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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의 도시 바빌론
수많은 고대 도시 중에서도 지금까지 전세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영광과 굴욕이라는 양 극단을 맛본 도시는 바빌론밖에 없다. 유프라테스강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일찍이 세계의 중심이라고까지 불린 이 도시의 특징은 바둑판처럼 뻗어 있는 도로와 그 주위에 서 있는 채색 타일로 장식된 벽돌,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서 있는 건축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건물은 '바벨탑'과 '공중정원'이다.
바빌론이 어떤 도시인가를 설명하자면, 그 도시는 광대한 평야 가운데 있으며 사각형의 모양을 가지고 사방으로 각각 120스타디온의 길이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도시의 전체 둘레는 480스타디온이다.
바빌론의 규모는 이처럼 거대한 것이었는데, 바빌론은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어떠한 도시보다 아름답게 정비된 도시이기도 하다. 우선 물이 가득 차 있는 깊고 넓은 해자(垓字)가 도시 주위에 둘러쳐져 있고 이어서 두께가 50페큐스, 높이 200페큐스의 성벽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성벽 위의 양쪽 가장자리를 따라 1층 건물 두 채를 서로 마주보도록 세웠는데 그 건물들 사이에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빈 공간이 있다. 전체 성벽을 따라 100개의 문이 있는데 모두가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고 문기둥도, 상부의 횡목(橫木)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Herodotos: B.C. 485?~B.C. 425?)가 경탄하면서 기록한 이 도시의 모습은 현대인까지도 흥분시킬 만큼 장대한 도시 계획에 따라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책에서 표시한 단위를 미터로 환산하면 도시의 한 변 길이는 21킬로미터이며 총 둘레는 85킬로미터다. 도시 주위에 파놓은 해자를 따라 세워진 성벽의 경우는 두께가 25미터, 높이는 89미터나 되는 규모다. 다만 이것은 조금 과장된 숫자라고 생각된다.
오늘날의 고고학 조사에 따르면 그 바깥 둘레는 대략 16킬로미터라고 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 크기는 런던 시(市)의 규모에 필적한다. 도시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사람은 헤로도토스뿐만이 아니다. 구약성서의 「다니엘」에서도 '가장 크고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표현되어 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 모습을 볼 도리가 없다. 이미 기원전에 이 도시는 잿더미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19세기부터 독일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작업이 시작되어 그 전모가 점차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예전 바빌론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람은 역시 헤로도토스말고는 없다. 다만 그가 기록한 것은 소위 '신(新)바빌로니아1)' 시대의 바빌론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보자.
우선은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인 바빌론에 대해서 그 역사를 여기에 소개한다.
바빌론의 기원은 B.C. 3000년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때는 바빌로니아 제1왕조2)의 6대째 왕인 함무라비(Hammurabi: 재위 B.C. 1792~B.C. 1750) 시대다. 그는 메소포타미아를 통일시킨 뛰어난 군사적 수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법률, 도시 계획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인물이다. 바빌로니아3)의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지배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4)을 제정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법전은 석비(石碑)에 새겨져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함무라비 왕은 그 뛰어난 재능을 도시나 궁전, 신전 건축 등에서도 발휘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의 활약을 기록한 글은 거의 현존하지 않으며 현대의 발굴작업 중에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후에 바빌론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길 만한 흥망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함무라비 왕의 후계자들은 점차 세력이 약해져서 B.C. 1595년에는 히타이트5)의 공격을 받았다. 이 때 신전이나 왕궁은 파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것은 기원전 8세기 무렵에 흉악하고 난폭한 아시리아6)의 공격에 의해서였다. 아시리아가 저지른 파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서 바빌론은 늪지처럼 변해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B.C. 625년에 다시 독립하여 나보폴라사르 왕(Nabopolassar: 재위 B.C. 626~B.C. 605)이 주변의 여러 국가들과 연합해서 아시리아을 멸망시키고 '신바빌로니아 왕국(칼데아 왕조)'을 건설했다. 이 나보폴라사르 왕의 아들이 네부카드네자르 2세(Nebuchadenezzar Ⅱ: 재위 B.C. 605~B.C. 562)이다. 그는 아버지가 이룩한 제국을 더욱 강한 나라로 확대했다.
