미지들이 사람들에게 버려져있던 이 빈 공간을 무언가알수없는 의미로 채워나가는 고운시간이 마치 어느 무언극의 연습장을 보는 것처럼 지속됐다..
가는 빗줄기를 맞으면서 멀리서내려 무거운 짐들을 들고 걸어와선 그곳에서 자신이 준비한 여러 인물의 이미지들을 표현해본다.
언젠가는 약속도 없이 만날 수 있을 그런 사람들. 하지만 지금은 아직 낯설고 자신도 타인도 아닌 설정. 그 제안에 흡입되고자 노력하며 리허설없이 이렇게 리허설도 공연도 아닌 또하나의 실존의 시간을 가져보는 그들의 마음은 어떤것일까?
음향을 준비하지않고 그냥 모든것을 그들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행동과 느낌에 담아보는방식으로 작업은 진행되엇다.
연출가는 아직은 서투른 사람들의 조각조각 이미지구현에 가을 어느 빈 기차역과 그 문사이로 보이는 가을들녁의 채색을 바라보며 우리가 이뤄야할 어떤 아름다움을 꿈꾸며 그들이 노력하는 아직은 낯선 그 모습들이 이 여행을 통해 조화롭게 완성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사람들은 그렇게 선인의 모습 혹은 선을 추구해보는 플라타너스의 인물들의 여러모습들을 자신들이 준비해온 그 만큼씩 테스트처럼 망상역사 안에 담아갔다.
간혹 서로 만나 대화하고 악기를거내 연습하며 자신만을 위해 낙서를 남겨놓은 사람들의 흔적들 곁에 종이꽃과 고운 글이 담긴 엽서 그리고 시집 스스로 만든 책자 등을 공연의 흔적으로 배치하고 망상역을 떠나온다.
그림을 전시하고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5차원의 얘기를 나누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아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에 다시한번 가서 좀더 아름답게 리허설이 아닌 공연을 하면 좋겟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소리없는 느낌을 부족하게나마 실천해보고서 그곳을 떠나올 때가 되어서야 시작함으로서 무언가 구체화되는 많은 나눔의 방식을 생각하게되는 우리들이었다.
구상햇던 페스티벌의 의미를 조금은 구체화시키면서 아 이렇게 다가갈 수 있구나 하고 자각할 수 있었던 고운시간.
페스티벌의 시작으로서 그 의미를 찾으면서 준비해온 사람들의 낯설지만 조금씩 실천하는 마음이 모습들이 고운 이미지로 동작하고 있었고 남겨두고온 지극히 조그마한 것들만으로도 특별했던 무언극이었다.
한편의 완성된 공연으로도 보일수잇었으면 좋앗겟으나 미흡한 준비로 그저 그렇게 준비하고 테스트해보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시작같은 것.
울릉도는 [한점동해]이후 언젠가 실존해야할 [아크로폴리스계단에서처럼]의 공연장소이다. 그래서 그런가 늘 다가가려하면 아직은 이르다고 섬이 고개를 돌린다.
그래 과연 다가갈 자격은 갖춘 우리들인가?
허균이 언젠가 누나 난설헌과 함께 꿈꾸던 그 이상향처럼 그의 길동이 무리를 이끌고 찾아가던 가나안 같은 그곳. 그곳에 동지도 자격도 갖추지 못한 우리들이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그리쉽게 다가가서 제 감정도 아직 가누지못하는 그 편협한 마음으로 사랑을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자격은 갖춘 것인가?
둘째날 울릉도로 떠나는 배가 있는 선착장에서 한무리의 관광객들의 단체식사 모습을 보고 그날도 뜨지않는 배를 보며 추암으로 다가가기전에 갯가에 머물러서 또 한번의 연습을 했다.
공연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우린 공연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리허설을 반복한다.
언제쯤 스스로 융합하며 절실히 그리워하는 공연의 모습을 띌 수 있을까? 사람들은 아직도 훈병의 모습으로 자신이 준비한 최선의 모습을 낯설게 표현하고 아무도 그것을 공연이라 보지못한다.
