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왕양명 중국 명나라 때의 석학 왕양명(王陽明)은 절강성(浙江省)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지행합일설(知行合一設)을 창도한 달인(達人)이다.
왕양명은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으니
그는 달마 선사의 돈오선풍(頓悟禪風)이 이미 전세(前世)부터
그의 마음을 밝혔던 선승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인연담이 전해 오고 있다.
일찍이 절강성 금산사(金山寺)에
금산(金山) 대사라는 한 스님이 계셨는데,
그는 한 마음으로 선정(禪定) 공부를 하더니
생사와 해탈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다.
그가 어느날, 점심 공양을 하고 목욕한 뒤
옷을 갈아 입고 가사장삼을 정제하고
어떤 조용한 법당으로 들어가면서
안으로 문을 꼭 잠그고 그 제자들에게 "이 법당 문을 절대로 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들어가서는 다시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 뒤에 스님네들이 궁금증이 나서
법당문을 박차고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그가 성승(聖僧)으로 당부한 바가 있어
감히 열어 볼 생각을 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법당 문을 열지 않은지 50여년이 지난 어느날
하루는 왕양명이 제자 백여명을 데리고
금산사로 소풍을 왔다가 법당을 둘러보고
뭔가 모르게 낯익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여러 법당의 참배를 마치고 한 법당에 이르니
문이 잠겨 있었다. 그 절 스님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하였더니
그 문은 절대로 열지 못한다고 한다.
왕양명이 이르되 "왜 열 수가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옛날 도승이 들어가시면서 '이 문을 절대로 열지 말라'라는 분부가 계셔서 그렇습니다." 왕양명은 이 말을 듣고 호기심이 나서
밖에 달린 문고리를 잡고 당겼더니
불가사의하게도 문이 곧 열렸다.
들어가서 본즉 한 스님이 가사와 장삼을 입은 채로
가만히 앉아 입정(入定)하고 계시는데 시체가 썩지 않았다.
그때 스님들이 모여와서 왕양명에게 "스님이 무슨 뜻으로 이 법당문을 열었습니까?" "이 벽상에 써붙인 글을 보시오.
내가 잠근 문이니 내가 열 수 밖에 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스님들이 벽상의 글을 보니
오십년 전의 왕수인이여! 문을 여는 사람이 문을 닫은 사람일세. 정령(精靈)이 바뀌어 다시 돌아오니 비로소 선문에 무너지지 않는 불사신이 있음을 믿겠네.
이런 내용이었다. 그
래서 스님들은 왕양명이가 과거 금산 대사임을 알았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고 실화를 적은 이야기이다. 바로 전생이 있음과 윤회를 실증하는 좋은 이야기이다.
활 만드는 이 뿔을 다루고 물에 사는 이 배를 다루며 좋은 장인(匠人)은 나무 다루고 지혜로운 이 제 몸 다룬다.
-증일아함경 「역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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