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함께 나눠 쓰는 기쁨의 품위
정 태 연(섬진강생태연구소(준) 대표)
장마철이 끝나 가는가 싶었는데, 오늘부터 다시 비가 온다는 예보다. 장맛비가 많이 오면 으레 구례 섬진강변의 문척다리가 한번씩 물에 잠기곤 하는데, 올 핸 그냥 지나가는 듯하다. 지난 호에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은 ‘물’에 대해 한 말씀 드릴까 한다.
작년 가을, 지리산권의 종교인분들과 둘레길을 한 바퀴 돌 때였다. 산청 중태안내소에서 갈치재를 향해 터벅터벅 올라가는데, 함께 걷던 실상사의 연관스님께서 물으셨다. 처사님은 우리나라에서 젤로 좋은 게 뭔지 알아요? 녜...? 글쎄요, 뭐가 좋을까요? 물이예요, 물! 아, 그..그렇군요. 봐 봐요, 요렇게 산에서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우린 언제나 먹을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우리나란 물이 차~암 좋아요.
스님의 말씀을 듣자니, 몇 해 전 동남아에 갔을 때 매번 물을 사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찻집이고 식당이고 물을 공짜로 주는 데가 없었던 것. 어디 동남아 뿐이랴. 저 넓은 중국땅도 그렇고, 멀리 아프리카로 가면 아이들이 먹을 물을 찾아 하루에 몇시간씩 웅덩이를 찾아 헤매는 나라들도 많으니, 우린 정말 축복받은 땅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장맛비가 많이 오면 강물은 한 번 크게 뒤집힌다. 섬진강도 늘 그래왔다. 그러면서 4~7월동안 뜨거워진 스스로를 식히는 한편, 유입되는 물과 산소로 인해 정화작용이 왕성하게 일어나 수생식물도 거기 사는 뭇생명들도 한 숨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다른 강들은 처지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녹조가 예년보다 이르게 또 넓게 생겨나고, 듣도 보도 못한 큰빗이끼벌레라는 생물체가 금강을 비롯, 4대강 어디서나 대량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 이 벌레가 담긴 수조에 물고기를 넣으면 그 군체가 배출하는 암모니아로 인해 1시간도 못 돼 모두 폐사한다고 하니 걱정스런 일이다. 이 태형동물의 독성 여부와 수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학자들이 차차 연구해갈 것으로 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강이 호수처럼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변화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현상이 4대강 여기저기 만들어진 보(? 댐!!)로 인해 유속이 느려지고 알갱이가 미세한 개흙(뻘)의 비율이 현저히 높아지고 있는 것. 이러한 하상의 변화는 용존산소를 부족하게 만들어 수중생물이 도저히 살 수 없는 공간으로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일부 학계와 환경단체의 지적이다. 4대강사업으로 인한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생명이 살 수 없는 강이라면 결코 사람도 그 강물에 기대어 살 수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아시다시피, 모든 생명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물 없이는 살 수 없다. 지구 위의 모든 생명들에게 물은 생명의 유지와 건강에 필수적이고 유한하다는 의미에서 공공재라 할 것인데, 전기, 가스, 도로 등처럼 달리 선택지가 있는 재화들보다 물은 훨씬 근본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도 물은 그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되는 재화이므로,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쓰여지는 게 마땅하다. 따라서, 물을 사유화하려는 시도, 예를 들어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에게 맡기려는 정책은 무척이나 반인권적인 것이다. 이명박정권에서 추진하려다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던 ‘물산업지원법’ 따위 말이다. 말 자체가 틀렸다. 물은 산업화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공공재인 물을 경제재로 바라보는 것, 모두의 삶에 소중한 물을 영리행위의 시장으로 끌어내는 것은 온당치 않다. 환경부가 벤치마킹했다는 이탈리아는 민영화 이후 가정집의 수도요금이 1년에 1500유로(약 240만원, 2004년 기준)까지 치솟았다. 인도의 케랄라주에서는 코카콜라사의 물독점에 항의해 대대적인 보이콧운동이, 우루과이에서는 국민투표까지 거쳐 헌법에 물사유화 금지조항을 삽입했다. 볼리비아의 코차밤바에서는 빗물마저 못 받아먹게 하는 미국 벡텔사의 횡포에 맞서 총파업과 폭동이 일어나 계엄령까지 내려져 수백명이 죽고 다치는 진통 끝에 물 민영화를 되돌렸지 않았던가.
국토부의 최대 관피아 세력이라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여전히 용유담을 메워 지리산댐을 만들고 피아골에 댐을 세워 물을 팔아먹고 금고를 채울 방안을 고심중이겠지만, 이제는 좀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강토의 아름다운 젖줄들이 저토록 썩어가게 만들었으면 제발 정신 좀 차려도 무어라 할 사람 없다. 인간의 탐욕과 편의성, 관리시설을 만들어내는 중심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바탕으로 물 본래의 순환성에 걸맞는 조화로운 물정책의 근간을 다시 세워가야 한다.
우리의 물을 모든 생명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새로운 눈으로 경이롭게 바라보자. 마침 방한하신 교황께서도 그리 말씀하시고 있지 않나. 이제 우리 모두 물질과 탐욕에 맞서 싸워야 할 때라고. ‘돈의 문화’를 극복하고 ‘서로가 돕고 사는 기쁨의 품위’를 누리자고.
[2012.8.17 / 전북 진안, 섬진강]
* 이 글은 계간 '지리산人' 제15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첫댓글 물도 정책이 필요한 세상이라니....참.. 거시기 하네요.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김삿갓은 그래도 양반이라고 해아하나?
물, 공기, 하늘, 바람.... 만민에게 평등한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세상이 온다면....
으메~~~끔찍한 것
茶室 공사 시작하셨다면서요? 애 쓰셈요~ ^ ^*