플페 해질무렵과 초인의 부분에서 우린 갤러리를 만난다. 지난번 첫 여행에서 미처 만들지못햇던 그 작업을 이제는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준비한다. 그림을모으고 그것을 액자로 만들고 그 액자들을 망상역에 걸어서 전시회를 준비한다. 그리곤 갤러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늦가을의 어느 갤러리를 지키는 사람은 따뜻한 물을 끓이고 녹차나 커피를 준비한다. 홍대거미전을 하면서 혹은 그림을 그리는 분들에게 요청해서 몇장의 그림을 얻으려한다. 그들에게 이 전시회의 내용을 애기하고 그 갤러리의 모습도 전달해주려한다. 작가가 혹시라도 갤러리에 직접 나와서 그 전시회를 같이 준비해줘도 좋겟지만 그것을 바랄 필요는 없다. 필요한건 그 갤러리를 꾸미고 차한잔을 끓이며 기다리는 이의 절실한 마음이다. 미리 답사한 그날의 망상역의 이미지가 명확하여 이 갤러리의 전시일정은 준비가 어렵지않다 하지만 그 문밖으로 보이던 금빛들판은 한달이 지난 10월 마지막주의 나름대로의 또다른 모습으로 이 갤러리의 전시회를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포용해주겟지.
아마 망상역 갤러리는 그때쯤 조금더 많은 낙서가 적혀있고 조금더 쓸쓸하겟지. 대신 따뜻한 키피향이나 끓는 물의 수증기가 좀더 아름답고 정겨워보일거고. 그곳에서 기다리면서 라디어 다이얼을 돌리는 갤러리를 지키는 한 초라한 사람의 모습도 그 슬쓸함만큼 반비례해서 플라타너스의 아름다움을 그려낼수잇겟지.
[플페1999망상역]다시 돌아가 꾸민다. 1999/10/01 09:03 ---------------------------------------------------------
망상역이 그렇게 내게 주어진 공간으로 다가올 수 있을 줄은 몰랏다. 사람들이 간혹 그곳을 스치면서 왜 누구먼저 그렇게 그 빈공간을 아름다운 환상으로 바라보지못햇을가? 추암을 거쳐 패잔병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후 내내 10평도채못되는 그 동그라니 동해안 어귀에 놓여잇는 파스텔톤 네모난 빈 역사는 누군가 따뜻한 차한잔을 끓이면서 기다려야할 예쁜그림들이 걸려잇는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 그리고 고운책이 진열되어잇는 도서관으로 재촉하고있다..
라듸오 음향을 조정하고 비디오를 켜본다.
이세상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다른 외톨이들의 선을 향해 살아가는 모습들이 마치 가식처럼 들려오고 보여진다.
함께 진실할수없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가식이라 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얼마나 선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가식이라고 비아냥거렸던가. 하지만 그 비아냥이 그들의 그 선을 향한 행동을 중단시키지못하고 비아냥은 스스로 주눅들어 버린다.
그 갤러리에 5장정도의 액자를 달수잇을까? 가져갈수없으면 미리 소화물로 묵호역에 붙치고 묵호역 소화물 담당자 분에게 편지를 드려서 제가가서 찾아갈 때까지 맡아달라면 되겟지.
혼자가져가기엔 다소 많은량의 소품과 그림들이 잇다. 그 도서관에 가져다놓을 책도 너무많고 들려줄 음악이나 얘기들도 너무많다.
여러사람이 관객으로라도 이 공연여행에 참가하면 정말 페스티벌이 되겟지만 혼자간다고 페스티벌이 아닐수는 없다.
오늘도 혹은 어제도 누군가 그곳에 가서 쉬엇다 갔을 것이고 연인들은 또 자신들이 다녀간다 고 낙서를 해놓앗을 것이다. 한달간 사람들은 그렇게 이 공연을 준비하고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아직은 이름도 모르는사람들 하지만 10월말 망상에가면 모든것을 오히려 기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며 그들의 흔적을 통해 또다른 만남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연을 준비하며 버려도 버려도 실날같은 끈처럼 남아잇는 기다림이 또 부질없는 마음을 친다.
예술이 play고 놀이 혹은 장난이라면 "장난이 아니네"하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은 어떤 무대일까? 다시떠나는 플페가 이번엔 그것을 확신하여 실현할 수 있을까? 역석적이지만 동지가 없어 오히려 즐거운 기다림.
망상역을 갤러리와 도서관으로 만드는 작업이 하나의 공연이 된다면 그 공연 즉 갤러리의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공연은 시작이다. 마치 새로운 갤러리의 화랑전을 준비하는 갤러리주인처럼 그림을 모으는 작업. 젊은 화가들의 스케치전은 어떨까? a4용지정도의 크기에 스케치한 그림들을 전시해보면 망상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귀한 마음을 나눌 그리움에 적합치않을까?
