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에도 상대적 깨침이 있고 절대적 깨침이 있습니다. 동의에도 절대적 동의가 있고 상대적 동의가 있습니다. 중심에도 상대적 중심이 있고 절대적 중심이 있습니다. 믿음에도 상대적 믿음이 있고 절대적 믿음이 있습니다. 상대적 깨침에는 상대적 동의에 상대적 중심을 찾아 상대적 믿음의 길을 가지만, 절대적 깨침에는 절대적 동의에 절대적 중심을 찾아 절대적 믿음의 길을 갑니다.
절대적 깨침과 동의와 중심과 믿음의 한 가운데에 시천 태을이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시천 태을이 있기에,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태을도의 마음줄을 꼭 잡고 부지런히 마음 닦고 태을주를 읽어 독기와 살기를 풀어없애, 심중의 직통길을 따라 내가 나의 진면목과 참모습을 찾아 시천주 봉태을의 태을도인으로 우뚝 서면, 절대적 깨침과 동의와 중심과 믿음의 태을궁 지심대도술의 태을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도의 길은 천지부모님과 이심전심된 선통자의 안내를 받아 상대적 깨침ᆞ 상대적 동의ᆞ 상대적 중심ᆞ 상대적 믿음에서 절대적 깨침ᆞ 절대적 동의ᆞ 절대적 중심ᆞ 절대적 믿음으로 단계 단계 승화시켜나가는 마음공부 심통공부입니다. 나에 대한 나의 관점이 상대적에서 절대적으로 가야, 밖으로 밖으로 나돌려는 나를 붙잡아들여 나에 촛점을 맞추고 나의 마음에 집중하여 천주의 품성을 되찾고 태을신성과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상대적 깨침과 상대적 동의ᆞ 상대적 중심과 상대적 믿음이 표면적으로 다양성을 보장하고 다중성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절대적 깨침과 절대적 동의ᆞ 절대적 중심과 절대적 믿음이 진정한 다양성을 보장하고 다중성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증산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당신의 마음속에 받아나온 시천 태을을 밝혀 절대적인 깨침과 동의ᆞ 절대적인 중심과 믿음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선천역사를 면밀히 살펴 '단주수명 태을주' '증산소유 단주수명'이라는 천명으로 인존시대를 여는 진리의 중심과 역사의 중심을 일치시켜, 태을도 도제천하 의통성업으로 세계일가 삼계일가의 대시국 태을촌을 성사재인하는, 천지공사의 천지도수를 천지인신에 선포하셨습니다.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태을도인으로서의 깨침을 실천하는 성사재인의 과정에서 상대와 절대의 비율은 각자 다를 수 밖에 없고, 천지부모님의 가르침과 현실을 본인이 깨쳐 이해한 만큼, 상대와 절대를 녹여내 제 임무를 자처해 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획일적인 줄 세우기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중심에서 과도하게 벗어나는 이탈도 안됩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을 일깨워가는 핵심 주축세력은 큰 범위에서의 이해와 관심이, 대의와 명분도 함께 똘똘 뭉쳐있어야 합니다. 서로의 이해와 관심이 깊으면, 이리저리 경위를 재단하고 검증하는 말이 필요없습니다. 서로의 대의와 명분이 같으면, 앞과 뒤로 세력조직을 따지고 이해타산하는 글이 필요없습니다. 나라의 건국이든 도업의 결실이든, 반드시 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대의가 같고 명분이 일치하고 이해와 관심이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태을도인들이라야 생사를 걸고 굳건히 손잡고 시대의 강을 건너갈 수 있습니다.
첫댓글 "도의 길은 천지부모님과 이심전심된 선통자의 안내를 받아 상대적 깨침, 상대적 동의, 상대적 중심, 상대적 믿음에서 절대적 깨침, 절대적 동의, 절대적 중심, 절대적 믿음으로 단계 단계 승화시켜나가는 마음공부 심통공부입니다." - 개인의 주관을 끊임없이 근본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통해 공변된 마음, 천지공심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이 도의 과정일 것입니다. 태을도는 선통자인 단주와 이심전심되어 심중의 직통길을 따라 내 마음속 시천 태을을 드러내어 모두가 공심자로 하나되는 길이요 진리입니다.
상대적인 것은 자신에게 특화된 관점이요 상대방을 포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옳고 바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 그 곳에서 적합한 관점과 행동은 그 때와 그 곳을 벗어나면 의미가 없어집니다.
절대의 중심에서서 시공에 따라 상대적으로 마음을 조화시켜 생명을 유지합니다.
절대 중심과 연결된 상대성이어야 소통하여 서로 융합합니다.
너도 나도 손을 맞잡고 해원시대의 강을 건너 상생의 땅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