성서 속에서 그의 '악명'만이 눈에 띄는 것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예루살렘의 전투' 7)에서 승리하여 방대한 전리품과 함께 많은 유대인 포로를 연행했기 때문이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수완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수확하는 밀, 대추야자, 나아가서는 양털 등을 가지고 외국과 교역을 시작하여 엄청난 부를 손에 쥐었다. 그는 또한 제국 전역에 공통된 도량형을 제정하였고 은행제도 등 금융도 발달시켰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이렇게 얻은 부와 권력을 아버지가 못다 이룩한 사업에 투자했다. 즉 그의 시대보다 1천 년이나 전에 번영했다는 '황금시대의 바빌론'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예전의 건축물들은 외적의 침입이나 전쟁으로 인해 황폐하여 그 옛날의 모습은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부자 2대에 걸친 권력자는 그 영광을 새로이 일으키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도시 재건을 위해서 '북에서 남까지, 산간지역에서 해안지대까지 제국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동원했다고 비문에 적혀 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도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어떠한 도시보다 아름답게 정비된 도시'(헤로도토스에 의하면)라고 절찬받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사람들은 이 낙원과도 같은 도시에서의 생활을 구가했을 것이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이 도시를 '세계의 배꼽', 말하자면 온 세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지라고 불렀다. 그럴 정도로 부가 집중되고 찬란한 문화가 꽃을 피웠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정된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네부카드네자르가 죽은 후에 급속하게 쇠퇴되어갔다. 그의 후계자가 수도를 다른 도시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윽고 세력이 강해진 페르시아군이 이 도시를 점령하여 '바빌론 시대'는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아버지와 2대에 걸쳐서 집념을 불태웠던 도시 재건이란 도대체 어떠한 것이었을까? 우선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것처럼 도시 주위에 해자를 만들었고 그곳에 이중으로 높고 두꺼운 성벽을 둘러쳤다. 성내로 들어가기 위해서 성벽에는 탑이 달린 대문을 아홉 군데나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정문인 이슈타르 문(門)이다. 좌우로 탑이 있는 이 문은 황소나 용, 사자의 모습을 그린 채색 벽돌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들 건물이나 벽은 벽돌로 만들었고, 접착을 위해서는 아스팔트를 사용했다.
이 아름다운 이슈타르 문을 지나서 성안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는 바둑판처럼 도로들이 교차하고 있고, 유프라테스 강에서 끌어온 운하가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도로를 '행렬 대로'라고 불렀는데 길이 900미터, 폭 20미터나 되는 중앙 대로였다. 좌우의 벽에는 동물들이 채색 벽돌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왕궁이 있었고 신들을 모시는 '성역'이 있었다.
왕궁은 안뜰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왕실관리의 거처, 근위병 병사(兵舍), 의식용 광장([보좌]의 강당), 왕의 사저(私邸), 시녀들의 관사이다. 의식용 광장은 넓이가 50미터나 되는 규모였다. 이 부근에는 나중에 소개하는 '공중정원'이 있었다고 전한다.
성역은 도시 안에서도 가장 광대한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바빌론이라는 도시는 '신전 도시'라는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출토된 비문에 따르면 바빌론 시내에는 '위대한 신들의 신전 53, 마르두크 신8)예배소 55, 대지 신 예배소 300, 하늘 신 예배소 600, 신들의 제단 400'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의 신앙생활 중심에 위치하는 곳이 성역이었다. 물론 이 성역은 그들이 가장 숭배하는 '만물의 창조자'이자 '전 우주의 중심'인 마르두크 신에게 바쳐진 것이다. 성역에 있는 에사길라 신전은 높이가 45미터나 되는 커다란 건축물로, 내부에 자리하는 신상, 의자, 테이블 등이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중량은 20톤에 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지구라트(Ziggurat)'라는 '공중정원'과 함께 바빌론의 명성을 높인 유명한 건축물이 그 웅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 사는 바빌로니아인들은 지적인 호기심이 매우 왕성했다고 한다. 바빌론뿐만 아니라 그들이 건설한 각 도시의 신전에는 반드시 서기학교(書記學校)가 병설되어 많은 학문이 꽃을 피웠다. 특히 유명한 것은 천문학(점성술), 의술, 수학이었다.