도서관에도 기획전이 열리고 적절한 책들이 앞으로 내어놓아져 전시되면 도서전을 준비하는 사서의 마음을 가져보는 지금이 공연의 시작이다,
사람들이 함께가서 그 전시회와 도서전을 준비하고 개막하면 멋질것 같은데, 과연사람들이 그러할까? 혼자가도 그 크기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겟지만 또 미련처럼 여러사람들이 그렇게 막연한 사랑을 그려내는 이미지를 공연안에 담고싶어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망상은 언제나 망상만을 만들어주는 이상한 곳. 두번 공연팀을 이끌고 가서 그곳에서 리허설같은공연도 했지만 아무도 그런 망상안하는데 그 빈 공간 허스름한 망상역은 왜 자꾸 다가오라고 부르는 걸까?
망상역은 잊지못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어디엔가 아무도 오지않고 아무런 기차도 서지않는 빈 역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 거기에와서 수줍게 낙서를 하고간다. 누구와 누구는 사랑한다거나 여기 다녀간다는 얘기도 적고 혹은 홀로온 사람은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적기도한다. 한 여름 한떼의 사람들이 조금 떨어진 해수욕장을 다녀가다가 문득 이곳을 스쳐간적도 있었고 언젠가 누군가 이곳에 와서 알수도없는 나눔을 기다리다가 돌아가기도 햇던 흔적이 환시처럼 남아있는 곳.
이제 사람들은 가고 거기엔 그 외로운 곳에 사는 고운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공간으로 이곳을 스친다. 학교가는 길에 혹은 철길을 보수하거나 길 건너 친구집에 마실가는 길에 아주 가끔.
[겨울여행]에선 우린 그 숲길에 있던 [꿈을찍는 사진관]을 만나보았고 거기서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묻던 사진사를 만났었다. 망상 그 하얗고 뽀오얀 파스텔칼라의 빈 공간에 언젠가 갤러리가 설치되고 도서관이 열리고 사람도 오지않는 그곳에 귀한 전시회가 열리고 도서관엔 사서가 앉아서 도서를 정리한다. 갤러리를 지키는사람이나 도서를 정리하는 사서가 아직 출근하지않거나 아직 없다면 아마 그곳에서 수위같은 지기아저씨의 청소하는 모습을 만날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곳에서 그는 많은사람들이 오가며 그가 소중히 마련한 전시회를 보고 준비한 책들을 읽으면서 잠시만이라도 꿈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것이 그에겐 그가 할수잇는 최고의 페스티벌이다. 페스티벌은 준비해서 모르는 이들을향해 드리는 축제이다. 그리움이 희망으로 변하고 그곳에 어떤 연주가가 찾아와 작고 고운 음률이라도 흐르고 그림을 그리는이들이 와서 그림을그려주며 꽃을 장식하고 예쁜 도서를 꽂아놓는 그런 페스티벌을 기다리며 세기말의 이 지구 어느 구석에서 조건도 욕심도 없는 가장 큰 사랑이 나눠지는 그 것을 기다리는 공연.
1999년 10월말의 어느날 망상역은 그렇게 화사롭고 보이지않아도 가득찬 사람들의 축제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그리워하다가 돌아간 뒤에 영원히 흔적지어지는 그 아름다움에 또 남은이들이 기억하고 바라볼 여전한 행복.
간혹 사람들은 쉬고파한다. 삶에 지쳤서라지만 대개는 이기심과 욕심에 따른 심신적욕구를 따르다가 지쳐버린 망각의 호흡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의 삶안에서 쉬임만큼 아름다운것도 없다. 어저면 역설적으로 그때만큼은 죄짓지않고 욕심부리지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쉬임이란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흥이나 놀이,휴가랑은 다른 의미다) 그렇다면 그들이 쉬임의 시공간을 만들고 잠시머무를 때를 위해 누군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자연은 그것을 늘 준비하고 인간을 바라보지만 인간은 그러한 상대에 대한 기다림에 익숙치못하다.
