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黃鶴山구간) 2011년 2월 19~20일, 무박
구간 ; 우두령(질매재.901도로.720m)-삼성산(985.6m)-여정봉(1,034m)-바람재(810m)-형제봉(1,040m)-황학산(비로봉, 1,111.4m)-백운봉(770m)-운수봉(670m)-여시골산(620m)-괘방령(906도로,330m)-가성산(710m)-장군봉(606m)-눌의산(743.3m)-경부고속도로,경부선철길)-추풍령(4번국도, 220m) 23,7km 10시간30분
평소보다(밤 10시 20분)1시간 늦게(11시 20분)마두에서 차에 오른다.
황간휴게소에는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조용하기만 해 오히려 조금 쓸슬해 보이기도 한다.
삼성산정상에있는 이정표가 정상석을 대신한다.
우두령에서 4시 30분 출발 휘영청 밝은 달빛이 세상을 밝게 비춰주지만
아직도 많은 눈때문에 더욱 밝은것 같기도 했다.
양지에는 많이 녹았지만 아직도 많은 눈이 쌓여있다.
바람재에 도착 잠간 쉬어간다.
임도에는 백두대간 훼손지 복원사업으로 차량통행을 막아두기도 했었다.
형제봉 직전 신선봉(944m)갈림길.
양지라 눈이 많이도 녹아 있는 형제봉.
멀리 삼도봉과 지나온 대간능선이 하늘금을 긋고있다.
지나온산길이 대단해 보이지만 저길을 걸어온 우리가 더 대단해 보인다.
황학산(黃鶴山)을 황악산(黃嶽山)으로 표기된 곳이 많다.
1961년도 지리원에 고시된 황학산으로 부르는 것이 맞는 것이니 이제부터는 황학산으로 부르길 바란다.
직지사 일주문에도 황악산이라 하고 택리지에도 그렇다고 해서 황악산으로 부른다면 국립지리원의 고시된 이름은 뭣이 되겠는가?
정상석도 전부 황악산으로 되어 있으니 하루빨리 고쳐져야할 것이다.
정상석과 돌탑옆에는 영동 23 1981 재설 삼각점도 있었다.
황학산 정상 아래 헬기장에서 민주지산(각호지맥)능선을 배경으로.....
민주지산과 각호산능선이 너무 아름답게만 보인다.
남쪽 사면은 눈이 없으나 북쪽사면은 눈이 아직 많았다.
꽁꽁얼어있는 어촌저수지.
여시골산 직전 에 있는 이름없는 굴이 언제 부터인가 여우굴로 바뀌어있다.
이곳은 이렇지만 아이젠을 벗을수가 없다.
목장으로 내려가는 급경사길은 나무계단으로 정비를 아주 잘 해 놓았다.
괘방령이 가까워지자 건너 가성산의 모습이 가까이 다가온다.
김천시에서 새로세운 괘방령 표지석.
가성산까지의 길이 눈 때문에 많이도 불편했다.
건너보이는 장군봉과 눌의산.
장군봉은 숲속에 있어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운곳에 있다.
추풍령이 잘 보이는 눌의산 정상엔 영동 22 1981재설 삼각점이 있었고
이 구간엔 헬기장이 아주 많이 있었다.
다음 구간에 가야할 용문산과 난함산줄기도 가늠해 본다.
난함산(卵含山)을 어떤지도에는 묘함산(卯含山)으로 표기한곳이 있는데 이것은 한자를 잘못 봐서 일어난 헤프닝이다.
말도많고 탈도 많았던 금산의 채석장.
추풍령 노래비.
국악의 소리와 감,포도가 함께 한다는 아랑탑.
그 앞엔 고압 송유관을 알리는 표석도 있었다.
서울~부산 고속도로 준공 기념탑
1968년 2월 1일 기공, 2년 5개월만에 완공한 세계고속도로 건설사상
가장 빠른 시일에 준공(1970년7월 7일 준공)한 고속도로이다.
(산행후기)
이번구간은 이제 막 德裕山구간을 끝내고 俗離山구간을 향해 발돋움해야 하는 黃鶴山 구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덕유산 쪽이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내가볼 때는 중간쯤이라고 보면 더 공평할 것 같다.
2월 한 달은 설날이 있는 달이면서도 일 년 중 제일 짧은 달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바쁘게 움직여야만 하는 숨 가쁜 달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불과 2.3일 차이인데도 우리 인간의 마음은 이렇듯 호들갑스럽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달 대간종주는 이번 한번으로 끝내고 바로 3월로 들어가게 된다.
아직까지는 눈(雪)산행이지만 이제 차츰 눈과는 멀어지며 벌써 남쪽에서는 매화꽃이 피었다는 봄소식이 올라오는 立春(2월4일)도 지난 지 이미 오래전이고 어제는 봄비가 온다는 雨水도 지났다..
이번구간은 23,7km로 상당히 길게 잡힌 것 같지만 막상 종주를 해 보면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4시 30분 우두령(질매재)에 도착했다.
901도로 에 충북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와 경북 김천시 구성면 마산리를 잇는 오지도로 로 대간 길은 에코 브릿지(동물이동 통로)로 거창하게 만들어 놓았다.