대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비문에는 그들이 '이슈타르(금성)의 각(角)'이라 부른 초승달에 대한 글이 있다. 또한 목성이 가진 네 개의 위성에 대한 관찰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육안으로는 절대로 볼 수가 없는 것들이다. 농경 민족에게는 자연이 주는 영향력이 매우 컸기 때문에 홍수에 대한 예측이나 수확 시기의 결정 등에 정확한 천체 관측이 필요했을 것이다. 참고로 지금도 사용되는 10진법, 60진법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유산이다.
1938년 무렵 어느 독일인 고고학자가 바그다드 근처의 유적에서 기묘한 물건을 발굴했다. 그것은 목 부분을 아스팔트로 씌운 도자기 단지와 동으로 된 원통에 들어 있는 철 막대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GE사의 기술자가 이 장치를 복원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것은 전지(電池)였던 것이다. 이것으로 수수께끼 하나가 풀렸다. 이 '전지'의 발굴지 부근에서 아무리 보아도 전기 도금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물건이 몇 점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전지뿐만 아니라 전기도금의 지식까지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자,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바빌론이라는 고대 도시를 유명하게 만든 두 가지 전설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바벨탑'에 대해서 소개한다.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사람들은 동쪽에서 옮아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는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야훼께서 땅에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바벨(Babel: 신들의 문)이란 히브리어로 바빌론을 가리키는 말인데, 히브리 사람은 Balal(혼란스럽게 하다, 어지럽히다)로 해석했다. 성서에 따르면 여호와는 사람들이 하늘에 닿을 수 있는 탑을 건설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스스로가 하느님이 되려는 오만한 마음의 표출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 도시에 모이는 사람들의 언어를 제각기 다르게 바꾸어버렸다고 한다.
이 탑은 바빌로니아 지방의 독특한 건축물이며 '지구라트(Ziggurat, 聖塔)'라고 불렸다. 원래 수메르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단을 여러 층으로 겹친 건축물로, 위로 갈수록 작아져서 말하자면 사다리꼴의 피라미드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주위로는 계단을 만들었으며 가장 높은 곳에는 신전을 세웠다.
지구라트란 바빌로니아 말로 '하늘의 산'을 뜻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왕의 묘'인 것에 비해 지구라트는 신들과 교신하기 위한 '하늘과 땅의 연결 고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B.C. 3000년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바빌로니아 각지에 대략 서른세 개의 지구라트가 있었다고 한다.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은 바빌론 도시의 중앙에 건설되었고 가장 웅장하고 화려했다고 전해지는 '에테메난키(Ethemenanki: 하늘과 땅의 집이라는 뜻)'의 지구라트를 가리킨다. 이것에 대해서 헤로도토스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성역 중앙에 가로와 세로가 모두 1스타디온(약 177미터)이나 되는 튼튼한 탑이 세워져 있다. 이 탑 위에 제2의 탑이 서 있고, 다시 그 위에 또 탑이 서 있는 식으로 해서 8층에 이르고 있다. 탑에 오르기 위해서는 탑 바깥쪽으로 모든 층을 둘러싸듯이 나선형의 통로가 나 있는데 그것을 이용한다. 계단을 가운데 정도까지 오르면 층계참이 있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의자가 놓여 있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은 여기에 앉아서 잠시 숨을 돌린다. 꼭대기의 탑에는 커다란 신전이 있는데 이 신전 속에는 아름다운 천으로 덮인 커다랗고 긴 의자가 있으며 그 옆에 황금 탁자가 놓여 있다. 신상(神像)같은 것은 이곳에 일체 안치되어 있지 않다.