[후이넘에서돌아와]의 뱃사공처럼 [후이넘에서돌아와2]의 산장씬처럼 누군가의 쉼을위해 조건없이 준비해주는 사람들이 서로 존재한다면 세상은 그만큼 더 힘겨움을덜 수 있지않을까? 망상은 그 쉬임을 찾는 이들을 위한 누군가의 준비의 모습이다. [겨울여행]의 까페에서 다가와 전해주는 따듯한 차 한잔과 같고 [후이넘에서돌아와2]의 가야금연주하는 이들의 음악소리와 같으며 거리에서 그려내는 무언극배우의 몸짓과도 같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것]에서의 학교길 그림재료가게옆 병원 건너편 벽에 그려지는 아이들을위한 그림과도 같다.
조건없는 나눔과 그것을위한 준비만이 사랑일 수 있다면 준비없는 사랑이나 조건있는 사랑이란 단어조차 모순이다. 망상역은 조건없는 사랑, 준비하는 나눔을 그 화두로 정리하며 매일 준비히고 마침내 공연으로 실천한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후엔 조건없는 나눔으로 그곳에 놓여져서 이어진다.
망상역은 아마 찾으면 더많은곳에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플라타너스작업이 준비하고 다가가야할 페스티벌의 시공간은 끝이없이 많아서 [플페]의 갤러리와 도서관은 이 초연을 시작으로 또하나의 연작처럼 이어질 것 같다.
1999년 10월말의 망상역이 그 희망의 시작이되고 자신이 받을 생애 가장 큰 고귀한 생일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플페1999추암]공연은 연기자없이 떠나는 설치와 음향 그리고 영상만의 공연이다. 촛대바위와 그 조그마한 어촌마을어귀에 놓여지는 작업의 내용은 가족과 주위사람과의 따스한 사랑의 기다림을 그리는 [해질무렵 어느공원의 이미지]나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 것]을 테마로 할 것 같다. 10여명의 연기자들을위해 그들의 얘기를 모아 구성햇던 그 작업들을 아무도 함께오지않은 빈공간에서 백남준같은 숫법으로 마치 그들이 함께오고파서 갈망하며 부탁한 얘기들을 전달해주는 어떤 사람처럼 그곳에 살면서 배치하고 표현한다. 소리와 설치가 주는 이미지가 사람들의 연기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것이 더 구체화 될 수 있는 방식은 어떤것일까? 경복궁국립민속미술관에 놓여진 허수아비전은 너무도 작위적이고 정감없다. 그렇다면 사람없는 사람의 표현은 어떻게하면 정겨울까? 물론 그들이 소리나 영상뿐 실제론 거기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프긴하겠지만..
[흐름]이후 처음으로 물체극을 구성하면서 추암의 그아름다운 시간과 포근한 풍경 그리고 그곳에 남아있거나 그곳을 찾아줄 그날의 사람들의 다가옴을 기다리며 작품을 배치한다.
소리만 남아버린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 것]과 이미지만 남아버린[시해의그날에]의 이미지. 그 둘을 모아 한편의 물체극을 추암바다로 갖고떠난다.
페스티벌의 게절, 예기플라타너스도 그 첫 페스티벌의 초대장을 마련하고 사람들에게 발송했다. 그 발송이 이 공연의 시작일 것이다. 이제 차비를 마련하고 기차표를 사서 떠날 준비를 하기에 주력하며 갈수없다거나 미루려는 생각을 버린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과 주어진여건에 만족하며 충실하게 그안에서 할수있는 일을 찾아 욕심내지않는다는 것을 배우기위해서라도 이 페스티벌은 보이지않는 많은 것을 가슴에 싣고 [아주먼엣날하늘에서는]의 그 따스하던 까페의 사람들의 꿈같은 모습들을 갖고 쓰린 모습으로 떠난다.
묵호의 새벽. 울릉도선착장옆 마을에가서 떠나가는 배를 보며 오징어를 말리는 그곁에서 바다를 본다. 그리고 사람들의 얘기와 음악을 듣는다. 누군가 그곳에서 그리워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해야하는 이유를 기억하는 공연이되면 축제 즉 페스티벌은 시작된다.
두번째 공연은 망상역에 조그마한 갤러리와 도서관을 설치하고 따스한 차한잔을 끓이며 기다리는 작업이다. 아무도 오지않아도 기다림을 준비하는 사람의 모습이 거기에 스쳐가고 사람들 사이에 존재했던 고운 기다림들을 형상화시켜낸후 그가 사라지면 그곳엔 고운 그림들과 책가지들이 소중한 기다림을 이어받고 그 스침으로 이 곳은 알수없는 어쩌면 기약도 없는 시차를 두고 관객과 만난다.