우리 백두대간 종주대가 구간을 끊어가며 종주를 하는 것은 우리가 목표를 안고 구간별로 진행해 가는 것이고 이것은 오로지 책임감과 함께 자기와의 약속을 이행하려는 목적산행이며 살아가는 과정에 활력을 충전하는 발전소와 같은 기능이라고 자부하고 싶은 것이다.
고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모두 肥滿의 세상이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은 더욱 비만에 차 있어 몸만 다이어트 할 것이 아니라 마음부터 무거운 짐에 벗어나야할 것으로 보여 진다.
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하겠지만 가끔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비워주는 연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새로움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쓰던 그릇도 깨끗이 하듯 머리도 시원하게 한번쯤 비워두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 본다.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 산길은 1시간정도 오르내리자 삼성산(985.6m)에 도착한다.
1시 방향으로 보이는 삼성암의 불빛이 밝게도 보이며 불의 숫자도 종전보다 많아진것 같다.
다시 30여분 열을 올리자 여정봉(1,034m)이다.
우측으로 꺾어 내려가니 중계소 잔해가 아직도 남아있는 임도에 닿는다.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다 대간 길을 따르는 것이 오히려 시간상 절약이지만 아직도 북사면에 눈이 많아 임도를 따랐다.
우두령에서 출발한지 두어 시간되자 바람재(810m)헬기장에 도착한다.
우측으로 있는 고랭지 채소밭을 내려다보며 황학산을 향해 계속 오름길이다.
이곳에서 1시간 30여분 걸린다.
황학산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과 상촌면에 걸쳐있고 그 정상은 비로봉(1,111.4m)이다.
중간쯤 형제봉(1,040m)이 있어 형제의 友愛를 다시한번 느껴보며 우측 아래에 있을 유명한 古刹 直指寺도 생각해 본다.
옛 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黃鶴山 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직지사의 현판 및 택리지에는 黃嶽山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하니 대충 1,600여년의 내력을 가진듯하고 그 후 태조 19년(939년) 능여대사 가 중건한 절이다.
또한 사명대사가 5년간이나 이 절에서 수도했다는 것도 유명하지만 직지사란 이름은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조사 어록에 근거한 듯 아도스님이 신라에 불도를 전하러 왔다가 손가락으로 황학산을 가리키며 좋은 절터라 한데서 유래한다는 말이 가장 유력해 보이나 다른 말로는
이 절을 중건한 능여대사가 자(尺)를 쓰지 않고 손(指)으로 재서 절을 지었다 하여 그 이름을 직지사라 불렀다는 말도 있다.
절 이름도 그렇지만 황학산 높이가 1,111m란 것도 재미가 있다.
1,111은 네 손가락과 같다는 뜻에서 그렇다는 說도 있으나 이말 만은 근간에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오늘 대간 길의 主山은 황학산 이고 그 아래 절은 직지사임엔 틀림없다.
별다른 특색은 없지만 대간의 중추(中樞)란 점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만은 틀림없다.
정상에서 북서쪽 1.5km 지점엔 곤천산(1,31m)쪽이 대간 길 같아 보이지만 오른쪽 직지사쪽으로 대간 길은 이어지는 것이다.
백운봉(770m)을 지나 운수봉직전에서 직지사 가는 길은 우측으로 흘려보내고 고만고만한 산 몇 개를 오르내리면 여시골산(668m)도 지나게 된다.
왼쪽에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는 굴 하나를 내려다보고는 경사심한 된비알을 내려가면 인제목장 경계를 따라가게 된다.
드디어 906번 국지도가 지나는 괘방령에 도착한다.
10시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괘방령은 조선시대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이 붙는다 하여 괘방령이라 이름 지어졌고 북쪽에 있는 추풍령은 국가업무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官路였다면 이곳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으로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商路로서 추풍령 못지않은 큰길이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괘방령은 해발 330m에 불과하지만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며 지리적 요충이기도 한 곳이다.
이제 추풍령(220m)을 향해 다시 몇 개의 산을 넘어야만 한다.
잠깐 쉬면서 목을 축이고는 가성산(730m), 장군봉(625m), 눌의산(744,5m)을 거쳐 추풍령에 내려오니 3시가 살짝 넘는다.
제법 피곤하다.
힘들고 어려웠던 젊은 날의 記憶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새로운 물결에 쓸려 나가고 가랑잎처럼 흩날리는 꿈은 그 흔적조차 가물가물해지는 세월 속에 국가가 베풀어주는 조그마한 溫情 그것이 유일한 樂이며 希望이기도 하여 그 끈을 놓지 않으려고 잔가지 움츠리며 삶의 指標가 거꾸로 접혀지는 형국이라도 조심스럽게 맞이하는 순간이다,
눌의산에 서자 멀고도 가까운 산 너울이 조심스럽게 펼쳐지며 다음구간에 가게 될 卵含山(733.4m)과 용문산(710m)이 조화롭게 눈앞에 펼쳐진다.
거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自由人은 어디에도 구속 없는 바람과 같이 자유로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또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을 조용히 가슴에 안은 채 귀경길에 오른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