(『역사』)
실제로는 이 지구라트의 크기는 1층의 한 변이 90미터, 높이도 90미터로 7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것처럼 지구라트 가장 위층에 있는 신성한 장소에는 아무도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 에테메난키의 지구라트에도 화려한 장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채색 벽돌로 각 층마다 색깔의 구분이 되어 있었다. 1층은 토성을 의미 하는 검은색, 2층은 금성의 흰색, 3층은 목성으로 붉은색, 4층은 수성으로 파란색, 5층은 화성을 의미하는 녹색, 6층이 달의 은색, 7층은 태양의 금색이다. 그리고 정상에 있는 신전은 푸른 에나멜 벽돌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행성들은 각각의 신들9)에게 속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상을 해보라. 폭과 높이가 모두 90미터라는 거대한 사다리꼴의 성단이 하늘을 향해서 높이 치솟아 있는 광경을 말이다. 그것도 각 층마다 아름다운 색깔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사막 지대의 푸른 하늘 아래 강렬한 햇빛을 받으며 빛나는 장려한 건물. 그것을 보고 몸이 떨리지 않았던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신바빌로니아가 탄생했을 때 이 지구라트는 이미 1층만을 남기고 붕괴되어 있었다고 한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아버지와 함께 그 복원에 집념을 불태운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빌론에는 또 한 가지 세상에 잘 알려진 건축물이 있다. 그것은 피라미드 등과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10)중 하나로 손꼽히는 '공중정원'이다. 이것은 '가공정원(架空庭園)'이라고도 불리는 것처럼 글자 그대로 하늘에 걸쳐 있는 정원이다. 그 존재는 오랜 세월 동안 전설로 전해져 왔는데 19세기 말부터 이루어진 발굴조사에 의해 실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조사에 의하면 왕궁 지구의 북동쪽에 둥근 천장으로 덮여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사방이 약 40미터 정도 되는 건물의 잔재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공중정원'의 토대 부분이라고 판단한 고고학자들은 잃어버린 상부 구조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검토했다. 그 결과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라는 것은 지구라트와 닮은 계단상의 건물이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것 또한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건축물이었던 모양이다.
기초는 불규칙한 사다리 모양이며 각 측면에는 폭이 3미터나 되는 아케이드(아치로 된 낭하 - 옮긴이)가 일곱 개 늘어서 있다. 내부는 가늘고 긴 둥근 천장이 있는 열네 개의 방이 동서로 나뉘어서 배치되어 있다. 4층 건물이라고 추정되므로 건물 전체의 높이는 40미터 정도라고 생각된다. 헤로도토스는 높이 100미터라고 적고 있지만 이는 과장일 것이다.
당시에 이 건축물을 직접 본 사람에게는 마치 '녹색의 피라미드'처럼 보였을 것이다. 단의 바깥쪽을 따라서 야자, 삼나무를 비롯하여 먼 이국 땅에서 옮겨와 심어놓은 향목(香木), 수목, 풀꽃들이 건물 표면의 벽돌을 감추듯이 파릇 파릇하게 자라 있었다. 놀랍게도 이 기초 부분에는 유프라테스강에서부터 수로를 통하여 일종의 양수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각 부분으로 급수관을 뻗어가고, 그 급수관을 흐르는 물이 식물들을 키우고 아름다운 분수로도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지상 낙원을 연상시켰다. 이 정원에 서면 바빌로니아의 강렬한 햇살을 막아주는 푸른 녹음의 시원함과 주위에 가득찬 달콤한 꽃향기에 취해 도시의 소란스러움이 멀어져갔을 것이다.
이 바빌론에 대해 글을 쓴 일본인 저술가 시부사와 다츠히코(澁澤龍彦)는 이 공중정원에 대해서 '그 규모와 구조가 고대 사회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 경이적인 정원'이라고 설명했다.