세번째 마지막 공연은 추암에서 이뤄진다. 사람들에게 기억하냐고 묻지만 아무도 알지못할것이다. 그러면 기억을 살려 그곳에 감돌앗던 사랑의 얘길 들려준다. 그림을 그리던 사람 악기를 연주하던사람 그리고 동화를 들려주던 사람 고운 싯귀를적은 엽서들을 촛대바위로 오르는 길에 놓아두던 사람의 흔적들.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 것]의 그 사람들의 얘기가 들린다. 서로 아주 조심스레 조금식 사랑하며 사랑에 익숙해지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파도소리에 응답한다.
축제는 이렇게 끝난다. 같이가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겠지만 그 행복만이 사랑을 기억캐해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묵호.[플라타너스페스티벌1999]의 여러공연처럼 이 공연의 모든것은 이미 준비되어져있고 거기에 만남과 기다림 다가감이 합쳐져서 한 편의 페스티벌이 된다. 공연의 이미지는 역시 나눔을 향한 기다림이다. 홍대거미전에서의 공연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것]이 이 설정안에 담긴다. 자기가 선입견으로 소외시켜왓거나 따돌려왔던 사람에 대한 재인식 애인에게 실연당한 사람의 상대에 대한 인위적 작업에 대한 반성, 사랑에 대한 애타는 갈망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지못하는 사람들의 수줍음 그리고 누군가 소리없이 베푸는사람의 모습을 전해들으며 자신도 조금은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조건없이 나누고자 길떠나는 이의 모습등이 어느 가을날의 새벽 작은바닷가 마을에 떠나가는 배를 보며 그려진다. 사람은 그곳에 조그마한 서재를 꾸미고 그것을 놓아두고 온다.
[해질무렵어느공원의 이미지]나 [산타를찾아가는이] [초인,존재와소외]등의 이미지로 다가갔던 지난 여름 플페의 전초작업은 이제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것]의 이미지로 이렇게 시작된다.
[플페1999묵호]의 서재는 한사람의 그리움을 대상으로 구체화한다. 그래서 아이의 나이와 모습을 구체화하고 그 구체화에 어떤 대상으로서의 가치가 아닌 그리움의 실체를 담아낸다. 그가 좋아할것은 무엇이며 그가 그리워하고 만나고파하는것 혹은 그의 가슴에 가장아름답고 따스하게 다가갈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것]의 이미지는 학교길에 있는 병원 2층 창문으로 만나게되는 어던 웃음잃은 조용한 아이의 모습이었다면 바다만 바라보며 그리움을 키워가는 시선이 정지되어버린 작은 아이를 생각하며 이작업은 이뤄진다. 1960년대의 묵호를 생각하고 기찻길이 끝나는 북평가는 철길쪽 굴 옆에서 그 굴을 지나는 기차를 바라보며 또다른 세상을 그려보던 동호국민학교 다니던 아이를 생각해본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대학1년생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밤새 작업실에서 자신이 나누고픈 것을 준비하기위해 친구들과 일하고 이제 학교로 등교하려하며 전화를 걸었다. 아마 보고싶다는 말을하고싶어서 였을 것이다. 강원도에서 새벽바다에서 서울홍대앞 어느작업실에서 전화하는 고향떠난 한아이의 경상도사투리를 듣는다. 그리고 조각한다, 초등학교 아이의 책상에 놓여질 아름다운 선물을 밤새 그의 서재를 다녀가는 난장이요정같이..
노래들은 새벽바다 갈매기소리와 파도소리에 젖어 함께 들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작은 페스티벌이 이렇게 전개된다. 멀리서 벌서 이른 아침 일을 시작하는 어머니아버지들의 일손이 이르다.
플라타너스작업은 간혹 이렇게 외로움을 찾아가면서 거기서 다시 따스한 사랑을 떠와서 [아주먼엣날하늘에서는]같은 따스함을 나르는것이 아닐까? 홍대거미전의 두공연의 화두와 [아주먼옛날하늘에서는]의 그 나눔의 실존이 이 페스티벌의 공연을 용기쥐어주고 그래서 첫 공연 [묵호]는 슬픔이나 외로움보다는 절실한 고독의 반김으로 준비된다.
