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덕회와 김일성
한국전때 김일성의 침략은 국제연합 즉 유엔의 참전결의로 최초의 유엔군 결성과 더불어 인천상륙작전을 통하여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켰습니다. 백선엽장군의 낙동강 다부동천투에서의 승리와 인천상륙작전으로 김일성의 남침 침략군은 괴멸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김일성은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긴급 지원요청을 하였습니다.
이에 모택동은 팽덕회를 사령관으로 하는 抗美援朝라는 기치아래 100만의 중공군을 투입하였습니다. 전쟁의 기간중 유엔군과 접전을 통하여 각군(참전군)에 대한 팽덕회 사령관의 평가가 참 재미있습니다.
먼저 미군에 대한 평가입니다.
첫번째 문제점입니다.
1. 행군을 싫어한다.
차량지원이 되지 않는 지역에 대한 전투는 회피한다. --
이 점이 팽덕회가 지적한 미군의 가장 큰 문제점중 첫번째 였습니다. 이런 미군의 특성을 중공군은
십분 활용하여 팔로군시절부터 단련되어 온 산악행군의 특기를 살려서 산악을 이용한 중공군의 우회 기동전술은 미군을 곤경에 빠뜨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중공군 개입 초부터 서울을 다시 적의 수중에 내주기까지 미군에게 상상하기 힘들정도의 중공군의 산악이동 행군속도는 미군의 작전계획을 유명무실화 시키는 일이 다반사 였습니다.
2. 야간전투에 약하다
팽덕회의 관점에서 미군은 야간전투에 극히 취약하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중공군의 전투공격은 대부분 야간에 이루어 졌습니다. 괴성을 지르며 야간에 공격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미군에게 일종의 공포로 작용하였습니다.
즉 미군이 미처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신속한 산악이동과 함께 이어지는 중공군의 야간 기습공격으로 미군은 제대로 작전을 펴보기도 전에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 공군에 대한 지나친 의존
전쟁 전기간에 걸쳐서 중공군이나 김일성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는 미군의 항공전력 즉 공군이
었습니다. 반면에 미군은 공군의 지원없는 전투에서는 전투력이 극히 취약하다는 것을 간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팽덕회는 공군이 쉽게 지원할 수 없는 지역과 시간 그리고 환경을 골라 미군을
공격하였고 이 작전은 많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즉 악천후 기간동안 집중적 공격을 감행 한 것이었고 상대적으로 악천후 전투에 취약한 미군은
전투손실을 많이 입게 되었습니다. 이상이 중공군 사령관 팽덕회가 본 한국전때 미군의 취약점
이었습니다.
이런 팽덕회도 미군의 화력지원과 공지합동공격 그리고 체계적 군수지원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미군의 본 모습을 보게된 팽덕회는 51년 가을부터 휴전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군사 전략전술적 측면에서 팽덕회 또한 보는 눈이 정확했음은 분명합니다.
이런 팽덕회도 결국 모택동에 의해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모택동의 개혁인 문화혁명으로 홍위병에 의해 죽었다는..........
(모택동의 문화혁명이 한 100년은 계속 갔어야 하는데)
출처: http://cafe.naver.com/booheong/5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