······건축이나 조경의 일류 전문가들이 형체와 색채의 조화에 온 신경을 쓰고 정원의 교목(喬木)에서 관목, 화단의 풀과 꽃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안배했던 것이다. 멀리 인도나 페르시아에서 옮겨온 백련, 헬리오트로프(heliotrope: 지치과에 속하는 관상식물 - 옮긴이), 사향초 등과 같은 진귀한 꽃들이 서로 색깔을 뽐내며 숨막힐 듯한 향기가 끊임없이 코끝을 스치는 노단(露壇)의 정원에는 흰 공작새나 극락조, 펠리컨, 홍학 같은 새들도 놀고 있었고, 여름에도 서늘한 아케이드 안에서는 빛을 머금고 떨어지는 분수의 시원한 물줄기를 통해서 열기가 가득 차 신기루처럼 보이는 아래 세계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바빌론의 가공정원』)
이 정원은 전설에 의하면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그의 아내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네부카드네자르의 아버지가 메디아 왕과 동맹을 맺었을 때 당시의 관습으로 양 왕가 사이에서 혼인이 이루어졌다. 네부카드네자르는 메디아 왕의 딸인 아미티스와 결혼한 것이다.
그러나 왕비에게 결혼생활은 쾌적하지 않았다. 그녀의 고향인 메디아는 페르시아 북방의 산악 지대였다. 그녀는 평야에 있는 바빌론 땅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왕은 왕비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고향과 닮은 정원을 만들자고 결심 했다고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건축물을 자랑하며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번영을 이루었던 이 도시는 그 종말 또한 순식간이었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바빌론의 이름이 '타락'과 '악'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당시 유다 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을 세 번에 걸쳐서 공격하여 도시를 파괴하고 많은 귀족들과 군인들을 포로로 잡아서 바빌로니아로 연행해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원수 같은 존재였으니 아무리 증오해도 모자랐을 것이다.
「요한의 묵시록」에서는 바빌론이 '큰 음녀(淫女)'로 나와 있다. 음녀라고 불린 이유는 바빌로니아 땅에서 오래 전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여신 이슈타르11)때문이다. 그녀는 전쟁의 신이면서 땅의 모신(母神), 즉 농경의 풍작을 약속하는 여신으로 바빌론에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식물 신인 남편과 성 행위를 하는 것으로 곡물의 수확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자비로운 창녀'라고도 불렸다.
또한 이슈타르 여신을 모시는 신전에는 '신성한 창녀'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있었다. 결혼을 앞둔 처녀는 의무적으로 신전으로 가서 7일 동안 참배하기 위해 찾아오는 남자들에게 몸을 제공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이러한 존재는 '타락'의 상징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 예언처럼 바빌론의 도시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세상을 떠난 뒤에 겨우 4반세기 만에 페르시아 건국의 영웅인 키루스 2세12)의 손에 멸망했다.
이렇게 해서 바빌론의 아름다운 도시와 함께 장대하고 화려한 바벨탑, 공중 정원은 모래 속에 파묻혀서 흙으로 돌아가버렸다. '지상낙원'이라는 몇 가지 믿을 수 없는 전설을 남겨놓은 채 역사의 저편으로 멀어져갔던 것이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무너졌다!
바빌론은 악마들의 거처가 되고
더러운 악령들의 소굴이 되었으며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새들의 집이 되었다.
모든 백성이 그 여자의 음행으로
말미암은 분노의 포도주를 마셨고
세상의 왕들이 그 여자와 놀아났으며
세상의 상인들이 그 여자의 사치 바람에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32608&cid=43109&categoryId=43109
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23433&cid=50762&categoryId=50770
3. http://ko.wikipedia.org/wiki/%EB%B0%94%EB%B9%8C%EB%A1%A0
4. http://ko.wikipedia.org/wiki/%EB%B0%94%EB%B9%8C%EB%A1%A0_%EC%9C%A0%EC%88%98
5. http://blog.daum.net/zaumm/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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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대 환국의 제후국인 수메르인들이 세운 바빌론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