[플페1999묵호]는 [아주먼옛날하늘에서는]에서의 가상이었던 가난의 따스함을 찾아떠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아주먼옛날하늘에서는]에서 표현되엇던 감자와 옷가지의 나눔이 실존으로 절실하게 이어지는,그래서 놓지못하는 하나의 화두의 핵심이다. 플페1999 첫 동해여행의 세가지 공연중 특히 첫 공연인 [묵호]는 그 감자를 먹던 가난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한 찾음 그리고 기다림이다. 5차원의 시공이동은 40년혹은 50년을 넘어들어가서 안묵호 발한리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 대한 회귀의 기다림으로 보여도 좋다. 아이는 나이로서의 아이가 아닌 인간생명체 혹은 스스로 인간으로 다가와 머물다 가는 영혼의 지칭명사로 쓰인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것]에서 그 아이란 이 조그마한 동해바닷가 작은 마을어귀 에서 만남없이 만나는 늙은 할아버지일수도 있다. 책받침과 필통과 연필 그리고 지우개 크레파스. 그리고 공책. 그의 머리맡에 놓여진 선물에 아이는 부모님이 사주신거라고 감사드렷더니 부모님은 자신이 사주신게 아니라고 하시고 아이는 어젯밤 읽으며 잠이들었던 그림형제의 동화속에 나오는 난장이들을 생각한다. 산타를찾아가는 이에서 만나던 그 산타보다 조금은 더 소극적인 선행의 준비자의 모습으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것]의 인물들은 배치되어있었고 그들이 바라본 [아주먼엣날하늘에서는]에서의 그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이 부러워 그들곁에 다가가서 몰래라도 바라보고 담밖에서 노래라도 함께 응얼거리고싶어서 모두들 가버린 이시간에 그는 거기에
다가간다.
절실하면 만나며 만나려하는 그 희망이 나눔을위한 준비로 이어진다면 세상 곳곳에선 이미 아름다운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플라타너스페스티벌은 그 첫해인 1999년 가을에 이렇게 시작된다. 울릉도로 떠나는 선착장곁 조그마한 바닷가어촌에서 시작하는 그리움은 고운노랫말들을 아침바다에 들려주고 끝에는 할리퀸의 걸어갈꺼야 하는 노래로 마쳐진다.
플라타너스페스티벌은 1999년 10월 그 첫행사를 벌인다. 예기플라타너스공연이 언제나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도 늘 누군가 이러저런 목적과 이유로 다가와 함께하였는데, 그 모든 작업을 한순간 정리하며서 돌이켜보고 다시 나아갈 길을 가늠해보는 페스티벌 즉 축제는 이렇게 혼자서 걸어간다. 가을이 무르익고 날씨는 가을보다 더 차갑다. 하지만 [아주먼옛날하늘에서는]에서 만나던 영하20도의 그런 눈보라가 내리는 추위는 아니다. 지난 9월 다가갔던 그 장소들을 그대로 공연예정지로 다시 잡는다. 그리고 3회의 공연을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준비한다.
28일밤 청량리역에서 출발. 공연은 29일새벽 묵호역에서부터 시작된다. 울릉도여객선선착장 옆 작은어촌 바닷가가 첫 공연장.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것]이 공연된다.
그리고 아침..이동하여 망상역으로 가기위한 묵호에서의 준비가 이어지고 사서의 책과 시집,그리고 그림들이 준비되면 낮,망상역으로 떠나 29일 오후 망상역에서 페스티벌의 두번째 작업은 공연된다.
망상역공연후 다시 묵호 혹은 삼척에서 세번째 공연 [추암]을 준비한다. 추암공연은 30일 아침 해돋이와 아침으로 이뤄진다.
세번의 공연이 끝나면 다시 공연지로의 복귀작업. 첫번째 두번째 공연장이엇던 묵호와 망상역의 그 다음시간의 이미지가 다시 배치되고 그 이미지를 안고 1999년 첫페스티벌은 끝난다. 29일밤 혹은 30일 새벽 돌아온다.
무대는 작업실 그들은 아름다운 이유로 거리그림을 준비하고 그 겨울의 작업실의 모습이 극의 기본을 이룬다. 학교등하교길에 가까운 곳에서 어떤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지나치지않고 그들을 위해 고운 거리그림을 만들어 선물하고자 영주가 제안하고 같은과 친구들 여섯명이 이에 동의하여 아름다운 작업을 시작한다.
살아감에 잇어서 놓치고잇던 아름다움들을 이들은 자신들이 그려내는 부분부분에 담아내면서 밤샘작업등으로 이 작업을 하고 그 얘기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이 완성되어간다.
먼저 작업실엔 다른친구들이 오기전에 세아가 와서 깨끗히 청소를 한다. 보은은 세아가 결벽증처럼 보인다고 놀리지만 세아는 언제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싶어서 거리에 조그마한 휴지나 돌조각도 그냥지나치질않는다.
보은은 늦은 밤이면 클럽에 아르바이트를 나간다. 활달하고 자유분망한 성격의 그는 클럽에서 열심히 일하는 젊은 친구들의 성실함에 오히려 배우는것이 많다.
그는 그런 사람들이 선입견만으로 외면당하는 게 너무 슬프다. 작업을 마치고 학교로 가는 길에 교정에서 보미는 기영에서 소심한 성격이라면서 자신이 외면하고 있던 한 친구에게서 느낌 새삼스런 정겨움을 얘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컴플렉스란 타인이 만들어내고 타인이 소외시키는 데서 오는것이나닐까 얘기한다. 타인이 소외시키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얘기한다.
저녁 작업실에 다시모여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가져야할 공동체안의 의미를 얘기해본다. 미국 보스톤에 유학중인 친구에게서 온 편지를 같이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같이 라면을 끓여먹고 차한잔을 마신다. 공주병인 영주는 오늘도 외투속에 화려한 옷을 입고와서 놀래켜준다. 현경의 실연얘기가 친구들의 가슴을 쓸쓸하게 그러나 아름다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어른들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잇는 희정은 먼저 작업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오빠와 부모에 대한 생각이 담긴 일기를 적으며 잠이든다. 작업실의 밤샘작업이 끝나고 기영은 남아서 지방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구성대본과 녹음테잎이 완성되었다. 언제나 처럼 슬프고 아름다운노래들이 이미지를 그리워하며 담기고 사이사이 사람들의 일상속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음성들이 담겼다. 다른 작품과는달리 한사람의 여행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은 시선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그 시선을 전해나가는가 하는것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시선의 주인공은 그 시선의 청아함을 찾기위해 오감의 충족을 줄이고 눈에 보이는것과 보이지않는것 들리는것과 들리지 않는 것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면서 가을이 물들어가는 자연속에서 그 자연과 함께 새벽혹은 저녁을 맞으며 그안에 담겨 또하나의 자연으로 살아가다가 돌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사진작가나 화가의 모습으로 그려내야한다.
시선을 바로하기위해 심성을 다듬는 작업과 준비를한다. 욕심을버리는 작업으로 눈에 보이는것만 바라보던 속성을 버리고 보이지않는것에서 보임을찾아내는 작업을 준비한다. 대상없는 대상을 만들고 시간을 역순으로 거슬러올라가 병합시켜서 그날 그곳에서 따로 혹은 같이 우연처럼 만날 사람에게 줄 선물과 그에게 말없이 대화할 얘기들을 엮어간다.
아마 어느 공연보다 많은 사람들을만나고 그들안에서 익히고 돌아올 이 작업은 진정 페스티벌이었으면한다.
준비를하면서 가난이 오히려 선물을 준비하는 시간을 맑게해준다.
노래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연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동행해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며 시선을정착시켜서 멀게 혹은 가까이서 그 노래에 담을 꿈을 담고 그 꿈안에 담기는 사람들과 인사나누는 작업,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시간. 축제는 이제 100시간도 채안남았다. 많은사람들이 함께떠나고 그 축제안에서 행복했으면...
이 곳은 조그마한 책상, 쉬었다 가실 분을 위해 준비해 두었습니다. 꼭 필요하신 것은 갖고가셔도 좋아요. 예기플라타너스가 공연안에 담았던 그 마음을 이어나누려고 공연을 마치면서 놓아두고갑니다. 누군가를 만나 나누고싶어서 욕심없는 분에게 드리려고 가져온 것이니까요.
묵호울릉도선착창옆어촌,망상역,추암 연속공연
"해질무렵어느공원의이미지"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 것" "초인,존재와소외"
예기플라타너스작품 플라타너스페스티벌 1999
yegie platanus 1999.
[플페1999묵호망상역추암]공연과영상작업을 마치고 1999/10/31 23:24 ------------------------------------------------------------
플라타너스페스티벌1999 공연을 마치고돌아와 바로 영상편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두번의 동해로의 여행으로이어진 화두와 사랑의 기록을 한편의 영상으로 담 아 상영시간 50분의 [플페1999]영상본을 완성했다.
플페1999는 새벽에서 저녁까지 묵호의 향로동바닷가에서 시작하여 망상역 그리고 추암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속에서 3회의 공연을 하루안에 담으며 이뤄 ?br> 다. 새벽해드기전 작은어촌의 바닷가에 다가가서 해뜨기를 기다리면서 시작하는 작은 책상위의 선물과 나눔을 향한 축제의 시작. 한 아주머니가 지팡이를 들고 공연안에 담겨지나갔고 밤샘작업을 마치고 시골에계신 어머니에게 먹적게 전화하는 딸아이의 정겨운 전화내용 이 갈매기사이로 거니는 그 아주머니의 아침바다걸음에 담겨졌다.
물론 준비해간 인형과 문구 책과 cd-rom몇장 그리고 찬합이 소중하게 놓여지고 그 곁에 한사람이 바다를 바라보며 해가 뜨길 기다리면서 페스티벌의 시작과 끝을 담아갔다.
향로동바닷가 작은 서재에 선물을 남겨두고 아침을기다려서 망상역으로 향했다. 망상역은 페스티벌의 본 공연이 열리는 전시공간으로 준비되었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려는것의 그 작업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갤러리로서 이 공연안 에 예정된 배치공간.
한사람이 우리가 서로 그리워하거나 찾아낸지못하는 사람사이의 정겨움을 얘기하고 원당에서가져간 사람드릥 그림들이 소중한 하나의 전시회를열면서 축제는 시작된다. 한편에선 또다시 조그마한 책상 쉬었다가실 분을위해 준비한 선물이 놓여지고 한편에 선 차를 끓인다. 그 작업의 뒷편으로 육면체작은상자곽같은 역사의 네모난 문밖으로 한편에선 여러가지 자동차들이 한편에선 기차가 지나간다. 전시회를 준비하고 그림을 설치하는 동안 커피물이 끓고 한달전 이곳에 왔던 사람들의 모습과 그후 살아가는 사람들안에서 잊고있던 사랑을 발견하고 얘기해주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노래가 가득찬다.
철로정비작업을하던 역무원과 공공근로에 나온 사람들이 갤러리로 변화된 이 주인없는 역에 찾아와 전시회를 보고 차한잔의 다스함을 나눈다. 시차를 두고 만나리라 믿었던 관객과의 만남은 이렇게 공연안에 바로 연결되고 페스티벌은 진정한 나눔의 의미로 공유된다. 조건없는 사랑에 감사하고 그 감사에 잠시 사랑을 생각한다. 망상역은 이 가을 가장아름다운 축제,가장 고귀한 축제로서 진정 예플리 나누고싶어 그렇게 조심스레 준비했던 그 사랑을 너무도 쉽게 앞에 펼쳐주고 그 귀한 만남마져 고귀하게 펼쳐준다. 그림과 추억과 목소리와 작은 인형 그리고 문구안에 담긴 사랑이 사람들안에 이처럼 아름다운 희망이 스쳐만나는 시간을 존재케해준다.
추암은 이 페스티벌과 이 공연의 이미지를 되살려 집어갖고오는 마무리의 기착점. 그 바닷가에 놓여지던 엽서와 동화를 들려주던이 그리고 첼로를 연주하던 바닷가풍경과 아이 그리고 한화가의 스케치여행을 줏어 담아 축제를 완성시킨다.
다시 향로동바닷가. 동해역을 떠나오는 밤차안에서 너무도 편안한 고단함이 몰려온다.
시차를 두고 펼쳐졌던 영상과 사람들 목소리 그리고 한달 간의 축제가 하나로 뭉뚱그려지면서 막연한 설레임으로 페스티벌의 시작을 아름답게 그러나 고통스럽게 열어주었던 사람들 홍대거미전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을 확인해주었던 섬유미술과학생들 가보지도 못한 망상역을 그리면서 그곳에 있는 갤러리에 전시할 귀한 전시회를 준비햊 준 해벗누리회원들 그리고 홀로가는 축제에 동참해준 사람 그리고 시차도 없이 바로 만나 축제를 정말 빛내주었던 고운사람들.. 50분간의 영상에 그들이 함께한 시간들이 플라타너스의 첫 페스티벌을 아름답게 정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